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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79jesus@naver.com
사회복지학 박사
대구대학교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대구가정법원 전문가 후견인 및 후견감독인
기억학교협회장, 삼덕기억학교 원장
제5회 사랑모아독서대상 서평공모전 최우수상(한국출판학회장상) 수상
제16회 동서문학상 입상
<수상 소감>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특별히 날것의 자연을 날마
다 감탄하면서 일기를 오랫동안 써왔습니다. 그 기록들은 아쉽게도
자취하던 집에 불이 나면서 한순간 잿더미로 변해 사라졌습니다. 막
연히 작가의 삶을 동경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에서 사
회복지학을 전공하였습니다. 1997년부터 사회복지 현장에서 평생의
사명으로 생각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도우
며 살고 있습니다.
인생 후반전에 접어들 즈음,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졌습니다. 지
난 시간은 즐겁고 보람된 일들로 가득했지만 돌아보니 내가 없이 오
롯이 일에만 몰두하고 매몰되어 살았습니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삶을 좀 더 뜻깊고, 의미 있
게 살아가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
을 또 다른 방법으로 도우며, “나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
습니다.
단순히책을읽는것이좋았고,글을쓰는것이행복했습니다. 그런저에게
작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행동으로 삶을 보여주시며, 안내자가 되어주신
이보(異步)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의 삶을
나누며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는 별의별 동인들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에세이스트 등단’이라는 낭보(朗報)는 새로운 인생 여정의 출발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책과 재미있게놀면서, 글로써 사람을 돕는 여정이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미숙하고, 여린 발걸음입니다. 작가로 서기엔 아주 부족합니다.
내마음에 품은이야기가 마치 엉킨 실타래 같습니다.뒤죽박죽 헝클어져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아직 실마리를 못 찾았지만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서
차근차근 매듭을 풀어나가겠습니다. 그렇게 풀린 실타래로 삶이 힘겨운 이들에게는
목도리가 되어 감싸주는 사랑스러운 글이 되고 싶습니다. 가슴이 시린 이들에게는
스웨터 같은 포근한 글이 되고 싶습니다. 차가운 손에는 털장갑처럼 온기와 위로가
스며드는 글이 되고 싶습니다. 이제 매일매일의 성장을 꿈꿉니다.
끝으로 내 글의 첫 번째 독자가 되어주면서 항상 내 편으로, 내 인생에 보배가 되어준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무한한 사랑을 표합니다.
나답게, 나로 살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값진 인생이 되겠습니다. 사람을 위로하고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사랑과 희망이 담긴글을 꾸준히 쓰면서 행복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엄마, 언제 와?
퇴근 무렵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몰려왔다. 후드득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내린 비와 퇴근길 차량 정체로 교차로가 몹시혼란스럽다. 신호 대기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비 오는 날에는신호대기중일때자동차와이퍼를작동시키지않는데,빗방울이앞유리에 토독, 토독! 소리를 내면서 떨어진다.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물과 거리에 쏟아지는 빗물이 어우러지며, 흐릿하게 그려내는 풍경은 몽환적(夢幻的)이다. 그래서 녹색 신호등이 올 때까지 그대로 바라보는것이다.내리는빗줄기는제법 굵어져 차량 앞유리에 떨어진 빗물이 여러 개의 물줄기가 되어 쉼 없이 흘러내린다. 적색 신호등과 반짝이는 불빛들 사이로 빗방울이 뒤섞여서 비 오는 날의 수채화 한 폭이 되어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그런데 그 순간 퇴근길 차 안에서 눈가에 이슬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차를 타면 습관적으로 내비게이션을 켜서 목적지를 설정한다. 그리고 현재의 교통상황을 반영한 도착시간을 확인한다. 나를 기다리는 상대가 있을 때는 목적지 도착시간을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공유하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내비게이션에서 실시간 알려주는 집 도착시간을 공유할 그녀가 집에 없다. 순식간에 그리움이 밀려든다. 그리움은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빗물이 되어 내 가슴에 왈칵 부어졌다.
어릴 때부터 퇴근해서 집에 오는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던 딸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하다. “엄마, 언제 와?” 퇴근 무렵이면, 딸에게서 어김없이 전화가 온다. 직장 생활로 늘 바쁘게만 살다 보니 딸과의 약속은 마음먹은 대로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일찍 집에 가기로 약속한 시각보다 늦을 때가 더 많았다. “오늘은 좀 일찍 갈게”라고 말한 날은 일이 더 넘쳐서 야근하게 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외둥이로 자라온 딸은 맞벌이하는 부모로 인해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이 언제나 길었다. 날마다 엄마가 집에 일찍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딸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엄마를 기다리던 지나간 내 어릴적 어느 날이 흐릿하게 겹친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무더운 여름날 밖은 이미 어두워져 가고 있는데 밭일 나가신 엄마, 아빠는 돌아오질 않았다. 삼복더위의 대청마루에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있었다. 혼자라는 게 무서워서 겨우 얼굴만 내밀고 대문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만 빼고 세상이 다 멈춰 버린 건 아닐까? 이 세상에 움직이는 생물체는 오직 나 하나, 혹시 다른 사람들은 내가 보고 있지 않으니 멈추어 버린 게 아닐까?’, ‘엄마와 아빠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그저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 무서워 한참 동안 수만 가지 나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두려워하고 있을 때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엄마, 아빠는 어김없이 나타나시곤 했다.
며칠 뒤 유학 가는 딸을 인천국제공항까지 배웅하기 위해 바다 위에 세워진 영종대교를 달린다. 아름답게 세워진 대교가 오늘은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른 새벽에 도착한 공항은 한산하다. 앞으로 오랜 시간 떨어져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딸에게 부담 주지 않기 위해 보내는 그 순간까지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런저런 말을 하면 눈물이 곧 쏟아질 것 같아서 말수를 줄였다.
출국장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각에 딸을 꼭 안아주고 들여보냈다. 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 딸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22년 전 나를 마주한다. 자정이 되기 1시간 전이다. 허겁지겁 챙긴 출산 가방 하나 손에 들고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나 홀로 119구급차에 올랐다. 아직 출산예정일이 한 달이나 남았는데 갑자기 양수가 터진 것이다. 긴 산고를 치른 끝에 새벽동이틀무렵하늘이노래지자 2.44kg의 작고작은아기의울음이터졌다.엄마뱃속 열달을 꼬박 채우지 못한채 세상밖으로나온것이다. 월드컵의 붉은 기운이 온 천지를 가득 덮던 그해, 그렇게 예쁜 아기가 내게로 왔다. 요즘은 2.5kg 이하이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간다고 하지만 그때만 해도 2.3kg 이하였다. 한 달 먼저 조산했지만, 자연분만이라서 첫날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분유를 먹지 않고 우는 아기를 이상하게 여긴 의료진이 검사해 보니 소장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아기의 소장을 잘라냈다. 이튿날에도 똑같은 증상이 있어, 또 한 번의 수술을 긴급하게 했다. 급기야 아기는 생명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인큐베이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당시 아기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의 산후조리는 이미 뒷전이 되어버렸다.출산으로 한기가 드는몸에 이불을둘둘말고매일 새벽마다 문 열린 교회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우리 아기를 살려 주세요, 우리 아기를 살려 주세요’라고 울면서 기도만 드렸다.
며칠 후 기적적으로 아기의 호흡이 정상으로돌아왔다.그리고 한달이 조금지나서 건강해진 아기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그렇게 약하게 태어난 아기는 여섯 살까지 자주 아파서 병원에 들락날락하면서 참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다섯 살이 되던 어느 날, 딸의 목에 작은 달걀 크기의 혹이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의료진은 혹에 마취 없이 긴 주삿바늘을 꽂아서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조직을 채취하는 동안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에 딸을 꽉 잡아야 했다. 병원 의자에 내가 앉고 딸을 내 위에 앉혀서 팔과 다리로 꽉 잡았다. 딸은 무서워서 기절할 듯이 울어댔다. 병원 가득히 울리는 딸의 찢어지는 울음소리에 가슴이 미어지고 터질 듯해서 같이 엉엉 울면서 검사를 끝냈다. 며칠 후 목의 혹은 양성이 아니라, 이유를 알 수 없는 음성으로 판정이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혹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사랑의기술』을 쓴 에릭프롬의 “모성애의 진실한 성취는어린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에서가 아니라 성장하는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라는 그 말에 크게 공감했다. 딸을 키우며 지나온 수많은 시간 속에 딸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내 살점을 떼어 주어도 아깝지 않고, 내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자식’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도 그렇게 부모님으로부터 사랑받으며, 귀하게 자란 존재임을 느낀다. 그러하기에 내리사랑으로 딸을 더욱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작고 작은 예쁜 생명체로 내게 와서 뱃속에서 꼼지락거리던 때가 마치 엊그제 같다. 그렇게 고이 품었던아기가 어느새 훌쩍 자라 나의 둥지를 떠나갔다.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았는데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로 잘 자라준 딸이 너무나 대견하고 그저 감사하다. 이제 딸은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홀로서야 한다. 한동안 모든 낯섦에 때론 힘이 들고 눈물 날 일도 많을 것이다. 외국에서의 대학 공부도 쉽지않을것이다. 혼자 밥먹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집안일까지 함께 겸해야 한다. 또한 그 나라의 무더운 날씨도 참아내야 한다. 그런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 온다. 지금까지 아픈 고통을 잘 이겨내고 여리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난 딸이다. 그러하기에 낯선 문화속에서도 잘 견뎌내고 자신의 자리를 아름답게 찾아가리라 믿는다. 그저 지켜보며 무한한 응원을 보낸다.
퇴근길 비가 내린다. 매일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딸이 몹시 보고싶어진다. 이제 보고 싶어도 먼 나라에 있으니, 딸을 쉽게 만나러 갈 수도 없다. 집을 떠난 지 겨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뭔지 모를 그리움이 가슴 아프도록 사무친다. 그리고 일 나간 엄마,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린 나의 한때를 만난다. 저마다의 길로 독립된 존재로 우리는 그렇게 날마다 성장하고 있다.
어린 소녀는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이제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딸을 손꼽아 기다린다. 꿈속에서 딸에게 자주 물어본다.
‘딸, 언제 와?’
<심사평>
이은주의 「엄마, 언제 와」
「엄마, 언제 와」는 퇴근길,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로 시작한다. 혼잡한 교차로에서 신호에 막힌 작가는 와이퍼를 정지하고 비 내리는 풍경을 감상한다. 차창의 빗물에 번져 빛나고 거리의 빗줄기에 투사돼 반짝이는, 신호등과 자동차의 빨갛고 노란 불빛이 한 폭의 수채화다.
그런데 순간, 또 다른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퇴근 무렵 늘 ‘엄마, 언제와’를 묻던 외둥이딸의 부재가,내비게이션도착시간을공유할 대상 없음이, 불쑥 깨달아지며 작가의 눈에서 이슬이, 가슴으로는 그리움이, 빗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는 것. 딸은 어제 유학을 떠났다. 영종도를 지나 인천공항까지 딸을 배웅하지 않았던가.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배음 삼아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던 작가는 급기야 몽환에 빠져든다. 한기가 드는 몸에 이불을 둘둘 말고 새벽마다 문이 열린 교회에 들어가 울며 기도드리던 22년 전, 자기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양수가 터지는 바람에 예정일보다 한 달 먼저 세상에 나온 딸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장 절제 수술을 받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했다.
글이 물로 흥건하다. 딸이 다섯 살 때는 아예 딸과 함께 엉엉 울어버렸단다. 딸의 목에 생긴 혹 때문이었다. 조직검사를 하려면 마취없이 혹에 긴 주삿바늘을 찔러넣어야 했는데 공포에 질린 딸이 기절할 듯 울어댔기 때문이다. 터질 듯 미어지는 가슴으로 또 팔과 다리로 딸을 꽉 붙잡고 소리 내 우는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불은 밭으로 일 나가신 부모님을 기다리는 작가의 어린 시절 회상에서도 등장한다.
그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이미 어둑해진 대청마루에 앉아 마당 너머의 대문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어린 작가
는 삼복더위에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 혼자인 게 무서워서였다.
나만 빼고 세상이 다 멈춰 버린 건 아닐까? 이 세상에 움직이는 생
물체는 오직 나 하나, 혹시 다른 사람들은 내가 보고 있지 않으니 멈추
어 버린 게 아닐까?
어린 작가의 두려움이 너무도 천진하고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 이 아이가 자라 엄마가 되었다. 작가는 내 살점을 떼어 주어도 아깝지 않고, 내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자식’이라 깨달으며 딸을 길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나 애지중지 기르던 딸이 곁에없다. 퇴근무렵이면 늘‘언제와’하고 채근하던 딸이! 이제‘언제
가’ 하고 카톡 메시지 보낼 곳도 없다, 작가에게는.
뭔지 모를 그리움이 가슴 아프도록 사무친다. 그리고 일 나간 엄마,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어린 나의 한때를 만난다. 저마다의 길로
독립된 존재로 우리는 그렇게 날마다 성장하고 있다. 어린 소녀는 그
렇게 엄마가 되었다.
작가의 인식이 결국 가닿은 곳, ‘성장’이다. 물천지 속에서 이불인 양 자동차를 뒤집어쓴 채 딸을 그리고, 흐르는 비를 바라보며 눈물내리며 자신을 돌아보던, 작가가 ‘저마다의 독립된 존재로서의 성장’에 이른 것이다. 이 성장은 비 내리는 창 너머의 불빛처럼 희미하나마 색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것이지 싶다. 의례처럼 물, 물, 물을 통
과하며 다다른 성장이지 않은가.
응모한 글 다섯 편의 분위기가 모두 편안했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웠다. 당선작, 「엄마, 언제 와」에서 제목과 마지막 문장을 ‘언제 와’로 산뜻 단정하게 묶은 건 멋진 한 수다. 재치 있고 어여쁜 수미상관(首尾相關)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었다. (나에게 하는 다짐처럼)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제 ‘이불’은 과감히 벗어버려도, 잘 때나 쓰게 잘 개
어 벽장에 넣어두어도 좋지 싶다. 상투나 포장이나 고정관념 같은 거로가리지말고,섬세하고 선명한 나만의 시선과 소신을 밝히는, 그러니까 그런 글을 쓰는 작가가 되시길 응원한다는 말씀.
등단을 축하드린다. 말년, 치매를 앓던 아버지의 딸로서 하시는 일에도 감사드린다.
-심사평: 현정원(khyunjw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