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숙 작가의 첫 소설집 『숨은그림찾기』(푸른사상 소설선 63). 2024년 11월 10일 간행.
엇갈린 인연과 뒤틀린 현실에서 과거의 묵은 상처와 마주하는 이들의 삶의 갈피를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그리고 끝내 찾을 수 없었던 숨은그림찾기처럼 막막한 삶 속에서도 마지막 남은 하나의 그림을 찾기 위해 손을 뻗는다.
■ 작가 소개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다. 가천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가천대학교에서 문학과 글쓰기를 강의했다. 동화 「아버지의 하모니카」와 소설 「열쇠」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21세기에 만난 한국 노년소설 연구』 『문학콘텐츠 읽기와 쓰기』, 산문집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당신이 있어 따뜻했던 날들』, 공저로 『대중매체와 글쓰기』 『버릴 수 없는 것들의 목록』 『꽃 진 자리에 어버이 사랑』 『문득, 로그인』 『여자들의 여행수다』 『그대라서 좋다, 토닥토닥 함께』 『音音音 부를 테니 들어줘』 『우리 그곳에 가면』 『여자의 욕망엔 색(色)이 있다』 등이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유난히 뜨거운 여름이었다. 고개를 내밀 듯하다 숨어버리는 내면의 나와 만나기 위해 뒤척이는 날은 더욱 뜨거움이 솟구쳤다. 세상에 하고 싶은 말, 아니 어쩌면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 발화하지 못한 채 가두었던 이야기, 오래 잠자고 있는 원고를 보며 먼지 털고 햇볕에 거풍하는 심정으로 마주했다. 그 사유들을, 구름이 깃들다 바람이 머물다 햇살이 헤적이다 간 후, 이렇게 내놓는다. 후련하다. 작품으로서 완결성을 떠나 또 다른 나와 만나는 시간이 되었으므로.
■ 추천의 글
인생을 하나의 명제로 규정해주는 소설은 매력적이다. 최명숙의 소설 『숨은그림찾기』는 그래서 독자의 관심을 끌어모은다. 인생은 숨은그림찾기라고 명제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숨은 그림이란 무엇인가? 평범한 여성이 겪는 작은 상처들과 엇갈린 인간관계 속에, 생채기의 흔적들을 다독이며 혹은 적절히 무시하며 살아가는 과정에 그림과 보물이 숨어 있다.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삶의 갈피에 숨은 그림을 찾아 나간다. 이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탐색의 서사를 특성으로 하는 소설의 원론적 문제 제기라는 점에서, 소설의 본질 요건에 닿아 있는 창작 방법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숨은그림찾기를 자신의 삶에 옮겨와 회상하고 음미하게 된다.
우리들 삶은 대개 비루하고 초라하다. 소설의 주인공이 겪는 사건들이 가능성의 문턱에서 마무리되는 이야기는 소설 구조의 전형에 다가간다. 내 생애의 숨은 그림은, 숨겨진 보물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가. 소설을 덮고도 소설의 영상이 계속 음영을 드리우는 까닭은, 이러한 물음에 있다. ―우한용(소설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 작품 세계
최명숙 소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기억과 관계가 끊임없이 연결된 순환의 고리이기도 하다. 오래전 관계를 맺었으나 인연으로 연결되지 못했던 이들과 조우하거나 혹은 술래처럼 그들을 찾아 헤매는 인물이 많다. 기억은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억이란 한 주체가 자신의 과거를 현재와 관련짓는 정신적 행위이며, 시간 경험이다. 우리는 이 시간 경험 속에서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한다.
최명숙 소설의 인물은 하나같이 마음의 상처가 간단치 않다.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삶은 현재의 삶과 만난다. 중요한 것은 이 만남에서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대체로 타자에 대한 연민과 세계의 모순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로 귀결된다. 갈등이 증폭되어 파멸에 이르는 대신 상처를 껴안고 화해로 끝난다. 작가의 성정이 그러하기 때문인데, 이는 소설을 읽어가면서 자연스레 느낄 수 있는 일이다.
―심영의(소설가, 문학평론가)
■ 작품 속으로
내가 집에 온 것을 재영은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손바닥처럼 작은 마을에 그것도 오가는 사람 거의 없는 시골에선 운신의 폭이 좁으니까. 나 또한 재영의 소식을 대략 알고 있다. 농대에 다닌 재영이 특수작물을 하겠다며 산골에 정착한 건 자연스러웠다. 한 마을에 그것도 앞뒤 집에 살면서 만나지 않을 순 없다. 아니, 만나야 한다. 그러면서도 일부러 만나고 싶진 않았다. 그와 나는 꼭꼭 숨은 한두 개 그림 같은 것일까. (「숨은그림찾기」, 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