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맛나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박경선 칼럼)180321.hwp
http://www.idaegu.co.kr/news.php?mode=view&num=254499
박경선(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과 강사)
‘저 사람은 자기가 맡은 일을 과연 즐겨하는 것일까?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을까?’ 불성실하게 일 처리하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성실하게 사람 대하는 따스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책속에나 있을까?
‘쎄어러 스튜어트’가 쓴 『리디아의 정원』 은 동화이지만 어른에게 더 따스한 생각을 주는 책이다. 아버지가 실직해서 리디아를 빵집을 하는 외삼촌 집에 보낸다. 주인공 리디아는 떠나기 전 외삼촌에게 편지를 부친다. ‘저는 원예는 좀 알지만 빵은 전혀 못 만들어요. 그곳에 꽃씨를 심을 데가 있나요?’ 등 앞으로 그곳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관심을 적은 편지다. 외삼촌 집에 가서 머무르는 동안 빵 만드는 법을 배우면서 꽃씨를 비밀 장소에 심는다. 날이 갈수록 꽃밭에 이끌린 손님들이 몰려와 ‘원예사 아가씨’라 부르고 삼촌댁 빵가게가 잘 될 때 리디아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가 직장을 얻었기 때문에 이산가족이 다시 모여 살게 된 것이다. 리디아가 외삼촌 집에서 일 년 머물렀지만 떠날 때 둘레 사람들이 서운해 하는 표정을 보면 안다. 그녀가 머물면서 한 일, 낯선 곳에서 슬퍼하지 않고 빵가게 둘레에 꽃을 심고, 옥상에도 꽃, 채소로 정원을 만들어 괴팍한 외삼촌 마음을 열게 하고 빵가게 손님까지 북적거리게 끌어놓은 일들이 리디아의 부지런한 손이 이루어낸 성과라는 것을 말해준다. 자기가 즐겨했던 꽃 가꾸기로 낯선 곳, 어두운 구석을 환하게 변화시켜가는 리디아의 밝은 성격이 돋보였다. 그래. 어디서나 성실한 성격 좋은 사람이 주위를 밝힌다.
책 밖 세상에서 자기 일을 즐겨하는 성격 좋은 사람을 만나면 살맛나는 세상을 만난 것이다. 운이 좋은 탓일까? 살맛나는 세상을 보여준 성격 좋은 사람을 만났다. 네팔에 봉사활동을 떠날 때다.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기 위해 일주일 전에 먹어야 하는 약을 사러 갔다. 특별한 약이라서 대학 근처 약국을 두루 다녀봐도 없었다. Y대 앞 <봄약국>에 들어가서 약 이름을 말했을 때 젊은 청년 약사가 웃으며 나섰다. “지금 없지만 약을 구해서 저녁에 제가 댁까지 배달해 드릴게요.” 통닭도 아니고 짜장면도 아니며 약값도 몇 푼 안 되는 약배달이라니! 거리도 엄청 먼 곳까지 약 배달이라니! 그전 약국들은 구해 놓을 테니 언제 다시 오라고들 했는데... 저녁에 배달된 약봉지를 받고 보니 복용법 외에 자기도 봉사활동 다녀온 곳인데 잘 다녀오라는 글과 함께 초콜렛도 두 알 담겨 있었다. 그 뒤로 여기저기에 다니며 ‘봄약국’이라는 간판들만 봐도 그 간판들이 ‘신창엽’ 약사 이름으로 대치되어 읽혀진다. 일을 즐겨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렇게 까지 최선을 다해 손님을 대할 수 있을까. 그 청년약사는 지금도 나를 가르친다. ‘당신도 나처럼 사람들이 감동하도록 성실하게 대하라.’
나도 42년간 일터에서 최선을 다했다며 자부하며 살아왔지만 상냥하지 못한 성격이라 나에게 감동받은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문득, 최근에 받은 메일 한 통이 생각나 받은 편지함을 열어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얼마 전,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선생님이 쓴 동화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생각이 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최근에 쓰신 <마음이 자라는 교실 편지> 책에 선생님의 메일 주소가 적혀 있어, 반가운 마음에 이렇게 메일을 쓰고 있어요. 사실 저희 담임선생님은 아니었지만 저희 반 친구를 특수학급에 데려다주면 선생님이 쓰신 동화책을 선물로 주고 칭찬해주셨지요. <신라 할아버지>와 <너는 왜 큰 소리로 말하지 않니> 그 책은 현직 교사가 된 제 책상에 아직도 꽂혀있답니다. 고등학교 시절, 진로를 선택할 때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늘 장애아를 위해주는 선생님을 보면서 저도 장애에 대한 인식을 긍적적으로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거든요. 덕분에 꿈을 가지고 공부해서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제주도 초등 특수 임용 시험에 합격해서 현재 제주 삼양초등학교에 근무하고 있어요. 아직 2년차 햇병아리 교사라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저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습니다. 저의 다음 꿈은 장애를 다양성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동화작가가 되는 것이에요. 제가 이렇게 행복한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은 선생님께 받은 영향이 참 큽니다. 그래서 늘 선생님께 감사하다고 연락을 드리고 싶었는데, 선생님을 찾아서 참 기뻐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제주도로 오게 되었습니다. 한 번 기회가 된다면 선생님께 직접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제주도에 오실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 나가겠습니다. 날 좋을 때 한 번 놀러오세요.>
날 좋을 때, 8월 중순 쯤! 짬 내어 수영이를 만나러 제주도에 다녀올 생각이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을 훌륭하게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밥 사고 차도 사고 내가 쓴 책들도 선물로 들고 가야겠다. 살아온 세월 속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인정받는 것도 살맛나는 세상이다.(18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