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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4-15
선택의 축복
오늘은 추수감사절 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은 가족과 함께 친구들이 모여서 같이 아름다운 교제를 갖고 그동안 받은 축복을 세어보며 얼마나 사랑하는지 서로 확인하고 또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았는지 서로 나누며 감사하며 지내는 아름다운 절기이고 좋은 시즌입니다. 그래서 만나면 서로 껴안고 등도 두들겨 주고 뜨거운 악수도 나누고 과거의 좋은 기억을 되살리면서 즐거운 메모리를 회상하며 서로 함께 아름다운 시간을 갖는 것이 감사절의 축복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감사절에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교회와 가정과 개인에게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다는 것을 생각할때에 너무 하나님앞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귀한 신앙의 훌륭한 동지들을 주시고, 믿음의 가족을 주셔서 하나님을 함께 섬기게 하시고 서로 신뢰와 사랑과 인내로 아름다운 교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가며, 지난 한해동안도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에게 건강을 주시고, 또 삶의 어려움이 와도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축복과 능력을 주셔서 오늘까지 늘 승리하게 하신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합니다.
또 개인적으로도 하나님께서 동생인 김남기 목사가 백혈병에 걸려서 죽을뻔 했는데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으로 다시 건강을 회복시켜 주시고 목회를 다시 건강하게 할 수 있게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매년 저희 집에서 가족들이 다 모였는데 이번에는 커네티컷에 있는 김목사님 교회에 가서 모이기로 준비를 했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았으니까 더 감사하자고....
또 가족에 건강을 주시고, 자녀들에게 축복하시고 모든 일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또 손자도 보게 하시고, 할아버지가 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여러분에게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받은 것을 감사할 셀 수 없는 감사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서로 교제하고 아름다운 축복을 나눌 수 있는 감사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원래 감사절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1620년 9월 6일에 보통 영국에 있던 청교도들이 폴란드쪽으로 건너왔다가 거기서 신앙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고, 핍박이 시작되니까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65일만에 미국 동부에 있는 프리머스라고 하는 항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여기에 도착한 사람들은 긴 여행에 시달리고 지치고 병들어서, 춥고, 습한, 긴 겨울을 지나면서 110명중에 60명이 죽고, 50명이 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겨울을 지나고 봄을 맞고 농사를 짖고 물고기를 잡고 가을에 추수를 거두게 됩니다. 옥수수를 심고 감자를 심고 그리고 사냥을 하고 낚시질을 해서 수확을 많이 거두고 움막이라도 겨울을 날 집을 짖고 겨우내 먹을 양식을 준비해 놓고 그 정책을 도와준 인디언들을 초청해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면서 축제를 벌였는데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예배를 드리면서 저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이 아름다운 전통이 되어서 감사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감사절은 미국의 명절이면서, 신앙인의 명절이면서 기독교의 명절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이러한 절기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를 방문해 주시고 이 잔치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면서 저희 교회는 지난 몇 년 동안 감사절 때가 되면 만나보고 싶은분, 그리워하는 분들, 뵙고 싶은 분들, 또 신세지고 사랑 받고,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분들을 초청해서 조촐한 잔치를 가지고 또 서로 교제를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을 초청하고 함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마치 20세기 청교도인 이민자가 정착을 위해서 수많은 고난과 위험을 무릎 쓰고 한해를 지낸 우리 모두가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21세기의 청교도처럼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는 뜻깊은 날인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이에게는 따로 형벌이 필요하지 않다고 어느 사람은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감사하지 않는 자체가 형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아름다운 교제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여러해 만에 만난 여러분들과 또 우리 교우들과 함께 "선택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설교의 주제를 정하고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사람은 매일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 선택한 결정에 의해서 행동하고, 행동한 결과에 의해서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여러 가지 중요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결정하고 그 결정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결과에 의해서 우리 자신이 그 결과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어떠한 선택할 여지가 없는 이미 선택되어진 일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동물이나 식물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 난 것이나, 아프리카 정글이 아닌 한국이나 미국에서 태어난 것이나, 고구려나 백제 시대에 태어나지 않고 20세기나 21세기에 태어난 것, 출생과 장소와 시간과 부모와 인종 같은 것들은 우리가 선택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바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가 되고 싶어서 여자로 바꾸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이미 선택되어진 것 이외에 우리는 매일 같이 이런 날마다의 선택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음식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옷은 어떤 것을 입을 것인가? 또 친구를 누구를 사귈 것인가? 좋은 친구를 사귀면 좋은 영향을 받고, 나쁜 친구를 사귀면 나쁜 영향을 받고, 신앙적인 사람을 사귀면 신앙적인 영향을 받고, 세속적인 사람을 사귀면 세상적인 습관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떤 결정을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결정을 한 것에 대해서 행동을 하게 되고, 그 행동에 따라서 인생의 발걸음과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도 매일매일의 선택이 우리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영적 세계에도 선택이 필요하고, 그 선택의 결정에 따라서 영원한 운명과 축복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여호수아라고 하는 모세의 후계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에 놓고 "너희는 들으라"고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다. 너희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을 섬기던지, 너희가 거하는 땅 이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을 섬기던지 너희 섬길자를 오늘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서서 백성들에게 이 선택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고 싶지 않으면 여러분 조상이 메소포타미아와 에집트에서 섬기던 신이나 현재 여러분이 사는 땅의 아모리 사람들이 섬기는 신이든지 여러분이 선택하십시오.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에게 소속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고아아 되어서는 안됩니다. 또 둘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인지, 아니면 세상의 신을 섬길 것인지 이 둘중의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택인 것입니다. 이 선택을 바로 해야 될 것은 올바른 선택, 유일한 선택, 당연한 선택, 영원한 선택을 할 때에 이것이 우리 인생과 영원에 하나님의 축복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선택하라고 강조했습니까? 또 왜 하나님을 선택해야 됩니까? 그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지으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그 분을 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그 분을 선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LA에 계시는 권사님을 만나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권사님 이름이 무엇이냐 하면 확실입니다. 아주 확실한 이름입니다. 그런데 성이 중요합니다. 이름이 확실하지만 성이 노씨라든가, 안씨라든지 하면 안확실, 노확실 하면 확실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또 어떤 분은 성이 반씨도 있습니다. 그래서 권사님께 물었더니 자기는 김확실입니다. 라고 하셔서 이름이 너무나 좋습니다라고 했더니 그 분은 자기는 어렸을때부터 확실한 것을 좋아했답니다. 부모님이 너는 확실하다고 해서 이름을 확실이라고 지어줬다고 했습니다. 함께 계시던 목사님이 이 분은 신앙도 확실하고 모든 면에서 확실합니다 하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예수 믿기 전에 다른 종교를 다녔었는데 거기에서 애도 많이 쓰고 일도 많이 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확실한 것이 별로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 하늘과 땅을 누가 지었는지 창조론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인간이 죄를 어떻게 짖고, 그 죄의 문제를 어떻게 속죄하느냐 속죄론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람이 죽으면 죽었다가 영생과 내세가 확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죽으면 벌레가 짐승이 된다, 짐승이 된다는 얘기가 오고 가는데 도대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가 확실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격은 이름대로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데 이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교회에 나가는데 어느날 아들을 따라 교회에 나와서 성경 첫페이지 창1: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다"는 확실한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입니다. 설명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냥 선포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보니 인간 타락한 죄가 확실하고, 그 죄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고, 예수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이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자는 예수와 함께 부활하고 영생을 얻으며 천국에 가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계3:14 에는 그가 창조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 5:1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에 원숭이 만들고 사람만든 것이 아니고 사람을 먼저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이것이 확실한 것인데 창조주가 확실합니다.
신4:32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날에"
사40:26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엡3:2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행4 "천지와 바다와 그 안에 만유를 지으신 이가"
히브리서에서는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보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창조주가 피조물인 인간이고 피조된 인간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탄식이 생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3절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것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슬프다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이요, 창조자의 탄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을 낳았는데, 그 자식이 부모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커서 부모가 무엇이냐고 한다면, 자식이 부모를 인정하고 사랑을 확인하고, 감사하고, 그것이 행복이고 피차에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도우시고, 축복하시고, 인도하시고, 은혜를 주셨는데 내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섬겨야 되느냐? 나는 내가 잘나서 잘먹고, 잘살고, 잘지내는데 날 바더하지 말라 하고 하나님께 말씀을 드리면 하나님의 고통과 탄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공중의 학도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창조하신 분을 아는데 그래서 우리가 첫 번째 선택해야 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분이시라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확실한 선택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물론 어떤 분은 나는 아직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분도 있습니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선택하는 것도 선택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것도 선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앞에 선택을 오늘 하라는 것입니다.
저희는 7년동안 감사절에 초청해 오셨던 분들한테 예수님은 누구신가? 교회는 어떤곳인가? 많은 분들이 교회에 대해서 오해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싸우는 곳이다. 교회는 말이 많은 곳이다. 교회는 돈이나 내라는 곳이다 등등의 소문만 들으셔서 교회에 대해서 나쁜 이메지를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교회는 어떤 기관이라는 것을 설명드렸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누구시라는 것을 설명들렸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그리스도를 주셨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제가 7년동안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 하나님과 그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될 시간이 왔습니다. 여호수아가 말한 것 처럼 오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라고 말했지만, 다윗은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예배하고, 섬기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해야될 중대한 시기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그리고 죽으셨기 때문에 그 분을 받아들여야 된다는 두 번째 선택의 이유를 말씀드립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그의 출생이 다른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그의 삶이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으며 그의 죽음이 다른 어떤 사람이 따라 올 수 없는 죽음입니다. 그의 부활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결정적인 부활의 생명을 얻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가 교제를 새롭게 하자고 아들을 보내셨기 때문에 마지막 메신저 하나님 자신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저를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권세를 받아서 예수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고 원수 되었던 하나님의 관계가 새로워 진다는 것을 성경의 말씀에 예수그리스도 위에 인생과 삶을 설계하라는 것입니다.
찬송 539장에는
"이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주 예수 뿐일세 우리주 예수밖에는 믿을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위에 내가 서리라 그위에 내가 서리라"
이 찬송은 원래 미국 사람이 1800 연대에 작사를 했습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나의 소망을 어디다 세울 것인가 하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과 그의 거룩하신 의라는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곳에는 이 소망을 두지 않겠다고 찬양한 글입니다. 후렴에 보면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위에 내가 서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위에 내가 서리라. 반석 예수그리스도 위에 세워야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끊어지고 그런 날이 되어도 예수언약을 믿고 소망을 더욱 굳게 세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을 이 세상의 부귀나 명예나 건강이나 쾌락에 근거를 두면 어느 순간에 바람이 불고, 물결치면 그것이 다 모래성처럼 넘어지지만, 건강도 한 시대가 지나면 늙고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꽃이 피어도 10일이 지나면 시드는 것처럼 세상에 있는 모든 그라운드는 sinking sand입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영원한 소망인 것은 그 분은 우리의 참 좋은 친구가 되시고, 그 분은 우리의 영원한 구주가 되시고, 그 분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이 되셔서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시고 그가 우리를 늘 붙잡고 인도하시는 좋으신 분이시며, 그분이 우리를 영원까지 인도해 주실 분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냐고 소개할 때 저는 참 좋은 우리들의 친구라고 이렇게 그분을 부릅니다. 성경에 그렇게 말씀합니다. 좋은 친구는 언제 압니까? 어려운 일을 당해야 참 친구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참 좋은 친구가 되셔서 도와 주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병들고, 어렵고, 외로울 때, 괴로울 때, 부끄러움을 당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이 밤을 만나게 될 때도 조용히 함께 계십니다.
창28:10-15 보면 야곱이라는 꾀많은 청년이 인생의 밤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의 크라이시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사소한 사건 때문에 형의 오해를 받아서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 정든 고향과 사랑스러운 가족을 떠나서 먼 나그네 길을 가게 됩니다. 그는 해가 진 들판에서 밤을 만나게 됩니다. 두려움과 피곤함과 고향생각과 해가 저문 광야에서 외로운 밤을 만나는 야곱, 돌베개를 베고 밤을 지내는 야곱, 밤하늘 우러러 별을 바라보면서 외롭게 밤을 만난 야곱에게 하나님은 하늘을 여시고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놀라운 환상과 축복을 그에게 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외롭고 어려울 때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참 좋은 친구가 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와 같이 계시면 우리는 아무 염려가 없으며 그분을 통해서 아버지께 갈 수 있고, 그 분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을 수 있고, 그 분을 통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고, 그 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면 그 분이 우리의 영원한 반석이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행여나 인생길을 다하고 인생의 황혼을 만나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때도 주님은 우리의 손을 잡고, 우리의 병상에 오셔서 피곤하고 지친 육체를 벋어날 때면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셔서 하나님 앞에까지 안내해 주시고 우리의 영원한 구주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선택해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선택해야 될 이유를 두 가지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혼자 살 것인가, 주와 함께 살 것인가? 죄가운데 살것인가,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 살 것인가?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신 천국, 예수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 천국 갈 것인가, 지옥 갈 것인가? 결정해야 되고 아직 안 갈 것인가를 여러분이 선택해야 됩니다.
여호수아가 오늘 섬길자를 선택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하나님을 등지고 어둠과 사망을 섬기고 악한자의 종이되어 세상을 살다가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인가도 우리가 선택할 권한, 선택할 축복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 주께서 우리에게 한없는 축복을 주셨고 그렇게 많은 은혜를 입혀 주셨건만 저들이 주님 앞에 감사하지 못하고 주님 앞에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았었습니다. 감사절에 조용히 다시한번 감사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주님 축복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은혜 감사해서 마음과 정성을 바칩니다.
자비하신 주님! 오늘 결심한 분들 하나님 축복해 주셔서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 신앙의 능력이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저들의 마음에 와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축복하신 것과 영생과 진리가 그 안에 생명이 역사하듯이 충만하게 해주시고 인쳐주시옵소서! 성령이 오늘 인쳐 주셔서 도장찍듯 확실하게 믿음이 마음에 선물로 받아지게 해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주이신 것과 예수그리스도가 속죄주이신 것과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을 확신하고 믿고 따라가게 해 주옵소서! 나와 내 집을 하나님 섬기기로 이미 결정한 사랑하는 권속들에게 축복하셔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어서 오직 한 주인을 섬기는 신실함으로 섬기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