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벩송 물질기억: 꿈과 행동, 의식의 다양체
천야 추천 0 조회 127 23.04.09 00:40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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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3.04.09 23:41

    첫댓글 [*7
    벩송이 내재의식의 삶을 심정적 삶이라 한다. 현실적으로 신체를 움직이는 삶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반성(반사)은 신체와 연관이 있는데 비해, 성찰은 심리(영혼)와 행동(신체)의 연관을 사유한다. 말하자면 반성은 인간이 자연과 물질을 대상으로 삼아 다루고 조작하며 관계들을 주로 논의한다. 이에 비해 성찰은 영혼이 신체에 지배적 역할을 하게 되는 영혼(정신)의 추론과 극한을 가 보는 것이다. 그런데 심리의 내부의 문제는 19세기에서야 제기된다.

  • 작성자 23.04.09 23:42

    7-2. 이 내부의 문제를 벩송은 세로축의 고깔로 표현했고, 그 내부를 회로로 표현했다. 이 고깔의 꼭지점을 행동으로, 밑면을 비유상 순수추억으로 둔다. 그러면 고깔 전체로서 회로들과 섞임의 총체를 역동성이라 하며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이역동적 고깔은 설명상 두 가지 운동을 동시에 한다. 하나는 심층에서 상층으로 이전(translation)운동과 내부의 뒤섞임과 같은 회전(rotation)이다. 이 둘이 동시적으로 현실의 첨점에 영향을 준다. 이런 하나이지만 두 운동에서 추억들은 앞에서 설명했던 인접과 유사와는 다른 본성으로 활동한다. 이런 의식내부(무의식)를 관념연합론은 층위가 있는 단면들로 설명하려 한다고 벩송은 보고 있다.

  • 작성자 23.04.09 23:42

    [ *8
    그러면 층위들은 무엇을 설명하는 것인가? 층위들은 벩송의 “기억”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원자론적 사고의 관념연합론자들이 “추억들”이 두뇌의 어느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검토를 앞에서 하면서 추억들이 (인격) 이미지 안에 있다는 것을 동의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들에게 추억들은 그 내재의식 안에 어떤 경향 또는 방식으로 있는가? 벩송이 보기에, 그들은 추억이, 현실의 단면에서 점에 접촉하듯이, 드러난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추억들이 내재의식 속에 “어디에 있다”는 방식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위치화가 없다는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는가 하면, “추억들”이 마치 공중에 떠있듯이 “기억” 속에 –위치와 크기가 불명확하게 – 있다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관념연합론에 대한 비판 속에는, 고대의 원자론의 비판에 대한 길과 같이 가고 있다. 그래, 추억들이 ‘있기는 있다’는 것을 그들이 인정하더라도, 추억이 희미해지는 또는 사라지는 추억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작성자 23.04.09 23:43

    8-2. 벩송이 보기에, 내재의식은 기억의 실재성이고, 게다가 그 기억 속에 추억들이 있어서 조합하기보다, 기억의 능력이 역동적으로 활동하면서 현재의 신체적 현실을 움직이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현실(P면의 점S에서)은 기억 역량의 일부이며, 신체가 외부 사물들과 지각작용과 연관에서 기억의 작동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미리 말하지만, 벩송은 추억이라는 단면이든, 요소이든, 원자이든 그런 것이 없다: 가상적 설정에 지나지 않는다. 기억은 운동하고 지속하는 권능이며 역량이다. 이 역량은 생명체가 이어온 역사 속에서 생성-창조한 것이다. 지금 인간 생명체는 현재 이정도로 생성-창조한 것이다. EC에서 말하게 될 것이지만, “강의록(1903-1904)”에서는, 생명의 충력(impeto, elan)말하면서, 이미 생명의 자기창조, 생명의 작동하는 권능을 예고할 것이다.

  • 작성자 23.04.09 23:43

    8-3. 벩송은 비유에 깊이 빠지지 말라고 한다. 특히 가로축과 세로축은 단순한 축이 아니라 하나는 평면의 확장이고 다른 하나는 회오리 같은 고깔의 “운동성”이다. 그리고 추억들 사이의 유사와 인접의 설명은 벩송의 지속과 기억에 관한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원자론, 관념연합론, 언어와 논리의 통일성으로 가고 있는 신칸트학파의 인식론과 새로 대두되는 논리실증주의자들의 비실재성을 실재성으로 착각하는데 대한 비판의 도형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여기 관념연합론, 원자론적 유물론, 논리실증주의의 3자의 구성을 통한 주체(sujet)의 우위라는 착각에 있고, 나아가 이런 착각을 사회체에 적용하는 탐만치로 20세기에 두 번의 전쟁을 낳은 배경이라는 점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들뢰즈는 이어서 이 앵글색슨철학이 통일성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지배로 나가면서 자본 제국을 구축하려 한다고 본 것이리라. (56OKF, O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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