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인이 담배를 피우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저걸 왜 끊지 못하나 생각하면 안타깝다. 예전엔 그런 사람을 보면 "그 영양가 없는 구름 과자를 끊어라."했지만
이제 그런 말도 자제하는 입장이다. 그런 충고란 공허한 것이며, 그런 말하는 나와의 관계를 소원하게 하는 일일 뿐.
이제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담배갑마다 처참할 정도의 금연 홍보를 하고 있기도 하다.
어머니께서는 예전에 담배를 피우셨는 데, 그때 미제 담배를 사다 드리자 그걸 피우니 담이 덜 나온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다 내가 이게 정말 해로우니 끊으시라고 몇 번 충고를 드리자 고대 끊으셨다.
"잘 끊으셨습니다. 아마 계속 피우셨으면 얼마 못 살고 돌아가셨을 겁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그러셨다.
"그 해로운 담배를 나라에서 못 팔게 하면 될 것 아닌가. 방송에서 저렇게 해롭다 하면서 왜 팔게 두나?"
하셨다.
내가 그 질문에 효과적인 답을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어머니 말씀이 너무도 맞는 말씀이 아닐까.
해롭다고 광고하면서 엄연히 만들어 팔도록 하는 이 모순을 뭐로 설명할 것인가?
나 또한 고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그때는 모든 것이 열악하였다. 책 한권 노트 하나 연필 하나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언젠가는 가지고 다니던 영어 사전을 도서관에서 잠시 깜박 조는 사이 누가 들고 가버렸다. 같은 책을
새로 사자니 얼마나 분통이 터지든지. 잃어버린 책도 아깝거니와 그런데 다시 돈을 투자하려니 내가 바보 같기도하고.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그런 어느 때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할머니의 담배를 훔쳐서
천불나는 속을 식혀보려고. 확실히 많이 시원하였다. "아, 담배란 이 맛에 피우는구나."
그게 이후 50대 중반 까지 이어지는 첫 단초가 될 줄이야. 끊는다 끊는다 하면서도 못 끊고 있었고, 며칠 끊었다가 마누라가
뭐라 바가지를 긁으면 다시 이어지곤 했다. 그러다 어느날 그날도 무슨 일로 마누라가 심하게 바가지를 긁었는 데, 문득 담배를 한대 피우면 속이 후련할 것 같았다. 그런데 주머니를 더듬으니 담배가 없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었다. 가게가 다 문을 닫았을 때다.
밖에 이슬비가 뿌리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화가 뻗치고 더욱 담배가 땡긴다. 나는 팬티 바람으로 집 모퉁이에 가서
쓰레기 봉투를 뒤엎었다. 꽁초가 있을까 싶어서. 등에 비를 맞으며 쓰레기 통을 엎어놓고 꽁초를 찾는 모습이란 참으로 인간 저질의 한 장면이 아닐까. 나는 더 이상 담배와 손절하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아직도 구름과자를 사랑하시는 나의 친구여, 과감하게 끊어버려라. 어떤 이유나 변명도 하지 말고. 담배는 악마가
인류에 던진 마물이다. 시험물이다. 하느님도 이걸 끊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자들은 천당에 올리지 않으시리라.
천당이 니코틴 냄새가 나서도 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