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0년도 못하면서 어떻게 영원히 살고자 하는가? How can you live forever if you can't even live to be 70?
왕자가 신분을 밝히지 않고 여러 여자와 잠자리는 하지 않고 7일간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여자들이 왕자를 모르고 마음대로 대합니다. 만만하게 대합니다. 심지어 종으로 부리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한 여자가 자신을 남자로 한 인격체로 잘 대해줍니다. 상냥하고 지혜롭습니다. 7일을 지내니 더 같이 있고 싶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면 그냥 누가 어떻게 대해도 잘 참고 살 수가 있는데 왕자로 지낼 때 많은 사람이 시중을 들어주었는데 이에 익숙한 왕자는 평범한 신분을 위장하고 같이 지내니 막 대하는 여자들을 보고서 같이 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겨우 7일간을 여자들은 한 남자를 잘 대하지 못하고 자기가 원하는 데로 대합니다. 이제 왕자는 신분을 밝히고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을 찾습니다. 겨우 7일간도 견디지 못하는 여자를 같이 살 여자로 택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도 왕 되신 예수님의 신부로 이 세상에서 삽니다. 겨우 70년을 그분의 신부로 삽니다. 그리고 그분과 영생을 누리고자 합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막 살다가 돈에 취하다가 여자에 취하다가가 대형교회의 권력에 취하다가 예수님을 막 대할 수가 있으니 막 대하는 증거가 바로 아래 구절을 지키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막 대하는 자는 누구든지 대형교회 목사든지 혹 신학자든지 예수님께서 같이 절대로 영원토록 살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영원토록 같이 살 신랑 예수님을 겨우 70년 짧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대하고 사십니까? 바로 아래 구절로 당신의 예수님에 대한 태도가 밝혀집니다. 죽기 전에 바로잡으면 기회가 있는데 상급은 속히 바뀔수록 커집니다. 신학의 교리도 필요가 없고 목사의 설교도 필요가 없고 나의 보잘것없는 경험과 지식도 아무 소용이 없고 오직 아래 말씀대로 순종해야 천국에 가고 가서도 큰 자가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아래 말씀을 통해서 과연 내가 천국에 갈 행위를 하고 있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심판은 사람이 지옥에 가는 것에 대해서 냉정합니다. 지옥에 갈 사람을 인정으로 혹은 읍소로 바꿀 수 없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소돔의 불 심판보다 홍수 심판보다 더 무서운 심판입니다. 부디 모든 것 내려놓고 아래 말씀을 보면서 내가 지금 예수님을 막 대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샬롬! 우리 민족은 3천 년의 역사를 이 한반도에서 거의 한 민족으로 살아왔습니다. 삼면이 바다이고 사철이 분명하며 낮은 산과 강이 많고 따라서 강 주변의 땅을 비옥합니다. 평야도 있고 강과 바다가 서로 만나기에 다양한 어종에 계절을 따라서 모든 한국인이 회로 구이로 탕으로 먹게 저절로 모여듭니다. 그리고 산과 들에서 곡식과 나물이 나고 물은 깨끗하고 하늘은 맑아서 밤에는 별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바다가 없는 온 세상의 수많은 국가와 다르고 사막과 어름으로 된 나라와 달리 사계절이 쉬지 않고 운행하며 천국과 같이 온화한 기후를 자랑합니다. 일본과도 중국과도 바다로 떨어져 있어서 쉽게 침략을 받지 않고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노아 이후의 인류의 조상이 이동한 경로를 따라서 틀림없이 바다로 우리는 이동을 했습니다. 후에 철기를 사용하는 북방으로부터의 사람들이 지배계급이 되어서 전라남도 중심의 1천 년의 청동기 시대의 평화로운 사람들을 정복하고 종으로 삼고부터 계급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이를 천주교가 약 1600년대부터 지금까지 타파했습니다. 지배계급 즉 왕권을 중심으로 양반이 모든 권력을 쥐고 국민의 약 70%를 노비로 부리던 망국적인 도저히 허물수가 없던 제도를 허물고 이렇게 평등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자유주의가 온 세상에서 득세하며 한국을 휩쓸고 있는 이때 분연히 일어나서 이를 하나님의 율법으로 바로잡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데 자본주의에 함몰이 되어서 가장 먼저 1000개 대형교회 목자가 자본주의의 혜택을 교인이 낸 헌금으로 누리고 자신과 같이 살라고 부추기고 있으니 국민이 하루에 40명이 자살하고 청년이 직장이 없고 결혼도 못 하고 자녀를 낳지 않고 노년이 되면 쓸쓸히 홀로 양로원에서 죽어가고 집이 없는 국민 50%와 땅이 한 평도 없는 국민 70%의 탄식과 한숨을 외면한 채 자본주의의 맛에 취해서 가장 선두에 서서 불법을 자행하니 이들이 갈 곳이 바로 지옥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도구로 예수님께 직접 불을 받은 김 정관 목사입니다. 교회에서 저를 쫓아내고 박대하고 무시하고 홀대하니 어떻게 교회가 예수님께 불을 받은 예수님의 종에게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위의 말씀이 이해가 되고자 하면 반드시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바울의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이해에 막히게 되면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게 되어 지옥에 다 가는 것입니다. 지옥에 왜 갑니까? 70년 짧고 짧은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고서 집과 차와 많은 월급에 매달려서 살기에 영원한 천국은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천국은 양립하게 어렵습니다. 돈과 예수님을 겸해서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고 돈을 밝히는 것이 만 가지 악의 근본이 된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위의 말씀을 어기면서 비켜가면서 지옥으로 하염없이 달려가는지를 순서대로 차근차근 설명을 드리니 부디 읽으시고 교리의 덤불에서 벗어나셔서 천국을 소망하는 크리스천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선 가장 크게 덮은 교리가 바로 아래의 로마서 1장 17절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 로마서 1장 17절은 로마서 전체를 아우르는 선언적인 구절로 그래서 바울 사도의 인사 후에 바로 1장에서 언급이 되고 있는데 앞으로 로마서 전체를 이 구절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겠다는 의도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로마서 1장 17절은 홀로 이해가 불가하고 다음에 오는 구절들과 장들을 연결해서 이해를 해야 하는데 이를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하지 않았고 500년 전에 이 구절의 중요성을 루터가 발견했으니 그 깊은 의미를 루터도 모르고 개신교도 모른 채 그리고 천주교도 잘 모른 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어찌 평신도가 알 수가 있습니까?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NIV)
롬 1:17.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개역개정, NIV, 공동 번역 순)
저도 예수님께 불을 받았지만 오랫동안 이 구절의 의미를 올바로 알지 못했고 조금씩 단계별로 순서대로 성령께서 인도하셨으니 일생을 불효하고 하나님께도 죄를 크게 지은 죄인에게 이런 은총을 허락하심은 모든 저보다 나은 교인들이 바로 알고 바로 믿게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인 줄 믿습니다. 가장 못난 자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심으로 이렇게 진리를 깨닫고 전하게 하심을 통해서 모든 저보다 나은 성도가 올바로 가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줄 저는 믿습니다.
먼저 답이 바로 성경 본문에 있습니다. 제가 번역을 다시 해서 보여드립니다. 답이 바로 본문에 있습니다. 이 본문은 완결판이 절대로 아니고 로마서 16장 전체의 선언입니다. 그리고 다음의 장에서 이에 대해서 깊이 설명을 합니다. 이 원리를 모든 믿는 이는 알아야 합니다. 2000년 전에 바울 사도가 너무나 분명하게 알았던 내용인데 어떻게 이렇게 올바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까? 제가 무슨 능력으로 풉니까? 전도하고 성경 읽고 정리하는 가운데 약 30년 동안 조금씩 하나님께서 이해하게 하신 내용입니다. 온 지구에서 가장 로마서에 대해서 최신이고 정확한 이해임을 저는 믿고 온 세상의 700명의 신학자에게 7년 전부터 이를 보낸 것입니다.
영어를 번역하면 복음에는 하나의 의가 하나님의 밝히심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으로 되는 의인데, " 의인은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살 것입니다" 와 똑같이 기록된 바와(하박국서 2장 4절에) 같습니다.
이제 이 구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로마서 전체를 통해서 밝혀야 하는데 이 구절에서 오직 믿음이면 된다 아니다 오직 믿음+ 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천주교 개신교는 다투고 있습니다. 이 다툼이 이제는 끝이 났습니다. 한국의 전도자에 의해서 끝이 납니다. 모든 세상의 신학자 목사 신부가다 이 이해에 동참하게 될 것이고 온 세상의 교회가 따라갈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이해가 얼마나 부족하고 온전치 못한 이해인지 그리고 천주교의 믿음+행위 이해도 부족한 지 온 세상에 이미 선포가 되었습니다. 이를 모르고 아직도 오직 믿음 하는 개신교 목사 신학자가 모두가 구닥다리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새롭고 온전한 성경의 이해가 오면 옛날의 이해를 따를 사람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으로 되는 의인데, " 의인은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살 것입니다"
우리는 이 내용을 다음 성경의 도표를 통해서 한눈에 확인이 가능합니다.
사진 삭제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로마서는 16장까지 로마서 1장 17절에서 선포하고 설명을 쉬지 않고 뒤에 장에서 하는데 오직 이 구절만 보고 이해를 했기에 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제가 큰 글로 쓴 내용만 보아도 의롭게 되는데 믿음이 있어야 하기는 하는 것이 맞지만 그 믿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 되어야 함을 본문에 정확하게 밝혔는데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사는 사람이 의롭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고 했는데 왜 하루하루의 삶은 빼먹고 오직 믿음이면 된다고 죽도록 외칩니까? 그리고 천주교도 이에 대항해서 아니다 오직 믿음에 + 행위가 더 있어야 의롭게 된다고 외칩니까? 본문에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하루하루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믿음 + 행위로 풀고자 합니까? 이 본문의 정확한 이해는 이렇습니다. 의롭게 되고자 하는 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한순간의 믿음이 절대로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는 변치 않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시간이 가도 시련이 와도 변치 않는 믿음이 되어야 한결같은 같은 믿음이 되어야 의롭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를 모든 교인이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로마서 1장 17절에서 선포가 되고 선언이 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내용이 다음의 로마서의 각 장에서 어떻게 설명이 되고 있는지를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제가 설명드린 내용대로 설명이 분명하게 이어진다면 제가 전하는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가 정확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는 길에 로마서 1장 17절에서 막혔는데 이제 풀고 다음의 구절로 진도가 나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을 오직 믿음이면 된다고 풀고 오직 믿음+ 행위로 풀고자 하면 절대로 풀리지 않는 내용들이 로마서 나머지 전체의 내용이니 여태까지 로마서의 지극히 부분만 우리에게 열린 것입니다. 이 내용이 이제 많이 열립니다. 전부라 할 수는 없지만 많은 부분이 위의 본문의 이해로 열립니다. 술술 쉽게 열립니다. 이렇게 열리는 이해로 로마서를 더 깊이 이해하시게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또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의 의미에 도전을 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가 로마서 1장 17절에 있는지 저도 몇 개월 전까지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로마서 4장 1-16절로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믿으니 의롭다하심을 받는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서 멈추면 로마서 1장 17절은 약 30% 정도 이해한 것입니다. 이 30% 이해로 500년을 버티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4장 17-22절에 분명하게 100세가 된 아브라함의 신앙의 점검이 하나님으로부터 있습니다. 모두가 찾아서 보시기 바랍니다. 100세가 되어서 아들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 약속을 지킬 전능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습니다. 무려 25년을 한결같이 흔들리지 않고 변치 않고 믿습니다. 이 믿음이 100세가 된 아브라함이 의롭다 다시 인정을 받은 믿음입니다. 여기까지 와야 합니다. 제가 본문을 보입니다. 수도 없이 읽고 보았는데 이런 구절이 성경에 있습니다. 얼마나 30% 이해를 온전하고 충분하다고 믿고 나머지 로마서 15장 전체를 막 대했기에 이런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2.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
오직 믿음이 맞고 75세 때 믿으니 의롭다 인정을 받은 것도 맞지만 또 100세에 위의 내용대로 믿으니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끝이 납니까? 여전히 아브라함은 죽지 않고 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점검도 쉬지 않습니다. 이제는 더 하십니다. 더 요구하십니다. 110세가 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까지 바치라고 하십니다.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일생의 믿음을 보십니다. 그리고 의롭다 하십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이렇게 뒤에 기록이 된 성경 내용을 잘 살펴야 이해가 올바로 되는 것입니다. 천주교, 개신교의 학자가 이를 보지 못하고 목사가 이를 보지 못했다면 이제 바로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점점 더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아직도 75세 때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 하나 부여잡고 오직 믿음이면 된다고 그렇게 믿고 율법도 버리고 행위도 버리고 오직 믿음 하나만으로 지옥으로 가렵니까? 분발하여서 합니다.
왜 복잡해? 이렇게 믿어야 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박국서 2장 4절은 로마서 1장 17절을 기록하게 한 원본인데 이 원본에 따르면 의롭게 되기 위해서 신자는 하나님을 믿고 불의한 세상에서 하루하루 정의롭게 살아야 함을 주장합니다. 복잡한데 또 복잡하고 너무나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것이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게 모든 것을 다 바치시면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율법을 잘 지킬 사람으로 개조를 하신 것입니다. 이 인간 완벽한 개조 행위가 바로 하나님의 인간의 구원의 사역이십니다.
에스겔서에 이미 기록을 하셨습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새 영을 주고 새 마음을 주어서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 그 영으로 하나님의 법을 행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이 크고 놀랍고 위대하십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성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약에 기록이 된 대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려서 죽으십니다. 아버지의 아들을 주시는 사랑과 그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이제 성령님의 사역이 또 있습니다. 우리에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 사랑하십니다. 성령께서 오심은 우리가 예수님을 회개하고 믿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틀림없이 그 사람에게 성령께서 선물로 오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거듭나는 것은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인간으로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바울 사도가 자신과 같이 거듭난 성도에게 편지를 보내서 성령으로 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의 말씀대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이 말씀과 거듭남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일이 바로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우리 힘으로 순종하기 어렵습니다. 절대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도우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7장 6절에서 이를 잘 설명합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 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새로운 방법이 우리에게 허락이 되었습니다. 율법을 지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킬 새로운 방법이 하나님으로부터 허락이 되었으니 성령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되지 않으니 이제는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율법을 잘 지킬 새로운 방법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방법대로 20년 이상을 복음을 전하면서 산 경험의 기록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웃과 가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옥에 가는 것이 가장 큰 슬픔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사랑함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일생을 믿고 기다리고 인내하면서 전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방인에게 이렇게 사랑을 전하고 사랑했습니다. 전도의 대상을 미워하고 악하게 대하면 절대로 예수님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전도자는 이렇게 이웃과 가족과 불신자를 사랑으로 품고 인내하며 예수님을 전하는 줄로 믿습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이렇게 일생을 삽니다. 바울 사도와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 생활의 결과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의 역시 경험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31. 그러면 우리가 믿음을 내세운다고 해서 율법을 무시하는 줄 아십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합니다.
31. Do we, then, nullify the law by this faith? Not at all! Rather, we uphold the law.
믿음 생활을 한다고 율법을 파기하지 않습니다. 무시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도리어 굳게 세웁니다. 믿음 생활을 성령의 인도로 받고 하다 보면 사랑을 실천해서 율법을 완성하고 도리어 굳게 세우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와야 합니다. 이렇게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율법을 지키라는 명령을 완수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성령을 통해서 완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당시의 교인에게 이렇게 믿고 사라고 강력하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가 이렇게 이해가 되어야 하는데 오직 믿음에서 정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모든 성도가 이렇게 믿고 온 세상을 비추어야 합니다. 한국은 평화의 복음을 전할 나라로 선택이 된 것입니다. 부디 신학의 덤불에서 강력하게 속히 벗어나셔서 자신이 여전히 예수님을 믿고 오늘도 성령의 인도를 위해서 새벽부터 기도하고 어떻게든 예수님의 뜻대로 그리고 성령을 따라서 살고자 하는 모든 온 세상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적이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예수님께 불을 받은 예수님의 도구 김정관 목사입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놀랍고 위대하신 일이 바로 우리를 인도하셔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는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1000년 동안 율법을 받고 율법대로 살면 축복이 율법을 어기면 저주가 오는 것을 알았지만 불순종해서 망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데 아들과 성령을 통해서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이 즉 하나님의 백성이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는 이 땅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렇게 빈틈이 없습니다.
이제 누구나 이렇게 알고 믿어야 올바른 길로 갈 수가 있습니다. 물론 사랑하시고 일생을 전도하시면서 성령의 인돌르 받으시는 분은 다 올바른 길로 가시는 분들이십니다.
분명하게 로마서가 성경이 이렇게 되어 있는데 오직 믿음을 믿고 율법도 위의 예수님의 말씀도 지키지 않고 막 살면 예수님과 동행도 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이 곧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요,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는 삶인 것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자본주의 법에 충실하고 돈을 아무리 모아도 한국 헌법이니 미국의 법에 저촉이 되지 않고 이 세상에서 재벌로 살고 부자로 살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되고 권력도 갖고 지식도 갖고 누가 뭐라하지 않는 세상에서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좋은 집에 많은 월급에 좋은 비싼 집에 살 수가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율법에 비추어서 모든 것이 죄에 해당하고 성령의 인도로 아닌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삶이면 과연 어떻게 감당하시렵니까? 이를 목사가 반드시 성도에게 전해야 성도가 사는 것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부장청년에 대한 경고와 말씀도 물질에 대한 경고도 조금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말씀도 태연하게 지키지 않고 겁도 없이 삽니다.
마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겨우 70년의 인생을 살면서 영원한 삶을 우리는 바라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홀로 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이 순간도 예수님과 함께 합니다. 우리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랑과 하루하루 순간순간 사는데 우리의 영원토록 살 신랑의 마음에 얼마나 들게 사십니까? 그 마음에 들게 사는 법을 바로 마태복음 5장에서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대로 우리가 실천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도우시는 분을 보내시고 우리 안에 계시게 하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감동하십니다. 오늘도 하시고 쉬지 않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떠나면 두렵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새롭게 거듭나게 하셨기에 우리는 새 사람으로 하님의 성령을 잘 따릅니다.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바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고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 믿음의 삶이 바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이요, 그 성령님의 인도가 바로 예수님께서 하신 명령을 너무나 잘 완성하게 하는 율법을 굳게 세우고 완성하는 길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구약의 율법만 알았습니다. 이도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장 올바르게 믿는다고 믿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틀렸다고 믿고 잡아서 옥에 가두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를 핍박하고 이는 결국은 예수님을 핍박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인도를 잘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사랑을 합니다. 전도와 선교입니다. 그리고 선하게 삽니다. 이 과정에서 예전의 것은 다 버립니다 부자 청년이 못한 것을 바울 사도는 합니다. 그렇게 20년을 삽니다.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돌에 맞고 파선을 당하게 강도를 맞고 들판에서 자고 그렇게 고난의 길로 갑니다. 성령께서 쉬지 않고 성경을 이해하게 하십니다. 자신이 알던 구약이 모두가 예수님에 대한 예언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올바로 믿지 않고 알지도 못했음을 너무나 정확하게 압니다. 그리고 삼층천에 가서 천국에 대해서 미리 봅니다. 이렇게 사는 길이 바울 사도 홀로에게만 영광스럽게 허락이 된 일이 아닙니다. 모든 예수를 믿는 이가 이렇게 살 수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위대함은 율법을 잘 배움에 있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거듭남에 있습니다. 옛 사람 바울이 아닌 새롭게 태어난 바울입니다. 누구나 이렇게 바울 사도와 같이 사역을 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 당시 2억 명이던 지구상의 인구가 80억 명이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와 같은 사람이 적어도 40명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믿는 이가 30억에 육박하고 있으니 이들을 또한 하나가 되게 할 지도자가 수도 없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바울 사도와 같이 회개하고 성령을 받고 사역할 수 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오직 믿음에 메여 있습니까? 성령의 사역도 인정하지 않고 홀로 경험과 지식으로 살고자 하십니까?
북두칠성을 보세요
사진 삭제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우리의 인생이 70이고 강건하면 80이라 했으니 별을 보면 70대는 더 이상 별이 없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다 되었습니다. 그리고 8개의 별은 없습니다. 80대는 덤으로 사는 것입니다. 100세는 1%도 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99%로 70-80대에 죽습니다. 저도 6번째 별이고 곧 마지막 별로 갑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영원토록 살아야 하는데 그 분의 신부로 그분의 마음에 얼마나 들게 살고 있습니까?
온갖 성경의 진리를 흐리는 신학도 있고 설교도 난무하고 성경 강의도 많습니다. 내가 선택합니다. 현혹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나의 선택입니다. 저는 성령의 인도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믿습니다. 모든 이가 성경의 진리를 이렇게 이해를 해야 합니다.
베드로의 말씀대로 저는 틀림없이 그 절차대로 성령을 예수님께 직접 받았습니다. 그 증거가 위의 성경의 이해입니다.
부디 짧은 인생을 예수님의 신부로서 그분의 마음에 들게 사시기 바라고 저도 그렇게 살게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성령의 인도로 전도하는 것 보다 더 천국에 쉽게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땅의 50만의 전도자들에게 하나님의 한량이 없는 축복과 온 외국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께 주님의 위로가 충만하게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받는 상을 같이 받는 비결이 바로 내가 가진 부로 이들의 사역을 돕는 것입니다. 저도 교회에서 관리집사로 일을 할 때 전도의 열망이 컸으나 믿지 않는 이를 만나는 것도 어려워서 편지로 지방에 있는 제 형제들에게 전했는데 30명이 1000명이 되고 지금은 온 세상 120개국 50만이 되어 갑니다. 온 세상에 수억 수십억의 사람이 제가 전하는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진리로 믿는 날이 올 것을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전도하시는 분이 어렵다고 할 때 제가 6개월 동안 받은 월급에서 먹는 것을 제외한 모든 돈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고 다 주었습니다. 제 홀로 살 때로 쉬운 일이었습니다.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청하는 친구와 교인에게 적금도 깨어서 도왔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온 세상에서 복을 받고 살고 있습니다. 나누는 것이 나도 살고 이웃도 살립니다. 없는 전도자는 오늘도 주님께서 가장 큰 관심으로 먹이고 입히십니다. 10년 100년 1000년 먹을 것을 예비한 부자 성도를 예수님께서 무슨 관심을 갖겠습니까?
홀로 떠난 부자 청년을 주님께서 기억하고 도왔다는 기록이 있습니까? 오직 천국에 들어가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말씀이 있을 뿐입니다. 초대 교회 때 물질을 숨기고 헌금한 부부가 죽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속이고 죽었는데 이를 모르는 산 상대방이 또 속이므로 같이 죽습니다.
하나님을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를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시고 사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쉬지 않고 적어도 하루에 10번 이상은 이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 짦은 우리의 인생길에 우리는 한결같지도 변치않음도 없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늘 죄악으로 가려고 하고 또 범죄도 쉬지 않고 합니다. 하나님의 한량이 없으신 자비와 사랑으로 우리는 이렇게 삽니다. 그리고 우리는 쉬지 않고 성장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나 우리 마음에 가장 크게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니 예수님과 동행이 즐겁고 성령님의 인도가 즐거운 성도가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짧은 이 세상을 주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다가 우리의 삶이 끝이 날 때 주님을 직접 뵈옵는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모두를 이렇게 살 수가 있게 인도하시고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