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강릉고등학교 솔숲
주말 오후에는 발달장애가 있는 26살 자폐청년과 함께 걷는 운동을 한다. 감정 조절이 어려워 종종 자기 중심적으로 행동하지만 더 없이 순수하다.
감각이 예민해 작은 소리까지 다 들려 소리 때문에 방해받지 않으려고 귀를 틀어 막기도 한다.
소통하는데 어려움은 있지만
이 청년의 따뜻한 손을 잡고
걸으면 내 마음도 맑아 지는 것 같다.
오늘은 초당 강원교원연수원 소나무 숲 쪽으로 걸었다. 청년이 좋아하는 소나무와 발길질을 하며 걷기 좋게 솔잎과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걷다보니 강릉고등학교가 보였다. 학교 건물 뒤편에 있는 울창한 소나무는 아이들의 푸른 꿈처럼 청청했다.
2017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는 표지판도 있었다.
사람과 숲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여주는 공간이라 상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정문과 가까운 초당학사 쪽으로 가니 김성수 열사 추모비와 정경화 소령 추모비가 있었다.
김성수는 1986년 강릉고를 졸업해 그해 서울대 지리학과에 입학했다.총학생회에서 연극도 하고 세상을 바꾸고 싶은 꿈을 가졌던 풋풋한 신입생 김성수는 1986년 6월 부산 송도 앞바다에 시멘트 덩어리를 매단 시신으로 나타났다.5공 시절 대표적인 의문사다.
공부 잘 하는 아들이 서울대에 갔다고 기뻐했을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부서졌을까.
정경화 소령은 1966년 강고를 졸업하고 육사를 나와 1977년 비무장지대 지뢰 제거 작업을 하다 자신을 던져 중대원을 구했다.
방향을 바꿔 남쪽으로 걷다보니
2021년 11월 28일 완공한
'솔 문화예술공간'이 나왔다. 강고 15회 오준택 졸업생이 1억을 기부하고 강원도 교육청이 8천만원을 지원해 만든 공간이라고 했다.
모교에 기부한 돈이 후배들의 정서를 보듬어 줄 공간이 되었다. 멋지다.
그 아래에는 1908년 몽양 여운형이 와서 학생들을 가르친 초당 영어학교를 기억하려는 표지석도 함께 있었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있는 교정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게 된 것은 1990년부터다. 그 전에는
지금 노암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학창 시절 노암동에 사는 친구들은 강릉고로 등교하는
학생들과 마주치며 노암교를 건넜다. 남대천을 가로 지른 다리를 건너 언덕 위를 오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을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여드름 덕지덕지 강릉고 학생을 만난 에피소드를 큰 소리로 떠드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었다. 어쩌면 그 친구는 매일 아침 만나는 남학생을 마음 속으로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생각만 해도 풋풋하다.
2008년 강릉고를 졸업한 아들이 있지만 그때는 아들이 학교에서 공부나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들은 축구가 좋아 점심 급식도 거르고 운동장에서 뿌옇게 먼지를 피우며 뛰어 다녔다고 했다. 얼마나 발산할 에너지가 넘쳤으면 밥도 안 먹고 뛰어 다녔을까.
무더운 여름,학교 후문을 뛰쳐 나가 강문 바다까지 한걸음에 뛰어가 바닷물에 풍덩 뛰어 들었다가 다시 교실로 뛰어 와
젖은 옷 벗어 말리고 교과서를 펼쳤던 아이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늘 주말 운동을 함께 하는 자폐 청년 덕분에 강릉고등학교 교정의 가을과 소나무 숲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