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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사역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택하신 나라 택하신 민족의 1차적 형성기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상세히 설명하시고 마지막장은 요셉의 죽음과 유언으로 마감을 하고 있다
창세기의 시작이 천지창조인데 마감은 죽어가는 요셉의 유언으로 정리되어지고 있다 무슨 이유인가 요셉의 유언이 천지창조에 버금가는 정말로 가치있는 성경에 꼭 자세하게 기록되어져야할 그 이유가 하나님의 섭리와 비밀이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다 요셉의 유언은 천지창조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는 명분과 밀접한 관계로 신약성경이 시작되는 요셉의 유언이 후손들의 믿음에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자신의 무덤을 애굽에 만들지 말고 유골을 아브라함과 조상들이 묻힌 가나안땅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여 달라고 유언했다
요셉은 12형제중 11번째로 나이로 보면 막내급 이였지만 110세로 제일 먼저 죽었다 애굽의 총리로서 이주한 형제들의 안정과 이스라엘의 번성을 위하여 요셉이 총리로 오래 살았어야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죽도록 조치하셨다 혹 우리가 놓친 무슨 진리가 있었던 것일까.. ?
그렇다 요셉이 현직 총리로 재직타 죽었으므로 애굽식으로 장사를 치르면 당연히 피라미드를 만들고 웅장한 무덤을 만들어 형제와 후손들이 애굽식 제사문화를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400여년 동안은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요셉은 유골을 수습할 수 있도록 가매장만 유언했던 것이다 아버지 야곱처럼 버금수레로 장사를 치를수도 있었는데 왜 유골만 챙기라고 하셨을까 ? 마지막26절 입관하였더라는 원어로는 옷(수의)를 입혓더라이다 입관은 우리식 매장 문화로 이해되도록 번역한 것이지만 요셉의 장레는 가매장임을 나타내고 있다
기독교인의 죽음과 장사 문화는 세상과 구별되어져야 하는 이유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땅 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은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나무가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되어지도록 마지막까지 배려하셨다
그곳은 성문에 들어오는 모든 헷족속들이 바라보이는 곳이었고 헷족속들이 모두 바라보는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되어진 곳이다 (창23:18)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까지 4대가 묻혔다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면 무덤의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에브론의 밭과 나무와 굴이 포함된 곳이었다라고 소상하게 기록되어졋을까 그리고 그 무덤이 성문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바라 볼수 있도록 하셨을까
막벨라 굴은 갈라진 동굴이라는 의미이다 세상과 죄악과 불순종과 지옥과 천국이 확실하게 갈라지는 것이 인간의 출생과 죽음이라는 의미였다
히2:14-16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 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헤브론은 교제의 자리라는 의미이다 삿4:1 보아스가 기업무를자를 만나 원로들 앞에서 교제하였던 자리이다 마므레는 뜨거운 관계를 의미한다 성문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첫 눈에 보이는곳 성민들이 저절로 모여드는곳 이런곳에 교회에 세워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브라함은 그런곳을 선택하였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과 뜨거운 교제를 하는 믿음의 자리 즉 믿음의 중심을 택한 것이었다 이 자리 믿음의 중심을 지키는한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모두 책임져 주실 것을 알고 믿었다 당시 요셉의 권세는 아버지 야곱을 버금수레로 황제급 화려한 장례를 가나안까지 가서 치럿다
본인도 최소한 이정도는 가능하였을 것이다 그런대 가매장이라니, 유언은 그냥 재인의 호불호를 따라 하는 것 아니다 성도의 유언은 신학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브라함 (창21:8) 이삭 (창35:29) 야곱(49:1)은 모두 유언으로 이곳에 묻혔다 마지막으로 요셉을 먼저 죽음을 맞도록 하심으로 막벨라 굴에 묻혀야할 유언을 후손들에게 행하도록 은혜를 베푸셨다
요셉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가나안으로 향할 소망과 이정표가 되어지게 하였다 당시 만약에 요셉의 무덤이 애굽에 조성되었다면 영원히 애굽에 거주하라는 메시지로 후손들이 받아 들였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추구해야할 최종 목적지는 애굽이 아닌 가나안임을 심령속에 각인이 되어지도록 하였고 그 유언은 400년이 지난 후에 어김없이 실행되어졌다 후손들은 요셉의 유골을 막벨라 굴에 매장 하기 위해서라도 출애굽의 길을 걸어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런 권능의 유언을 오늘도 행사 하여야만 한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요셉의 유언을 400년 동안 잊지 않고 기억하며 실천한 것은 바로 이 유언이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문25절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 이 말씀 유언은 출3:19에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찿아오시리니 라고 기록되어짐으로 현실로 실행되어졌던 것이다
인간의 출생은 내 의지와 생각과 상관없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죽음은 유언이 있고 내세가 있어 이를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후손들에게도 선택의 기회를 주도록 가르치는 것이므로 인간은 죽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아무생각없는 죽음은 허망한 공동묘지로 향하는 이정표지만 지혜로운자의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가나안이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이정표는 족적과 후손을 남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요셉까지의 족적은 어떤 모습이었든 후손들에게 영향을 크게 미쳤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래서 장례식장은 내세를 위한 하나님 말씀의 교육장이 되며 그 출발점이 되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창1:1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빛과 어둠을 나누셨다
창세기 마지막은 요셉의 죽음과 유언의 말씀으로 창세기가 마무리 되어진다
그런데 꼭 행하여져야할 하나님 말씀에 버금가는 요셉의 유언이 기록되어졋다 후손들이 그 유언을 지켜 행하였다
오늘날 하나님 앞에 형제 자매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들, 때로는 부모님 추모식을 할 때에 자손들이 모여 부모님 은덕을 기리며 유언의 말씀을 기억하기도 한다 되도록 그 유언 지키고자 맹세를 다짐한다 그런데 후손들이 자신 이 지킬수 없는 유언이면 외면 하게된다 그러므로 유언은 꼭 지켜질수 있고 지킬수 있는 것을 하여야 유효하다 유언은 오직 하나다 내가 먼저 천국 갔으니 너희들도 천국으로 와라 그곳에서 다시 만나 영원토록 하나님 찬양하며 영생하자 요셉이 100여년 동안 애굽에서 후손들에게 얼마나 본을 보여 신뢰를 쌓았으면 400여년 후에 집떠나면서 그 유골을 메고 40년 광야길 헤메이면서도 버리지 않고 7년 가나안 전쟁 하면서 때로는 아이성에서 목숨 구하고자 죽자살자 도망 갈때도 창과 칼은 버렷어도 꼭 메고 다녓던 유골이다 창1:1은 빛과 어둠이 갈렷지만 창50장은 생과 죽음과 나뉘어도 유언은 갈라짐 없이 대대로 함께 하게 되었다 왜? 말씀이니까
출생은 타의로 결정되었지만 죽음은 나의 선택이고 유언없는 죽음은 죽음마저 타의로 결정지어진다
스티브잡스라는 사람의 유언중 일부는, 평생 축적된 모든 경험이 그냥 없어져 버릴까 아니 뭔가 살아 남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존재의 소멸이 아니다
요셉의 죽음도 소멸이 아닌 존재의 의식으로 이스라엘 후손들의 마음에 깊이 각인이 되어졌던 것이다
요셉이 죽고난후 2천여년이 흘럿다
눅2:10-12을 보면 베들레헴 땅에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던 날 밤중에 그 들녘에서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져 있다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메시아가 오신 소식을 천사들이 내려와 처음으로 전했다
왜 하필 들녘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이 기쁜 소식이 맨 처음 전해졋고 그들이 막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찿아가 경베하며 천사들과 함께 찬송하였을까? 그것은 선조들의 유언을 잘 지킨 목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 유언을 남겼고 믿음의 후손들은 그 유언을 믿음의 신조로 삼아 잘 지켜왔다 그런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때를 따라 천국잔치에 가장 적합한자로 초청되어지기 때문이다
목자들은 어떤 사람인가 그 실체를 알게 되면 답이 나온다
고대근동 지방에서 가장 비루한 사람들의 집단이 목자들이다 목자는 짐승들과 함께 숙식하며 지냇다 옷은 단벌이고 땀과 짐승 냄세로 쪄들어 진동한다 그러므로 좋은 옷을 입을 이유가 없다 허드레 옷이고 짐승들과 딩굴어도 아깝지 않다 그러니 그 까다로운 율법을 제대로 준수할 수가 없다 음식도 가려 먹을수가 없고 손과 발을 깨끗하게 씻을수 있는 규례는 거의 지킬수가 없다 안식일을 밥먹듯 어겼고 성전이나 회당에 찿아가서 반듯한 예배한번 못드렷다 그리고 대부분이 사기꾼으로 낙인 찍혓다 주인의 감독을 받지 않다보니 양을 몰래 훔쳐 남의 땅에 방목하기도 하고 양이나 양털 우유등을 주인 모르게 사고 파는 속임수를 밥먹듯 했다
그래서 유대 법정에서는 목자들은 증인으로 세우지도 않을 정도로 신용이 없는자들이었다 한마디로 정통 유대교인들은 목자들을 세리나 창기처럼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술과 노름과 음담패설로 찌들어 살았다
그런 목자들에게 경천동지할 대 사건이 일어났다 모세에게나 나타날법한 주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두루 비취고 천사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마리아와 요셉의 마굿간을 찿아냈고 구유속에 누운 아기를 발견했다 그 목동들은 아기예수께 절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은 자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선한 목자이심을 알았다(요10:11)
그리고 그 아기에게서 온 인류의 죄를 지고갈 하나님의 어린양이심을 알았다 (요1:29)
그들은 목자였다 그래서 선한 목자이심을 바로 알아 보았다 그들은 아침 저녁으로 성전에서 제물로 바쳐졋던 어린양을 예루살렘 성전에 공급하는 성전에서 가장 가까운 베들레헴 들녘의 목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키운 양들은 아무 흠 없이 길러져도 죄를 다 씻지 못하여 매번 때를 따라 제사로 희생을 치르는데 어린양 되신 예수님은 단번에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영원히 씻어 주실 구세주이심을 알아본 것이다 이 기쁜 소식을 천사들과 함께 합창으로 찬송하였던 그 자리에 오늘 여러분께서도 초대를 받았습니다
초대 받으셨으면 함께 찬양합시다
“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11) ”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은 예언자들은 때가 되면 유대땅 베들레헴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 하신다라고 예언하였다
오늘 본문의 요셉의 유언은 400년 후에 후손들에 의해 성취되었다
그러면 누가복음에 나오는 아기 예수님을 처음 만난 베들레헴 목자들과 구약 예언자들의 예언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에는 라못라헬이라는 영어 알파벳 브이자 형태로 되어 있는 언덕이 있다 지금도 그곳에는 목자들의 교회가 있고 대대로 양을 치는 현장이 벧학게렘이고 현재 지명은 라못라헬이다
느3:14 그러나 거름문은 (똥문) 벧학게렘의 일부를 치리하는자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보수하되 그가 그 문을 건축하고 그것의 문짝과 자물쇠와 빗장을 달았더라
예루살렘에서 생성된 똥같은 오물을 내다버리는 들녘에서 목자들이 양을쳣다
렘35:1-10 당시 레갑 사람들에게 통치자들이 포도주를 마시라 하였으나 그들은 우리 조상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유언하여) 이르기를 포도주를 영원히 마시지 말라 집도 짓지 말고 씨도 뿌리지 말고 포도원을 세우지도 말며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고 평생동안 장막에서 거하라 그러면 너희가 나그네로 지내는 땅에서 오래 살리라 하는 유언을 순종하며 살던 목자들이었다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하다 유다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시대에 왕은 많은 개혁을 단행하면서 백성들이 말을 잘 듣지 않자, 백성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가장 고집세고 경건주의자들이며 고지식하기로 유명한 레갑의 자손들을 성전안으로 불러 장관들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포도주를 마시게 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300년전에 조상 요나단이 명하였던 유언을 굳건히 지켯기 위하여 왕의 명령을 거부하였다 죽음을 각오한 무모한 거부였다 “ 우리 조상들이 이런 명령을 하였다” 라고 하면서 그 명령을(유언을) 지키려니 그들과 그 후손들은 목동외에는 아무 직업도 가질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요나단은 예후와 함께 (왕하24:14) 북이스라엘 개혁 정치를 함께 하다가 결별했다 예후가 바알신과 아세라 신상을 엘로힘 하나님의 종교와 섞어서 섬기자고할 때 요나답이 반대했다 종교를 섞을때 술잔을 헌주하면서 주고 받는 모습을 보고 종교를 혼탁하게 섞게되는 요인이 포도주였기 때문에 후손들에게 포도주의 음복을 절대 금하라는 유언을 하였고 그 후손들은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 때까지 이를 잘 지켜왔다
특히 레갑의 후손들은 바벨론이 쳐들어 오고 이스라엘 고관대작부터 백성들까지 다 포로로 끌고 갈 때에 비천한자들로 구별되어 포로의 가치가 없다고 남은자들이 되어 가나안 땅을 지키게 되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오직 목동으로 하나님께 예물로 드릴 양을 키우며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메시아께서 선한목자로 오시기를 학수고대 하며 살았다 포도주를 영원히 마시지 않음이 이 땅을 지키는 은혜임을 자각하며 요나단의 유언을 지켯다
이제 예수님 탄생을 그 목자들에게만 경배하게 한 이유를 알게되었다 그들은 조상적부터 대대로 약속한 말씀을 붙들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비루하고 비천한 이땅의 삶이었지만 가슴 뭉클한 사연을 가지고 메시아를 기다리며 오랜 기간동안 희생 제물로 드려질 어린양의 털을 다듬고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탄생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목자들에게 천사를 보내 알게 하셨던 것이다
우리나라 교회에도 헌신 예배가 있다 그런대 헌신에 대한 개념이 잘 정리되어지지 않고 있다 교회에 나와서 주차봉사 식당봉사 찬양대봉사 주일학교봉사등등을 하고 있는데 이를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헌신은 아주 쉬운 것이다
헌신이라는 말은 내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고 구별되어진자라는 의미이다
내가 과연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존재로서 자아와 싸우며 승리하는 것이 헌신이다
나실인이 있다 3가지 금기사항이 있다 머리에 삭도를 대지말고 시체를 손대지 말고 포도주를 먹지말라( 민6:3, 6, 8:5)
머리에 삭도를 대지말라는 의미는 누군가 나를 지배하는 분이 계신다 누군가 너를 지배한다는 것을 잊지말아라 시체를 만지지말라는 더 이상 죽음과 관계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우리를 옮겨 놨기에 더 이상 우리는 죽음과 관계없다 포도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엡5:18술 취하다는 단어는 헬라적 개념으로 충만하다 지배하다는 개념과 같다 하나님께 지배되는 사람은 술에 지배되면 헌신을 할 수가 없다는 의미이다
벧학게렘 목자들은 무식하고 사회적 약자였지만 자기 일에 충실하였다 조상의 유언과 성경 말씀을 붙잡고 오랜 세월 메시아를 기다리며 살았다
세상에 살다보면 때로는 애굽왕 파라오처럼 바벨론 왕처럼 강제노동에 포로로 잡아가기 까지 죽지못해 살아가는 환경으로 지배하지만
성경 말씀을 보면 거기에 굴하지 않는 남은자들이 있다
재난 가운데서 살아 남은자 (레26:36 민24:19) 하나님께서 죄인을 벌 하실때에 멸망치 않고 살아남은 소수자 (사10:20 렘31:7)
고난중에 죄악과 짝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해 믿음으로 승리한자들 하나님께서 이런자들을 남겨 놓으신 일차적 목적은 이들의 구원에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통해 구속 역사를 이루어 가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창6:5-8 출2장 민14:29-30 왕상19:18 사10:20-22 미2:12-13)
바울은 환란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구원을 대망하는자를 남은자로 정의 했다(롬9:27)
지금 대한민국을 바라보면 성경에 기록된 남은자들의 환경과 버금이다
예방과 치료가 어려운 전염병, 상처입은 국민들을 위한다고 내놓은 정치적 의학적 종교적 처방들을 보면 하나같이 미덥지가 않다
특별히 기독교적 신앙으로 바라보면 예후의 개혁주의를 추종하는 종교인들도 많다 믿음의 시각이 아닌 정치적 시각으로 처방을 하기 때문에 어느 사이에 세상 예법에 따라 포도주가 스며들었다 작금의 현실은 예후같은 지도자는 우후죽순인데 그들은 나실인으로 지켜야할 계명을 삼손처럼 3가지 모두를 범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요나답 같은 혼탁하고 하나님 기준으로 우상과 야합하는 세태를 바로 잡는 지도자가 희미하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남은자를 두신 이유를 알 듯 하다
예수님 시대에도 썩어가는 유대교 지도자들 중에 니고데모 아리마대 요셉 바울 같은자를 통해 남은자들의 꼭 해야할 일을 성취해 가시고 있다 물론 그들은 현세에서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극히 위험한 행위였지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은총을 누렷다
레갑의 후손들처럼 하나님 말씀 조상님들의 유언 붙잡고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살아간다면 아브라함처럼 막벨라굴에서 안식을 취하면서 세상과 죄와 불순종과 지옥의 죽음으로부터 구별되어 살면서 이 땅에 다시 오실 주님을 가장 먼져 영접하고 천사와 함께 찬송하며 기쁨을 함께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실 것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 복음 전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