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전원배(노동운동가)
들어가며
민주노조운동은 98년 외환경제위기 이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민주노총안으로는 수동화된 조합원과 관료화된 조합간부로 양분되어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귀족노동자라는 비난아래 지역사회전반에서 고립되어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지속적인 민주노총에 대한 공격앞에 기세가 상당히 위축된 상황이다.
노동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기위해 제기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두개의 정당으로 분열함으로써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이렇게 노동조합운동이 위기에 봉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발제자는 98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가 극단적 양극화 사회로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운동이 그동안 관성으로 단위사업장내의 임단투에 매몰된 구태의연함에서 찾고 싶다.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엄중하게 판단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할 때이다.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적 활동을 통해서 노동조합도 역량을 회복하고 사회적 약자층도 일어설수 있는 상생적 태도가 절실하다. 이글이 이러한 모색에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 민주노조운동의 현 상황
“세상이 무인도다. 제 앞가림 걱정뿐이니 생존을 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등 국민 취급 받으며 허우적대는 비정규직. 시장만능주의가 부른 위기 앞에선 정규직이라 해도 뻐길 것 없다. 지쳐 잠자고,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짬이 나면 술이나 마시는 건 마찬가지니. 금속노조 정책국장인 저자 조건준은 이 시대의 노동자를 가리켜 ‘잠-일-술 세대’라 말한다. 양극화는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대기업 노조와 하청 비정규직 노조, 중앙노조와 단위노조, 잘리는 자와 살아남은 자. 고용불안에 질질 끌려다닌 10여 년, 잠일술 세대의 노동운동도 울퉁불퉁 처지다. “고용불안증이라는 프레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경쟁자로 만들었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고용방패로 삼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는 이 ‘고용 경쟁’의 악순환을 넘어서자 한다. 고립된 대공장 노조 중심의 공성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진지전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눔은 곧 곱하기다. 나눔으로써 조직되지 않았을지라도 조직된 노동자들보다 몇 배의 노동자들이 함께 공감하는 다수의 힘을 만들 수 있다.
” 위태로운 노동운동에 새 날개를 달자는 주장이다. 끌려가지 말고 끌고 가자 한다.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부터 최근 쌍용차 사태까지 실무자로 참여해 두루 살핀 현장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민주노총 ‘과두정치’부터 대공장 노조 ‘깃발부대’까지 날선 비판도 마다 않는다. 인간을 위한 노동운동이 인간다움을 포기해선 안 될 일. 조건준의 화두는 “함께 살자”다.“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에 대한 최정봉 기자의 서평중에서.
우리 민주노조운동은 그동안 사회적 약자를 벗어나려고 처절히 싸워왔고 그 과정에서 굳건한 연대를 통해서 사회적 실체로 인정받아 왔다. 그 결과 조직된 노동자가 150만에 이르는 사회,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커다란 성과라 할수 있다. 그러나 조직이 커진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건 아니다. 오히려 ‘섬’처럼 사회에서 점점 고립되어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어디서 문제가 생긴 것일까?
얼마전 한여름을 뜨겁게 달군 쌍용자동차 동지들의 처절한 투쟁이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목숨까지 걸고 처절하게 투쟁했지만 사회적 고립속에서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평상시 자기사업장 정규직문제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하다 보니 위기가 닥쳐왔을 때 사회적 연대가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위의 인용된 글처럼 평상시 노조운동이 지역사회와 소통,공감하지 못했으며 나눔의 생각과 실천이 너무나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나눔과 지역사회와의 소통은 어떻게 가능할까?그동안 노조들이 사회적 소통을 위해 아무것도 안한 것은 아니다.‘사회봉사활동’‘사회공헌활동’이라는 목적아래 다양한 실천을 모색해 왔다. 그러한 실천적 활동에 대한 반성적 평가 속에서 양극화-고용불안문제에 더욱 적극적 개입할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
2. 노조의 사회활동에 대한 간략한 평가와 발상의 전환
사회복지분야는 크게 두가지 영역으로 나뉜다.일반적 사회복지 분야와 노동사회복지라 할수 있다. 노조들이 그동안 열심히 해온 분야는 일반적 사회복지라 할 수 있다. 고아원이나 양로원,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소년소녀가장돕기,수해등 재난이 일어났을 때 긴급지원등의 활동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이러한 활동이 의미있는 한발이며 더욱 많은 노조들이 여기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노동사회복지 영역을 적극적으로 개발하여 기존의 일반 사회복지는 국가와 지자체,전문적 사회복지 기관이 주로 담당하고 대량발생하고 있는 실업자 문제에 노조들은 적극 나서야 할것이다.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사회복지라는 말이 있듯이 노조는 일상적으로는 자본의 일방적인 해고에 맞서는 한편 사회적으로 실업상태에 처한 분들이 일자리를 갖도록 노력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회적으로 실업이 만연하면 고용된 현역노동자도 상당한 고용위기의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즉 넓고 멀리 본다면 실업자의 일자리 창출은 자선적 시혜나 도와주기가 아니라 노동자 모두가 안정적 삶을 도모할수 있는 방책인 것이다. 그동안 노조운동의 관성에서 벗어나 실업 고용불안 노동자들과의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 현재의 위기를 새로운 노동운동의 활로를 여는 계기로 삼도록 하자. 그렇다면 일반 사회적 복지와는 다른 노동복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 할까? 몇 년전 노무현 정부시절부터 고용위기가 심화되면서 정부와 사회복지중 근로복지 파트와 연관해서 ‘사회적 기업’이라는 형태의 새로운 고용창출 방식이 사회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현재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된 곳은 300여개에 달한다.
3. 사회적 기업과 노조의 사회연대활동
‘사회적 기업’은 법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된 개념이 아니며 사실상 이 개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년의 일이다. 사회적 기업의 광의의 의미는 “일종의 기업으로서 상업적인 이윤보다 사회적 목적 추구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일종의 기업으로서 그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인 수준의 이윤은 창출해야 하는 조직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이 왜 제기되는지 검토해보자.
‘사회적기업’‘사회적 일자리, 제 3 섹터, 연대의 경제 등 일련의 다양한 이름은 ‘ 자본주의적 방식이 아닌 대안의 경제시스템을 총칭하는 것’이다.
대안의 경제 시스템이 제기된 이유는 무엇일까?
- 첫째, 고용의 불안과 일자리 없는 사회의 도래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기본구도인 고용/임금 관계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점차적으로 <후기/임노동사회 post salariat>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인구의 10% 이상은 실업자이며 여기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망실업자, 무급 가족 종사자 등과 취업이 불가능하여 다시 학업을 계속하는 청년층 등을 포함하면 실제 실업률은 20%대에 이른다.
한편 취업자들 중에서도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취업자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일자리라는 것은 (노동인구 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소수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되어버렸다. 또한 일자리라는 것은 사회적 위치를 갖게 되는 경로이며 이를 통해 모든 인간관계가 형성되며 사회적 권리를 누리게 되므로 그렇지 않은 상대적 다수에게는 이 통로가 원천 봉쇄되어 버리는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게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 사회는 후기 임노동사회에 맞는 일자리를 마련해야 하며 이는 기존의 노동시장정책과는 다른 방식의 일자리 창출 메카니즘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영역은 그 동안 임금이 주어지지 않은 형태의 노동, 즉 비공식 부문의 노동으로 대부분이 여성에 의해 수행되었던 가정에서의 노동―보육, 탁아, 파출―과 자원봉사에 의해 수행되어 오던 사회적 유용성을 가진 부분, 그리고 비시장적인 상조활동 등의 부분을 개발하여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고 임금이 주어지는 경제 활동으로 편입해야 함을 제기한다.
- 둘째, 빈곤과 실업의 양산으로 인한 사회적 소외(social exclusion)의 문제이다. 기술했듯이 사회는 취업자/비취업자로 양분되어 취업자는 모든 권리를 누리고 비취업자는 모든 권리에서 소외된다. 그 중 장기실업자는 항구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들며 노동하는 계층 중 비정규직의 불안정 취업층은 또한 소득이 불안정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향유하지 못하므로 점차 빈곤 계층으로 떨어질 위험에 처해있다. 여기에다 신자유주의의 정책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복지부분에 투여되는 비용의 축소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어 기존의 복지정책으로 보호를 받던 이들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어 이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해졌다.
사회적 소외의 개념은 기존에 빈곤의 개념이 갖는 한계로부터 출발한다. 즉 사회보장의 후퇴, 취약계층의 배제, 노동시장에의 접근 불가라는 변화된 상황에서 빈곤이라는 개념은 사회․문화․정치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았다. 즉 사회적 소외의 개념은 재산이나 소득의 불충분함 외에도 그로 인해 파생하는 제반의 경제․사회․문화적 수단의 빈곤으로 평균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까지 포함한다. 또한 빈곤은 어떠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소외의 개념은 빈곤화되는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보여주며 빈곤이 가지는 다차원적인 특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로써 ‘빈곤’에 반대되는 개념은 ‘풍요’이나 ‘사회적 소외’의 반개념은 ‘사회적 통합’으로 귀결되며 그 해결책은 고용정책뿐 아니라 사회정책의 핵심적인 내용의 전환을 통해 이루어진다.
- 셋째, 사회인구학적인 변화이다. 이로 인해 인구의 노령화, 가족의 해체, 남녀 관계의 변화, 도시화, 농촌의 황폐화 등 사회적 변천을 특징짓는 이러한 추세에 따라 관련된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절실해졌다. 이 중 어떤 것은 공공부문의 서비스에 속하는데 많은 국가에서 사적 부문에 맡겨져 있다. 보육․탁아․어린이와 청소년 돌보기(탁아소, 놀이공간, 방학기간 수련장, 학업 보조, 스포츠 등), 부양자와 그의 가족 돌보기, 교통, 환경의 보호․보존․복구, 쓰레기 처리, 영세민주택 관리, 지역 복구, 그리고 국가에 따라 빈곤과 소외 퇴치를 위한 조치 등의 활동은 기존의 서비스와 연대의 네트웍(민간단체)을 복구하고 활성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활동을 순전히 경제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관계의 유지라는 숫자화할 수 없는 부가가치를 고려해야 할 때이다. 즉 사회의 해체 예방은 비용이 들며, 그 비용은 사회전체가 부담해야 한다.
요약하면 대안의 경제시스템이 지향하는 바는 일자리가 풍요로운 성장, 사회의 통합, 새로운 욕구에 부응하는 경제 활동 부문을 구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안의 경제시스템이 추구하는 바는 자본주의/신자유주의의 구도를 연대의 경제로 대체한다. 그리고 복지비용의 감축을 위하여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여 모든 저소득 빈곤계층을 무리하게 노동시장으로 밀어 넣는 근로복지연계의 개념을 사회적 연대의 개념으로 대체하고자 하는 사회경제적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김신양,[[대안연대 경제에 관한 글에서 인용]]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따른 사회해체에 맞서 “사회적 연대”차원에서 한국사회에서도 많은 사회적 기업이 만들어지고 있다. 어려움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노력속에서 사회적 기업들은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들이 무차별 경쟁상태의 시장에 노출되어 독자생존에 어려움을 겪고있다.유럽의 경우 여러 가지 보호된시장과 시민사회단체와의 연계속에서 생존 확률이 높으나 한국의 경우 5%대의 생존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조합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사회적 기업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경영기획,조직관리.자본확충, 영업활동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연대한다면 가뭄의 단비와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4. 글을 마치며
우리가 무엇인가 나눔을 생각하면 내 것을 손해본다는 관념이 있는데 이러한 관념이 한국사회에서 나눔의 문화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작은 나눔은 더욱 커지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당장은 짜릿하지만 삶을 더욱 황폐하게 만드는 중독(집착)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길이라 생각한다.노동조합운동의 위기가 오히려 가뭄에 나무들이 뿌리를 더욱 굳건히 하듯이 노동운동이 사회적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