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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복
4.
회색 건물의 회사 복도에는 사람이 몇 없다.
”좋은 아침이에요, 미셸 팀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미셸은 출근하자마자 직원들과 상투적인 인사를 나눴다. 미셸은 사무실로 향하다 문득 불편한 시선을 느꼈다. 눈이 마주치면 반갑게 웃는다. 하지만 느껴지는 시선에 미셸은 자신이 발가벗겨 있는듯했다. 품평하고 캐내려는 듯한 시선은 질색이다.
‘저기 저 사람, 돈 엄청 많대’ ‘나이도 별로 안많아 보이는데, 저 자리까지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거야?’ ‘독하다 독해’
테이트는 얕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어렸을 때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친구를 만들고, 여자친구를 사귀어도 여전히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듯한 느낌은 없어지지 않았다. 이 느낌이 싫어서 그는 졸업하자마자 몇 안되는 인간관계조차 끊고 무던히 일에 매달렸다. 지독하고 돈 욕심 많은 상사. 직장에서 자신의 별명이 이렇게 불린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얼마나 허망하던가. 그렇지만 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것마저 놓으면 자신 옆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창밖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빛과 회색빛 건물이 줄지어 보였다. 과거와 달리 2080년은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농사지을 만한 땅조차 없어진 상태이다.
‘지겹다’
미셸이 사무실에 앉아 사색에 잠길 무렵, 그의 회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추레해 보이는 옷을 입은 한 여자가 낡은 의자에 앉아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어이, 쉬는 시간 끝났어“
여자는 번쩍 눈을 떴다.
”아, 죄송해요“
”아냐, 그나저나 요즘 뭘 하길래 볼때마다 피곤해해? 사장님이 델타X 정부허가 못받았다고 요즘 눈에 불을 키고 사람들을 잡고 다닌다고! 조심해 괜히 꼬투리 잡히지 말고“
”월세가 또 올라서.. 다른 일거리 알아보고 다니는 중이에요.“
”에게? 그 쥐꼬리만한 집이 뭐라고 또 집세가 올라? 거기 주인도 자네 사정 뻔히 알면서... 진짜 보통이 아니다“
”하하... 돈 없는게 죄죠. 어쨌든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
오후 6시, 미셸은 퇴근 시간이 되자 자리에 일어나 또 다시 상투적인 인사를 했다.
”내일 봬요“
회사 밖을 나서자, 비슷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하하호호 떠들며 길을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뭐가 저렇게 재미있을까?’
미셸은 무심한 표정을 짓고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간단한 저녁을 먹고, 맥주를 마시며 티비를 보고, 10시에 잠들기까지 그의 일상은 항상 똑같았다. 그렇지만 최근 그가 겪는 일상의 마무리는 조금 달랐다.
침대에 기대어 옆의 조명을 켰다. 그리고 침대 바로 밑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달칵-
[슬로우 리듬 – 행복이 궁금한가요? 우리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와주세요. ]
같은시각, 한적한 길거리에 몇몇의 사람만이 남아있다.
”오늘 수고했어 줄리아, 망할 팀장이 야근까지 시킬건 뭐야. 쥐꼬리만한 월급밖에 안주면서“
”그래도 그 쥐꼬리만한 월급이 있으니 제가 그 쥐꼬리만한 방에서라도 살 수 있는거겠죠? 에휴, 오늘은 저도 그냥 가서 일찍 자야겠어요. “
”그래, 오늘은 너무 무리하지 말고 들어가서 빨리 쉬어“
”네 고마워요 톰슨씨, 내일 봬요!“
톰슨을 향해 밝게 손을 흔들었지만, 줄리아는 돌아서자마자 긴 한숨을 쉴 수 밖에 없었다.
톰슨에게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돈이 정말 급했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요즘 이거 쓰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드르르르르 드르르르르
길어지는 통화음 소리에 괜스레 벽을 보고, 발을 찼다.
달칵
”어? 왠일이야 줄리아?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를 다하고“
”어.. 저기 밤늦게 미안한데, 할 말이 있어서.......“
”바로 말 못하는 거 보니까 돈 필요하구나?“
”......응 내가 다음달, 아니 두달후에 줄게. 집주인이 갑자기 변덕을 부려서... 정말 미안“
”그래, 알겠어. 내가 네 사정 충분히 이해하지. 그럼 지금 바로 줄테니까 급한 볼일부터 꺼“
”응, 고마워.“
뚝---
통화가 끝났지만, 줄리아는 여전히 그 자리에 멈추어 있었다.
때때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도 했지만,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잘 버티고 살았다.
그러나 오늘처럼 땅에 두 발을 똑바로 붙이는 것조차 힘든 날은 어쩔수 없었다.
자신은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을 받으려고 아둥바둥 살지만, 내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치기어린 열등감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앞에 전단지 하나가 붙어있었다.
[슬로우 리듬 – 행복이 궁금한가요? 우리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와주세요. ]
***
하얀 가운을 입은 과학자는 말한다.
“슬로우 리듬의 루시드 드림은 자신이 가장 행복한수도 있는 미래를 나타냅니다. 인간은 전체 뇌의 3%만을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하지만, 사실 인간에게는 육감이 존재한다는 가설에 기반하면 자신의 미래를 은연중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어쨋든 지금 자신의 행동과 감정이 미래를 결정하는 수많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하나가 되니까요, 그 차곡히 쌓인 인생 데이터 덕분에,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돌파구 역시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죠. 루시드 드림은 단지 그 돌파구를 직접적으로,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깨우쳐 주는 수단일 뿐이에요. 겁내지 마세요.”
1~3.
2080년 과학의 발전이 정점을 달한 시대, 사회는 ‘안락사’라는 이름을 붙여 죽음에 대한 권한을 개인의 선택으로 넘겨주었다.
물론 그 과정이 간단한것은 아니다. 허락된 자살을 선택하기 전, 이를 관리하는 상담기관에 약 5개월동안 다녀야 했다. 그에 대한 비용 역시 최후의 순간에 안락사를 선택하지 않아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수만번을 고민하고 내야 하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락사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혜택 때문이다.첫 번째는 신체를 온전히 보존한 채, 눈을 감을 수 있다는 것이며 두번째로는 자살을 선택하는 이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상담의 마지막 과정에서 미래체험기계인 루시드 드림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 그 다음으로는 미래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꼽는다. 미래체험 기계에 대해선 과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루시드 드림의 데이터베이스 기반은 실제 꿈을 꾸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산발적인 발현일 뿐이다.] [루시드 드림은 허상일 뿐이다.] [루시드 드림은 인간의 잠재된 기억, 초자아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꿈이다.] [꿈속에 나온 상대방에게는 감정적인 면모보다는 꿈을 꾸는 사람의 심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가상의 상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미래 체험을 꿈꾼다.
5.
‘그냥 다리에서 뛰어내릴걸 그랬나’
‘막상 여기까지 와보니......’
미셸과 줄리아는 저마다의 생각을 떠올리며 하얀 수면실에 정자세로 누웠다.
상담사는 그들을 보며 지난 3개월간을 떠올렸다.
자신은 안락사를 완전하게 결정하기 전에 약 3개월 동안 상담을 하며 인생의 행복에 대해 설명하고 안락사 결정을 취소하게 하기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미셸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고 자부한다. 삶의 행복, 안락함, 친구들과의 시간 인공지능을 통해 그 감정과 경험을 미셸에게 전해주려 했지만,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사실 대부분 안락사를 결정한 사람들의 반응은 미셸과 같다.
줄리아는 미셸과는 좀 다른 경우이다. 처음 그녀가 슬로우 리듬의 사무실에 발을 들였을 때, 그녀의 표정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상담사는 아직도 뭐가 달랐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마지막 과정은 잘 알고 계시는 ‘미래 체험‘입니다. 쉽게 말해 여기 있는 미셸과 줄리아씨의 성향과 인간관계, 그리고 상담을 통해 얻은 정보를 통해 여러분들이 겪을 수 있는 행복한 미래를 인공지능이 계산하여 도출하는거죠. 그 도출한 정보가 미셸과 줄리아씨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미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설명은 됐으니, 주의사항이나 알려주세요“
미셸은 멍하니 허공을 보며 상담사에게 말했다. 수면실에는 안락사 예정자와 어떻게든 그들을 막으려는 상담사만이 존재했다.
”큼큼, 그럼 지금부터 주의사항을 달려드릴게요. 미래체험은 총 4시간동안 렘수면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인위적인 꿈을 길게 꾸는 거라 깨어날때는 피로, 구토, 복통, 심한 빈혈을 느끼실 수 있어요. 그리...“
”다 알고 있어요. 설명서에 없는 주의사항은 따로 없나요?“
상담사는 이런 환자들의 태도가 익숙한 것인지, 혹은 피곤한 것인지 모를 표정을 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미래체험은 개인의 두뇌 활동능력에 의해 이루어 지는 것이란건 다들 아시죠? 평균적으로는 12시간 정도를 겪을 거에요.
”......네? 뭐라구요? 잠깐만요 난 그런 멍청한꿈을 그렇게 오랫동안 꾸고 있을 생각은 없다고요!“
[기계 부팅 완료. 뇌파 측정 검사 완료. 모두 정상]
”이봐! 내 말 듣고 있어? 난 이런걸 원해서 그 빌어먹을 돈을 내고 여기 있는게 아니야!“
”네-네. 지루하시면 그냥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안하시면 되요. 어차피 12시간인데 뭐 어때요."
”그게 무슨 개소리......!!!“
불만을 토하는 미셸 옆에서 조용히 상담사의 말을 듣고 있던 줄리아는 불안하고, 또 어딘가 모르게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런 줄리아를 보며 상담사는 미소지었다.
”명심하세요. 그곳은 진짜가 아닙니다. “
[5,4,......]
기계에 표시된 카운트 소리가 이어지자 캡슐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3,2,1......]
”부디 행복한 여행 즐기시길“
상담사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리고, 미셸과 줄리아는 자살 여행을 떠났다.
6.
*** TIME - 미셸
반짝.
눈을 떠보니 익숙한 그림이 눈앞에 있었다.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고는 눈을 깜빡거리고, 온갖 짓을 다 해보아도 눈앞의 상황은 변하질 않았다.
’이 그림이 대체 여기 왜 있는거지? 미래로 오는거 아니었어? 대체 뭐야?‘
털석- 미셸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난 매일 안락사에 대해 생각했어. 그리고 한달 동안 의미없는 회사생활을 하며 돈을 모았지.그리고 지금 난 미래체험을 하고 있는 중이야. 근데 대체 왜 저 그림이 있는 거지? ‘
생각을 끝마친 미셸은 벌떡 일어나 방을 나왔다. 낡은 식기와 값싼 재질의 옷들이 보였다. 명품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던 자신이 살던 빌딩이 아닌, 어딘지 모르게 촌스럽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가정집 거실이었다.
그때 문이 닫힌 다른방에서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애 방에서 뭐했어요?“
흠칫
’...여보? 지금 설마 나한테 하는 말인건가?‘
”미셸? 뭐하길래 대답을 안해요. 지금 빨리 그웬 유치원 가야죠. 준비 빨리 해요! 안그럼 그웬이 또 삐지겠어요. 저번에 뭐라더라? 우리가 늦어서 자기가 직접 만든 사과파이를...“
미셸은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은 타인의 시선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독신주의자라고 생각했는데, 미래의 행복에 가족이 있다니, 역시 개꿈이었다.
옆에서 여자가 뭐라 말을 계속했다.
”아... 알겠습니다.“
미셸은 얼떨결에 대답을 했다.
”......? 말투가 갑자기 이상해졌네요. 어제 이상한 드라마라도 보고 잔거에요?“
웃음기 어린 물음에도 그는 대답도 하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거울이 있었다.
미셸은 거울을 보고 잠시 머리를 가다듬었다. 햇빛을 자주 보지 못해 창백한 얼굴과 금빛 머리칼, 파란 눈동자, 첨예한 인상으로 남들에게 호감을 얻는 얼굴은 아니었다. 평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항상 단정히 머리를 넘기던 모습과는 달리 여기저기 헝클어져 있었으며 눈빛에는 따뜻한 생기가 돌았다.
’여기서는 좋은 사람을 만났나보군’
미셸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거울 너머로 보며 냉소를 지었다.
옷을 입고 머리는 뒤로 넘긴 후, 밖으로 나와 차를 탔다. 차 안에는 이미 자신의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있었다.
차에 탄 후, 그는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우리... 어디로 가야하지?“
”미셸 진짜 오늘 왜그래요? 일주일에 세 번도 넘게 가던 길을 갑자기 까먹은거에요? 어제 또 무슨 영화를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알겠어요. 이번에도 당신 장난에 넘어가줄게요. “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길을 안내해 주었다.
***
유치원에 도착한 후 무슨 정신으로 있었는지 모르겠다. 얼핏 듣기로 그녀의 이름은 소피, 그리고 꿈 속 딸의 이름은 그웬이었다. 어차피 이곳은 꿈으로 만들어진 곳일 뿐이며, 환상이다. 이들에게 화를 내고 잠시 몇시간만 떨어져 있겠다고 하면 이 개꿈도 끝날 것이다. 그러나, 거울로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빌어먹게도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이런 눈을 가질 수 있는지.
***
”얘들아, 부모님이 오랜만에 유치원 왔는데, 우리 준비한 발표 해볼까??“
아이들이 주르륵 섰다.
”안녕하심미까.. 제가 조아하는 것은 인형입니다. 이름은 시돌이 입니다!!! “
한손에는 곰 인형을 들고, 조그마한 팔을 쭉 뻗은 모습을 보니 미셸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휘어졌다. 아이들이 주욱 발표를 했다.
마지막 차례로 그웬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제가 가장 조아하는 것은 엄마,아빠입니다. 오늘 꼬옥 유치원에 와서 발표하는 거 봐달라고 약-소옥 했어요. 오늘 엄마,아빠가 약속을 지켰으니까 제가 보상으로 뽀뽀해줄거에요! “
그웬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며 미셸과 소피를 쳐다보았다. 미셸은 어색하게 눈을 피했지만, 귓불이 붉어지는 것은 어쩔수 없었다.
톡. 톡.
발표가 끝난 후, 쉬는시간에 미셸은 아이들이 없는 곳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누군가 미셸의 옷을 잡아당겼다. 미셸이 고개를 내리가 그웬이 조막만 한 손으로 미셸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다리를 바동거렸다.
”안아 달라고?“
”응! 응!“
미셸은 조심스럽게 그웬을 안아올렸다. 앉자마자 그웬은 미셸의 볼에 뽀뽀를 했다. 딴에는 부끄러웠는지 ”끼약“ 소리가 들렸다. 놀란 미셸과 달리 그웬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제 내려줘. 엄마한테도 해줘야돼.“ 하는 소리를 했다. 미셸은 순순히 그웬을 내려다 주었다. 그웬이 엄마에게로 쪼르르 달려갈때까지, 미셸은 아이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였다.
미셸은 근처에 있는 노란색 공 하나를 집었다. 괜스레 이리 저리 굴리고, 빤히 보다가 손가락으로 푹 찔렀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
”내일은 당신 부모님 보러 갈까요? 그웬도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싶다고 난리에요“
소피는 뒷 좌석에 잠들어 있는 아이를 보며 말했다.
”여기에서는 어머니, 아버지를 볼 수 있어? 그런거야? “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소피는 잠시 당황한 듯하였으나, ”납골당 가자는 소리에요“ 그녀는 미셸의 팔을 붙잡고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미셸은 그제서야 자신이 왜 이곳에 온지 알 것 같았다.
다음날, 미셸은 소피와 그웬과 함께 납골당을 갔다. 그 앞에는 파란 스케치북이 놓여있었다.
스케치북의 그림 속에서 미셸은 자신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앞에 놓여 있던 그림을 떠올렸다.
마음의 여유도 없이 바쁜 부모님 아래에서 방치되며 자랐다. 그 결과 미셸은 커가면서 가장 빨리 배운 것이 포기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원하는 걸 빨리 포기하면 가정은 평화로워 졌으며, 미셸은 그 속에서 안정 아닌 안정을 찾아갔다.
소피와 그웬을 잠시 내보내고,
”오랜만이네요, 부모님.“ 미셸은 그 앞에서 겨우 입을 열었다.
”저에게 마지막으로 사과했던 게 당신들의 최선이었겠죠.“
대답 대신 미셸의 금빛 머리카락이 스르르 흩날렸다.
그저 조금, 아주 조금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됐을까
*** TIME – 줄리아
번쩍. 하는 소리와 함께 줄리아는 낯선 침대에서 눈을 떴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침대 옆 커다란 창문에는 환한 빛이 들었다. 그 너머에는 에메랄드 빛 바다가 넘실거리는 모습이 보였고, 그 주변에는 따뜻한 색을 머금은 나뭇잎들이 살랑살랑 그녀에게 인사를 하는듯 하였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어차피 평생 그렇게 살아갈 바에는 내가 진정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싶은 마음에 결정한 것이었다. 친구가 준 돈, 집값, 이곳저곳에서 틈틈이 돈을 얻어 마련한 금액으로 무작정 슬로우리듬을 찾아갔다. 행복, 그 행복이란 것을 얻기 위해 그만한 돈을 지불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다만 이것이 12시간 후면 깨져버릴 것이란걸 알기 때문일까
그녀의 표정이 마냥 즐거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읏차
자리를 털고 일어난 줄리아는 자신이 입고 있는 잠옷을 내려다 보았다. 부드러운 검은색 실크 잠옷이라니. 슬쩍 만져본 감촉이 너무 부드러웠다.
문을 열고 나가니 따뜻한 베이지 색으로 뒤덮인 거실이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아일랜드 형의 식탁이 있었고 그 위에 보기만해도 배가 부르는 음식들이 놓여있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주방으로 발길이 닿았다. 의자에 앉아 허겁지겁 먹었다. 지독한 환경오염으로 잘 구할수 없는 것들이 끝을 모르고 차려져 있었다.
어딘가를 가고 싶었다. 기껏 얻은 이 기회를 단지 집에서 빈둥거리며 보내기에는 아까웠다.
옷을 차려입고 집밖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오, 줄리아 오늘은 날씨가 참 좋죠? “ 집 앞 벤치에 앉아 있던 노부부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네... “ 자신에게 누군가가 말을 걸지 몰랐던지, 줄리아는 대충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조금 더 걸은걸까.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길이 갔다.
지잉-지잉-
기계 부품이 조립되는 소리가 줄리아의 귓속을 시끄럽게 했다.
”줄리아! 오랜만이에요. “ 항상 줄리아를 힘들게 했던 목소리가 들렸다.
”팀장님.......?“
”에이, 무슨 팀장이에요. 이젠 그냥 이름으로 부르세요. 여긴 무슨일이에요? 톰슨씨를 보러왔나요? “ 팀장은 가식을 떠는 듯한 목소리로 줄리아를 툭 쳤다.
”톰슨씨는 여전히 여기에서도 일을 하나요? “
”네? 당연히 여기서 일하죠... “ 팀장은 이상한 말을 듣는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 죄송해요. 제가 일어난지 얼마 안되서...... 저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줄리아는 건물을 뒤로하고 나왔다.
꿈속에서 실제로 일하는 건물을 보고나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톰슨을 생각하니, 바로 몇일 전의 일이 떠올랐다. 돈이 없어서 비참한 마음으로 돈을 꾸는 상황과 친구가 생각났다. 줄리아는 친구가 사는 곳을 알고 있었으며, 그곳으로 무작정 걸었다.
띵동- 달칵- ”줄리아? 아침부터 왠일이야?“
”아침부터 미안. 물어볼게 있어서. 내가 혹시 너한테 최근에 돈 빌린적 있니? “
”그게 무슨 소리야? 너가 나한테 돈 빌려 본지 몇 년은 지난거 같다. “
”아...... 그래? 알겠어. 일찍부터 미안. 나 가볼게. “
”응? 그거 물어보려고 온거야? 줄리아! 줄리아!!“
수화기를 통해 부르는 친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줄리아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래... 여기서는 몇 년 전에 내가 가난했다는 거지? 그리고 불과 몇 년사이에 바뀐거고......’
줄리아는 머릿속이 꽉 막혀있다, 마침내 해답을 찾은 듯 했다.
7.
[미셸 환자, 어서 일어나세요! 루시드 드림에 너무 빠져들어선 안돼요!]
[줄리아 환자, 일어날 시간이 됐어요.]
띠딕띠딕--
그리고, 짙은 이명과 함께 미셸과 줄리아의 눈이 떠졌다.
줄리아와 미셸은 집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상담사에게 붙잡혔다.
”다 아시겠지만, 루시드 드림은 현실이 아니에요. 꼭 명심하셔야 해요.“
8.
다음날 아침, 줄리아는 즐거운 마음으로 공장에 나갔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얼굴이 활짝 폈어?“
”한달 뒤의 전 달라질 것 같거든요.“
9.
미셸 역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곳에서는 따뜻한 아내와 아이가 없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 어딘가가 스르르 녹은 듯한 마음이 들었다.신기했다. 마치 몇시간 전에 겪었던 꿈이 손으로 만져질것같았다. 아이를 감싸안은 손, 납골당 앞의 그림, 그 앞에 웃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진. 왜인지 모르겠지만, 심장이 쿵쿵거렸다.
10.
줄리아는 짙은 허무감과 희망이 동시에 느껴지는 눈빛으로 상담사를 보며 말했다.
"저는 루시드 드림을 통해 희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그 꿈처럼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사려고 노력하였지만, 오히려 불행한 현실의 장벽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행복을 누리고 살지만, 저는 그걸 누릴려면 평생을 일해도 힘들거에요. 언젠가 나아지겠지, 언젠간 괜찮아지겠지 했어요. 루시드 드림을 통해 본 저의 행복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더라고요. 고작 그걸 위해서 평생을 살다니...... 그래서 확실하게 안락사를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감사합니다“
서명:[미셸]
미셸은 조용히 펜을 내려놓았다. 앞에는 마지막으로 보았던 상담사가 앉아있었다.
”이제 여기서 당신을 보는 것도 마지막이네요.“
”글쎄요“
미셸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이 공간을 나가고 싶어했다. 그 모습을 상담사는 다채로운 눈빛으로 보았다.
서명을 마치고 건물을 나온 미셸의 등 뒤로 홀로그램이 비춰졌다.
“행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안주하는 것? 아니면 용기를 내서 안주하던 공간을 뛰쳐나오는 것? 혹은 자신을 괴롭히던 것을 흔쾌히 끊어내 버리는 것? 글쎄요. 많은 사람들은 착각을 해요. 내가 돈이 있다면, 시간이 있다면, 행복했을 거라고. 틀려요. 오늘은 당신이 선택한 삶이에요. 당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면 그게 행복이에요. 그게 설령 죽음일지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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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1. 줄리아에게 돈을 빌려주는 친구: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2. 미셸을 보며 수근거리는 직원들
3. 돈: 줄리아에게 돈은 편안히 해주는 수단이 아니다.
4. 톰슨과 자신이 일하던 건물: 비참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5. 납골당: 미셸에게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킴
이완
1. (현실의)톰슨: 힘든 삶을 사는 줄리아에게 있어 친숙한 존재
2. 돈: 미셸에게 돈은 그나마 옆에 남아있는 존재
3. 미셸의 가상의 가족들
4. 납골당 앞의 스케치북&딸 방의 그림
5. 줄리아가 먹은 밥& 집 너머 아름다운 풍경
결말부분과 중간 부분부분 수정했습니다.
저번에 말씀주신 '죽음'이 불행이냐는 댓글을 보고 '안락사'가 합법적으로 변한 이유에는 안락사의 긍정적인 기능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서만큼은 죽음 역시 편안함을 가져다 주는 장치로 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말을 살짝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