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기념관을 나와 다시 걷는다.
초등학생 민형이가 기수가 되어 길을 걷고 있자니, 마음에 묘한 울림이 생긴다.
미안하기도 하고, 새로운 시대를 기도하는 마음 같기도 하고...
전흥우 선생님이 민형이 민아를 잘 보살피며 걸어주셔서 감사했다. .
소양대교 근처에 있는 춘천대첩 기념 평화공원.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춘천지구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곳이다. 국군이 처음으로 승리한 전투인데, 북한군이 큰 타격을 입어서 지원군을 기다리느라 한강 이북에서 3일을 지내야 했고, 그 때문에 국군이 한강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벌게 되었다고 한다.(그 이면의 여러 가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학도병 기념탑, 한국전쟁 및 월남전 참전 무공탑
춘천대첩평화공원을 나와 미군부대였던 캠프페이지 부지를 향해 다시 걸었다. 이곳에서 캠프페이지 부지까지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철로로 인해 길이 막혀 있어 춘천역 구내 계단을 오르내려 이동해야 했다.
가늠이 잘 안 되는 광활한 넓이의 미군부대 캠프페이지 부지. 무려 21만평이라고 한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2005년까지 이렇게 넓은 캠프페이지 부대에는 담장이 둘러쳐져 있어서 시민들은 60여년 동안 멀리멀리 돌아서 다녀야 했고, 춘천시의 발전계획도 지체되었다고 한다. 2005년 캠프페이지가 폐쇄되고 부지를 반환받은 후 이 부지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가 춘천의 큰 이슈이기도 했다.
평화통일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춘천이 새롭게 약동하고자 하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그래, 미래는 이제 그대들의 것이지. 이 땅을 지신밟기 하듯 쿵쿵 밟아 잘 다지고 소리질러~
한반도 평화, 피어라!
뒷쪽으로 보이는 물탱크는 남아있는 미군부대 시설물 가운데 하나.
박소산 선생의 평화를 기원하는 날개짓이 펼쳐졌다. 한반도평화, 피어라~~~
춘천에 왔으니 닭갈비! 명동닭갈비골목으로 갔다.
춘천시장님께서 은빛순례단 소식을 듣고 저녁식사로 닭갈비를 사주셨다.
바쁘다.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성공회 춘천교회로 갔다. 방홍식 신부님과 교우들께 감사드린다. 애초 예정했던 모임장소에 차질이 생겨 급작스럽게 장소요청을 드렸는데 흔쾌히 수락하시고, 난방, 모임을 위한 다과 등 이것저것 신경을 써주시고 모임에도 함께 하셨다.
저녁식사 후 다른 일정이 있는 분들이 돌아가시고 춘천의 어르신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했다. 장준하 기념사업회 유광언 회장님을 비롯하여 춘천의 어르신들과 활동가들이 함께 했다. 마임이스트 유진규 선생님은 지방공연에서 돌아와 부리나케 오셨다고 하셨다고 한다. 피곤하셨을 텐데, "함께 걷지는 못했어도 얼굴이라도 봐야지." 하면서 오셨단다.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진지한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다. 짧게 요약해 소개한다.
정부의 평화정책에 대한 기대에서부터 이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추진주체들이 어떤 자세와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거는 기대, 그리고 우려가 함께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맞지만, 그렇다고 촛불이 모두 문재인 정부 지지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식구들은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석했지만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반대하여 그렇게 행동한 것일 뿐 지금 다 문재인 정부 지지자인 것은 아니다. 정부에서 그런 사정도 알고 국정운영을 했으면 좋겠다."
"완장찬 사람들끼리 편이 되어버리면 남남갈등은 더 해갈 수밖에 없다. 평형감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꼭 대연정이 아니어도 된다. 인사나 이런 면에서도 함께 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자한당과도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최소한 대북정책에서 평화공존까지는 가자고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김병준 같은 사람은 합리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사람들을 임종석 비서실장이 만나고 다닐 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야 한다. 촛불로 탄생한 정부의 대통령은 청와대 안에 들어앉은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정치는 순혈주의가 지배하면 잔혹해지거나 망해버린다. 6.25전쟁을 겪으며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고, 남북분단이 남남갈등의 모든 것을 낙인찍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더 간교하거나 지혜롭게 지금 시기의 모든 문제를 풀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설계부터 평화로워야 한다. 적폐청산이 촛불의 요구이긴 하지만, 적폐청산만 강조하면 너무 많은 사람을 잃게 된다. 지금은 국민 모두의 자기반성과 성찰이 함께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있는 적폐다. 크고 작은 단위에서 자기반성과 성찰이 함께 하면서 정화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두 시간여 동안 나라를 걱정하고 희망을 만들자는 바람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두 시간여가 훌쩍 지나갔다.
도법스님의 은빛순례이야기에 이어 이부영 은빛님도 말을 보탰다.
"우리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두고도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미 많은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대락 나눠보자면, 연합이나 연방, 평화공존체제, 전쟁불사의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쟁반대를 기본입장으로 하는 은빛순례단이니 세번째의 전쟁불사의 입장은 제껴놓고 말씀드리겠다.
첫째, 연합이나 연방으로 밀고가자는 주장을 보자면, 남북정상이 한 해에 이렇게 몇번씩 만나고 공동연락사무소가 생겼다. 더 밀고 나가서 국가연합은 생긴 거나 마찬가지다. 한반도에서 정치교류를 하고, 경제통합을 하고, 사회교류를 할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고, 물꼬를 트고 있으니 그게 평화통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둘째, 평화공존체제. 이에 대해서는 보다 깊게 고민하고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몇가지만 이야기해보면 이렇다.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분단체제를 유지해오던 법제가 그대로 있다. 국가보안법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상태로 국가연합을 밀고 가는 것은 내부갈등을 더 첨예화시킬 수 있다. 평화협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남북간의 수교 등을 통해 거의 독립국에 준하는 내부관계를 가지면서 평화공존체제를 만들 수도 있겠다.
통일을 앞세워 서둘지 말고, 적어도 2045년 해방 100주년 정도를 바라보고 남북한에 화해조정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남북간에 교류하면서 동질성을 높여가는 일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남쪽도 변해야 하고 북쪽도 변해야 한다. 이와 같이 남북의 평화수교단계를 통해서만이 평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면서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모든 삶에 영향을 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소모적인 이념논쟁이 종식될 것이고, 그러면 합리적인 대화문화도 자리잡게 될 것이다.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부가 어떻게 하는가만 관망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현 정부의 남북평화행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곳 춘천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이 일상처럼 곳곳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일상의 평화, 마을의 평화,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한반도 평화, 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