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 오늘은 빠오족의 성지라는 까꾸를 구경하러 간다. 아침을 먹고 느즈막히 내려가 프런트에 물어보니 택시가 다 나가서 없단다. 이 집이 장사가 잘 되는 건가, 우리가 너무 늦게 움직인 건가? 마을 중심 쪽으로 나가서 여행사(선데이 트래블?)에 들어가 택시를 흥정하고 아니 달라는 대로 45,000짯을 다 주고서 출발했다.
쉐냥 삼거리를 거쳐 동쪽으로 계속 달려가니 높은 산 위에 도시가 보인다. 샨주의 주도인 따웅지다.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평평한 지대에 넓은 시가지가 나온다. (따웅지는 해발 1,430미터 위에 세워진 고산 도시다) 택시가 GIC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 앞에 멈추었다. GIC는 Golden Island Cottage의 약자로 인레 호수 안에 있는 수상 호텔 이름이다. 그리고 그 호텔과 빠오족 유적지 전체를 관리하는 그룹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무실로 들어가 여권을 제시하고 2명 입장료 6달러와 가이드 요금 5달러 합계 11달러를 지불하자 빠오족 전통 복장(검은 치마에 붉은 머릿수건)을 한 젊은 여자가 택시에 동승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빠오족은 샨주에서 두번 째로 (샨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다고 한다. 나라를 세울 만큼 강성한 적은 없었고(샨족도 그러했으니) 영국이나 일본이 쳐들어 왔을 때는 산 속에 숨어 지냈다고 한다.
가는 길에 경험한 축구 열기가 대단하다. 도시는 커녕 마을다운 마을도 보이지 않는 산길 옆 축구장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보러 몰려온 저 많은 사람들, 자동차와 오토바이들, 다 어디서 왔을까, 운동장 안팎에는 총을 든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고 주변에는 먹을 것을 파는 노점상도 많이 보인다. 도로 포장 공사에 따른 교통 정체도 겪으며 두 시간쯤 걸려 까꾸에 도착했다.
먼저 밥부터 먹자고 유적지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큰 레스토랑(이 동네 하나밖에 없는 식당이다)으로 들어갔다. 종업원들도 친절하고 가이드들도 식당일을 돕고 분위기가 좋은데 밥값은 비싼 편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비싼 (메뉴에는 8,000짯이라 적혀 있었다) 빠오 족 정식을 주문했더니 1인당 1만짯이란다. 맛은 훌륭하다.
밥을 먹고 힘을 내서 구경을 나섰다. 멀리서 봐도 가까이서 봐도 대단한 유적이다. 모여 있는 불탑이 총 2,478개, 그 중에는 버마 왕이 보낸 것도 있고 인도 왕(아쇼카?)이 보낸 것도 있다고 하는데 전설인지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가이드는 불탑의 모양에 따라 버마 양식과 샨 양식으로 구별된다고 설명하지만 잘 모르겠고 다만 쉐다곤이나 바간의 불탑에 비하면 더 날씬하고 뾰족하다는 느낌이다.
(오늘 착한 일을 한 사람만 종을 칠 수 있다고 해서 나는 구경만 했다.)
(땅속에서 보물을 찾아냈다는 돼지를 기념하여)
(관세음보살의 말이라고)
(빠오 족의 조상은 마술사 남자와 용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여자들의 전통 복장인 검은 치마와 붉은 머릿수건은 용의 몸통과 머리를 나타낸 것이라고)
돌아오는 길에 따웅지 산꼭대기를 올라가 볼까 하고 가이드에게 말했더니 기사가 추가 요금을 달란다. 가는 길에 조금 돌아가면 되는 것이니 기름값은 천짯도 안 들어갈 건데, 무료로 간다고 해도 팁으로 2-3천 주면...은 나만의 생각이었고, 얼마를 원하느냐는 물음에 곰곰히 생각을 하던 기사는 1만짯을 달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고, 당황한 기사는 8천짯 어쩌구 꼬리를 내리더니 우리더러 가격을 얘기해 보란다. 에이, 이 사람아 욕심도 적당히 내야지, 길거리에서 만난 손님도 아니고 하루 종일 같이 다닌 고객에게 바가지를 씌워? 액수에 관계없이 기분이 나빠서 못 가겠네. 나도 좀 아쉽지만 너도 공돈 벌 뻔했다가 못 벌게 되었으니 아쉽지?
오늘도 저녁은 냐웅인레로. 그런데 마침 오늘이 식당 주인 아줌마 생일이란다. 아들딸들이 케익을 준비했고 우리도 아들딸들과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곤유바레!
12월 27일. 오늘은 인레 호수 남단에 있는 빠오족 유적지인 상카에 간다. 건기에는 가기 어렵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걱정을
하며 여행사에 들어가 물어보니 3만짯을 부른다. 싼데? 입장료와 가이드 비용은 별도겠지요? 그런 거 없이 총 3만짯이란다. 엉?
분명 GIC에 들러 표를 사고 가이드를 대동하고 가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이 사람이 뭘 모르나 보다 생각하고 그냥 나와 선착장 쪽으로 가니 역시 삐끼가 따라붙는다. 상카 투어를 말하니 7만짯을 달란다. 뭐가 그렇게 비싸? 흥정을 해서 5만으로 내려갔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역시 바가지
요금 같다. 여행사에서 부른 3만이 적정 가격인 듯하다. 그런데 왜 우린 3만을 버리고 5만에 간 거지? 그 때만 해도 3만 부른
여행사 직원은 뭘 몰라서 그러는 거고 사공이 오면 어차피 5만 정도 부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투어를 끝내고 추리해 보니 그게
아닌 듯하다. GIC에서 주관하는 상카 투어는 건기라서 (혹은 다른 이유로) 중단된 상태고, 이 즈음 냥쉐에서 말하는 상카 투어는
상카에 있는 사원 한 군데만 다녀 오는 약식 투어가 아닐까, 이것이 우리의 추리 결과다. 다음 날 다른 여행사에 들러 상카
투어라는 걸 다녀왔는데 다카웅뭬도라는 사원 한 군데밖에 안 가더라 했더니 노 프로블럼이라고 한다. 상카에 가면 가이드가 전통 시장과 빠오족 마을을 안내하고 운운하던 여행기도 있었는데......
하여튼 오가는 길 원 없이 호수 구경을 했고, 규모가 작고 관리가 안 되어 지저분하긴 했지만 까꾸 유적과 비슷한 분위기의 빠오족 유적도 구경했으니 최소한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고색창연한 유적지 바로 곁에 늘어선 낡디낡은 천막들은 음식점이고 아니면 옷가게다. 오늘은 장이 열리는 날이라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일까? 인근 지역의 오토바이는 다 모인 듯한 분위기인데,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구경하는 것은 생뚱맞게도 배구경기다. 어제는 축구장에 그렇게 사람이 많더니, 오늘은 배구라~
소박한 식사를 파는 천막안으로 들어가 가격도 안 묻고 (메뉴판은 없다) 국수를 시켰는데 예상 가격의 두 배를 달라고 한다. 순박한 시골 인심을 기대했었기 때문일까,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살짝 실망스럽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사공이 냥쉐로 돌아가겠다고 한 것. 다 끝났단다. 입장료도 안 내고 가이드도 동승하지 않았을 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여기 한 군데만 보고 돌아가는 것인 줄은 몰랏다. 원래 상카 투어가 여기만 들러 가는 것인지, 건기라서 보트 통행이 자유롭지 못해서 다른 곳을 못 가는 건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기대에 비하여 약간은 허전한 느낌이다. 가는 길에 GIC에 들러서 커피나 한 잔 하자.
호수 위에 떠 있는 듯이 보이는 GIC는 과연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막연히 100달러 이상 가는 비싼 숙소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50달러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하루쯤 여기서 묵어 볼 걸 그랬나?
오늘도 저녁은 냐웅인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