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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5편
왕 되신 여호와의 크고 능력이 있는 인자하심
(찬송 14장)
2023-9-2, 토
맥락과 의미
시편 145편은 알파벳 시입니다. 각행의 첫 글자가 알파벳의 순서로 시작합니다. (시편 9,10,25,34,37,111,112,119,145편이 알파벳 시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 시는 내용과 구조 면에서도 정교한 형식으로 쓰여졌습니다. 서론(1-2절)과 결론(21절) 외에 본론이 4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연(3-7절)과 2연(8-12절)은 5절씩으로 이루어져 있고, 3연(13-16절)과 4연(17-20절)은 4절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2연(3-12절)에서는 일반적인 차원에서 왕 되신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찬양합니다. 3-4연(13-20절)에서는 구체적인 하나님의 통치 행위를 언급하며 찬양합니다. 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기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돌보시는 자비로운 왕이심을 찬양합니다.
1. 서론: 다윗이 앞장서서 하나님을 찬송함(1-2절)
2.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찬송함(3-7절)
3.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를 성도와 모든 피조물이 함께 찬송함(8-12절)
4.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연약한 자들을 돌보심을 찬송함(13-16절)
5.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간구를 들으시는 의로우심을 찬송함(17-20절)
6. 결론: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함(21절)
1. 서론: 다윗이 앞장서서 하나님을 찬송함(1-2절)
이 시의 표제는 “다윗의 찬송시”입니다. 다윗은 본인이 왕이지만,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그분을 찬송합니다.
세상의 왕은 자신을 높이지만, 다윗은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왕으로 높이며 섬기고자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참된 왕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그분의 명령에 따라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내가 날마다 주의 이름을 찬양하겠다”는 말은 다윗의 실제 고백이면서, 동시에 믿음의 결단이기도 합니다. 찬양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때에도, 찬양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에도 항상 주님을 찬양하겠다는 결심을 밝힙니다.
2.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찬송함(3-7절)
시인은 하나님의 위대하심(3절)과 선하심(7절)을 함께 연결시켜 찬양합니다. 7절에 “은혜”라고 번역된 말이 일반적으로는 “선하심”(토브)을 의미합니다. 시편 86편이나 135편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그분의 선하심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위대함을 큰 힘과 능력으로 탁월한 성취를 거두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가난하고 작은 자를 선대하시는 그분의 선하심 가운데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4절에 “주의 행하시는 일”은 피조세계 전체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일반적인 섭리적 통치를 말한다면, 5절에 “주의 기이한 일”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구원 사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창조와 구원 모두에서 주님의 위대하심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시인은 주님의 위대하심을 “대대로 찬양하고 선포하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를 다음 세대에 가르치며 주님을 아는 지식이 대대로 계승되도록 힘쓰겠다는 말입니다.
자녀 세대에게 신앙을 전수하는 것은 단지 성경의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믿고 찬송하면서, 내가 믿고 찬송하는 하나님을 자녀도 함께 믿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주님의 구원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며” 묵상합니다(읊조리다는 말은 시 143:5 등 다른 구절에서는 묵상하다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또한 기회가 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도 주님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찬양하는 것이 단지 나의 감사를 표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복음을 전수하고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전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를 성도와 모든 피조물이 함께 찬송함(8-12절)
1) 모든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8-9절)
“여호와께서 은혜롭고 자비하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다”는 이 고백은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려주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에서는 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 오래 참으심과 인자하심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 대해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그분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들을 선하게 대하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요나 선지자와 하나님의 대화 가운데에서 이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앗수르 인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멸망당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1)
앗수르는 하나님께 반역하고 우상숭배하면서 이스라엘을 잔인하게 공격하는 악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앗수르 인들과 가축들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이들에게도 은혜와 자비를 베푸셔서 선지자를 보내어 회개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단지 자기 개인과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온 세상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하며 영광 돌립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서 온 세상을 품을 만큼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2) 성도들의 찬송을 통해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을 찬송함(10-12절)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감사 찬송을 올리기를 원하십니다. 이 찬송은 먼저 성도들에게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과 업적을 찬송할 때, 모든 인생들이 주를 알게 될 것입니다. “제사장 나라”로서 온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전파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사명이었습니다.
단지 입술로 찬송드리는 것을 넘어서, 삶 자체가 주님을 향한 찬송의 증거가 될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섬기며,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여 거룩한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루며 살 때, 그들의 삶의 모습 자체가 아름다운 찬송이 됩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은 물론,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도구가 됩니다.
다윗은 왕으로서 주의 성도들이 입술과 삶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찬송이 되도록 인도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찬송을 부르며 왕의 책임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4.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연약한 자들을 돌보심을 찬송함(13-16절)
13절부터는 주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통해서 드러나는지를 좀더 자세하게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통치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일은 바로 “모든 넘어지는 자들을 붙드시며,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는 일”입니다.
왕으로서 하나님은 자신의 전능하신 능력을 가장 낮은 자들을 위해서 사용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연약한 자, 넘어져서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날 수 없는 자들을 도우시고 일으키십니다.
(“비굴한 자”는 도덕적으로 부정적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전적인 의미는 단순히 “구부러진 자”라는 의미입니다. 시편 57:6에서는 “억울하다”고도 번역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피조물들에게 때를 따라 먹을 것을 주십니다. 모든 생물들이 주님께서 만드신 세상 가운데에서 자기 소원을 따라 행동하며 행복을 추구하며 살도록 허락해 주십니다.
시인은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 신자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먹을 것을 주시고 이 세상에서 살게 하시는 것이 주님의 선하심과 오래 참으심 때문이라고 노래합니다. 단지 그들이 자유롭게 살도록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먹을 것을 주시며,” “손을 펴셔서… 만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는 영원하고, 대대에 이릅니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자비가 영원히 지속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5.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간구를 들으시는 의로우심을 찬송함(17-20절)
시인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은혜로우심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공의의 심판과 연관지어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는 은혜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이 은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임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자신의 필요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들의 소원을 이루심은 물론, 이들을 모든 악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구원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는 악인들을 멸하시는 것으로도 드러납니다. 시의 흐름 상 여기서의 악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을 부당하게 핍박하고 악을 행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기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도 함부로 대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악인들도 선하게 대하시며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악인을 향한 오래 참으심과 자비는 결코 영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여호와를 사랑하는 데로 돌이키지 않고 성도들을 괴롭히는 악인들에 대해서는 결국 심판하심으로 의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6. 결론: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함(21절)
시의 결론에 해당하는 21절은 서론인 1-2절과 대비하면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서론에서는 왕인 다윗이 혼자 찬송한 것이 여기서는 모든 육체의 찬송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앞에서는 “주의 이름”을 송축한다고 다소 막연하게 언급되지만, 여기서는 “주의 거룩하신 이름”이라고 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지식이 더욱 발전한 것이 암시됩니다.
모든 피조물과 악인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게 될 것을 소망하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만 여호와의 참된 인자하심을 찬송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참된 인자하심이 온 세상에 밝히 드러났습니다(요 1:14). 땅 끝에 사는 이방인들이었던 우리들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시작합시다. 창조와 구원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선하심을 찬양합시다. 찬양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찬양하기로 결심합시다. 우리가 먼저 찬송할 때 우리의 자녀들과 이웃들도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도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가 계속해서 임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도 믿지 않는 자에게도 해를 주시고 비를 내리시며 풍요와 번성을 허락하십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충만하게 들려 주십니다. 온 세상을 사랑하시며 복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전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찬송이 됩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2-14)
우리로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송이 되게 하신 은혜를 찬양합시다. 기뻐할 수 없을 때에도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주께 드리는 찬송으로 올려 드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의 자녀들과 모든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주를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나타난 여호와의 성품에 대한 고백
“여호와께서 은혜롭고 자비하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다”는 고백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등장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4:6-7에서 여호와께서는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말씀을 하시며 다시금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민수기 14:18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 정복을 주저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얻었습니다. 모세는 이 말씀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사죄를 구하였습니다.
느헤미야 9:17에서는 민수기 14장의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를 합니다. 포로 이후에 돌아와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면서 이 말씀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역대하 30:6-9에서 히스기야가 북이스라엘 백성에게 편지를 보내서 유월절에 청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
요엘 2:13에서 요엘 선지자는 이 구절을 인용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요나 4:2에서는 요나는 오히려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앗수르를 심판해 달라고 구합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을 오해하여,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특권의식을 잘못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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