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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 2025. 02. 22(일) 22:00~02. 23(일)
□ 곳 : 삽당령~석두봉~화란봉~닭목재~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휴게소
□ 낙동산악회
□ 참여 : 모두 22명(회장 포함)
□ 날씨 : 햇볕
□ 길 : 눈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5. 02. 23(일) 03:54~16:27(12간 33, 쉰 시간 포함)
□ 일러두기
1. 나온 데[출처]
○ 「실전 백두대간 종주산행」, 조선일보사⇒‘실전 대간’으로 적음
○ 푯돌에 적힌 산 높이⇒‘푯돌’로 적음
○ 푯말 적힌 산 높이⇒‘푯말 적음
□ 간추린 발자취(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3:54 삽당령(해발 680m-‘실전 백두’) 나섬.
○ 04:21 산길[임도]
○ 05:10 넓은 산길[임도]
○ 06:17 석두봉(982m[991m?]-‘푯돌’)
○ 07:07 해 뜨다
○ 08:05~08:20 걸상 있는 곳, 아침밥.
○ 09:10 화란봉(1069m-‘푯돌’)
○ 10:05~10:10 닭목재[닭목령](해발 700m-‘푯돌’[680m-‘실전 백두’], 머묾.
○ 11:24~11:35 「왕산 제1쉼터」, 머묾.
○ 12:22 「왕산 제2쉼터」
○ 13:03~13:07 고루포기산(1238.3m-‘푯돌’), 머묾.
○ 13:28~13:33 「대관령 전망대」, 머묾.
○ 14:24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제1터널」 푯말,
○ 15:26 「행운의 돌탑」
○ 15:38~15:43 능경봉(1123.2m-‘푯돌’
○ 16:11 공원 지킴터, 제왕산 갈림길
○ 16:22 「경부 고소도로 준공 기념비」,
○ 16:27 대관령, 「구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휴게소」, 산행 마침.
나무 사이로 고루포기산 쪽 고랭지 채소밭이 보인다
닭목재
닭목재
고루포기산
대관령 전망대
대관령 전망대
나무 뒤로 능경봉이 보인다.
왼쪽으로 대관령, 선자령 따위가 보인다
다음에 가야 할 삼양목장, 선자령 쪽과 대관령이 보인다
영동도속도로 대관령 1터널 푯말
이곳에서 대관령 1터널이 보인다
나무 사이로 대관령 1터널이 보인다
나무 사이로 능경봉이 올려다 보인다
행운의 돌탑
능경봉
제왕산이 보인다
공원 지킴터
제왕산 갈림길
공원 지킴터
여기서 능경봉까지는 1.1km 거리다
경부 고속도로 준공 기념비
구 대관령 휴게소
□ 줄거리(글쓴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2025. 02. 22(토) 22:45쯤 버스, 000 역을 떠난 버스는 동해안을 따라 거의 5시간을 달려 다음날인 2025. 02. 23(일) 03:42쯤 삽당령(해발 680m-‘실전 백두’)에 닿았다.
“삽당령은 강릉시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을 잇는 35번 국도가 지나가는 고개”이다《여기까지 ‘실전 백두’에서 따옴》
길 나설 채비한 다음 빙 둘러서 “안전이 최우선‘ 이라는 회장 님 말씀을 듣고, ’낙동 산악회‘를 함께 외친 다음 삽당령을 나섰다.(03:54)
처음에 눈이 없어 사갈[슈타이크 아이젠, 아이젠]을 신지 않았다가 얼마쯤 걸었더니 눈이 쌓여 사갈을 신었다.
삽당령에서 27분쯤 뒤 송전탑이 있는 산길[임도]를 지났다.(04:21)
산길[임도]에서 49분쯤 뒤 넓은 산길[임도]에 닿아(05:10) 넓은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처음 넓은 산길[임도]에 내려선 뒤 거의 1시간 7분쯤 뒤 석두봉(995m-’푯말‘,)에 닿았다.(06:17)
석두봉은 ”바위로 되어 있어 ’석두봉‘ 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며, ”강원도 강릉시 완산면에 위치, 동쪽과 북쪽은 급경사, 남쪽과 서쪽은 800m(급) 평평한 분지로 이루어졌다“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옴》
겨울 새벽에 산을 걷다 보면 길이 어두운 것은 머리 전등[헤드랜턴]으로 극복할 수 있으나 몰려오는 세찬 바람과 바늘구멍을 파고드는 황소바람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어느 순간 해가 돋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해를 대하는 경외심과 함께 저 멀리 수백 광년을 떨어졌을 멀고 먼 우주에서 식지 않고, 내 몸에까지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동해 쪽 산등성 너머로 붉은 기운이 전해지더니 드디어 07:07쯤 해가 돋았다.
나무 사이로 해를 찍었다.
해가 뜨고 거의 1시간쯤 걸었다.
어디선가 사람 소리가 들렸다. 반가웠다.
나무 걸상이 있는 곳에서 해피 맨 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등 가방[배낭]을 벗어놓고 빵과 과자, 물을 나눠 먹었다.(08:05)
간단하게 허기를 면하고 길을 나서(08:20) 50분쯤 뒤 화란봉(1069m-’푯돌‘)에 닿았다.
둘레를 구경하고 쉬어야 했으나 다른 대원들보다 많이 처진 형편이었으므로 사진만 찍고 화란봉을 되돌아 나왔다.
화란봉에서 55분쯤 뒤 닭목재[닮목령](해발 700m-‘푯돌’, 680m-‘실전 백두’)에 닿았다.(10:05)
닭목재는 ”고개의 모양이 닭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닭목재라 불리며, 이 고개는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와 정선군 북면 구절리를 잇는 길“이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와 조금 변행했음》
이 일대가 고랭지 채소 재배로 이름났다고 한다.
닭목재에 회장 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 님이 내주시는 따뜻한 커피가 아주 맛있었다.
커피 맛을 음미할 줄 모르는 내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새벽에 회장 님이 ”닭목령에 늦어도 09:00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 대관령까지 갈 수 있다...“고 했는데 1시간 이상 늦게 도착했던 것이다.
닭목재에 늦게 도착한 죄로 그곳에서 산행을 마쳐야 했으나 중도에 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미안함을 잠깐 묻어두기로 했다.
등 가방에 든 부피 큰 거위털 점퍼, 조끼, 겨울 장갑, 모자 따위를 꺼내 회장 님께 맡겼다.
커피 한 잔으로 기운을 돋워 닭목재를 나섰다.(10:10)
닭목재에서 고랭지 채소밭과 시멘트 산길[임도] 따위를 거쳐 조릿대가 뒤덮다시피 한 완만한(?) 길을 오른다.
닭목재에서 1시간 14분쯤 뒤 길 푯말(↑왕산 제2쉼터 1.7km(?), ↓닮목령 3.4km)이 있는 「왕산제1쉼터」에 닿았다.(11:24).
여름이면 쉬어갈 수 있는 걸상 몇 개가 있고, 닭목재에서 3.4km 거리다.
과일과 물을 마시며 11분쯤 머물다 「왕산제1쉼터」를 나서(11:35) 47분쯤 뒤 길 푯말(↓왕산 제1쉼터 1.7km, 고루포기산 1.3km)이 있는 「왕산제2쉼터」에 닿았다.(12:22)
닭목재에서 5.1km 거리다.
「왕산제2쉼터」에서 41분쯤 뒤 고루포기산(1238.3m-‘푯돌’)애 닿았다.(13:03)
발 빠른 우리 대원들은 축지법을 쓰는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루포기산을 점령하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고루포기산은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평창군 도암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정상에서 멀리 강릉시와 동해 바다가 보인다“
”다복솔이라는 키가 작고 가지가 많은 소나무들이 배추처럼 포기를 지어 많이 난다고 해서 고루포기산이라 한다“《여기까지 푯말에서 따와 바꿈》
일설에는 ”이 일대에 고로쇠나무가 많아 변형되어 고루포기산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문헌상 고증이 되지 않는다“고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았고, 시간이 늦어 한가하게 둘레 구경을 할 처지는 아니었다.
틈을 비집고 사진 두어 장을 찍고 고루포기산을 나섰다.(13:07)
고루포기산에서 앞에 빤히 보이는 능경봉까지는 4.8km 거리다.
고루포기산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내려왔다.
그들은 얼마쯤 뒤 길 왼쪽으로 내려갔다.
고루포기산에서 11분쯤 뒤 널빤지 시설이 있는 「대관령 전망대」에 닿았다.(13;28)
고루포기산에서 1km 거리다.
강릉시내와 동해, 선자령, 삼양목장, 풍력 발전 단지가 시원하게 보였다.
등 가방[배낭]을 벗어놓고, 과일과 물을 마시며 쉬었다.
여기에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능경봉 쪽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5분쯤 머문 뒤 「대관령 전망대」를 나서(13:33) 51분쯤 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제1터널」 푯말이 있는 곳에 닿았다.(14:24)
그러나 실제 이곳은 「대관령 제1터널」이 아니고, 단지 터널이 내려다 보이는 지점이다.「」
이 푯말이 있는 곳으로부터 거의 1시간 쯤 뒤 「행운의 돌탑」에 닿았다.(15:26)
미신을 믿지 않는 나는 돌멩이 하나 얹지 않았다.
미신 신봉과 관계없이 돌멩이 하나쯤 얹어도 좋았을 것을...
「행운의 돌탑」에서 12분쯤 뒤 능경봉(1123.2m-‘푯돌’)에 닿았다.(15:38)
앞서 도착한 권 대장께서 밀감과 곶감을 내어 놓고 있었다.
추위에 언 밀감이 꿀맛이었다.
강릉시, 동해, 선자령 따위가 멋있었다.
시간에 쫓기는 처지라 마음 놓고 감상할 수 없어 아쉬웠다.
5분쯤 머문 뒤 능경봉을 나서(15:43) 눈이 잘 다져진 내리막을 걸었다.
능경봉에서 28분쯤 뒤 제왕산 갈림길인 공원 지킴터가 있는 곳에 닿았다.(16:11)
이곳에서 11분쯤 뒤 「경부고속도로 준공 기념비」 있는 곳에 닿았다.(16:22)
지난해 이탈리아 나들이 때 우리 교포 길잡이[가이드]가 설명하기를 ”경부고속도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술자들을 이탈리아에 파견해, 기술을 배워오게 하고, 이탈리아 기술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도로 건설을 지도했다...“고 했다.
준공 기념비에서 5분쯤 뒤 「구 대관령 휴게소」에 닿아(16:27) 산행을 마쳤다.
“대관령은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겨우 한 사람이 통행할 수 있는 길이었는데, 조선 중종 때 고형산 이라는 사람이 자력으로 몇 달에 걸쳐 길을 넓혔다. 하지만 병자호란 때 오랑캐가 주문진에 상륙하여 대관령을 쉽게 넘은 일이 있어, 적을 이롭게 했다 하여 고형산의 묘를 파헤쳐 육시(戮屍)의 형을 내렸다고 한다.”《여기까지 ‘실전 대간’에서 따옴》
선각자의 선행이 후세에 험한 꼴을 당할 줄이야...
그는 억울했을 것이다.
주검마저 온전히 보전 못했으니...
민철 님이 내 등 가방을 대신 지러 와 벗어 주었다.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시간 늦게 도착하여 대원들에게 미안하고, 느린 발걸음에 발맞춰준 권 대장 님에게도 고마운 이나를 전한다.
회장 님 대원들 기다리느라 애썼고, 네오 대장 님 눈길 헤치느라 고생하셨다.
대원 여러분도 눈길에 수고 많이 했다.
몇 번을 걸은 길. 밤이고 눈길이라 그런지 어느 구간은 생소한 느낌도 들고, 지루했다.
빤히 보이는 산이 몇 굽이나 주름진 산등성(이)이 이어지다 보니 지도상 거리보다 실제로는 훨씬 긴 구간이었다.
※ 참고 사항
삽당령~대관령 구간 거리
△ 삽당령--13.5km--닭목재--11.6km--능경봉--1.7km--대관령=26.8km(길 푯말을 중심으로)
△ 삽당령--12.5km--닭목재--12km--대관령 휴게소=도상 24.5km(실전 백두대간 종주산행, 조선일보)
△ 삽당령~석두봉~화란봉~닭목재=도상 거리 약 12.5km
△ 닭목재~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휴게소=도상 거리 약 12km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홰, 횃불
밤에 등산하거나 낚시할 때, 공장이나 작업장 어두운 곳에서 일할 때, 하수구를 점검하거나 청소할 때, 기계 구석구석을 살필 때 전등이 필요하다.
등산, 낚시, 작업할 때 손전등보다는 머리 전등[헤드랜턴]이 더 효과적이다.
그 옛날 산으로 막힌 이 동네에서 저 동네를 갈 때 손전등과 머리 전등이 없었을 때 홰나 횃불을 썼을 것이다.
홰는 갈대, 억새, 싸리, 노간주 따위를 썼다.
이런 홰는 오래가지 못하므로 길 걷는 도중에 불이 꺼지기 전에 자주 갈았을 것이다.
그것도 눈이 없는 가을이나 겨울, 건조하기 쉬운 봄철에는 홰나 횃불을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산불 위험 때문에...
또 한반도에 호랑이가 살고 있었을 때는 홰나 횃불 사용이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호랑이 공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에서 전투 훈련할 때, 밤에 적에게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 불을 사용하더라도 불빛이 새 나가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하는 법을 배운다.
요즘 등산이나 낚시하는 사람은 머리 전등[헤드랜턴]을 사용하여 편리하다.
머리 전등이 LED 제품이 나오고, 조도 높은 전등이 나와 편리하다.
2. 동물들은 추운 겨울을 어떻게 견디나?
두꺼운 옷과 물품으로 몸을 감싸도 몰아치는 추위에 몸을 한없이 움츠린다.
온통 눈 세상이고,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백두대간 길과 그 언저리에서 삶을 이어가는 짐승들은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견딜까?
노루를 비롯한 동물과 새 같은 날짐승은 어느 곳에서 바람을 피하고 숨을 쉬고 있을까?
벌레들이야 두터운 집을 만들어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숨만 쉬고 있거나 눈 아래 포근한(?) 땅속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추위를 부담스럽게,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이 이들 뭇 생명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3. 시들해진 눈(雪)
내가 어린 시절, 아니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는 눈이 많이 왔다.
군대생활 하면서 눈 치우기에 지치기도 했다.
사회에 나오고 한동안 눈이 귀했다.
한때는 눈이 좋아 민주지산을 생쥐 곳간 드나들 듯 뻔질나게 다녔던 적이 있었다.
백두대간, 정맥 따위를 다니면서 눈 구경을 많이 해서 눈에 푹 빠지지는 않게 되었다.
다시 백두대간 길을 걸으면서 눈이 좋기도 하고, 시큰둥하기도 하고, 무릎 높이까지 쌓인 길을 걸을 때는 떨떠름하기도 하다.
내 마음이 변덕이 심한 것인지...
4. 홀랑 비운 등 가방[배낭]
닭목재에서 등 가방에 든 거위털 웃옷[재킷], 조끼, 겨울 장갑, 모자 따위를 거의 몽땅 꺼내 회장 님께 맡겼다.
가벼운 웃옷 하나와 빵, 과자, 물만 짊어지고 닮목재를 나섰다.
고루포기산을 오르는 사이 바람이 많이 부는 곳에서 걱정했다.
혹시 발걸음이 늦어지고 14:00 이후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기라도 대관령에 닿기까지 몰아닥칠지도 모르는 추위를 어떻게 감당할까?
아무리 따뜻하고, 먼 길이라도 빼놓지 않는 겨울옷 따위를 몽땅 내려놓고 왔으니 추위라도 엄습하면 어떻게 할까 지레 걱정을 했다.
닮목재~대관령 구간을 난생처음 가벼운 등 가방을 짊어지고 걸었다.
짐을 넣었거나 말았거나 등 가방 무게는 똑같다는 느낌이었다.
다시는 옷 따위를 빼놓고 걷는 모험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5. 해피 맨 님 고운 마음
해피 맨 님은 늘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많이 쓰고 무엇이든 도움을 주려 한다.
속리산 개구멍 바위 같은 험하고 까다로운 구간을 지날 때는 다른 사람이 다 지나갈 때까지 위험 구간을 지키면서 발을 어디다 디뎌야 할지 따위를 조언한다.
누군가 장비를 잘 챙겨오지 않으면 챙겨주려 애쓴다.
한결같은 이타심에 놀라고, 그런 마음씨를 존중한다.
◎ 이 구간에 있었던 나무
○ 아름드리 소나무, 단풍나무, 신갈나무, 조릿대 따위
※ 다른 사진은 아래 제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blog.naver.com/angol-jong
첫댓글 반갑습니다
정성 스럽게 남기신 긴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미신을 믿지는 않지만 행운의 돌탑에서 돌을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하셔 작은 돌 하나를 올려 놓으며 소원을 빌어 보았 습니다 ㅎㅎ
해피님의 배려심이 깊음을 칭찬 하셨는데 저도 그 덕을 많이 봤기에 해피님께 감사를 드리고 팻츠를 빌려주신 미정언니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ㅎㅎ
시간이 늦어서 감상을 제대로 못하셨다는 아쉬움을 표현 하셨데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의 차이가 참으로 큰거 갔습니다
저는 걷는 내내 이번 구간은 망구에 볼것도 없으면서 코스는 왜이리 기노 ㅎㅎ 이렇게 구경 할게 없을줄 알았으면 닭목령 까지만 걸었을 것을 난이씨가 간다기에 따라나선 것을 살짝 후회도 해가며 긴 걸음 힘겹게 걸으며 대간 걷기전에는 눈이 반갑고 좋았는데 대간길을 걷고 있는 지금은 눈이 그닥 반가운 존재가 아이라서 눈 한테는 쪼매 미안스럽기도 하지만 나를 힘들고 위험에 빠지게 할수도 있는 상황이라서 조심 또 조심을 해야 함에 ㅎㅎ어쩌다 눈이 저에게는 ~~~ㅎㅎ
자기관리가 철처하시고
배려의 정이 깊으셔
소중한 사진 잘 간직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알맹이 없는 말을 많이 늘어놓아 민망합니다.
전국에 크고 작은 돌탑이 많은데 그곳에 한 번도 돌멩이 하나 얹어보지 못한 내가 생각이 너무 막힌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느 길이든 발걸음 하나 하나에 골똘히 생각하는 과정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나아가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통로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돼지 눈에는 돼지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무학대사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내 발길이 무거우면 아름다운 눈도 시들하거나 때로는 귀찮아질 때도 있습니다.
멋진 풍경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품는 것은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달라질 것 같습니다.
해피 님과 미정 님의 배려심과 준비,... 흐뭇한 광경입니다.
본받고 싶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긴 거리에서도 지치지 않고
완주하시는 모습에
그저 감탄스럽습니다.
사모님께서 뭔가 특별한 비법을
가지신 건 아닐까 🤔 합니다.😂
다음에 뵈면 꼭 물어보리라 다짐합니다 ㅋ
함산하여 영광입니다.
다음 구간에서도 반갑게 뵙겠습니다.
* 배낭 속 물품은 조금 줄이는 것이 좋을 듯요.
저도 지난 구간엔 어깨가 아파서
배낭을 재정비하려고 합니다^^
허덕이면서 걸었던 길. 늦게 닿아 대원들에게 미안했습니다.
둘레 구경을 즐기는 편인데, 요즘은 춥다는 핑계로 풍경 구경도, 사진 찍기도 소홀한 점이 많았습니다.
닭목재에서 등 가방을 몽땅 비우고 걸었습니다.
아마 내가 산에 다니면서 가장 산에게 결례한, 장비를 빼고 걸은 길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웬걸, 빈 등 가방도 무겁게 느꼈습니다.
마음이 문제인 걸...
그리고 추위가 몸을 엄습할까 봐 은근히 걱정했습니다.
최소한 장비는 지고 다녀야 함을 느꼈습니다.
란선 님이 워낙 발걸음이 빨라 산에서 한 번도 뵙지 못했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추운 날씨에 대간길 긴 여정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한길 큰형님께서도 일출도, 눈도 많이 좋아하시네요.
저도 여명, 일출, 눈길이 좋아, 힘들지만
겨울 대간길 산행에 홀딱 빠졌습니다. ㅎㅎ
언제나, 힘든길을 묵묵히 완주하시며, 좋은 글, 추억 남겨주시고,..
대원들에게 힘이되고, 귀감이 됩니다.
내일 산행때도 건강한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칠흑 같은 어둠을 걷어내고 불그스름한 기운이 동녘을 물들이기 시작하면 마음이 부풉니다.
산등성(이) 위에 작은 태양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서서히 위로 솟구치면 아이가 된 듯 가슴이 벅찹니다.
해뜨기 전. 해 뜨고 아침밥을 먹고 나면 손이 몹시 시린 것이 겨울 새벽 산행에서 맞는 어려움입니다.
내가 좋아 걷는 길이 굼뜬 동작으로 대원들에게 피해가 되는 것이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한길님 뒤에서 걷다보면 특이한 걸음의 리듬이 있습니다
그 리듬은 오르막과 내리막 모두 비슷한 속도로 쉬지않고 가는 자세이지요
그 리듬에 제 호흡을 넣어보면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산길을 걷는 방식, 참 좋는 리듬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별 특징과 뚜렷함이 없는 발걸음인데...
오르막에 견줘 내리막은 피하고 싶지만 올라가면 내려가야 함은 산에서는 물론,
인생에도 두루 적용되는 이치라서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함을 느낍니다.
전에 일터에서 산을 걸으면서도 구성진 유행가를 매끄럽게 뽑던 인생 선배가 있었습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 걸음이 가벼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이세사. 모든것이 허망하나
내 오롯이 걸으면서 힘들고 숨 쉬기 어려움이 살아 있는 증거요 가장 마지막 귀한 나의 것이다.
이세상 온갖것들이 헛되고 헛되도다
그러나 딱 하나 산으로 오르면서 흐른땀 이야 말로 귀하고 귀하도다 산님들은 살아있는 삶의 진정한 자 들 이십니다
그러하므로 한길님은 진정한 승리자 셔요
수고하셨습니다 언제나 멋지십니다 화이팅!!
부처님의 말씀 같고, 불경 한 구절 같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hong 님 글에서 읽습니다.
발걸음 하나 하나가 수련이고 자기 단련임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발길에서 생을 읽고 느낍니다.
격려 말씀에 힘을 얻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가끔씩
낙동산악회가 어떻게 긴
역사를 지니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산악회를 다녀 보진
않았습니다. 저는 산행실력이
부족해 항상 뒤쫓아 가기 바쁘답니다. 이런 저를 버리지
않고 함께 걷고 대간길 걷기 경험이 풍부한 한길님이 계셔서 낙동의 역사와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생각합니다.
쉬지 않고 걸으시는 한길님은
저의 귀감이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댓재에서 뵙겠습니다.
지난 날 나동산악회는 백두대간 역사에 전국에서 이름을 날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낙동산악회와 경인 지방 00산악회가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전국에 백두대간을 하는 산악회가 많지만...
발빠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많이 다닌 것은 아니지만, 눈 감고 회상하면 준족들 모습이 떠오릅니다.
경험이 많지 않아 내세울 것은 없습니다.
승승장구 님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요즘은 산에서 얼굴 마주하기가 어렵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