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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죽으리이다.
성경본문 : 에스더 4: 1-3, 13-17.
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
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를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3.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13-17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대로 다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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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드개는 전쟁 포로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치고 유다 왕과 유대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갈 때 함께 끌려간 그는 사촌동생 에스더도 데리고 갔습니다. 에스더는 어린 아이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포로로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어머니가 세상을 일찍 떠나 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고아라 모르드개가 데리고 가지 않으면 돌보아줄 사람이 없어서 데리고 간 것 같습니다.
전쟁 포로는 비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기도하는 백성을 포로로 만드실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모르드개는 포로로 끌려가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막 살지 않고 품위를 지키며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는지는 몰라도, 대궐문에서 일하는 공직자가 됩니다.
에스더도 함부로 살지 않습니다.
오빠의 교육을 잘 받으며 품위 있는 여자로 자랍니다. 또 아름답게 자랍니다. 여자는 아름다워야 됩니다. 그러니 여자는 할머니라도 아름답게 가꾸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지으셨습니다.
잠언 11장 22절에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고리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기품이 있어 보이는 사람도 막 살면 돼지 코에 금고리같이 멸시를 당합니다. 그러나 포로 신세이고 조건이 좋지 않아도 자신을 세워나가면 큰 인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유다서 1장 20절에도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Dear friends, build yourselves up in your most holy faith……)』
집을 세우듯이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전쟁 포로지만 자기를 세워서 공부하니 그 나라 총리가 되고 도지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남의 집에 종으로 팔려 갔어도 종이라고 막 살지 않고 자기를 세우니 그 가정의 총무가 되고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자기를 세워야 됩니다.
아무리 밑바닥에 있어도 자기를 세우면 앞길이 자꾸 열리지만, 아무리 좋은 조건, 좋은 출신이라도 자기를 세우지 않고 막 살면 허물어지게 됩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여인입니다.
시아버지도 없고 남편도 없습니다. 땅 한 평 없어 남의 밀밭에 가서 이삭을 주웠습니다. 그래도 그는 신세 한탄이나 하며 이삭을 줍지 않았습니다. 만일 신세 한탄이나 하고 코나 핑핑 풀며 이삭을 주웠다면 룻이 보아스의 마음에 들었겠습니까? 비록 이삭을 줍는 가난한 여인이었지만 옷을 다소곳이 입고 머리를 단정히 하고 예쁘고 품위있게 이삭을 주웠습니다. 그러니 부자 보아스가 마음에 들어 그를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한국 교계와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가시는 목사님 한 분이 계십니다. 그
런데 그분이 청년 시절에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부잣집에서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비록 그가 가난하여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지만 몸도 단정히 하고 품위있게 살았습니다. 마당을 쓸 때도 아무렇게나 함부로 쓸지 않았고 도끼질도 정성껏 잘 했습니다. 주인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잘 했습니다. 그러니 주인 마나님의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주인 마나님이 보니 그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머슴이지만 너무나 성실하고 품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나님은 자기 무남독녀를 그와 결혼시켰습니다. 그는 그 큰 부잣집의 사위가 되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박사학위를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 교회와 우리나라를 위해 얼마나 큰 일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조건이 좋지 않고 상황이 좋지 않아도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포로로 끌려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모르드개도 포로로 끌려가기를 꿈에서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우리 한국은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슬픕니다.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시는 한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인 우리는 희망이 없다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내가 큰 회사를 경영하다가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게 되어도 희망이 없다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소망이시고 희망이신 줄로 믿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죄송합니다만, 이십여 년 전 저는 철거 지역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목사로 일했습니다.
그러나 큰 꿈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촉망받는 교회가 서울 영락교회였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영락교회보다 더 크게 빛을 발하는 교회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님처럼 우리나라의 등불 같은 귀한 종이 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때부터 저를 세워 나갔습니다. 운동하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공부하고 저를 세워 나가는데 노력을 다 쏟았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 칠백만 명이 모여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목사가 되기를 저는 원합니다.
여러분, 자기를 세워 나가야 됩니다.
오늘 현재 내가 어떤 자리에 있든지 자신을 세워 나가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자신들을 세워 나가서 공무원이 되고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지키며 바로 산다고 항상 형통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낮에만 살지 않고 어두운 밤에도 살아야 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아무리 많이 받아도 항상 밝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두운 일도 주십니다. 그 어두운 터널을 잘 지나가면 다시 밝아지듯이, 어두운 일을 만날 때 잘 이겨내야 새 세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겨울에 찬바람을 이기지 못하면 새봄에 싹을 틔우는 나무가 될 수 없습니다. 겨울의 찬바람을 견디고 이긴 나무가 봄에 싹을 틔우고 새 잎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믿음을 지키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캄캄한 터널을 만납니다. 그 당시 왕이 특별히 높이 세운 총리가 하만인데 그가 훌륭해서 총리가 된 것이 아닙니다. 뇌물을 써서 악한 방법으로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대적했던 아말렉 자손의 후예입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우상의 부적을 가슴에 달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아주 교만하고 거만했습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모르드개는 가슴에 우상을 달고 다니는 총리에게 엎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에게는 엎드려도 모르드개에게는 허리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알게 된 하만은 모르드개뿐 아니라 모르드개의 동족인 모든 유다 백성을 다 죽이기로 마음을 정한 후 왕에게 엄청난 뇌물을 주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12월 13일에 온 유다 백성을 다 잡아 죽이기로 하고, 유다 백성을 죽이는 자가 그 재산을 탈취하도록 법을 만들었습니다.
누가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재산을 탈취하게 하니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을 죽이려고 13일을 기다렸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유대인은 대개 부자입니다. 그러니 더 많은 사람들이 유다 백성을 죽이려고 13일을 기다렸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나라에 전쟁이 없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죄가 많아도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전쟁이 없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만일 중국이나 일본이나 북한이 우리나라에 선전 포고를 하고 다음 달 13일에 쳐내려 오겠다고 하면 우리는 공포 속에서 살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한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닙니다. 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져도 살 사람은 삽니다.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터졌어도 살 사람은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만이 유대인들을 죽이기로 한 12월 13일이 되면 유대인은 한 사람도 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공포의 시간입니다.
그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금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모르드개도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토마스 칼라일이 말했습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이다.”
그러니 우리가 위기를 당할 때 기도의 사이렌을 울리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사이렌이 울리면 ‘무슨 소리일까?’ 하며 귀 기울이는 것처럼,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여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50편 15절에 말씀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십 년 전, 미국 우리 교회의 한 권사님이 부인병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에 실패해서 피가 계속 흘렀습니다.
의사가 “예민한 부분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하며 미안하다고만 했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밤 예배 후 그 권사님의 머리에 손을 얹고 제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시간에 피가 멈추었습니다. 지금도 그 권사님이 건강합니다.
이번에 미국에 갔을 때도 몸이 많이 아픈 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몸이 너무 아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아주 야위었는데도 병원에서는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다고 했답니다. 그 자매님을 볼 때 서울의 한 목사님의 간증이 생각났습니다. 그 목사님 교회의 한 아이가 대머리로 태어났답니다. 나이가 들어 대머리가 되면 괜찮습니다.
지성미가 있어 보이고, 우스개 소리이지만 ‘머리털보다 더 많은 내 죄’라는 찬송 가사에 따르면 머리털이 적으니 죄도 적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하도 사랑스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셔서 대머리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대머리도 좋습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대머리는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어머니가 새벽마다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머리카락 한 올 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해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이의 어머니는 매일 아이를 데리고 새벽기도회에 나와서 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아마 스트레스를 무척 받았을 것입니다. 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도 머리카락 하나 나지 않더니 중학교 3학년이 되니 머리카락이 다 났습니다. 그 어머니도 끈질기고 목사님도 끈질깁니다. 어떻게 그토록 끈질기게 기도를 합니까?
그 자매님을 볼 때 그 목사님의 간증이 생각나서 매일 새벽에 안수 기도를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자매님이 매일 새벽 기도회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해 드렸습니다. 기도한 지 15일이 되는 날, 그 자매님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습니다.
자매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할렐루야! 다 나았습니다.”
그래서 밥도 잘 먹고 있다고 하면서 너무 기뻐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미국에서 떠나오는 날까지 안수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지금도 기도는 기적을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7장 7절에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Ask and it will be given to you;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모르드개와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모르드개는 공무원이지만 궁궐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베옷을 입고 머리에 재를 덮어쓴 사람은 궁궐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궁궐 문 앞에서 울고 있습니다. 모르드개가 왕비 에스더의 오빠인 것을 왕은 몰랐지만 시녀들은 알았습니다. 궁궐 문 앞에서 울고 있는 모르드개를 본 시녀들이 왕비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왕비마마, 오빠 모르드개께서 굵은 베옷을 입고 통곡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 오빠께서 굵은 베옷을 입고 통곡하고 계시느냐?”
에스더는 착합니다.
에스더 2장 20절에 보면, 에스더는 왕비가 된 후에도 오빠의 명을 양육 받을 때처럼 좇았습니다. 그렇게 겸손했습니다. 착하고 겸손한 에스더는 심히 근심하며 오빠에게 의복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그 옷을 거절하고 자기 백성이 12월 13일에 죽게 된 공문의 사본을 보내면서 “네가 왕에게 나아가 간절히 구하여 우리 민족을 살려라.”라는 말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에스더가 하닥을 통해 말했습니다.
“오빠도 아시다시피 왕이 부르지 않는데 왕 앞에 나가는 자는 누구라도 왕을 암살하는 자로 오해받아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왕께서 금홀을 내밀면 살지만 그렇지 않으면 누구라도 죽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왕께서 제게 관심이 없습니다. 한 달간 나를 찾지 않았습니다. 내가 왕에게 사랑을 받을 때라도 그런 말은 조심스러운데 내게 관심도 없는 이 때에 어떻게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모르드개가 다시 하닥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다 죽는데 너는 궁궐에 있다고 해서 살 것이라 착각하느냐? 이 어려운 때에 네가 잠잠하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 우리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지만 너와 네 아비 집은 망하리라. 네가 왕비가 된 것은 이 때를 위함인지 어떻게 아느냐? 이 때 우리 백성을 구하라고 하나님께서 시골 처녀인 너를 왕비로 만드시어 궁궐로 보내셨는지 어떻게 아느냐?”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 땅에 팔려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노예로 팔려갔다가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아하,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 70명을 살리시려고 나를 이곳에 먼저 보내셨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형들을 품고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을 판 그의 형들이 그의 앞에 엎드려 살려 달라고 빌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들이여, 나를 판 것 때문에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형님들이 나를 이곳에 판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살리시려고 나를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형님들을 통해 나를 이곳에 보내신 것이니 상심하지 마소서. 근심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에스더도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래, 왕족도 아니고 귀족도 아닌, 또 어느 나라 공주도 아닌 내가 대제국의 왕비가 된 것은 이 때 쓰임 받기 위해서구나. 하나님께서 이 때 나를 쓰시려고 왕비로 세우셨구나.’ 할렐루야!
그는 비장한 결심을 합니다.
‘그래, 죽으면 죽으리라.(If I perish, I perish.)’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오빠, 수산성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모으고 나를 위해 삼일 동안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금식하소서. 나도 시녀들과 함께 금식하고 왕께 나아가겠습니다. 죽으면 죽겠습니다.’
그는 금식한 후 목숨을 걸고 왕께 나아갔습니다. 금식한 후라 힘들었지만 그는 흐트러진 상태로 가지 않았습니다. 왕비의 옷을 입고 아름답게 단장을 하고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짐작하기로 에스더는 날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삼일간 굶었으니 얼마나 애처로워 보였겠습니까?
애처로운 왕비가 덜덜 떨면서 왕 앞에 섰습니다. 왕이 에스더를 보았습니다. 예쁜 모습에 반해 왕비로 삼았지만 에스더를 보는 순간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아름다움에 다시 푹 빠졌습니다.
그래서 “오, 에스더!”하며 금홀을 내밀었습니다. 가냘픈 에스더가 왕 앞으로 나아와 금홀의 끝을 만졌습니다.
여러분도 에스더에게 배우십시오.
여자는 애처로워 보일 때 사랑을 받습니다. 남편이 보는 데서 쌀 한 가마니를 번쩍 들어 쌀통에 붓고, 바퀴벌레를 잡아 비틀고, 그러면 남편의 사랑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가냘프고 애처로워 보일 때 남편이 도와주고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남편이 없을 때는 바퀴벌레도 잡고, 쌀 가마니도 들어야 하지만 남편이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금홀의 끝을 만지는 예스더의 아름다운 모습에 왕이 다시 사랑을 회복했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뇨?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이다.”
“왕이여, 내 백성, 내 동족을 죽이려는 원수가 있나이다. 나를 기뻐하시면 내 동족의 원수를 갚아주소서.”
“아니, 그 원수가 누구냐?”
“하만입니다.”
왕은 유대인을 죽이려 했던 하만과 그 일당을 다 치고 모르드개를 총리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를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사명을 깨닫고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나님께서 이 때를 위해 나를 왕비로 만드셨으니 내가 하나님의 경륜을 행하리이다.’ 하니 자기가 사는 것은 물론 왕의 사랑을 회복하고, 오빠를 총리로 만들고, 자기 백성을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도 에스더를 보배로 여깁니다. 그리고 우리도 에스더 때문에 은혜를 받습니다.
만일 에스더가 왕비로 있으면서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지 못하여 자기 백성이 다 죽고 아버지 같은 모르드개가 죽게 되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왕의 사랑을 회복했겠습니까? 왕의 사랑도 회복하지 못하고 자기 민족의 배신자가 되어 그 아픔을 견디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 에스더가 유대인인 것을 아는 하닥과 시녀들이 그 비밀을 왕께 알리면 에스더는 끝이 나니 하닥과 시녀들의 종으로 살아가야 됩니다. 더구나 하만이 그 정보를 알면 그냥 있겠습니까? 결국 에스더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으니 자기도 살고 자기 동족도 살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은혜를 받는 것이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역사 철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말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의 기술과 과학은 신과 같이 많이 발전했는데, 삶은 원숭이와 같다.”
많이 배워서 아는 것은 많은데 삶의 모습은 원숭이처럼 나약하다는 것입니다.
불란서의 문인 몽테뉴는 “전 세계를 알면서도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많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는 것은 많은데 ‘내가 누구인가(Who am I)?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것은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빌리 선데이는 말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실패하는 것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생의 목적이 없어서이다.”
배가 고프니 먹고, 피곤하니 자고, 나이가 들어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니 아이를 교육시키고, 먹고살자니 돈을 벌고, 그러다 늙어 죽는 것이 인생입니까? 그런 것은 돼지도 소도 다 합니다. 먹고살고, 자식을 낳는 것은 짐승도 다 합니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서 안 됩니다. ‘왜 사는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경륜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일은 두 번이라고 합니다. 엄마에게서 태어나는 그날이 생일이지만 더 큰 생일은 ‘내가 이것 때문에 사는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날이라고 합니다.
마리아 앤더슨은 백 년에 한 사람 날까말까한 위대한 가수입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사람들이 은혜에 젖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영국 여왕을 맞이할 때 마리안 앤더슨을 초청하여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워싱턴에 7만 5천 명의 정계, 법계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마리아 앤더슨을 불러 노래하게 했습니다.
토스카니니는 “마리아 앤더슨의 음성은 금세기 최고의 아름다운 음성이다.”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런 마리아 앤더슨에게 한 기자가 “당신의 인생 중 가장 위대한 순간, 감동적인 순간이 언제였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통령 앞에서, 영국 여왕 앞에서, 7만 5천 명 앞에서 노래할 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어머니에게 ‘엄마, 나 다시는 목욕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할 때가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앞으로 다시는 목욕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의 검은 피부가 싫어서, 백인의 하얀 피부가 부러워서 목욕할 때마다 씻고 또 씻으면서 ‘내 피부는 왜 이렇게 검지?’하며 원망했는데, 그 날 ‘아,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나를 백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고 흑인으로 태어나게 하셨구나.’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명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나는 흑인으로 살아야 되겠다. 흑인을 빛내는 흑인이 되어야겠다. 백인도, 흑인도 부러워하고 존경하는 흑인이 되어야겠다.’라고 결단했는데, 그날이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그는 긍지를 가지고 노래하며 공부해서 흑인들의 자랑일 뿐 아니라 백인들도 존경하는 귀한 보배가 된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사명을 깨달아야 됩니다.
스펄전 목사님에게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목사님, 사람의 사명,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때 스펄전 목사님이 세 가지로 대답을 했습니다.
☛“첫째는 그 일이 귀하게 보인다.”
의사가 귀해 보이면 의사의 사명, 변호사가 귀해 보이면 변호사의 사명, 사업가가 귀해 보이면 사업가의 사명, 군인이 귀해 보이면 군인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사명을 받으면 그것이 귀해 보이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귀해 보여도 자신이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아니라는 것입니
☛““세번째는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식당을 하면 망합니다. 음식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식당을 해야 성공합니다.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는데 30분도 안 되어 졸립고 머리가 아픈 사람이 교수가 되면 안 됩니다. 하루종일 책을 보아도 지겨운 줄 모르고 좋기만 한 사람이 교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 준비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오늘 설교는 미국에서 준비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새벽 두 시에 일어나 다시 다듬었습니다. 다듬고 또 다듬고 기도하면서 다시 준비했습니다. 그래도 기쁘기만 합니다. 설교하면서도 기쁘고 설교하고 나서도 기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은 바로 목사의 일인 줄로 믿습니다.
며칠 전, 제가 미국에서 아내에게 “여보, 나는 다시 태어나도 목사가 될 거요.”라고 했더니, 아내도 “저도 다시 태어나도 목사의 아내가 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설교 준비를 하고 설교하는 것이 기쁘니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이 목사인 줄로 믿습니다.
록펠러의 사명은 돈 버는 일입니다. 돈을 벌어서 교회를 짓고 돈을 벌어서 뉴욕 시민들의 수도 요금을 다 내주었습니다. 우리 양곡교회에서도 경제력이 있어서 우리 경남의 수도세를 다 낼 수 있는 분이 나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에 자신의 사명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깨달으면 우리의 마음과 자세가 달라집니다. 자신의 존귀함을 깨달으면 걸음걸이도 달라집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어느 추운 겨울날 영국 런던의 한 악기점에 남루한 옷차림의 한 부인이 낡은 바이올린을 갖고 들어왔습니다.
“제가 몹시 배가 고파서 그러니 이것이라도 받으시고 돈 좀 주세요.”
선한 주인은 바이올린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 부인에게 5불을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인이 악기점에서 나갔습니다. 그 당시 5불은 큰돈이었습니다.
악기점 주인은 부인이 나간 후 낡은 바이올린이라도 한 번 켜보고 싶어서 먼지를 털고 바이올린을 켰습니다. 깜짝 놀랄 좋은 소리가 났습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소리가 나다니! 이건 보통 바이올린이 아니구나.”
바이올린의 먼지를 털고 안에 쓰여진 글씨를 본 악기점 주인은 기절할 뻔했습니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 1704’
200년간 행방불명이 되어서 세계의 음악인들이 찾고 있던 것으로 십만 불 이상의 값이 나가는 바이올린이었습니다. 그때 십만 불은 지금의 백만 불보다 더 가치가 있었습니다. 십억 원이 더 가는 그 귀한 바이올린을 부인이 5불에 판 것입니다. 악기점 주인이 바로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부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악기점 주인은 횡재했지만, 그 부인은 여전히 거지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 바이올린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부인이 알았다면 부자로 살았을 텐데,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먼지를 털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17장 27절에 보면 바다의 물고기에게도 사명이 있습니다. 물고기가 동전 한 세겔을 물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낚시에 그 물고기가 걸렸습니다. 베드로는 그 동전으로 예수님과 자기의 성전세를 냈습니다.
바다의 물고기 한 마리에게도 사명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성령님을 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환경과 처지에 있어도 품위 있고 기품 있게 살고 노력하면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사람이라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부러워하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리라.’ 내가 회사원이라면 ‘회사 사장님이 깜짝 놀랄, 회사의 보배가 되리라. 회사의 밀알이 되리라. 회사를 위해 희생하리라.’ 내가 회사 사장이라면 ‘우리 사원들이 깜짝 놀랄, 우리 사원들이 감동을 받을, 선한 경영주가 되어야지.’ 이런 사명을 감당해야 됩니다. .
사명을 깨달으면 삶이 달라질 줄로 믿습니다.
저와 가까이 지내는 목사님의 조카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입니다. 세계의 곳곳에서 한나를 초청하는데, 일년에 20회만 그 초청에 응한답니다. 일년에 20회 이상 연주회를 하면 천재성이 무너지기 때문이랍니다.
그는 지금 하버드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나가 연주회를 열기 위해 런던에 가든, 파리에 가든 에이전트 회사에서는 일등석 비행기표 석 장을 준비한답니다. 일등석 비행기표가 얼마나 비싼지 아십니까? 그 비싼 비행기표를 석 장씩이나 준비하는데, 하나는 한나를 위해, 또 하나는 한나 어머니를 위해, 또 하나는 한나의 첼로를 위해서랍니다. 한나가 연주하는 악기가 귀하니 여러분과 저도 앉아 보지 못하는 일등석에 악기를 앉히는 것입니다. 혹 첼로가 다칠까 봐 그 비싼 일등석에 앉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과 저는 첼로보다 못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 합시다.
“각성하자.”
저는 “목사는 가난해야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조심스럽습니다. 첼로도 귀하니 일등석에 실리는데,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늘 작은 차나 싼 비행기만 타고 다니면서 시달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이리저리 시달리다가 설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주의 종은 가난해야 된다고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러 다닐 때 넓은 의자에 앉아 피곤하지 않도록 해서 생기차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종들은 힘있게 일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목사님들이 당장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다니라는 말은 아닙니다. 분수에 맞지 않게 행하면 망합니다. 분수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귀한 존재라는 것은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4.5와 5의 이야기는 매달 한 번씩 하고 싶습니다.
4.5와 5는 친하게 지냈지만 4.5는 언제나 5에게 고개를 숙이고 살았습니다. 4.5보다는 5가 더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4.5가 5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당당하게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5가 말했습니다.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나 점 뗐다.”
4.5가 점을 떼니 45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5가 고개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점을 떼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정말 열등의식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점을 떼주셨습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저는 부러운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미국 대통령도 부럽지 않습니다. 왜입니까?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는 사람들이 구원 받지 못하지만 제가 설교를 하면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점을 떼주시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면, 세상의 그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저는 점을 뗐습니다. 여러분의 점도 하나님께서 떼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점을 떼면 머슴이라도, 전쟁 포로라도 괜찮습니다.
바울은 점을 떼니 감옥에 있어도 기뻐하며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결단하여 기품있게 살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