낙단교의 비애를 아십니까...??
낙단교는 국도 25호선의 상주낙동면과 의성군 단밀면 낙정을 있는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2차선 교량입니다...
이교량에 무슨 비애가 숨어 있겠냐고 반문하시겠지마는 나름대로의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국도25호선은 국도3호선과 5호선을 가장 가까이 연결하는도로로서.. 과거에는 상주와 대구를 연결하는
가장 큰 도로 였습니다 낙동과 낙정을 있는 낙정나루도 이 노선상에 위치하고 있었죠
이나루에 교량이 없던시절에는 하루에도 몇십차례씩 버스나 화믈차들을 실고 배들이 도강을 했죠...
그런데 어느날 부터 차와 사람을 실어나르며 부산을 떨던 나루가 갑자기 파리 날리듯 조용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이유는 낙정나루에서 그리 멀지않는 도개면에 낙동강을 가로질러 선산을 연결하는 일선교가 생겼기때문입니다,,
그일선교가 생김으로 인해서 낙정나루는 25호선상의 연결기능을 일선교로 넘겨 주고 이름없는 일개 나루로 주져 앉았습니다
이번 일욜 라이딩이 낙단교에서 시작해서 낙단교에서 끝나기때문에
그런 사연을 가진 일선교와 낙정나루에 얽힌 야화를 한번 적어 볼까 합니다.....
5.16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당시 국가재건최고 회의 박정희 의장은
민정이양을 통해 진정한 대통령으로서의 대권을 잡고 국정을 책임진 박정희 대통령은
고향인 선산 구미에 첨으로 2개의 큰 선물을 내려보냅니다
그 선물중 하나는 낙동강에 가로막혀 교통이 원활치못했던 선산지방에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아주는것과
또 하나는 비만오면 범람을해서 애써지은 농사를 망쳐버리는 낙동강에 제방을 쌓아 낙동강모래벌판을
옥토로 만드는일이 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국가의 재원이 부족하여 교량하나 마음놓고 만들수없는 그런상황에서 일선교라는
대통령의 선물은 선산군으로 봐서는 엄청난 선물이었습니다 국가적인 사업이기도 했으며
일대 주민들의 생활을 바꿔놓을 엄청난 공사였습니다..
원래 정부 계획엔, 이교량이 지금의 낙단교 자리에 놓일 계획이 었는데 당시 박대통령의 지시로
지금의 일선교 자리로 옴겨왔으며 일선교 준공당시 박대통령이 그자리에 참석도 하였습니다
특히 일선교가 놓여짐으로 인햐여 국도25호선의 기능이 낙정에서 일선교로 옴겨왔을 뿐만아니라
강 동쪽에있는 해평 산동 장천과의 교통도 엄청 편리해 졌으며
선산에서 생산된 물건들이 대도시인 대구로 운송하는 대로 역할로 인하여 선산과 대구사이의
교통을 한나절로 이어주는 공신역할을 톡톡히 해냈읍니다
그러나 당연히 낙정에 놓여야할 교량을 선산에 빼앗긴 상주군민들은 땅을 치며 통탄해 마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권력의 시퍼런 서슬 앞에서 그누구도 어떤 항의도 할수없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낙정 나루에 교량공사가 진행이 되어 6개의 다리발이 완공된 상태였는데
갑자기 힘의 논리의 의해 선산으로 빼았겨버린 상주 군민의 허탈함은 이루말할수
없었고 당시 세워졌던 6개의 다릿발은 그후에도 20년이 넘도록
그자리에 흉물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그후 한참의 세월이 흐른후에 일선교에서 옥성을 거쳐 낙동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뚤려 상주쪽에서
오는 차들이 더이상 낙정에서 도강을 하지않고 일선교를건너 대구쪽으로 내려갔지만
본의 아니게 상주 문경 점촌 예천 사람들은 몇년동안 더 낙정에서 배로 도강을 하는
불편함을 격어야 했습니다....
또 박대통령은 일선교 뿐만아니라 일년에 몇차례씩 범람을 하던 낙동강에 지산앞들에서 선산앞들까지 낙동강 최초로 재방을 막아 넓은 모래벌을 옥토로 만들어 고향사람들이 마음놓고 농사를 짓게 해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지산앞들은 낙동강 중류
지방에서 가장넓은 옥토중에 옥토로 만들었습니다
.
이 공사 역시 당시로서는 엄청난 재원이 필요했던관계로 박대통령은 특별지시를
동향의 후배인 김재규 씨에게 직접내려 당시사단장 이었던 김재규장군이 직접 공병대를 이끌고와서
공사를 진행하도록 하였습니다... 당시 민간에서는 장비가 부족하여 군공병대 장비가 아니면 공사를 할수 없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군공병대 장비도 미군으로 부터 불하 받은 것들 입니다
저도 어릴적 방과후에 공사장에나가 군인들이 운전하는 장비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위 두선물은 박정희 당시대통령의 고향에내린 선물중 가장 최초의 것이며
후일 내려질 구미를 통째로 바꿔 놓을 큰 선물의 전초전이며..
박대통령의 짙은 고향사랑을 엿볼수있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20몇년이 흐른 1986년 9월
10,26사건이후 정권을 잡은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구미에서 1986년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주재한후 부랴부랴 낙단대교 준공식에 참석합니다
당시만해도 나라의 살림살이가 좋아져서 1키로 남짓한 2차선교량의 준공식에
대통령이 참석한다는건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신군부의 수장으로서 대권을 잡은 전두환 전대통령에게는 손아래 동서가 있는데
그분이 김상구 라는 분으로 고향이 상주입니다..
전 전대통령의 장인이 되는 이규동 전 대한노인회 회장이 육사 교장을 역임할 당시 육사생도들 중에 전대통령
말고 또한명의 사위를 봤는데 그가 바로 김상구씨 입니다
김상구씨는 확실치는 않으나 군인으로서의 길이 순탄치 못하여 중령으로 예편한걸로 알고있습니다
예편 후에도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손위동서가 정권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그 역시 중앙정치의 힘을 빌어 상주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게 이러렀습니다
김상구씨가 국회 의원을 하면서 대통령인 동서의 힘을 빌어 당시 상주군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낙단교 예산을 따오게 되었고
그 낙단교의 준공식에 전두환 대통령이 참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낙단교의 준공으로 인하여 일선교에 배았겼던 국도25호선의 기능을 낙정으로 되돌려 놓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20년이 넘도록 낙정나루에 흉물로 남아있던 6개의 다릿발도 이당시에 철거를 하였죠...
지금은 일선교나 낙단교나 그기능이 옆에 새로놓인 큰다리에 양보하고 동네와 동네를 연결하는 정도로 축소되었지만
과거 힘의 논리가 지배하던 시절 권력과 연계된 두개의 교량에 얽힌 예기를 적어 봤습니다
이번일요일날 낙단교를 갑니다 .....
혹시 사실과 약간은 다를수있으니 이점 양해 해주시기바랍니다..
첫댓글 그런 사연이...제가 상주라 고교때 전두환대통령 낙단교 온다고 난리난 기억이 나네요 글고 누가 뭐래도 힘있는 국회의원은 꼭 필요하는것 같아요 지금의 상주를 보면....... .곷감도 영동에 처지고...씁쓸하네요...
이런 역사가 ......
이런 사연이 있군요..담에 낙단교를 가면 다시보게 될꺼 같습니다..
아예 잘읽었습니다 광팔자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모르고 지날뻔 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