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춥다. 탈을 말리려면 열흘도 더 걸린다. 박아지, 조롱박, 이것 저것으로 처덕처덕 만든다.
다양하게 다양한 크기로 만들어 보자. 각 나라 가면들을 스크랩해보고, 여행 중 얻어걸린
사진들도 검색해보고, 웹서핑도 해본다. 이것들이 코르나19 덕분이다. '앓느니 손금본다'
라고 문자를 써본다. 이놈들 뭐락 씨부리노. 말르면서도 뭐락 씨부리노.
수채화물감, 분채, 석채, 포스터물감, 유화물감, 스텐오일(원목용), 아크로텍스, 인쇄용잉크,
아크릴물감, 창고에 있는 대로 꺼내 칠을 해본다. 처음치고는 제법 모양이 난다. 자신감도 일으킨다.
만들어 보자. 또 만들어 보자.
풀도 한 냄비 가득 쑤어 냉동 보관해 두었다.
재활용하는 날, 달걀판도 종이봉투에 가득 담아왔겠다. 여유만만이다.
창고 속에서 발견한 이것이 무엇인가? 대빗자루 닮은 커다만 놈들도 있다. 이 마오비들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오늘 저녁 고등어처럼 구워 먹을까. 양미리처럼 삶아 먹을까?
서양화 붓들도 아마 이만큼 있을 걸, 미련하다. 앞에다 숨겨놓고 뒤에서 사고, 사고사고,
보면, 또사고 미쵸라, 상자 속 언팩킹 붓들도 많이있다.
날씨가 추워 잘마르지 않았다. 열흘도 훨씬 지나 덜마른 탈에 아크릴칼라를 입힌다.
점점 재미도 늘어난다. 이왕지사 더 멩글걸.. 제각각 입에서 생드립을 친다.
아직 알아듣지 못하지만 생생하게 표정만으로도 무얼 말하려는지 느낄 수 있다.
모라 글케 씨부려쌓노. 아그들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미장원에 데려다 줄게.
머리 올리고 수건들 씌워주마.
오래전 중국에서 변검이란 경극을 관람하면서 가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순식간에 획하고 돌아서면 얼굴이 변하는 가면극에, 마술과 같은 신비로움에 빠져
들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얇고 가벼운 비단 가면을 실꼬투리에 묶어 한
장씩 떼어내는 눈속임이였다는걸.
가면을 쓴 처용이 춤을 추는 처용무를 보면 왠지
슬퍼진다. 가면 속에 내재된 슬픔일까. 처용무 사연에 연습된 감정일까.
바람난 마누라를 사랑해야 하는 처용의 체념일까.
살아가면서 누구든 거짓말을 한다. 진짜와 가짜를 의식적으로 혼재시켜놓고
벌이는 게임을 생활이라면서 진짜 말을 숨겨놓고 조금씩 거짓말을 한다.
며칠 전 길가에서 향수를 샀다. 가격이 편안해 크라식한 향수를 샀다.
속았다는 변명을 하기 싫어, 진품이라는 확신을 위해 입을 다물기로 했다.
진달래와 개달래의 차이에는
인간들의 품위와 품격에 있다
아! 어려워라 숨겨진 인간들의 품격
만들기전 그림이 진짜일까? 만들은 후 가면이 진짜일까?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만들었고,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었겠지
하지만 문자가, 언어가, 의사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내가 진짜일까? 내 그림자가 진짜일까?
유기체가 소멸하면 무기체로 돌아가듯,
감정의 다양한 의사가 언어로 표현할때, 시간과 공간에 남겨진 감정의 앙금들이,
이제 문자의 배후에서 웃고 있겠지.
100년쯤 지나 누가 언어의, 문자의 농단을 감히 판단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