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대학입시 발표를 보니 아들은 수도권의 S대에 합격이 되었다. 아들은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눈치였고 아내는 창피하다고까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김교수는 아들에게 ‘소 꼬리가 되느니 닭 대가리가 되라’는 속담을 설명해주면서 격려를 해 주었다. 아내는 아들이 서울 시내 S대를 가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하는지 입시결과를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걸려오는 전화조차 직접 받으려 하지 않았다. 요즘 세태는 입시생을 둔 집에 전화로 결과를 묻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왜들 그러는지 김교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괜히 말을 꺼냈다가 “아빠로서 아들의 입시를 위해 해준 것이 무엇이냐?”고 엉뚱하게 불똥이 튈까 보아 김교수는 아내 눈치를 보면서 입시 결과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라. 설혹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그게 어찌 엄마로서 부끄러운 일인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전적으로 아들의 문제이지 엄마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엄마의 자존심하고는 하등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괜히 자격지심에 빠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김교수는 자기 아내를 비롯하여 요즘 대한민국 입시생 어머니들의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요즘 풍토에서는 대학에 합격하면 엄마가 잘해서 대학에 합격한 것으로 착각하는데, 우스운 일이다. 입시에서 떨어지면 부모가 잘못해서 그런 줄 아는데,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것은 단지 입시과목에서 요구하는 아무 짝에도 쓸 데가 없는 그 엄청난 분량의 암기를 잘 못한 결과이지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입시문제를 들여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이라는 사실을 암기해서 무슨 소용이 있으며, 조지훈이 청록파 시인이라는 사실을 암기해서 무슨 쓸 데가 있는가? 불교가 전해진 연도를 외우기보다는 절에 한 번이라도 가서 절간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며, 청록파 시인 세 사람의 이름을 외우는 것보다는 조지훈의 시를 한 번이라도 낭송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는가 말이다. 거미는 곤충이며 발이 8개라는 것을 외우는 것보다는 등산가서 넘어져 피가 날 때 어떤 풀을 뜯어서 살에 붙이면 지혈이 되는 지를 배우는 것이 훨씬 유익하리라. 기호조차 그리기 어려운 미분방정식을 미술대학 지원생이 공부할 필요가 있는가? 현행의 입시제도에서 어느 학생이 입시에 실패했다면 그것은 입시생이 잘못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선발기준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경제발전이나 환경보호보다는 교육발전, 사람보호라고 생각된다. 자라나는 청소년이 입시에 짓눌려 심성이 황폐해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청소년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을 건강하게 살리는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는 부모들이 자녀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김교수도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지만 만병통치의 구체적인 대안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교육에서는 결코 개혁방안이 나와서는 안 된다. 교육은 나무를 기르는 것과 같아서 서서히 변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의, 특히 어머니들의 자식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참교육이 이루어질 것이다. 자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대의 예언자라고 칭송받는 중동 출신의 현인인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라는 책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여러분은 자식을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은 들어본 말이다. 그렇지만 자녀 교육에 관해서는 말은 쉬워도 실천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첫댓글 장사꾼의 의식을 가진 사람이 대학교육을 이끌어가도록 방임하는 것은
사명감없는 세월호 선장에게 배의 운항을 맡긴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