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는 품위도 우정도 잃지 않을 한도 내에서 절도 있게 나를 반가워했다. 그리고 나서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영미가 약간 입을 비죽대며 “뭐 일본과 기술 제휴한 전자 회사 사장이라나 봐.” 했다. 곧이어 희숙이 “글세 그 사람이 얘 세 번째 남편이라지 뭐니.” 하고 덧붙였다.
경희는 정숙한 여자가 못 들을 망측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얼굴을 곱게 붉히더니 “계집애두.” 하며 손을 입에 대고 웃었다. 덧니가 부끄러워서 비롯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버릇은 이제 덧니의 매력까지를 계산하고 있어 세련된 포즈일 뿐이다. 뱅어처럼 가늘고 거의 골격을 느낄 수 없이 유연한 손가락에 커트가 정교한 에메랄드의 침착하고 심오한 녹색이 그녀의 귀부인다운 품위를 한층 더해 주고 있다. 아름다운 포즈였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아니었다. 노련한 연기자처럼 미적 효과를 미리 충분히 계산한 아름다운 포즈일 뿐이었다. 부끄러움의 알맹이는 퇴화하고 겉껍질만이 포즈로 잔존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실망과 안도를 동시에 느꼈다.
경희는 내 남편이 한다는 일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며 자기가 요새 나가는 일본어 학원에 같이 다니지 않겠느냐고 했다.
“너희 남편이 일본 사람과 교제하려면 네 도움이 필요할 걸? 요샌 남편이 출세하려면 뒤에서 여자가 뒷받침을 잘 해 줘야 해. 그러니 두 말 말고 일본말 좀 배워둬라. 내가 배우는 거야 그냥 교양 삼아 배우는 거지만 말야.”
“너야 어디 일본말만 배웠니? 각 나랏말마다 다 조금씩 배워 봤잖아.”
희숙이가 비굴하게 웃으며 끼여들었다.
“그야 해외 여행할 때마다 그때그때 그 나라 인사말 정도 배워 갖고 간 거지 뭐.”
나는 집에 와서 남편에게 비교적 소상히 그 날의 얘기를 했다. 만나 본 동창 중 경희 같은 소위 고위층의 부인이 있다는 소리에 남편은 점괘를 맞힌 무당처럼 징그럽게 좋아했다.
“거 보라고 내가 뭐랬나. 당신 친구 중에라고 고관의 부인이 없으란 법이 있겠느냐고 내가 안 그랬어? 잘 됐어. 잘 됐어. 뭐? 일본어 학원? 다녀야지. 암 다녀야구말구. 그런 여자하고 같이 다닐 기횔 놓치면 안되지. 그게 다 처세술이라구. 교제술이란 게 다 그렇구 그런 거지 별 건가.”
그리고 나선 개화기의 우국지사처럼 자못 엄숙하고 침통해지면서.
“아는 것이 힘이라구. 배워야 산다구. 배워서 남주나.”
하고 악을 썼다. 경희의 권유에서라기보다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나는 곧 일어 학원엘 나가게 되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만약 또 이혼을 하게 되면, 일본어로 자립의 밑천을 삼아 볼까 하게 되면, 일본어로 자립의 밑천을 삼아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요샌 관광 안내원이 괜찮은 직업이라 하지 않나.
일어 학원에서 경희를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그녀는 중급반이요. 나는 초급반인 탓도 있었고, 그녀는 별로 열심스러운 학생이 못되어서 결석이 잦았다. 간혹 만나더라도 암만 해도 강사를 집으로 초빙해야 할까보다느니, 아무한테도 쟤가 아무개 부인이란 발설을 말라느니, 이를테면 자기 신분에 신경을 쓰는 소리나 해서 거리감만 점점 느끼게 했다.
(중략)
어는 날 어디로 가는 길인지 일본인 관광객이 한 떼, 여자 안내원의 뒤를 따라 이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어는 촌구석에서 왔는지 야박스럽고, 교활하고, 게다가 촌티까지 더덕더덕 나는 일본인들에 비하면 우리 나라 안내원 여자는 너무 멋쟁이라 개발에 편자처럼 민망해 보였다. 그녀는 멋쟁이일 뿐 아니라 경제 제일주의 나라의 외화 획득의 역군답게 다부지고 발랄하고 긍지에 차 보였다. 마침 학생들이 쏟아져 나와 관광객과 아무렇게나 뒤섞였다. 그러자 이 안내원 여자는 관광객들 사이를 바느질하듯 누비며 소곤소곤 속삭였다.
‘아노-미나사마, 고치라 아타리카라 스리니 고주이 나사이마세(저 여러분, 이 근처부터 소매치기에 주의하십시오.)“
처음엔 나는 왜 내가 그 말뜻을 알아들었을까 하고 무척 무안하게 생각했다. 그러다가 차츰 몸이 더워 오면서 어떤 느낌이 왔다. 아아, 그것은 부끄러움이었다. 그 느낌은 고통스럽게 왔다. 전신이 마비됐던 환자가 어떤 신비한 자극에 의해 감각이 되돌아오는 일이 있다면, 필시 이렇게 고틍스럽게 돌아오리라. 그리고 이렇게 환희롭게 나는 내 부끄러움의 통증을 감수했고., 자랑을 느꼈다.
나는 내 내부에 불이 켜진 듯이 온몸이 붉게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 주위에는 많은 학생들이 출렁이고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로 모자라 XX학원, ○○학관, △△학원 등에서 별의별 지식을 다 배웠을 거다. 그러나 아무도 부끄러움은 안 가르쳤을 것이다.
나는 각종 학원의 아크릴 간판의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펄러덩 펄러덩 휘날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