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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아 목사
도입
세상이 무섭게 변하고 있습니다.
2년전에 산 핸드폰이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서 엊그제 교역자 회의에 허리에 차고 갔더니 어느 목사님이 "이목사님 권총을 차고 나타났다"고 해서 웃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엄청나게 변화된 세상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산업화 도시화의 속도가 서구에서 800년 동안 변화된 것들이 일본에서 130년 만에 일어났고, 우리나라에서는 30년 만에 그 모든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갑작스런 사회구조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내일에 대한 불안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서 더 많이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내일에 대한 불안은 사람들의 성격을 급하게 만들어 불안 신경증을 유발하는데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게 합니다.
또 그 반대의 현상으로 내일에 대한 불안증은 무기력증을 만듭니다. 마음으로는 다 알고 있는데 몸이 따라 주지 않는 부적응 성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안을 잊으려고 쾌락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는데 요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쇼핑중독, 알코올 혹은 마약 중독, 음화 중독 등 다양한 중독 증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집안에서도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온통 경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의식이 내일에 대한 불안증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말합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근본적인 염려와 불안이 늘 존재합니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불안입니다.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안과 염려의 뿌리는 하나인 데 그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불안이며, 거기서 인간의 모든 염려와 불안이 나오게 된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염려와 불안은 근본적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어떤 염려와 걱정이 있습니까?
아더 랭크라는 영국의 실업가는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항상 불안했습니다. 많은 염려 가운데 살던 그는 염려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는 매주 수요일을 염려의 날로 정하고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걱정거리가 생긴 날짜와 내용들을 적어 상자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수요일 날, 그는 상자 속의 메모 지를 살펴보다가 문득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자에 넣을 당시만 해도 큰 문젯거리였던 그것이 훗날 다시 읽을 즈음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상자를 계속 활용하면서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이 살면서 고민하며 염려하는 일들이 시시한 일들이며 쓸데없는 걱정이며 염려래도 해결되지 않는 미래에 관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염려의 무가치성에 대해서 이보다 훨씬 더 명쾌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6:27) 그래도 염려 하실터면 하세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어느 목사님은 아내가 설거지하는 모습에서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아내는 하루씩 분량의 설거지를 18년 간 해왔고 설거지 때문에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목사 자신은 고민의 설거지를 지난 것과 오늘 것과 아직 더럽지 않은 것까지 함께 씻으려 하는 염려를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염려는 주로 미래에 관한 것입니다. 미래의 시간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시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일의 시간은 내시간이 아닙니다. 내일 형통한 날이 올는지 곤 고한 날이 올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물고기가 그물에 새가 망에 걸리는 것처럼 재앙의 날이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미래를 내가 확정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실례를 우리에게 들어 솔로몬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1.인간의 능력 위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빠른 선수라고 경기에서 반드시 우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수하여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다른 악조건에 의해서 기록을 세우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런던 올림픽에서 이태리 출신인 피에트리 도란도선수의 일화는 인간의 한계 도전과 그에 따른 감격스러움을 우리들의 가슴에 안겨줍니다. 도란도선수는 경기의 마지막 1마일 지점에서 선두에 나섰습니다. 경기장에 선수가 들어오자 관중들은 환호와 박수를 쳤는데 이내 경기장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이유인즉 도란도선수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머리와 팔다리를 흔들거리면서 트랙 반대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관중들은 흥분하여 "No" 를 외쳤고 잠시 주춤 하다가 주위를 살핀 도란도는 방향을 바꾸어 걷더니 그만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다시 힘을 내 걷고 다시 쓰러지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체력이 전부 소모해 버린 듯 이내 허물어지듯이 쓰러져 버렸습니다.
관중들은 단지 안타까운 탄식뿐이었습니다. 곳곳에서는 도란도를 도와 주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때 본부석에서 의사와 임원들이 도란도에게 다가가도록 지시를 내렸고, 이들 앞에서 필사적으로 일어서려고 노력하던 도란도는 이상 서지 못하고 있는데 뒤에는 선수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잔꾀를 부리면서 약삭빠르게 살려해도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발도 빠르고 생각이 빠르고 행동이 빨라도 인생을 승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경주에서는 최후 승자가 이긴 자입니다. 인생의 역전이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이신 것입니다.
유력자(有力者)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나실인으로 삼손은 포도주 독주, 부정한 것을 먹지도 말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아야 하는데 불레셋의 드릴라 여인과 사랑에 빠져 미혹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삿16:19) "들릴라가 삼손으로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 라는 여인의 사랑에 빠져 삼손의 힘이 무너지고 맙니다.(전7:26)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 전도서의 말씀처럼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의 독한 유혹에 힘을 잃고 맙니다. 두눈이 뽑히고 맷돌을 가는 비참한 지경에 빠집니다. 결국은 댓가를 지불하고 삼손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불레셋을 구원합니다.
애굽의 군대가 유력하지만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중동의 아랍이 병역이나 전술 면에 유력해도 이스라엘의 작은 나라를 이기지 못합니다.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다윗은 물매 돌 하나로 골리앗을 넘어뜨립니다. 하나님이 어느 편을 들어 주느냐가 전쟁의 승패는 결정되는 것입니다.
지혜자하면 솔로몬을 당할 자 누가 있습니까? 지혜자가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혜 자도 자신의 앞에 당하는 재앙을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유혹을 당하지 못합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2) 여호와께서 일찌기 이 여러 국민에게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와 서로 통하지 말며 저희도 너희와 서로 통하게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저희를 연애하였더라(3) 왕은 후비가 칠 백인이요 빈장이 삼백인 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4)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 같이 좇지 아니하고(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산에 산 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 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8) 저가 또 이족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9)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 게 진노하시니라 (왕상11:1-25)"
지혜의 사람 솔로몬도 육신의 정욕으로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인간의 약하고 추한 면을 그대로 노출하고 맙니다.
기능자(技能者) 모세만큼 애굽의 생활 방식에 능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의 심판자가 되어 살인까지 하게 됩니다. 자신의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합니다. 자신을 과신한 나머지 살인극까지 벌이게 됩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고역함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어떤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12) 좌우로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에 감추니라(13)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그른 자에게 이르되 네 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14) 그가 가로되 누가 너로 우리의 주재와 법관을 삼았느냐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가로되 일이 탄로되었도다(15)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은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출2:11-15)"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쫒겨가는 불행한 신세가 됩니다.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고 경주하는 자가 그 경주에 승리하는 법입니다.
힘 지혜 빠름 명철 기능이 하나님이 부어 주실 때만 그 가치와 효용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부귀영화 모든 삶의 결과가 자신의 능력이나 도덕적, 인격적 자격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런 결론을 얻습니다.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잠21:30)" 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가진 탁월한 신속함도 인간이 가진 세상의 지혜도 명철도 능력도 하나님을 당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잠16:1)" 주님의 절대 주권 하에 일의 결과 인생의 승패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2. 인생의 미래는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전9:12)"고 말씀하십니다.
1)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는 것처럼
2)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여 거기 걸린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재앙을 그 누구도 피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물고기가 언제 어디에서 어떤 방법으로 그물에 걸린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환난이 뜻밖에 다가옵니다. 생의 어두운 밤이 찾아옵니다. 불순종하던 요나 에게 대풍이 몰아친 것처럼 물질로 명예로 건강으로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 재앙의 때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주권하에 두셨습니다.
사람이 뜻하지 않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뜻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주의 뜻을 따라 사는 자에게는 형통한 날을 주사 복을 주시다가 딴 길로 나아갈 때 말씀의 신호등을 무시하고 질주할 때에 곤 고한 날을 주시는 것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 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7:14)" 라고 말씀합니다. 이 두 가지 일을 병행하시는 하나님은 장래일 을 알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말은 전적으로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믿고 의지하여 살라는 주님의 약속입니다.(전3:14)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인생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뜻을 저버리고 딴 길로 갈 때에 주께서 사건으로 개입하신 다는 것을 솔로몬은 깨닫습니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이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펴본즉 의인과 지혜 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 미래임이니라(전9:1)" 바로 솔로몬은 의인이나 지혜 자나 그들의 행하는 일이나 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 일에 결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것이고 불순종하면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3-14) 우리가 계획도 세웁니다. 굉장한 사업을 하여 이를 보려는 비젼도 가집니다. 그러나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면 이것을 하기도 하고 저것을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장사하기도 하고 모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15년을 사울 왕에게 쫒기고 쫓기면서도 그 긴긴 시간을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시기가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연단을 받습니다. 다윗은 그 시련을 잘 통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됩니다. 주님의 주권을 믿고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17세에 팔려가서 13년 만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됩니다, 인고의 세월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끝까지 견디어 그는 그의 꿈을 실현합니다. 주께서 그길을 인도하십니다.
김대중 대통령 참으로 그는 인동초처럼 살아온 사람입니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3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상업학교 나온 것이 그의 학력입니다. 그런데 그가 역경을 딛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가진 재능 지혜 명철로 세상의 지위를 얻고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시기와 사건에 섭리하신다는 말입니다.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물고기가 그물에 걸리는 것처럼 새가 덫에 걸리는 것은 어부와 포수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마친 가지로 인생의 모든 만사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3.주재 권을 온전히 인정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전9:11) 이렇게 솔로몬은 말합니다. 빠른 경주자, 유력자, 지혜자, 명철자, 기능자들아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전7:13)"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거슬러 불 신앙으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개입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기" 하나님의 시간을 말하고 "우연"은 사건 재앙 환난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인생이 아무도 피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인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염려와 걱정에서 자유할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주님이 주신 부요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재물도 주십니다. 명예도 주십니다. 기쁨도 주십니다. 평안도 주십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전5:19)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 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재물과 부요를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 부요를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6:8-10)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바로 이 가치감을 깨닫게 될 때 세상에 무엇이 부러울 것입니까? 이 부요를 누리게 되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것 없습니다.
2)염려를 주님께 온전히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를 초청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쉼을 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주님께 맡기지 못합니다. 염려 보따리를 이고 지고 메고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여려분 모든 무거운 짐을 다 주께 위탁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시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3)주의 말씀을 신뢰하시기를 바랍니다.
(마6:31-34)"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 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내일일 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일 염려는 내일 할 것입니다. 한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합니다. 내일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4)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 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 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하면 염려를 맡길 수가 있습니다. 모든 상황을 감사함으로 간 구할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나 하나님의 평강이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요동이 없습니다. 두려움을 몰아 냅니다. 염려와 근심이 몰려 오거든 엎드려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어느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갑자기 어린 학생 한 명이 선생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흐느끼면서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제게 하얀 도화지를 주셨는데, 그만 잘못해서 검은 물감을 떨어뜨렸어요. 그래서 하얀 도화지가 시커멓게 얼룩져 버렸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선생님은 흐느끼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괜찮다.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또 새로운 종이를 줄께. 이번에는 실수하지 말고 한 번 예쁘게 그려보아라.”
그 날 저녁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집에 돌아오셔서 잠자리에 들기에 앞서 무릎을 꿇고 그 날을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저에게 오늘 하루를 주신 것은 제 인생을 한 번 아름답게 수놓으라고 주신 줄 압니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보니 죄와 허물로 얼룩진 하루였습니다. 몹시도 보기 싫게 구겨진 하루였습니다.
하나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 때 선생님은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괜찮다. 내가 너를 위하여 내일을 예비했단다. 내가 너를 위하여 새날을 준비했단다.”
내일은 하나님의 시간 약속의 시간 미래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을 믿으시고 오늘 기쁨으로 먹고 마시며 주님의 희락을 누리며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덧입고 가정천국, 교회 천국 이루며 주어진 사명 충성스럽게 감당하여 주앞에 서는 날 영광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