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영전(미상) 민근홍 언어마을
1. 전체 줄거리 선조 34년(1601년) 봄, 청파사인(靑坡士人) 유영(柳泳)이 세종대왕의 아들 안평대군의 옛집이었던 수성궁으로 들어가 놀다가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는 사이에 꿈 속에서 안평대군의 궁녀였던 운영과 운영의 애인이었던 김 진사를 만나 그들의 슬픈 사랑을 듣는 이야기이다. 궁중에 갇혀 사는 궁녀의 몸인 운영과 안평대군을 찾아온 소년 선비 김 진사는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김 진사는 밤만 되면 담을 뛰어 넘어와 운영과 사랑을 속삭인다. 그러나 그들의 목숨을 초월한 모험적인 사랑은 드디어 안평대군에게 탄로되고 운영은 옥중에서 자살을 하고 만다. 김 진사도 또한 운영의 뒤를 따라 자살을 한다.
2. 핵심 정리 지은이 : 미상 시대 : 조선 후기 배경 : 시간적(조선 초기-중기). 공간적(안평대군의 사궁인 수성궁, 천상계) 갈래 : 염정 소설. 몽유 소설. 액자 소설 구성 : 액자식 구성. 몽유록의 형식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사상 : 신선 사상. 불교 사상. 무교 사상 의의 : 고전 소설 중 유일한 비극 소설 특성 : 작품 구성의 주된 매체가 ‘시(詩)’. 회상적 서술. 봉건적 애정관을 탈피한 자유 연애 사상을 보여 줌. 등장 인물에 대한 개성적 성격 표현과 대화체의 문체를 사용함으로써, 생동감 있는 구성과 함께 작품에 흥미를 더해 줌 주제 : 궁녀들의 구속적인 궁중 생활과 김 진사와 궁녀의 비극적 사랑
3. 작품 해설 이 작품은 애정 소설로서 남녀 간의 지고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궁녀의 비극적인 삶도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 작품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유영이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깨어나서 김 진사와 운영을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의 비극적 연애담을 다 듣고 나서, 다시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구성 방식은 몽유록(夢遊錄)의 일반적 구성 방식과 차이를 지닌다. 몽유록의 일반적 구성 방식은 현실에서 잠이 들어 꿈을 꾸고, 꿈 속의 이야기가 펼쳐지다가 잠이 깨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이 때 이야기의 중심은 물론 꿈 속의 사건에 놓인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이야기의 중심 부분인, 유영이 김 진사와 운영을 만나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듣는 부분이 유영이 잠을 깬 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유영이 비극의 주인공들을 만난 것이 꿈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러나 김 진사나 운영이 현실의 사람이 아닌, 이미 죽은 사람의 환체(幻體)였다는 점에서 유영이 이들을 만난 것은 환상 체험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런 구성 방식도 작품에 보다 현실성을 부여하려는 몽유록의 발전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비극적인 궁중 생활의 번민과 궁녀의 신분적 해방을 주제로 한 조선 시대 유일의 비극 소설인데, 이 작품은 사본으로만 전해 오던 한문본인데 1925년 한글 번역본이 나왔다. 한편, 이러한 사랑 이야기 방식은 1930년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서 허 생원이 조선달과 동이에게 자신의 일생에 한 번뿐이었던 사랑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인간의 본능적이고 근원적인 사랑을 추구했다는 점과 사랑을 끝까지 이어 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은 둘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질 수 없었던 데 반해, 허 생원의 사랑은 우연히 한 번 이루어진 사랑이었을 뿐이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4. 참 고 ① 등장 인물의 성격 운영 : 비인간적인 삶에서 벗어나 참된 삶을 살고 싶어하는 나약한 궁녀. 순결하고 뜨거운 정열과 지성을 지닌 여인 김 진사 : 정서적이며 감상적인 인물. 운영과의 순수한 사랑의 성취가 현실적 장벽에 가로막히자 운명의 뒤를 따라 죽음으로써 시공(時空)을 뛰어넘는 영원한 사랑을 획득함 안평대군 : 겉으로는 품위 있는 행동을 보이며 도덕군자인 척하지만 밑바닥엔 위선이 깔려 있는 전근대적 사고를 지닌 인물
② 작품 감상 - 순수한 사랑의 표현 “운영전”은 조선 후기의 애정 소설로 작자, 연대 모두 알려져 있지 않다. “운영전” 역시 대개의 고전 소설이 그렇듯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문본과 한글본이 모두 전해지고 있으며, 줄거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우리 나라는 예로부터 도덕의 나라, 예의의 나라로 일컬어져 왔다. 특히 조선 시대는 유교를 국시로 삼아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을 엄격히 강조하였다. 따라서 남녀간의 자유로운 교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에 전해지던 아름다운 연애담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녀 간의 애정 문제가 우리들의 이야깃거리에서 빠질 수는 없다. 사랑은 인간의 본성이자 인류의 영원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윤리와 도덕으로 억압한다 하더라도 인간 내면에 흐르는 사랑의 본성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 수는 비록 적었지만 “금오신화”와 같은 애정 소설이 조선 전기에도 창작되었던 것이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애정 소설의 창작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소설 속에서 도피처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국토와 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온 백성을 실의와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다. 이는 인간성의 황폐화를 가져와 인간의 정서를 메마르게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소설 속에서의 간접 체험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꼈던 것이다. 한편 이 시기에 애정 소설이 많이 창작된 데에는 실학 사상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17세기 이후 발생한 실학 사상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공용성(功用性, utility)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그리하여 실학 사상으로 인해 형식적이던 문학이 실질적인 문학으로 변모하였고, 사람들은 이제까지 억눌렸던 순수한 정감을 소설을 통해 표출하기 시작했다. “운영전”은 안평대군의 궁궐인 수성궁을 배경으로 하여 벌어지는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을 다룬 애정소설인데, 고대 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비극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고대 소설이 다루고 있는 주제인 ‘권선징악(勸善懲惡)’에서 벗어난 개성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개성은 작품의 구성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운영전”은 흔히 “수성궁 몽유록”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수성궁 몽유록”이라는 제목이 보여 주듯이 “운영전”은 몽유록계 소설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유영과 김 진사가 나타나 자신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려 주고, 그 후 유영은 꿈에서 깨어난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운영전”은 일반적인 몽유록계 소설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몽유록계 소설과는 다른 주인공이 현실과 꿈 속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운영전‘은 현실에서는 유영이 주인공이지만, 꿈 속에서는 운영과 김 진사가 주인공으로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점의 다원화는 인물의 개성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운영이 자란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시점의 혼란이 나타나는 부분도 있다. 또한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 이야기는 액자 소설의 형식을 취하여 유영과 운영 · 김 진사의 대화 속에서 서술되고 있다. 이는 운영과 김 진사가 자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직접 함으로써 사실성을 부각시켜 감동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성은 궁중 안에 있는 궁녀들의 생활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궁녀들의 갇힌 생활과 그로 인해 몸부림치는 사랑의 한(恨)은 “운영전”의 비극성과 함께 사실성을 한층 더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운영전”은 인간의 본성을 가로막는 제도의 모순과 궁녀들이 억눌린 생활 묘사 등 그 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생생히 표현하고 있다. 또한 실제로 역사책에 나오는 ‘유영’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선택하여 작품의 현실감을 더해 주고 있기도 하다. 운영과 김 진사는 결국 자유로운 사랑을 구속하는 사회제도적 올가미에 굴복하고 만다. 그러나 이는 영원한 굴복이 아니었다. 땅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하늘에서나마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이룬 운명과 김 진사의 사랑은 헛되이 사라져 버리는 인간의 부귀, 영화에 대비되어 그 영원성이 더욱 빛나고 있다. 영원히 계속되는 운영과 김 진사의 사랑. 이처럼 사랑은 죽음을 뛰어넘는 위대한 것이며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운영전”에서는 인간의 본성인 사랑은 영원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는 사회 제도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다. “운영전”은 사람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귀나 영화, 그리고 사회 제도도 아닌 우리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자유로운 인간성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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