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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지바고』 원고 반환투쟁 벌이는 ‘라라’
연합뉴스| 입력 1994.04.30 11:59 (워싱턴=연합(聯合)) 張永燮 특파원
영화 <의사 지바고>에서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열정의 여주인공인 라라의 실제 모델이 舊소련의 노벨상 수상 작가이자 그녀의 연인이었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유품 및 원고 등을 되찾기 위해 러시아 정부와 끈질긴 투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아혁명의 장대한 드라마 속에서 펼쳐지는 열정적 사랑을 담은 소설 『의사 지바고』는 영화로도 널리 소개돼 많은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고, 아직도 많은 영화팬들은 설원 속에서 라라와 지바고가 이별하는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지에 따르면 바로 이 라라의 실제모델이었던 올해 82세의 올가 이빈스카야가 최근 잇단 법정투쟁에 이어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 공개 탄원서한까지 내면서 파스테르나크의 유품을 되돌려줄 것을 호소하고 있으나 러시아 사회의 관료주의의 벽에 부딪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이빈스카야는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연인이자 말년의 내조자. 그러나 그녀는 지난 1960년 파스테르나크가 유명을 달리하자 소련의 비밀경찰인 KGB에게 끌려가 4년 동안 강제노동수용소에 억류되는 고초를 겪었고 파스테르나크가 남겼던 많은 유품 및 원고들을 압수당했다.
그녀가 현재 되찾고자 하는 유품들은 그녀에게 헌정된 『의사 지바고』의 원고 일부와 작가 파스테르나크에게 보낸 편지들, 그리고 파스테르나크의 희곡 「눈먼 미인」의 초고 등이다.
작가 파스테르나크는 그가 56세이던 지난 1946년 서른네 살의 이빈스카야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말년의 대부분을 페레델키노의 시골 별장에서 밤에는 부인과 지냈지만 아침에는 인근에 마련된 세집에서 기다리던 이빈스카야를 만나러 가는 이중생활을 했다.
파스테르나크는 또 자신의 가족들과 여행을 할 때면 “나의 귀중한 여인이여 키스를 보내오. 나는 생명에 의해 그리고 창문을 통해 빛나는 태양에 의해 당신에게 매어 있소” 등의 구구절절한 연서를 보내곤 했다고 <워싱턴포스트>지는 전했다.
1949년 그녀는 파스테르나크와의 관계 때문에 처음으로 4년간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졌고 그들의 사랑의 결실인 어린아이를 감옥에서 출산하기도 했다
예일대학의 빅토르 에리치 명예교수는 <워싱턴포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파스테르나크의 본부인을 동정하는 사람들은 이빈스카야가 돈을 목적으로 작가를 유혹했다고 조롱하고 있지만 그녀는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그녀가 돈과, 그리고 작가의 명성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여성이라는 생각에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에리치 교수는 “그녀는 어떤 시점에 파스테르나크에게 큰 기쁨을 주었고 어떤 비난의 말을 할지라도 작가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고 지적했고 하버드 대학의 조세핀 월 교수도 그녀가 『의사 지바고』라는 작품 속에서 라라의 모델로 큰 부문을 차지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혁명 초기 혁명을 지지했던 파스테르나크는 1930년대 스탈린의 공포정치 시절 아첨꾼이 되기를 거부, 창작을 끊고 번역으로 생계를 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빈스카야를 만날 시점에 자신이 겪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정했는데 정작 『의사 지바고』는 소련에서 출판되지 못하고 해외에서 출간돼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1958년 파스테르나크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소련당국은 작가에게 압력을 가해 수상을 포기하도록 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도 자아비판을 하도록 했다.
1960년 작가가 숨지자 KGB는 이빈스카야의 아파트를 수색, 그녀와 그녀의 딸을 비밀 경찰본부로 끌고 갔고 비밀경찰들은 “작가로 하여금 조국을 배반하도록 만들고 작품의 해외출판으로 이득을 얻었다”고 그녀를 매도했다.
결국 딸 이리나는 2년간, 이빈스카야는 4년간 강제수용소 생활을 하게 되는데 딸 이리나는 수용소에서 남편 코조보이를 만나게 된다.
1988년 『의사 지바고』가 러시아에서 출판됨과 동시에 이빈스카야와 그녀의 딸은 공식적으로 복권됐다. 그러나 그녀의 집에서 압류된 작가의 유품들은 여전히 KGB의 문서보관소나 국가문학자료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파스테르나크의 유품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현재 딸 이리나와 함께 프랑스에 살고 있는 사위 코조보이가 1989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이반스카야는 모스크바시 법원에 압류품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법원의 명령의 이행되지 않자 대법원에 항소, 다시 승소했지만 여전히 문서보관소측은 압류품을 반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파스테르나크의 아들의 미망인까지 “그 유품들은 작가가 비서로서 그녀에게 맡겨놓은 것일 수 있다”며 유품들이 문서보관소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빈스카야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유품을 돌려받을 경우 원고들을 외국에 팔아넘길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유품 중에 새로운 원고가 있다면 파스테르나크와 그의 시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출판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광활한 자연 그린 <닥터 지바고>
모스크바한인회 2월2일 제6차 러시아 문학기행
2013년 02월 14일(목) 09:53:21 최승현 기자
<모스크바프레스> wk@worldkorean.net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의 광활한 자연, 그 자연 속에서의 개인의 자유라는 서구적 낭만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러시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국경을 막론하고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러시아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모스크바한인회(회장 김원일)가 2월 2일 제6차 러시아 문학기행을 개최하고 모스크바 근교 페레델키노에 소재한 『닥터 지바고』의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생가와 러시아의 문학비평가이자 아동문학가인 니콜라이 추코프스키 생가를 방문했다. 이번 행사는 첫 번째 행사였던 톨스토이 생가가 있는 ‘야스나야 뽈리나’를 방문한 이후 참가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진행됐으며 20명의 한인들이 참가했다.
특히 3박 4일간 모스크바대학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석차 모스크바를 방문한 한인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영하 20도의 혹독한 추위는 참가자들의 설렘을 얼리지 못했다.
참가자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니콜라이 추코프스키 박물관과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생가를 들렀다. 추코프스키는 파스테르나크에 비해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이유는 아마도 한국의 러시아 문학 번역이 청소년들과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높은 유아 교육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러시아에서 추코프스키의 아동문학은 책을 읽기 시작하는 러시아 아이들에게 있어 교사의 역할을 대신해줄 만큼 명성이 높다.
그의 생가는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소품들과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러시아를 비롯해 세계 아동들에게 동심을 심어준 그의 작품 세계를 이끌어준 그의 서재에서 참가자들은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파스테르나크 생가.
파스테르나크의 집은 지바고가 라라와 함께 몇 날을 같이 보내는 바리키노의 집을 닮았다. ‘역사에 저항한 시인’으로 새롭게 지칭되고 있는 파스테르나크의 생가는 개장 이래 무려 30여만 명이 다녀갈 만큼 소련 문학의 새로운 성소가 되고 있다고 했다. ‘노벨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조국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던 파스테르나크의 고뇌가 집안 곳곳에 배어 있었다.
소련당국은 물론 작가동맹 등 동료 문인들로부터도 거센 비난을 받게 된 파스테르나크가 그의 노벨상 수상소식이 전해진 1958년 10월 흐루시초프에 편지를 보내 노벨상을 포기하는 대신 ‘자신과 집’을 보호해줄 것을 탄원한 사실은 유명하다. 그러나 이 같은 탄원에도 불구, 문학재단과 작가동맹은 1960년 파스테르나크가 죽고 난 이후 그의 흔적을 깡그리 없애고자 진력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생가는 집기가 부서지는 등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파스테르나크의 며느리 나탈리아에 의해 현재 관리되고 있는 그의 생가 겸 기념관에는 그가 임종한 침대, 그리고 방문객들의 접근을 사양했던 서재 등이 당시 모습대로 보존돼 있다.
한국인이 가장 자주 본 영화 <닥터 지바고> 이야기
趙甲濟
수년 전 SBS에서 방영한 심야영화 <닥터 지바고>를 새벽 3시 넘어까지 보았습니다. 아마도 여섯 번째로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도 끝까지 보게 하는 이 영화의 마력이 무엇인지?
<닥터 지바고>는 舊소련 소설가 파스테라나크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기초로 한 영화입니다. 파스테라나크는 소련정부의 압력으로 수상 현장에 가지 못했습니다. 이 소설은 자전적 내용이라고 합니다. 여주인공 줄리 크리스티가 맡은 연인 라라의 모델이 된 사람도 실존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 혁명에 비판적인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1950년대 흐루시초프 시절 스탈린 격하운동이 시작되면서 암흑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언론자유가 허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인 1960년대 초에 번역된 이 소설을 읽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1969년으로서 공군 졸병 시절에 휴가 나와서입니다. 그 뒤 텔레비전에서 재방영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한 1년 있을 때도 재방영을 끝까지 봤습니다. 이 영화처럼 재방영을 여러 번 한 영화도 달리 없을 것입니다. 재방영을 볼 때마다 새로운 각도에서 더욱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하는 신비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나관중의 『三國志』를 소년 때 읽은 감동과 어른 때 읽은 감동이 다른 것처럼 <닥터 지바고>는 결혼 전에 보았을 때, 연애 시절 보았을 때, 결혼한 뒤 보았을 때, 아이를 결혼시키고 보았을 때, 외손자를 본 뒤 보았을 때(어젯밤의 저처럼) 느낌이 다 다를 것입니다.
이 영화는 비련(非戀)의 이야기를 러시아 혁명이란 역사의 무대에 올려놓은 대작이지요. 데이비드 린 감독은 <콰이강의 다리><아라비아의 로렌스><인도의 길> 같은 역사물을 장대한 배경에 담아내는 거장인데 <닥터 지바고>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공산혁명을 설원에 깔고 시인이자 의사인 지바고(오마 샤리프)와 라라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그 위에 그린 서사시이자 서정시로 영상화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라라가 탄 마차가 눈 덮인 들판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끝까지 보기 위하여 지바고가 2층의 창문을 깨고 머리를 내미는 장면일 것입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장면은 너무 처절합니다. 그 이별 8년 뒤 지바고는 모스크바에서 전차를 타고 가다가 걸어가는 라라를 봅니다. 심장병을 갖고 있던 그는 전차에서 내려서 라라를 부르지만 라라는 못 알아듣고 걸어갑니다. 그녀를 비틀비틀 따라가다가 심장마비를 일으키면서 쓰러지는 장면, 그것도 모르고 계속 걸어가면서 사라지는 라라의 뒷모습. 저는 감독이 여기서 라라 비슷한 여자를 내세워 지바고가 다른 여자를 라라로 오인한 것처럼 처리했더라면 덜 잔인하였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여러 번 보면서 저는 이 영화가 워낙 완벽하게 꾸며지고 촬영되었기 때문에 역사적 현장을 자연스럽게 살려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부자연한 장면이나 연결이 없이, 그때는 그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혁명기가 만들어내는 여러 형의 인간군상—무자비한 혁명가, 따뜻한 혁명가, 도태되는 구질서의 인간들, 현모양처, 요령 좋은 인간, 차가운 정치장교, 인간적 체취를 가진 빨치산 대장 등—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옷, 장비, 배경 등 관중들이 러시아혁명의 현장 속에 있는 것 같은 실감, 그래서 여러 번 보아도 지겹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007 위기일발>, <벤허> 같은 영화를 요사이 보면 전개가 너무 느려서 도저히 끝까지 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장면들이 어색하고 대화가 너무 산만해서 그럴 것입니다. 반면에 <카사블랑카> 같은 영화는 요사이 보아도 전개가 빠르고 어색한 점이 없어 끝까지 긴장감을 갖게 합니다.
역시 명화는 세월의 도전을 극복하고 생동감과 감동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닥터 지바고>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빛나는 이유는, 혁명가와 시인, 학살과 사랑, 설원과 전장의 대조가 서사시적인 영상으로 우리 뇌리에 오래 남는 때문이겠지요. 특히 전편을 흐르는 배경음악인 ‘라라의 테마(Somewhere my love)’의 애조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적시기도 하고 쥐어뜯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성공에는 알렉 기네스(지바고의 형), 제랄딘 채플린(지바고의 처), 로드 스타이거(라라의 의붓아버지) 같은 세계적인 배우의 공이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라라로 나온 줄리 클리스티의 연기일 것입니다. 열정과 욕정을 담은 불타는 눈과 입술, 성깔 있는 단호한 목소리, 육체적 욕망과 따로 노는 정신적 지조, 이런 것들을 한 여성상 안에 담고 있는 그녀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처럼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인의 연인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지바고와 라라 사이에 여러 번의 이별과 만남이 있습니다. 간호사와 의사로서 전장을 누비다가 헤어지고, 혁명의 한복판에서 도서관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만 임신한 아내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은 지바고가 라라에게 ‘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돌아오다가 빨치산에 잡혀 헤어집니다. 빨치산 종군 의사로 일하다가 탈출하여 다시 라라와 만나고, 그 라라를 다시 떠나보내고, 마지막으로 모스크바에서 걸어가는 라라를 뒤쫓다가 쓰러집니다.
이 영화에는 잊을 수 없는, 놓칠 수 없는 장면들이 참 많습니다. 비밀경찰이 언제 두 사람을 붙들어 처형장으로 보낼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나날들 속에서 그 마지막의 생을 의미 있게 살자면서, 오직 사랑의 열기로써 서로를 데우면서, 겨울밤의 늑대 울음을 들으면서 詩를 쓰고 라라를 쓰는 지바고. 운명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순간을 예감한 절박한 삶 속의 詩作, 그 작업도 포기하고 운명을 기다릴 때 찾아온 한 사나이의 제안……
여러 차례의 이별과 만남이 이 영화의 주된 흐름입니다. 혁명이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격동기에 펼쳐진 애련이랄까 비련이랄까. 인간을 역사적 존재로 설정한 영화이기 때문에 <닥터 지바고>는 그런 사랑 이야기에도 무게가 더해집니다. 다음 재방영 때도 저는 아마도 또 밤을 새울 것 같습니다.
<닥터 지바고> 제작 秘話
며칠 전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데이비드 린 감독의 명화 <닥터 지바고>가 만들어진 내막을 소개한 프로를 보았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영국 사람이다.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제3의 사나이>, <인도로 가는 길> 등 대작을 찍었다.
<닥터 지바고>는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에 촬영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에게 “이 영화에는 이념을 담지 말고 사랑과 인간을 담으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닥터 지바고는 시인이기도 한데 이 역을 맡은 오마 샤리프는 데이비드 린 감독으로부터 이런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신은 연기할 생각을 하지 말라.”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오마 샤리프는 울고 웃고 하는 연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표정이 거의 없거나 극도로 절제한다. 이런 무연기를 부탁한 것이다. 오마 샤리프는 영화를 찍던 중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린 감독에게 “이렇게 해도 되는 거냐”고 물었다. 린 감독은 말했다. “정말 나를 못 믿겠단 말인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이 영화를 본 사람은 결국 당신만을 기억할 거야.”
<닥터 지바고>를 보고 나면 남는 인상은 역시 오마 샤리프의 눈동자 연기이다. 그는 말없이 눈으로 연기한다. 우수에 찬 눈동자, 라라에 대한 애잔한 사랑이 깃든 눈동자,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스며 있는 눈동자, 비밀경찰의 감시망이 좁혀오는 것을 느끼면서 라라와의 마지막 나날들을 절박하게 보내는 초조한 눈동자, 그런 것들이 잔영으로 남는다. 연기가 지나치면 관객들은 싫증이 난다. 연기가 적당하면 관객들은 만족한다. 연기가 절제되어 좀 모자란 것 같으면 그 아쉬움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라라 역을 맡은 줄리 크리스티는 행운이었다. 이 영화 제작자인 이탈리아인 폰티가 부인 소피아 로렌을 데이비드 린 감독에게 추천하였으나 린은 로렌이 너무 몸이 크다면서 거절하고 크리스티를 썼다.
<닥터 지바고>에는 대평원과 눈 덮인 설원이 나온다. 어디서 찍었을까? 핀란드? 캐나다? 놀랍게도 스페인이다. 마드리드 북부 지방에 모스크바 시내를 본뜬 세트장을 지어놓고 찍었다고 한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평균 해발 고도가 가장 높다. 평균 600미터이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는 곳도 있다. 황량한 대륙의 기분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마드리드 근교에서 러시아 혁명 장면을 찍을 때의 에피소드. 붉은 혁명을 일으킨 군중들이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주제가인 ‘인터네셔널’을 합창했다. 엑스트라로 동원된 스페인 사람들은 이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페인내전 때 좌익 공화파쪽에 섰던 사람들이나 2세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난데없이 불순한 노래가 울려나오자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노래를 들은 이웃마을에선 “프랑코가 죽은 모양이다”고 좋아했다고도 한다.
이 영화에는 오마 샤리프 처족이 탄 기차가 시베리아로 달리는데 한 어머니가 아기를 데리고 달려와 겨우 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어머니가 기차를 타기 직전에 차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다음 기차 안에 탄 사람의 손에 이끌려 올라간다. 실제 촬영에서 이 어머니는 기차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크게 다쳤다고 한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그 장면을 그대로 영화에 쓴 것이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오로지 영화밖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인공과 조연들의 옷 색깔도 린 감독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기차 기관차의 색깔을 붉게 칠한 것도 혁명을 상징하기 위함이었으며 전선에서 간호부 라라가 떠나고 홀로 남은 유리(오마 샤리프)의 뒷모습, 그 옆에 놓여 있던 해바라기의 잎사귀가 하나둘 떨어지는 장면은 유리의 마음속에서 터지는 울음을 상징하였다.
이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과 같은 해에 개봉되었다. 오스카상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 더 많이 받았다. <닥터 지바고>의 주제가 ‘라라의 테마’는 러시아 전통 현악기의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애절한 멜로디로 유명하다. 이 노래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LA 지역의 러시아 음악인들과 교향악단의 협주로 녹음된 곡인데 작곡가는 프랑스 사람이다.
소설 『닥터 지바고』가 러시아에서 출판이 허용된 것은 1988년이고 영화가 상영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첫댓글 저 중학교때 문화교실이란걸 통해서 이 영화를 봤지요......그때 시들어 떨어지는 해바라기 꽃잎의 슬픔을 보면서 무작정 해바라기 꽃을 좋아했지요...지금도 좋아하는 꽃입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