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古典>에서 배우는 지혜<智慧>
*지지불태(知止不殆)
*그 칠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지지불태(知止不殆)는 노자 도덕경에 나온 말입니다. 만족할 줄 알면 모욕을 당하는 일이 없고(知足不辱) 멈출 줄 알면 위험하지 않는 다(知止不殆)는 말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가지려고 합니다. 끝도 갓도 없는 것이 욕망입니다. 욕망에는 다섯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가 재욕(財慾)입니다. 둘째가 색욕(色慾)입니다. 세 번째가 식욕(食慾)입니다. 네 번째가 명욕(名慾)입니다. 다섯 번째가 수욕(睡慾)입니다. 사람마다 욕망이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재물에 대한 욕망이 가장 큽니다. 인생 목적이 재물을 모우 는데, 돈 버는 데 있습니다. 다른 욕망은 처다 보지도 않고 오직 재물과 돈 버는 데만 신경을 씁니다. 부모 자식도 쳐다보지 않고 오직 돈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우리 주위에 이런 분 많습니다. 친구한테 차, 한잔을 사지 않습니다. 밥 한 그릇도 사지 않습니다. 자기 입에 들어가는 음식도 아까워서 벌벌 떱니다. 그러니 수전노라는 명예를 안고 삽니다. 두 번째는 색욕입니다. 색욕은 종족보존(種族保存)의 본능입니다. 색욕(色慾)은 인간 五慾 중에 가장 원초적인 욕망입니다. 색욕은 성욕(性慾)을 말합니다. 사람 숨이 끊어질 때 까지 따라다니는 것이 색욕입니다. 욕망 중에 가장 큰 욕망입니다. 쾌락적 색욕은 몸과 마음을 망칩니다. 색욕이 지나치면 폐가망산敗家亡身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도처에서 성폭력 사건이 자주 일어납니다, 색욕을 절제하지 못해서 온 사건입니다. 아들 딸 낳는데 쓰면 색욕도 규범 속에 듭니다. 부부간의 색욕은 허락된 욕망입니다. 그런데 사회 규범을 어긴 쾌락적 색욕은 모두를 망칩니다.
성범죄 사건은 다 색욕 때문에 그렇습니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따라다니는 욕망이 색욕입니다. 색욕을 억제 하지 못 사람을 호색가라고 합니다. 또 색골色骨, 색광色狂, 색마色魔이라고 합니다. 변태적 (變態的) 색마 색광도 많습니다. 절제하지 못하면 사회적 범죄가 됩니다. 그러니 잘 절제해야 합니다. IMF 총재 보셨잖습니까? 거시기(물건) 잘못 쓰다가 망신당한 것 아닙니까? 절제 하지 못하면 불행의 싹이 됩니다. 세 번째 욕망은 식욕입니다. 식욕은 개체보존(個體保存)의 본능입니다. 생존하려는 본능이 식욕입니다. 먹어야 살아남을 수가 있으니까 먹습니다. 그러나 먹는 것도 적당히 먹어야 합니다. 몸에 좋다고 하면, 별의 별것 다 먹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것은 식탐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음식은 수명을 연명하기 위해서 먹습니다.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먹는 것은 좋지를 않습니다. 먹는 것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현대 5대 문명병이 다 먹는데서 온 것입니다. 너무 고단백질, 고 칼로리만 섭취하다 보니, 결과는 병만 부르게 됩니다.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 뇌졸 중풍, 다 원인은 먹는데서 옵니다. 먹는 것도 적게 먹어야 건강합니다.
배가 좀 고픈 듯, 할 때 수저를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 병 없이 건강하게 삽니다. 네 번째는 명예(名慾)욕입니다. 명예욕은 감투욕입니다. 유난히 감투욕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친목 단체에 가보면 회장 자리는 꼭 차지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명함을 받아 보면 앞뒷면이 빼곡합니다. 무슨 단체 장, 무슨 단체장, 대단합니다. 이름 두자 알려보자는 욕심이 명예욕입니다. 이 욕심이 커지다 보면 권력에 눈을 돌립니다. 그래서 명예욕은 결국에는 권력욕이 됩니다. 세상의 삶은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싸움에서 지는 것은 패배를 뜻 합니다. 패배는 죽음이 아니면 복종을 뜻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던지 사람들은 이기려고 합니다. 이기는 자 에게는 명예와 권력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권력을 잡으려고 합니다. 이전투구 만신창이가 되게 싸웁니다.
서로 물고 뜯고 피투성이가 됩니다. 딱 아프리카 정글의 법칙이 펼쳐집니다. 중상모략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없는 것도 만들어 냅니다. 있는 것도 없다고 오리발을 냅니다. 국회 청문회 많이 보셨지 않습니까? 명예욕이 부른 권력의 종착역의 추태입니다. 다섯 번째는 수면욕睡眠慾입니다. 수면은 하루 3분의 1을 취해야 합니다. 8시간을 자야 합니다. 잠은 건강과 직결된 생리적인 문제입니다. 다섯 가지 욕망 중에 가장 많은 비율이 잠입니다. 그래서 잠은 보약이라고 합니다. 잠을 잘 못 자는 것도 병입니다. 불면증은 잠 못 자는 병입니다. 잠을 못 자도 병이고, 너무 많이 자도 병입니다. 여기서 수면욕은 너무 많이 자는 것을 말 합니다. 잠만 자려다 혼난 사람이 있습니다.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는 것을 보고,(宰予晝寢 子曰) 공자님이 그를 꾸짖는 말입니다. 썩은 나무로는 조각 할 수 없고(朽木 不可雕也) 썩은 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을 할 수 없다(糞土之墻 不可杇也) 했다. 게으르고 잠만 자는 사람은 정신이 썩은 나무와 같다고 꾸짖는 공자님 말씀을 듣고 재여는 크게 뉘우치고 학문을 열심히 해서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한 사람이 됩니다.
사람의 욕망을 다르게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섯 가지 욕망은 불교에서 본 것입니다. 수행자에게 가장 큰 장애는 잠(睡)입니다. 앉아서 참선을 하다보면 잠과 싸움입니다. 앉자마자 졸음이 옵니다. 잠을 쫓고 나면 쓸데없는 망상이 찾아옵니다. 그러니 잠 아니면 망상, 망상 아니면 잠, 그래서 스님들 중에는 눕지 않고 평생을 앉아서 참선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렇게 수행하는 것을 장좌불와(長座不臥)라고 합니다. 수행은 잠과 싸움입니다. 그래서 수면욕을 다섯 번째에 넣은 것입니다. 이번 주제는 지지불태(知止不殆)와 지족불욕(知足不辱)입니다. 노자 도덕경 44장에 나옵니다. 도덕경을 보면 이렇습니다. 명성과 내 몸은 어느 것이 더 절실한가? (名與身孰親) 내 몸과 재산 중에 어느 것이 더 소중한가? (身與貨孰多) 얻음과 잃음 중에 어느 것이 마음이 아픈가? (得與亡孰病) 그러므로 무엇이나 지나치게 좋아하면 그만큼 낭비가 크다(是故 甚愛必大費) 너무 많이 쌓아두면 크게 잃게 된다(多藏必厚亡) 만족 할 줄 아는 사람은 치욕을 당하지 않고,(知足不辱)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롭지 않다(知止不殆) 그리하면 영원히 삶을 살게 된다(可以長久) 명예와 생명과 몸과 재물과 명예와 이익을 얻는 것과 잃은 것 중에 어떤 것이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답은 이미 나왔습니다. 만족하고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옛날 말에 부재지족(富在知足)하고 귀재구퇴(貴在求退)라고 했습니다. 부귀는 따라다니는 말입니다. 부자는 어떤 것이 부자이냐?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부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귀하다는 것은 무엇이냐? 물러 날줄 아는 것이 귀인貴人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욕심이 지나치면 추(醜)하게 됩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추고, 물러나야 할 때 깨끗이 승복하고 물러나야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멈추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멈추지를 않고 계속 가려고 합니다. 그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의 결과는 위태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갈 때는 가야하고, 그칠 때는 그쳐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그치지 않고 가려고만 하면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만족 할 줄 알면 욕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동양 철학은 지족(知足) 철학입니다. 욕심은 상한선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족知足 철학은 상한성이 있습니다. 소욕지족(小慾知足)의 철학이 있습니다. 작은 것 에도 만족을 합니다. 더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작은 것에 만족을 합니다. 그래서 안빈낙도(安貧樂道)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위태롭고 욕될 것이 없습니다. 노자 사상은 무위(無爲) 자연 속에서 자락(自樂)하는 삶입니다. 공자님은 사상은 극기복례(克己復禮) 중용(中庸)에 있습니다. 내가 나를 이기고 예를 실천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내가 나를 이긴다는 것은 욕망대로 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예(禮)를 실천하라는 것은 사회 규범을 따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위태로울 것도 없고, 치욕스러울 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법화경에서 처염상정(處染常淨)을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곳에 있어도 항상 깨끗함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연꽃이 그렇습니다. 연꽃을 닮으라는 말입니다. 연꽃이 피는 연못은 물이 썩고 더럽습니다. 그런데 연꽃은 진흙탕 물에 뿌리를 박고 있으나 항상 깨끗(淸淨)합니다. 물들지도 않습니다. 연꽃 향기를 맡아 보십시오. 정말 향기가 그윽합니다. 연꽃잎에는 물을 부어도 젓지를 않습니다. 뿌리는 탁한 곳에 박고 있어도 물들지를 않습니다. 그것이 처염 상정(處染常淨)의 중도철학(中道哲學)입니다. 선에도 악에도 물들지 않는 것이 중도(中道)입니다. 성인들 가르침은 다 똑같은 말씀입니다. 표현하는 내용만 다르지 귀결점은 같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똑 같이 100년을 기한으로 삽니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삶이 달라집니다.
나 살자고 남을 죽일 수는 없습니다. 나도 살고 남도 사는 방법이 종용의 삶이고, 중도의 삶입니다. 옛 성인들의 삶은 공존共存, 공생共生에 있습니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말고 분수껏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과욕은 금물입니다. 삶의 행복은 만족하는데서 옵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천국에 가도 불만입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지옥도 천국입니다. 처해진 상황에 만족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동양철학의 값진 자산이고 정신문화입니다.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몸이 하자는 대로 하면 끝장이 납니다. 마음이 몸을 이겨야 합니다. 마음은 천당도 지옥도 만듭니다. 마음 하나 잘 쓰고 가면 됩니다. 그 용심법(用心法)이 고전에 있습니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고전을 보시면 됩니다. 고전 속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오늘은 지지불태知止 不殆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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