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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에서 노동자 또는 노동조합이라는 말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라는 말 대신에 근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노동기준법이 아니라 근로기준법이라는 말에서처럼 잔재가 남아 있고, 노동자의 날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이라고 합니다. 역대 독재정권들은 노동자라는 용어 자체를 금기시했습니다. 하지만 6월 항쟁 직후인 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발생해서 민주노조가 대거 조직되자 더는 노동자라는 말을 금기시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세계 노동절 유래와 우리나라 노동절의 역사! - 아직 노동절 이름 못찾아!
▢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코 노동자들의 투쟁을 전세계 노동자 기념일로!
19세기 후반에 들어와 미국은 경제적 발전이 급속히 이루어지면서 미국노동운동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세계노동절의 원년이 된 1886년, 미국 노동자들은 하루 12-16시간의 장시간의 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린 채, 판잣집에서 방세 내기도 어려운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침내 5월 1일 미국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외치며 총파업에 돌입했고 공장의 기계소리, 망치소리가 멈추었다. 노동자가 일손을 놓으면 세상이 멈춘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시위한 날이다. 노동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다고 천대받던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실로 막강한 것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어린 소녀를 포함하여 농성중이던 6명의 노동자를 총으로 살해하였다. 다음날 경찰만행을 규탄하는 30만의 노동자가 페이마켓 광장에서 평화집회를 진행하는 도중에 갑자기 폭탄이 터졌고, 집회를 주도한 노동운동가 8명이 폭동죄로 체포되어 5명은 사형, 3명은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이를 계기로 1889년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이 모인 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는 5.1을 ‘기계를 멈추자!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투쟁을 조직하자! 마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노동자의 권리쟁취를 위해 동맹파업을 전개하자!’는 세가지 연대결의를 실천하는 날로 선언했다. 선언이 있은 다음해인 1890년 5월 1일부터 오늘날까지 전 세계 노동자들은 메이데이 투쟁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 일제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곡절 많은 우리나라 노동절의 역사
△일제의 가혹한 탄압하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절행사 - 1923년 일제 식민지 시절, 당시 노동자의 자주적 조직인 ‘조선노동연맹회’ 주도하에 시작되었다. 약 2,000여명의 노동자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등을 주장하며 1945년 해방되기 전까지 일제의 탄압에도 굽힘없이 투쟁하였다.
△이승만 정권! 대한노총 창립일을 노동절로! - 57년 이승만은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도당이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니 반공하는 우리 노동자들이 경축할 수 있는 참된 명절이 제정하라”고 한국노총에 지시했다. 대한노총은 자신들의 결성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결정했다.
△박정희 구테타 정권! 이름마저 ‘근로자의 날’로 바꿔! - 박정희가 구테타로 정권을 잡은 후, 1963년 노동절 이름마저 ‘근로자의 날’로 바꿨다. 이제 더 이상 단결과 투쟁의 자랑스런 노동자가 아니라, 정부와 자본의 축제에 들러리 서주는 불명예스런 근로자가 된 것이다.
△1987대투쟁 후, 1989년 제100회 세계노동절을 기해 노동절 전통 회복 선언 -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운동은 단위노조에서 지역, 업종을 넘어 전국으로 들불처럼 확산되어 ‘노동법 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를 결성하였다. 1989년 투쟁본부는 제100회 메이데이를 앞두고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하고 굴욕에 찬 지난날의 근로자 인생을 청산하고 한국 전쟁이후 단절되었던 노동절의 전통을 회복할 것을 선언하였다.
△1994년 투쟁으로 다시찾은 5.1절! 그러나 아직 노동절 이름은 못찾아! 노동절은 아직도 ‘근로자의 날’로 불리고 있다. 민주노총은 해마다 노동절 정신계승과 노동자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을 힘차게 전개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