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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교회 시대의 강해(7부)-사데 교회시대.
*소 개*
월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는 1960년 12월 4일부터 11일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요한계시록1~3장까지
일곱 교회 시대에 관한 메시지를 연속으로 설교했는데, 이 지면을 통해서 시리즈로 소개해 드리고자합니다.
윌리엄 매리언 브래넘 형제님의 놀라운 사역은 말라기4장:5~6절, 누가복음17장:30절, 계시록10장:7절, 등등,
성경에 예언된 말씀에 대한 성령께서 입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의 세계적인 사역은 다른 여러 성경 예언들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이루어졌으며 이 마지막 때에 성령께서 그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확증시켜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그의 사역은 신부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시켜 휴거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로 이 메시지를 읽는 동안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비(마음 판=고후3:3)에 쓰이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정확하면서 편집하지 않은 번역을 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하였지만, 영어 오디오 파일들이
브래넘 형제님이 하신 설교를 있는 그대로 전해 줄 것입니다. 브래넘 형제님이 설교한 1,100여개의 설교들은
여러 언어로 통역과 번역이 되어 있으며, www.messagehub.info 에서 다운로드 받고 인쇄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된 메시지 책자들을 보고자 하시면 한국성서교회 (biblechurch.kr) 를 방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설교 책자에 대해서 문의하실 일이 있으신 분들은 이 메일 주소는 biblechurch77@gmail.com 입니다.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바이블 애플 KJV 흠정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계시록3:1.사데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아있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죽었도다. 2.깨워서 남아 있으나 죽으려 하는
것들을 강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완전함을 찾지 못하였나니 3.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고
들었는지 기억하고 굳게 붙잡아 회개하라. 그런즉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네게 이르리니
내가 어느 시각에 네게 이를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사데에도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이름이 네게 있어
그들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걸으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들이니라. 5.이기는 자 곧 그는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 사데는 고대 리디아의 수도였습니다.
그곳은 리디아 군주들의 손에서 페르시아인들에게로 다음에는 알렉산더대제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안티오쿠스대제에게 점령당했습니다. 그리고 버가모 왕들이 통치하다가 로마인들이 정복했습니다.
티베리우스 시대에 그곳은 지진과 전염병으로 황폐해졌습니다. 오늘날 그곳은 무너진 돌 무더기만 산재해 있고
사람이 거주하지 않습니다. 이 도시는 한 때는 상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플라이니는 모직 염색
기술이 여기에서 발명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모직 염색과 카페트 제조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지역에는 금은이 꽤
많았고 금전이 처음으로 거기에서 주조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노예 시장도 있었습니다. 이 도시의 종교는 씨빌리
여신을 불순하게 숭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너진 성전의 거대한 잔해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버가모 시대에서 제가 모자(母子) 로 알려진 쎄미라미스와 니누스의 바벨론식 개념은 아시아에서는
씨빌리와 디오이우스가 되었다고 말씀드렸던 것을 상기하실 것입니다. 이 둘에게 있는 속성들은 그것들을 나란히
놓고 보면 정말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는 태양신이었고 그녀는 달의 여신이었습니다.
그는 하늘의 주고 그녀는 하늘의 여왕이었습니다. 그는 선함과 진리를, 그녀는 부드러움과 자비를 계시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중보자이고 그녀는 여자 중보자였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도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동일한 열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은 자들을 심판하는
자들이었으며, 그녀는 그의 옆에 서 있는 자였습니다. 그는 죽임을 당했다가 부활하여 하늘에 올라갔고,
그녀는 그 아들에 의해 몸이 거기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로마에서 이 신은 우리 주님의 직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로 그녀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불리웠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모자 개념이 그토록 거대한
크기로 차지했던 다른 두 시대들에서 우리가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십시오, 바벨론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들 숭배가 어머니 숭배에 비해서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실제로 아들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서 사데의 이교도적 숭배는 그
여자를 숭배하는 것이었음을 봅니다. 씨빌리와 디오이우스가 아니라 씨빌리 하나. 어머니가 실제로 아들의
자리를 대신했고, 신성의 좋은 점들을 부여받았습니다. 이 시대의 종교가 어디에서 나온 건지 이해하려면,
로마 교회가 마리아에게 붙여준 다양한 칭호들과 훌륭한 속성들을 알아보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이 씨빌리 숭배를 조사할 때 두 가지 사실이 제게 아주 강하게 부딪혔습니다.
하나는 그녀가 야누스처럼, 그녀에게 야누스와 똑같은 권세를 주는 열쇠(하늘과 땅과 비밀들을 여는 열쇠)를
하나 차고 있었다는 사실이고 경배자들은 몸에서 피가 솟아오를 정도로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였다는 사실인데,
그 일은 주님처럼 고통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카톨릭 교인들이 오늘날 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이 시대가 실제로 번성하던 교황의 로마가 처음 분열되는 시대라는 사실입니다. 이 시대에 이제 마리아는 아이를
가지도록 택함을 입은 처녀로 하나님께 받은 은총을 제외하면 구원의 계획에 있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며
마리아 숭배 사상을 강하게 부정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이들 개신교도를 단호히 반대하며
마리아 숭배 교리를 강화하고 강조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때 루터는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구체화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행위와 참회와 기도와 다른 비 성서적인 수단들을 더욱 고수했습니다.
그리고 노예였다가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이 아들을 영화롭게 하자,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 신격화를 증가시켰고,
마침내 이십 세기는 (최고 지위에 있는 로마 신학자들을 반대하면서) 파이어스 교황이 실제로 마리아를 높여서
부활했다고 하면서 영화롭게 하는 것을 보기까지 되었습니다. 그 교리는 정말로 아들이 어머니를 하늘로 데리고
올라간다는 바벨론식 교리입니다. 이 시대가 다른 시대들로 이어져 마침내 음녀와 음녀의 자녀들이 둘째사망으로
죽임을 당하는 불못에서 종말을 맞을 때까지 갈 것입니다. 마리아 숭배는 곧 씨빌리 숭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씨빌리는 이세벨이 여제사장으로 있으면서 그녀가 집행한 음란한 의식들로 이스라엘을 걸려
넘어지게 했던 아스다롯임을 알고 계셨습니까? 네, 그것이 성경에서 나오는 아스다롯입니다.
사데 교회시대는 1520년에서 1750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그 시대는 보통 종교개혁의 시대라고 불립니다.
* 사 자.
이 시대의 사자는 모든 시대들 중 가장 잘 알려진 사자입니다. 그는 독일의 마틴 루터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 총명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한 가까운 친구의 지병과 사망이 그로 하여금
자기 삶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들 때까지 법률가가 되려고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1505년 에르푸르트에 있는 어거스틴 수도회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철학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도
공부했습니다. 그는 극심한 참회의 생활을 했지만 모든 외부의 행위들은 그의 죄의식을 몰아내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만들려고 나를 죽음에 몰아 부칠 정도로 괴롭혔지만, 여전히 암흑 가운데
있었고 그것을 얻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도회 부총장이었던 쉬타우피츠는 루터에게 구원은 의식보다
마음의 역사를 체험해야 될 것이라는 통찰을 갖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런 격려를 받고, 그는 더욱 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나중에 그는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는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말씀과 현존하는
위대한 신학 작품들을 탐독하고 깊게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심오한 지식과 대단한 열성 때문에
그는 교사와 설교자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다짐한 맹세를 성취하기 위해서 로마에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는 구원을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강요하는 행위들의 무익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강하게 내리쳤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성경구절의 복음적인 진리는 그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죄에서 자유롭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일 직후 그는 신학박사로 등용되어 “전 생애를 성서를 연구하며 충실히
설명하고 방어하는데 전념하라.”고 위임 받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했고 그의 마음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말씀의 진리에 깊게 고정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말씀은 교회의 신조들과 교리들의 남용과 공개적인 마찰을
빚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레오 10세가 교황이 되고, 존 테첼이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루터는 이 비 성경적인 가르침에 대항하여 일어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그는 강대상에서 그것을 공격했고,
다음에는 유명한 그 95개 조항을 써서 1517년10월31일에 캐슬 교회 문 앞에 못 박았습니다. 그로 인해 삽시간에
독일은 불타올랐고 개혁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 교회에 항거했던 사람은 마틴
루터가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명심하십시오. 그는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교황이 자신에게 수여한 정치적 영적인 권세에 대해 교황들을 부인했습니다. 교황들
사이에서조차도 작은 단시일적인 개혁들이 일어났습니다. 네, 문제들을 야기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루터의 경우에는, 교회가 한참 시일이 지난 후에 있을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회복되는 시초가 될 명확한 운동을
위해 하나님의 시간이 무르익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마틴 루터는 민감하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말씀의 사람이었는데 왜냐하면 말씀을 연구하는 데에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말씀으로 살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말씀을 이용 가능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신약을 번역해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이 고된 일을 혼자서 했는데, 한 구절을 스무 번 정도 교정했습니다.
그는 주위에서 유대인인 히브리 학자들을 한 무리 모아 구약을 번역 했습니다. 루터의 이 기념비적인 공적은
아직도 독일에서 계속되는 성경 작업 전체가 기초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말씀을 훌륭히 전하는 설교자였고
교사였으며, 특별히 공적으로 유명해진 초창기에, 말씀이 유일한 가치 기준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행위와 중생의 수단으로서의 침례를 반대했습니다.
그는 최초의 말씀과 오순절 개념처럼 그리스도의 중보가 인간의 행위와는 별개의 것임을 가르쳤습니다.
루터는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는데,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시간에 쫓기면 쫓길수록,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마귀와 싸우는 것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고, 어느 날 사탄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는데, 루터는 그에게 잉크병을 던지며 가라고 명령했
다고 합니다. 또 한 번은 두 명의 광신자들이 그에게 와서 모든 사제들과 성경을 추방하고 자기들에게 합세하라.
고 회유했습니다. 루터는 그들 안에 있는 영을 분별하고 그들을 쫓아버렸습니다. 루터는 선지자였으며,
전도자였고, 방언들로 말하며 통역하는 자였고, 한 몸에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를 다 부여받은 사람이었다고
싸우어의 역사 제3권 406쪽에 마틴 루터 박사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에 의해 그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그리고 오순절날에 그랬던 것처럼 진리가 교회로 돌아온 것을 의미하는 그 작은 파란 싹이었던 그것은
의롭게 됨(Justification칭의)의 교리 였습니다. 행위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구원입니다.
저는 루터가 의롭게 됨을 믿기만 하고, 설교만 했던 게 아니라, 그것은 말씀의 진리 중 기본이 되는 교리이기
때문에 그의 주된 주제여야만 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는 영원히 이 진리를 소생시킨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로 알려질 것입니다. 그는 사데 교회에 보내진 사자였고 그의 메시지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가 우리는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가르쳤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택하심과 예정론과 다른 진리들에 대한 그의 놀랄만한 이해력은 그가 말씀에 충만한 사람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도 역사가들처럼, 다시금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행위를 대적하는 하나님의 표준을-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하나님의 주권을 --전달하려고 그를 사용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미 언급했듯이, 이 시대는 역사가들에게 종교개혁기라고 불리어졌습니다. 그건 정말 사실입니다.
루터는 선지자가 아니라 개혁자였기 때문에 그래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역사책은 그를 선지자라고 부르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책이 항상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 단어에 대한 광범위한 성서적
의미로 볼 때 하나님의 진정한 선지자로서의 자질이 루터에게서는 하나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게 그 이유입니다.
그는 삶속에 성령의 표명들을 여러 개 가진 훌륭한 교사였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해 하나님께 찬양 드립니다.
그래서 그는 사도이며 선지자였던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교회를 모든 진리에로 복귀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루터가 관련된 문제들을 처리하는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처음 그는 무척 온유하고, 겁이 없고, 무척 참을성이 강하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하나님을
의뢰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숫자가 그의 깃발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순수하게 영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정치적 동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황의 멍에를 끊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에 돈을 보내는 걸 싫어했습니다. 광신자들이 일어났습니다. 곧 루터는 교회가 기도와 설교와 행동을
통해서 주목될 표준을 세우는 것 말고 실상 교회의 영역 바깥에 있는 정치적인 문제와 결정들에 말려들었습니다.
이런 정치 문제들은 쌓여서 마침내 루터를 지주들과 농민들 사이에서 중개 해야만 하는 지킬 수 없는 위치에
몰아세웠습니다. 그의 결정은 너무도 잘못되어서 소요가 일어나 수천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의도는 좋았지만,
교회를 정치적 상황에 다시 휘말리게 놔두었기 때문에, 그는 회오리바람을 거두어 들여야 했습니다.
그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마틴 루터를 사용하셨습니다.
그의 의도가 잘못된 것이었다고는 말하지 마십시오. 그의 판단이 빗나가게 되었다고 말하십시오.
진정 루터교인들이 그의 가르침으로 돌아가 이 은혜스러운 형제가 하나님을 섬긴 것처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은 분명히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칭찬거리와 찬양이 될 것입니다.
* 계시록3:1.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이전시대들에서 하신 것처럼 다시 한 번 성령은 그의 놀라운 속성들을 보여주시며, 주님을 계시해주고 계십니다.
이번에 그는 교회 가운데 서 계시는데, 그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으로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누가 일곱 별인지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곱 영들이 언급하는 것을 알아 봐야 만 할 것입니다.
이 동일한 구절은 계시록 중에서 네 번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계시록1:4.그분의 왕좌 앞에 계신 일곱 영과.
계시록4:5…왕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타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계시록5:6…그분께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었는데 이것들은 온 땅 안으로 보내어진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우선, 우리는 이 절들은 요한복음4:24절 상반절과는 다른 새 교리를 가르치고 있지 않는 것을 확실히 압니다.
“하나님은 한(하나) 영이시니.” 그리고 이것은 고린도전서12장8~11절과 같은 내용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 성령이 “아홉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표명하시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곱 영은 “일곱 겹의 방식”으로 나타내시는 동일하신 한 영이심을 뜻한다는 걸압니다.
그리고 계시록4장5절에서는 이 동일한 일곱 영은 주님 앞에서 타오르는 등불 이라고 불립니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구약의 상징만을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는 구약으로 가서 잠언20장27절 말씀을 봐야 합니다.
“사람의 영은 주의 등불(candle)이다.” 이제 일곱 영은 인간과 관련이 있음이 나타내졌습니다.
침례 요한은 요한복음5장35절에서 “그는 타오르며 빛나는 등불이었노라.”
계시록5장6절에서 “일곱 영을 다시 일곱 눈으로 하나로 일치”시켜졌습니다.
스가랴4:10절…그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과 그 일곱 눈이 함께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니 그 일곱 눈은
이리저리 온 땅을 두루 달리는 주의 눈이라.…이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우리는 일곱 눈과 일곱 영은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경우에 있어서 여호와의 눈이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역들은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이나, 그가 가진 지혜나, 지식으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한 사실들을 묶어보면 하나님의 일곱 영은 하나님이
자신과 매우 밀접하게 일치시킨 일곱 사람들의 삶 가운데 계신 동일한 성령의 연속적인 사역을 말씀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눈이고, 그들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나타낸
하나님의 등불입니다. 일곱 눈이 누구인가는 쉽게 알 수 있는데, 그들은 일곱 시대에 보냄을 입은 일곱 사자들인
일곱 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입니까? 그렇죠, 별은 해가 없는 동안 밤에 해의 빛을
반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각 시대의 사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빛을 반사해야만 했습니다.
그들 모두 다 성령으로 그렇게 했습니다. 바울은 첫 번째 에베소 교회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눈과 영을 가졌던
별이요, 메시지를 가진 사자였습니다.
갈라디아서1:8.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9.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은 그가 가고 나면 탐욕스런 이리들이 들어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탄이, 광명의 천사로
나타날 것이며, 그래서 그의 추종자가 얼마나 더 많이 나타날 것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다시 온다 해도 이 복음은 언제나 동일할 것이라고 거듭, 거듭, 거듭,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2장38절에서 사도 베드로가 선포하고 명령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고,
사도행전19장에서 에베소에 있던 요한의 침례를 받은 제자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재 침례”했습니다.
그는 교회에 질서를 세웠고 성령의 은사들을 적절하게 사용하도록 가르쳤고 예수가 오실 때까지 그것들이 교회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확증시켰습니다. 그 다음 나머지 여섯 사자들도 모두 다 동일한 성령으로 인해 똑같은 불로
불타오르고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주며, 표적들이 그들을 따를 것입니다.
이레뇨가 자격을 갖고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마틴은? 그렇습니다. 콜롬바는? 그렇습니다. 마틴 루터는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웨슬리는요? 네, 그는 위대한 사역을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자신의 말을 위해 병 낫기를
기도하자 병이 나았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일곱 교회 시대와 서로 똑같은 일곱 사자들입니다.
자, 바울은 자기가 사자라고 말하면서 다른복음을 가지고 다른 빛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방금 한 말이 나머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지합니까? 그렇다고 생각 하십니까?
누구든지 이 책에 더하거나 이 책에서 제하면, 그는 하나님께 재앙을 받고 저주를 받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하고, 생명책에서 그의 부분을 빼리라. 하셨습니다. 계시록22장18절.
우리는 일곱 영은 실제 다른 시대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한 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말씀에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엘리야 위에 강하게 임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 동일한 영은 두 배로 엘리사 위에 임했습니다. 몇 세기 후에, 우리가 그것의 사역을 기술하기 위해
엘리야의 영이라 부르는 영이 침례요한에게 다시 임했습니다. 언젠가 동일한 종류의 사역으로 나타내진 그
동일한 영은 이방인의 교회시대의 맨 끝에 한 사람 위에 임할 것입니다. 다시: 성경은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를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으셨고, 구약의 예언을 이루셨습니다. 그는 선을 행하며 마귀에게 억눌린 모든 사람들의
병을 고치며 기적들을 보이며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떠나시면서 그의 제자들에게 오순절까지 즉 자신
위에 임했던 그 동일한 영이 돌아와 그들 위에 임하고 그들을 채우실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그곳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세상에서, 교파들로부터 나와 부름 받을 교회(몸)가 있을덴데, 이 땅에서
그분의 자리를 대신할 것입니다. 그 일이 오순절 날 120문도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대로 믿는
자들 안에 살기 위해 성령으로 자신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자신의 영을 일곱 눈과 일곱 영으로 일곱 교회시대를
통해서 각 각 나누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만이 “세상의 참 빛” 되심을 아실 것입니다.
자연적인 형태의 빛을 삼각 프리즘에 통과 시키면 그 빛은 일곱 빛깔의 무지개로 빛이 분산됩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의 세 직함(직분)인, ~아버지~아들~성령에 참 빛이신 예수님이 투영될 때에는 그 빛은 일곱
영으로 분할되어 일곱 교회 시대의 별들인 사자들에게 임하여 그들을 성령으로 불태울 것입니다.
그들은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안에 있었던 영이 그들 안에도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동일한 역사를 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참된 교회)인 사람들은
동일한 영이 내주하고 있으므로, 예수님과 오순절 교회가 행했던 것처럼 동일한 역사를 표명할 것입니다.
성령과 그 표명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교회는 다 하나님에게 회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이 일곱 별 혹은 일곱 시대의 일곱 사자들은 그분의 손 안에 쥐어져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금새 그들이 그의 손에 쥐어 있다면 그들은 그의 능력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것이 손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위를 의미합니다.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자기 자신의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바울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도 감히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복음은 성령의 능력 안에 하나님의
권위로 전파됩니다. 이 사람들은 다 성령의 능력을 입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세상에 대하여 우뚝
일어섰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 충만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그분의 권세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세상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떠나면서 그가 세상이 받지 못하는
그의 영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세상, 혹은 세상의 체제들은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조직의 모습이며 세상의 체제입니다. 제게 성령으로 충만 된 세상 체제의 교회를
하나라도 보여 주십시오. 저는 그것을 보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교회를 저에게 보여 주실 수 있다면
여러분 말씀 가운데서 실수를 찾고 계신 것입니다. 맞습니다. 이 사자들 중 한 사람도 조직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조직의 죄로 정죄를 받았기 때문에 사자들은 쫓겨나 있거나 밖에 있습니다. 조직이 성령의 자리를
교파들이 말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성령이 어떻게 조직 가운데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명심하십시오, 조직은 사망 입니다. 다른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세상이 들어오면, 성령은 떠나십니다.
성령은 일곱 영이 아니라 한 영입니다. 그는 언제나 동일하시고 동일한 행동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일곱 사자는 그 동일한 영을 가지고 있고 동일한 말씀을 가르치며 동일한 능력을 가질 것입니다.
교회가 진실한 교회라면, 그 교회는 오순절날 그들이 가졌던 동일한 영과 말씀과 능력 있는 행동을 가질
것입니다. 체험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오순절 교회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방언과 통역과 예언과 병고침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교회 가운데 계실 것이고 하나님은 항상 그래오셨듯이 그 교회 안에서 자신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 교회는 조직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시대를 거치면서 그 사자들 안에서 그의 영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는 모세와 같습니다. 모세가 그의 시대를 위한 계시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각 사자들은 그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계시와 사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자들이 그분의 손 안에
있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주님이 자신을 이 사람들과 일치시키고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주시는 것을 압니다.
그가 일곱 금 촛대 가운데 서 계신 것을 보았는데, 그가 자신을 교회 전체에 관련시키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4장에 나오는 다섯 겹으로 된 사역(사도, 선지자, 교사, 복음전하는 자, 목사)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각 시대마다 교회는 평신도들뿐만 아니라 성직자 무리까지도--양들뿐만 아니라 목자들도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양들을 진리의 풍성한 능력에로 다시 이끌고자 이 일곱 사람들의 사역에서
목자장으로 등장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 안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모두 그의 백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십니다. 그것은 사람들 안에 인식된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홀로 택하시고 혼자 결정하신 뜻을 통해서 이 사자들 안에 특별한 지도권을 두셨습니다.
그들은 한 시대에 한 사람씩 나타납니다. 그것은 그들 안에 계신 동일한 성령입니다.
이것은 로마의 이교와 얼마나 동떨어진 것입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택한 사람이 있습니다.--한 사람씩 차례대로-
-아무도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지 않고--아무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지 않고--전에 있던 사람과 서로
의견의 차이를 보이고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원하는 것을 추가합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사자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충만함을 가질 사람은 그 사자가 그분의 말씀으로써
주님을 따르는 것처럼 그 사자를 따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계시록3:1절. 이 동일한 주님이 성육신 된 사람과 자신을 일치시키셨듯이,
그는 다시금 사람 안에 계신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사람과 일치시키고 계십니다.
이 사람들은 내 것이다, 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성령 충만한 이 일곱 사자들은 주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부인 당하는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심문을 받을 지도 모릅니다.
정말, 인간적인 생각에 그들은 어쩌면 자격도 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 시대를 위한 사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같은 사람을 쓰셨습니다(아브라함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 같은 자를(모세는 반항했습니다), 요나 같은 자를(그는 불순종했습니다),
삼손 같은 자를(그는 죄를 졌습니다), 다윗 같은 자를(그는 살인을 했습니다)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한 여호수아와 요셉 같은 자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심한 흠이 있는 자들의 숫자는 완벽해 보이는 역사를 가진 자들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모두가 그의 것이었고 지금도 그의 것입니다.
아무도 감히 그 사실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속에 넣어준 자신의 성령으로, 성령을 통해서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의 주인이 보기에는 그들은 서 있었거나 넘어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다 성취되었습니다.
피상적인 역사가 이 사실을 논박한다 해도, 그래도 그것은 사실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그 금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십니다.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의 영으로 말씀과 함께 사자들을 보내십니다.
* 탄 핵.
계시록3:1절의 하반 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죽었도다.”
계시록3:2절의 하반 절에,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완전함은 찾지 못하였나니”
자, 여기 정말로, 아주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매 시대마다 성령은 맨 먼저 참된 신자들을 칭찬하시고,
그리고서 거짓 포도나무를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에서는 분명하게 주님과 그의 말씀에 대하여 너무도
속된 것으로 여겨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이 다섯째 시대에 주는 전 메시지는 정죄(탄핵)의 메시지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안다.” 주님 앞에 올라가 주님을 불쾌하게 했던 이 행위들은 무엇이었습니까? 글쎄요,
우리는 각 시대는 다음 시대와 겹치게 됨을 압니다. 그래서 넷째 시대의 행위가 다섯째 시대로 계속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는 이 행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성령의 인도하심은 거부되고, 대신에 인간적인 계급 제도로 대치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과 만인에게 주는 말씀의 자유로운 혜택은 교회가 만든 신조들과, 독단적인 교리들,
교회의 예배 형식들과, 인간적인 가르침 등등 때문에 부인 당했습니다.
3. 영으로 드리는 경배와 성령의 은사들과 성도들의 참된 공동체 교제에 속하는 모든 것들은 기도식문(文)과
실제적인 우상 숭배와 이교도 축제, 등등을 위해서 거부되어 졌습니다.
4. 마리아 숭배는 그리스도의 경배에서 더 큰 자리를 떠맡고 있었는데, 급기야 마리아는 실제 신격의 위치를
떠맡았고 아들은 만유 위에 있는 높은 위치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칭한 교황이라 불리 운 한
인간을 추종하는 존재로 끌어내려지기까지 되었습니다.
이 적그리스도 교회를 대항한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교리에 동조한 사람들은 그들이 누구든
농부이건, 왕이건 교회의 전당물이 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목숨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의 것도 아니었으며, 그들의 몸과 영과 혼이 다 로마 카툴릭 교회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에 대해서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금과, 돈으로 구원을 샀고, 죄 사함을 샀습니다.
그들 중 부유한 사람들은 교황 레오10세가 아직 짓지도 않은 죄를 위해 면죄부를 사도록 했을 때, 교황이 이미
그들의 죄를 용서해줬음을 알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끔찍한 범죄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고서 그것들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서 제하여졌습니다, 그러니 누가 진리를
알 수 있었겠습니까! 진리는 오로지 말씀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죽음을 기다리면서, 그리고
죽음 뒤에 있는 심판을 기다리며 로마 교회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 큰 음녀는 순교자들의 피에 취해
심판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육적 영적 두 가지 사망으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넷째 시대의 끝에 있었던,
터키인들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침공은 동방의 박식한 학자들을 그들 헬라어 원고를 가지고 서방으로 보냈습니다.
이제 말씀의 순수함과 참 신자들의 가르침은 그렇게 해서 유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훌륭하신 학자들도 중요했지만 인쇄기가 발명되면서 이제 책이라는 것을 생산 가능케 한 것도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에 성경에 대한 깊은 갈구와 요구가 드디어 응해질 수 있게 된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위대한 사람들을 세우셨는데 독일의 마틴 루터도 그들 중 한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칼빈과 스윙글리도 빛을 전하는 자였고 이 둘 외에도 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 잘 알려지진 않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헛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강한 역사는 바로 이 사람들 때문에
실제로는 방해를 받았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그들은 니케아 종교 회의의 교회와 정부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 결합을 육성했습니다. 정부가 복음을 방어하는 일은 비록 그것에 대한 말씀이
없었어도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황의 권위에 대한 거부와 종교개혁을 동조하던 헨리 8세의 경우에서처럼,
우리는 인간의 분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순절의 진리와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호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지역 교회 문제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반대하며 계속 가르쳤지만 그는 교회 정부의 주교, 대주교 개념에
대한 인간들의 생각을 청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뎠지만 여전히 묶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는 빠져 나오려고 시도했던 지하 감옥에 그대로 다시 투옥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증스런 행위들의 잔은 아직 가득차지 않았습니다. 루터가 잘못된 판단을 통해서 싸움을 야기 시키고
많은 무리들의 죽음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스윙글리의 당도 경건한 허브 메이어박사를 핍박하여 투옥시켰고,
비록 그 일이 그를 화형에 처하게 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 그가 화형을 당하도록 하는데 실제적인 책임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칼빈도 적지 않게 행했는데, 왜냐하면 그는 신격의 단일성설을 깨달아 가르친 써비터스
(Servetus)를 체포하도록 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이 형제를 재판하였고, 그는 화형에 처해져 칼빈을
놀라게 했습니다. 교파적인 열성의 시대가 있었다면 그것은 이 비극적인 시대였습니다.
코메니어스(Comenius)의 말은 이 시대에 대해 많은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필요한 한 가지를 썼습니다.
그는 세상을 미궁에 비유하고, 밖으로 나오는 길은 불필요한 것을 남겨두고 필요한 한 가지를—그리스도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교사들은 당파들이 생기는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런
당파(조직)들 때문에 우리는 곧 어떤 이름도 남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교회마다 자기 교회만이 진짜 교회라고,
말하고, 가장 순수하고 가장 진실된 교회라고 여기고 있어도, 그들은 쓰디쓴 증오로 서로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어떤 화해도 그들에게서는 바랄 수가 없고, 그들은 화해할 수 없는 반목과 반목을 가지고 대합니다.
성경에서 그들은 다른 신조들을 꾸며내고, 그들이 자신들을 숨기고 모든 공격들을 방어하는 요새와 보루입니다.
그런데 이 신앙고백들이, 대부분 그것들은 그렇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할 수 있기에, 나쁘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반목의 불을 가세시킨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그렇게 됩니다. 오로지 그것들을 모두 치워버림으로
교회의 상처를 고치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파들과 다양한 고백들의 미궁에 또 다른 것이 숨어 있습니다,
변론을 좋아하는 것...그것으로 무엇이 얻어집니까? 지식적인 분쟁이 한 가지라도 해결된 적이 있었습니까?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파들의 수가 늘어나기만 할 뿐입니다. 사탄은 가장 유능한 궤변가이며 말싸움에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예배 때는 인간의 말이 대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많이 전해지고 힘을 얻습니다.
각자 자기가 만족스러운 대로 말하고, 지식적인 탐구와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반증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거듭남이라든가? 신의 성품(베드로후서1장4절)에 참예하기 위하여 어떻게 말씀에 적용시켜야 해야 하는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를 닮도록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아무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왕국의 열쇠의 권능에 대해 말해본다면, 교회는 거의 매는 권능을 잃어버렸고, 푸는 권능만이 남아서…
일치와 사랑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생명에 대한 상징으로서 주어지는 성찬(제찬봉령=영성체)은 쓰디쓴
갈등, 상호간의 증오의 원인, 분당주의의 중심이 되는 행사가 되었습니다.…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교는 미로가
되었습니다. 신앙은 수천가지 작은 부분으로 갈라졌고 여러분은 한 가지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단이 됩니다.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필요한 것 한 가지는 오직, 그리스도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인데. 유일하신 지도자 되신 그리스도를 보고 그가 남겨주신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다 그 목표에 이르러 믿음의 하나됨에 이를 때까지(에베소서4:13) 다른 길을 모두 제쳐두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주인은 모든 것을 성경의 기초 위에 세우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특별한 고백의 모든 특이성을
버리고 우리 모두에게 속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에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는 손에 성경을 들고 울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성경 속에 계시하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그저 순순히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렵니다.
저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에 소망을 두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여, 잘 들으십시오! 생명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사망은 수천가지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리스도는 오로지 한 분이신데, 수천 명의 적그리스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 그리스도인이여, 당신은 필요한 한 가지가 무엇인지 이제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돌아오시든지 아니면 적-그리스도처럼 파멸로 나아가든지 하십시오.
여러분이 현명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생명의 인도자를 따라가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여, 여러분이 들림 받는 것을 기뻐하십시오. 내게 오라고 말씀하시는 여러분의
하늘에 계신 인도자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한 목소리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르시면, 갑니다. 하고 대답하십시오.
그런데 저는 이 시대는 교파의 영이 무성하게 자란 시대였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나는 바울에게 나는 게바에게
속하였다. 는 고린도인들의 태도가 밖으로 나타난 적이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 그렇습니다. 루터파들, 허스(Huss)
파들, 스윙글리당, 기타 등등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몸이 분리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름을 가지고 살았지만 죽은 몸이었습니다. 그들은 조직을 만든 그 순간에 죽었습니다.
그 무리들은 조직을 만들고 자신을 정부와 연합을 맺음으로써 묶어버렸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됐습니다.
그들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로마교회를 비난했던 그 루터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영적 결합의
불의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루터파는(베드로가 유대인으로 만들려고 하는 자들에게 균형을 잃었던 것처럼) 곧장
나가서 하나님 대신에 정부를 신앙의 방어자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음녀에게서 나온 첫번째 유명한 교파입니다,
루터가 죽자 그것은 오래가지 않아 그들이 대항해 오던 자들처럼 성직 계급을 갖추었습니다.
둘째 세대가 이르자 곧바로 자기 어머니의 날개 아래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갔고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 위에 자기들의 이름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자기들의 이름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종파(교파)들은 모두 다 똑같은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름대로 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지 않습니다. 그것은 쉽게 볼 수 있는데 교회는 다 경배하는 방식으로 알려지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알려지는 교회는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시험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이 시대는 그들 가운데 표적과 기사들이 없었다는 점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정부의 권세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름에 매달렸고 그것이
그들의 이름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을 사망의 우리 안으로 넣으려는 옛 영이었습니다.
침례교인들은 감리교인들이 오기를 바랍니다. 감리교인들은 장로교인들을 자신의 교인으로 만들려고 애씁니다.
오순절 교인들 또한 그것을 원합니다. 각자 많은 것을 제공하고 가장 큰 희망을 제시하면서 하늘가는 문이라고,
아니면 적어도 더욱 넓은 입구로 가는 길이라고--주장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이 교파의 영은 모든 교파들로 자기들의 안내책자를 쓰고 자기들의 신조를 가르치며 온갖 직책들과 교회 정책을
수립하게 만들었고, 정통이라 주장하며, 자신들의 교회만이 진실로, 자격을 가장 잘 갖추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교황과 로마교회가 행하고 있던 일이 아니고 뭡니까!
그들은 이제 음녀인 어미에게로 돌아갔고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이 절에 대해 말하는 것을 끝내면서 이 시대는 종교 개혁을
이루긴 했어도, 하나님께서 탈출할 문을 열어놓으신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곧장 조직으로 향했던 교파의 씨를
심었기 때문에 칭찬 대신 가장 심하게 하나님의 책망을 받은 시대였다는 인상을 여러분에게 아무리 강하게
강조한다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봅니다. 카톨릭 교회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그것은 전체적으로
진실로 영적인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인 일에 더 가까웠습니다. 제가 말씀 드렸듯이, 로마의 정치적 경제적
속박 체제를 싫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신교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순절날 그분의 목적들을 성취하기 위해서 완전히 영적인 수단들을 사용했을 때처럼,
순결한 성령의 모든 귀표(earmarks)를 갖춘 커다란 영적인 움직임이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그것은 정말로 인간의 분노가 하나님을 찬양했던 역사였고, 그 결과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던 이스라엘 역사와 아주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압박이 부분적일지라도 약해진 곳에서, 사람들이 이제 전처럼 커다란 공포를 갖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영향에 굴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많은 것들이 성취되었다고 봅니다.
이것은 다음에 오는 위대한 선교 시대에 자양분이 되어 이어져 그 문을 열었습니다.
두아디라의 이세벨은 사람들을 장악하기를 포기하지 않을 태세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조직(교파)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듯이, 지금 이 시대에서도 이세벨은 카톨릭으로부터 나와 잠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던 참된 씨를 조직이라는 계책으로 다시 노예로 붙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사데 시대에서 머리를 드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 경 고.
2.깨워서 남아 있으나 죽으려 하는 것들을 강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완전함을 찾지 못하였나니.
저는 사데 시대가 개혁보다는 회복이라 일컬어질 수 있다면 하고 바랍니다. 저는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회복이라 하지 않고 분명하게 개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회복이었다면, 그 시대는 또 다른 오순절 시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씀은,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입니다.
뭔가 모자라는 게 있었습니다. 세상에, 그렇습니다, 분명히 모자란 게 있었습니다.
이 시대는 의롭게 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화와 성령 침례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오순절 날 나타났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았고, 성화되었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어보십시오, 의롭게 됨과 거룩케 됨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성령으로 침례를 받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교회는 신의 성품에 참예함으로 하나님의 성품에까지 성장하는데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즉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여기 이 땅에 계셨을 때,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 능하신 역사들을 행하시게 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 계셨던 동일한 성령은, 오순절날 교회에 임하여 그들이 예수님이 하셨던 일들을 행하도록 했습니다.
이 시대는 그런 일들은 행하지 못했습니다. 오, 그들은 기록된(계시된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는 개혁기였습니다. 그러나 적은 양 무리여,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회복하리라. 그리고 이 회복은 개혁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는(약속에 의하면) 암흑시대에 있는 사탄의
깊은 것으로부터 교회를 다시 그들이 오순절 날과 교회가 존재하기 시작한 처음 몇 년에 있어서 가졌던
하나님의 깊은 것으로 되돌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의 깊게 이것을 이해하십시오. 이 둘째 절에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완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완전치 못한 것이 정말로 무슨 뜻인지 아시죠?
그것은 미완성된 것입니다. 이 시대는 덜 성취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돌아가기 시작한 시대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성경이 그 시대를 회복이 아니라--개혁이라 일컬었다고 말한 까닭입니다.
그 시대는 구원은 모두 하나님에게 있다는 뜻이었던 의롭게 됨의 교리로 시작되었습니다.
루터는 하나님의 주권과 택하심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전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책을 남겼겠습니까?
루터는 그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교회를 교회의 성직 계급에 의한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했습니다. 그는 우상을 깨뜨렸습니다.
루터는 신부에게 하는 비밀 고해성사를 몰아냈습니다. 그는 교황을 탄핵했습니다.
루터는 시작했을 때는 무척 좋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1500년 전에, 루터야, 너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네 시대는 모든 것이 미완성된 것을 볼 것이다. 나는 그것을 다음으로 남겨둘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통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을 알고 계십니다.
네, 루터는 하나님이 보낸 사자였습니다. 우리가 결점을 검토할 때,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나도 역시 삶에 결점이 있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요나가 행동했던 것을 기초로 하여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 않더라도 요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알고 계시고 요나에게 하셨듯이 자기 뜻대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시대에 루터에게 원하신 뜻대로 하셨고, 세상 끝날까지 자신의 뜻대로 하실 것입니다.
이 시대는 미완성된 시대였습니다. 개혁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신 모습이었습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그런데 “일깨워” 와 “굳게 하라” 는 두 단어에 표현된
생각들은 이런 것입니다. 일깨운다는 것은 단지 깨어 있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와 반대로 하는 것은 위험과 상실을 심어줍니다. “굳게 한다.”는 것은 단지 힘을 낸다는 뜻 이상의
의미입니다. 고정하고 영구성을 위해 세운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명령은 죽게 된, 죽으려고 하는 진리의 남게 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이 표현은 제게 한 그림으로서 옵니다.
육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속박된 가운데 있는 한 노예 무리가 일어나 그들의 주인에게서 탈출했습니다.
(실제로 이것이 “사데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탈출한 자들”) 그들은 추적당하고 그들의 커다란 영광스런 획득은
모두 잃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할 수 있는 모든 일은 그들이 탈출했고-
-말씀에 의하자면 어떤 이들처럼 깨끗하게 탈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를 많이 잃었습니다.
이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잠재적으로 다시 잡혔다, 너희가 돌아가지 않도록 주의해라.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경계해라. 너희 포로 된 이제 네게 남은 것은 굳게 하되 네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영구히 세워서 장래에 잃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 이것은 네가 성취 못한 것을 성취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 나아갔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성령의 음성을 삼가 듣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시대가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수행할 다른 이들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것들처럼 조직된 루터의 교파를 지나쳐 가셨고 그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속 전진하셔야 했고 새 시대에 더 많은 진리와 더 많은 회복을 가지고 오셔야 했습니다.
* 심 판.
계시록3:3.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고 들었는지 기억하고 굳게 붙잡아 회개하라. 그런즉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네게 이르리니 내가 어느 시각에 네게 이를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저는 이 절의 또 다른 번역을 웨스트의 번역으로 읽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떤 식으로 받았으며(영원한 보증으로서의 진리를) 어떤 식으로 (그것을) 들었는지 늘
기억하고 있으며, (그것을) 보호하고 있으며 즉시 마음의 변화를 가지리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리를 영원한 보증으로 주셨다는 것은 이 절에서 보아 매우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것은 받은바 되었고 돌이킬 수 없는 그들의 것입니다.
이제는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그들이 그것을 존중할 지 안 할 지 보는 것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전 복음의 진리를 받았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구원은 주에게서 말미암나이다.” 그들은 로마의 교리들을 내동댕이치고 모든 교황의 권위를 무시한 성경의
진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구원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주의 만찬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물 침례에 대한 빛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상들을 없앴습니다. 진리? 어떤 시대도 그와 같이 많은
빛을 나타내는 많은 사람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옛 체제들을 철저히 조사하거나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고 하나님이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시며 그들을 인도하시도록 할 만한 충분한
비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원했고 진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질문이 있다면, 그들이 어떻게 듣는가? 였습니다. 그들이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 들었습니까?
아니면 많은 헬라인들이 가졌던 똑같은 태도로 였습니까?-토론하여 신학을 만들어 내려는 걸로?
분명히 그들은 풍부한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적인 완성을 위해서라기보다, 하나님은 그것에 관해서 마음의 변화를
요구하고 계시므로, 학문적인 태도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실은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복종해야 합니다. 복종하지 않으면 심판이 뒤따를 것입니다. 성전의 문지기가 졸다 발각되면,
매를 맞고 그의 옷은 불태워졌습니다. 이 시대에 경계를 게을리 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도적같이 이르리니. 고대 사데는 계속 산에서 급작스레 내려와 사람들을 강탈하던 산적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의 강림이 “도적 같으리라.” 성령이 하신 말씀을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경계와 예비만이 그의 강림을 위해 준비하는데 충족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은 거짓 포도나무를 위한
메시지라는 것을 아는데, 그 이유는 주의 강림은 노아의 시대처럼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여덟 사람은 임박한 홍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알기 때문에 예비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경건치 않은 세상은 쓸려 내려갔습니다. 그들은 매일 의인들과 접촉하고 진리를 들었어도,
너무 늦어버린 때까지 그것을 제껴 두었습니다. 그 고대 시대의 완전히 육적인 사람들은 생활이 땅의 일들로
가득하고, 더 이상 영적인 것에 대해서 바라지 않을 정도까지 땅의 일에 도취되어 있고, 주님의 오심을 전혀
알아차리지도 준비하지도 않고 있는 현대의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의 예표입니다.
* 찬 사.
계시록3:4.사데에도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이름이 네게 있어 그들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걸으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들이니라. “이름들” 이란 사도행전1:15절에서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에 대해 이름들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고 말하고 있듯이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것은 단순히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 이상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 시대마다 제시된, 우리 주님이 역점을 두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진리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것입니다: 이 시대들의 교회 체제는 두 포도나무, 참과 거짓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주권적인 목적 가운데서 그들을 한데 묶으시고 그들을 교회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에 하나님이 그들을 꾸짖으시면서 사데에 있는 교회에게 --사데에 있는 교회들에게 가 아니라-
그들을 한 덩어리로 묶어서-- 교회에게...나는 네 행위를 안다...너는 죽었다...네 “행위들은 완성되지 못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그리고서 그는 계속 말씀하십니다. 네게(사데에 있는 이 교회) 대다수의 무리들처럼
잘못되지 않고 올바른 몇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니며 그들은 내게 합당한 자니라.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도들인데 모두 주님을 기쁘게 하면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옷은 깨끗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 당시에는 옷이 길을 쓸고 다니며 흙과 오물들이 다 묻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에 의해서 더럽혀지지 않도록 걷는 것을 조심했습니다. 그들은 성령 안에 있었고 성령 안에서 행했습니다.
그들은 그분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에베소서1: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셨는데,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그분의 뜻에 따라서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택하신 자가 몇 이름들이라고 보여주는 이 절에서, 여러분은 우리가 이 시대에 관해 가르쳐
온 것을 분명하게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시대는 미완성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는 많은 사람들이 무수한 갈래로 서로 나누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거의 전체를 다 꾸중하셨습니다.
이 시대는 약하고 병들고 죽기 직전이었습니다. 이 시대는 육적인 생각을 하는 개신교 교인인 역사가가 말하려고
애쓰는 영광스러운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 나무를 흘낏 보기만 해도, 썩고 마르고, 잎도 없고, 금세 땅으로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일그러지고 벌레 먹은 열매도 달리지 않은 나무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 기다리십시오! 더 자세히 보십시오. 저 꼭대기 위에, 태양빛을 받고 있는 몇 첫 열매, 몇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에게서 태어났고, 그로 충만하고, 그의 말씀으로 그와 함께 동행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완벽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적은 무리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 정직한 행함을 위해 내리시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그들의 기업 중 일부입니다. 만약 그들이 기꺼이 이생의 수고와 올무들을 헤치면서 그와 동행하고
그에게 영광이 된다면, 그는 그들에게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사랑의 수고를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기쁘시게 하려는 우리의 노력들에 대해 항상 우리에게 보상하실 것입니다. 네, 그들은 세상을
헤치며 걸었고 세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상 체제가 그들을 이기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시대의 저명한 이름들이 정부의 유혹에 굴복하고 영적인 생각보다는 정치적인 생각을 선택하고 세상으로
돌아갔을 때, 이 소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일어났고,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을 영화롭게 했습니다.
이제 그는 바꾸어서 그들을 영화스럽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거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자신들을 주님에게 일치시켰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은 새 예루살렘에서 자신을 그들에게
일치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치는 얼마나 놀라운 것일까요! 그것은 저를 기쁘게 했고 하지만 그분의 겸손을
생각하며 울게 만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분이 세상의 지도자들과는 달리, 성도의 옷과는 다른 색의
옷을 입지 않으시는걸 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렀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같고, 주님은 그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같습니다, 요한이 말했듯이 그들은 그분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여러분 누가 이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으셨습니까? 합당하신 분이신 예수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분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손에서 책을 취하기에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 합당하신 분이 그의 성도들에게, “네가 합당하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유일하게 심판할
자격을 갖추신 분이 한분 계십니다.(모든 심판은 그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너희는 합당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8:33절 말씀처럼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의롭다고 말씀하십니다.”(웨이의 번역)
거기 하나님의 의로움의 흰 빛 가운데서, “이 사람들은 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의롭습니다. 그들은 합당합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저와 함께 다닐 것입니다.”하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부드러운 음성을 들으십시오.
계시록3:5.이기는 자 곧 그는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 곧 그는 흰 옷을 입을 것이요.”
이것은 실제로 4절의 반복인데, 4절은 옷을 더럽히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절에서 나왔을 속담을 여러해 전에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 속담은 “네 치마를 깨끗이 지키라” 였습니다.
그것은 논쟁거리에 관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연류 될 것이고 여러분도 관여하고픈 유혹을 받을
지도 모르고, 누군가가 여러분을 끌어들이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피함으로 그것에 관계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충고를 따르는 자들에게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들은 그가 흰 옷을 입은 것처럼 흰 옷을
입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변화 산에서 주님을 보았는데, 주의 옷은 빛처럼 희었습니다.
그렇게 성도들은 옷을 입을 것입니다. 그들의 옷은 너무도 희고, 빛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마지막 때에 살고 있음을 아십니다. 교회들이 연합할 때는 이 시대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세계 정치를 지배하고 있듯이, 그들은 곧 세계의 경제를 지배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세계 교회조직에 속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사지도 팔지도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잃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진실함을 지키고 교회 순열의 이 세계체제에 옷을 더럽히지 않도록 깨끗하게 지키는 자들은 살 희망을
빼앗길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항복하려는 커다란 유혹이 제시될 것입니다. 설교자들은 적그리스도 짐승 체제라는
틀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구실을 가지고 항복할 것입니다. 그들은 성직 계급제도의 아첨과 감언에 굴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거짓 목자들을 따라 곧장 도살장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 때에 그들은
모두 다 벌거벗은 것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 흰 옷을 받지 못할 것이고 주님과 함께 거닐지도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마귀와 손을 잡고 세상의 때 묻은 옷을 입고 걷다가 나중에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깨어 일어나 내 백성아, 그녀의 죄에 참예하지 않도록, 그녀가 받을 재앙을
받지 않도록 조직된 종교로부터 나오라.”고 외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입니다. 아멘. 아멘.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재앙을 피하듯, 세상의 교파들을 피하십시오. 세상과 동행하던 것을 떠나 회개하고
어린양의 피로써 여러분의 옷을 희게 하십시오. 하지만 내일은 너무 늦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하십시오.
“이기는 자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리라.”
다시 한 번 우리는 말씀 가운데서 가장 어려운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피상적으로 이절은 아르미니우스파들과 칼빈주의자에 의해 자기들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사용되는 절일 것입니다.
아르미니우스파들은 이 절은 확실히 요한복음6:37~44절의 말씀을 무효화한다고 선언할 것입니다,
37.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쫒지 아니하리라.
38.나는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내려왔느니라.
39.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 중에서 내가 하나도 잃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그것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니라. 40.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이것이니 곧 아들을 보고 그를 믿는
모든 자가 영존하는 생명을 얻는 것이니라.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하시니라. 41.그분이, 내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빵이라, 하셨으므로 그때에 유대인들이 그분에 대해 수군거리며 42.이르되,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우리가 아는데 어찌 그가 말하기를, 내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
하느냐? 하니 43.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44.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내게 오는 그를 마지막 날에 내가 일으키리라.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아버지의 뜻을 주권적인 목적으로 돌리지 않고, 뒷전에 서서 모든 인간들이 그의 선하시고
은혜로우신 은사들을, 심지어는 영원한 생명까지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보는 만족스러운 소원으로 돌립니다.
칼빈주의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시대가 아무리 악하고, 박해가 아무리 극심하다 해도, 이긴 자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이므로, 그는 자기 이름이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으리라는 고통 받고 짐을 진
성도들에게 주는 큰 위로를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 생명책은 어린양의 생명책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성서 한 절을 피상적으로 보게 되면 당연히 피상적인 이해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록에서 이름이 지워질 가능성은 단순히 연구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대부분의 성경 연구자들은 단순하게 하나님은 그들이 거듭날 때, 그 거듭난 자들의 이름을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하며 어떤 이유로 그 이름이 제거되야 한다면, 그 기록의 공간은 거기에 이름이 기록되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단순히 빈칸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끌어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말씀이 실제로 가르치는 바와 백 퍼센트 정반대입니다.
시작에 앞서서, 하나님은 “현재 이름들의 기록을 집계하고 계신다.”라고 가르치는 성경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일은 우리가 잠시 후에 지적하게 되겠지만, 창세전에 행해진 일입니다. 또한, 그것은 영생을 받을 기회가 둘
다 있었고, 한 무리는 그것을 받았고,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게 하고 거절한 다른 사람들은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게 한 두 무리의 사람들에게 단순히 연관시키는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거듭나지 않은 자들일지라도 영생으로 들어가리라는 것을 성경으로 실제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확실한 사실입니다. 또한 창세전에 그 이름이 기록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 이름들은 지워질 수 없는 한 무리(신부)들이 있음을 보여드리고, 또한 또 다른 무리는 창세
전에 이름이 기록되었다가 나중에 이름이 지워질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먼저, 어린 양의 생명책 이 생명책과
같지 않다는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생명책은 어린양의 생명책 또는 그리스도의 생명책 또 심지어는
당신의 책과 산 자들의 책이라고도 일컬어집니다. 이름들만 그 안에 적혀 있습니다.
계시록13:8.땅에 거하는 자들 곧 창세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다 그에게 경배하리라. 계시록17:8…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전에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계시록20:12.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13.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14.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졌더라. 여러분은
다른 책들도 언급이 되었다 해도, 언제나 이름이 쓰여진 한 권의 책을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그것은 “어린양의 생명책” 또는 “생명책” 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이 책은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복음10:17.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마귀들도 우리에게 굴복하나이다,
하니 18.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19.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압할 권능을 주노니 어떤 방법으로도 너희를 해칠 것이
전혀 없으리라. 20.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들이 너희에게 굴복하는 이 일로 기뻐하지 말고 오히려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으므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21.그 시각에 예수께서 영안에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 드러내셨음을
감사하나이다. 과연 그러하옵나이다. 아버지여, 그리하심이 아버지 보시기에 좋았나이다. 22.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넘겨 주셨사오니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아들과 또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낼 자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니라. 23.또 그분이 자기 제자들에게 돌아서서
은밀히 이르시되,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2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들과
왕들이 너희가 보는 그것들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그것들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생명책은 정확하게 하늘에 있고 대(大) 백 보좌 심판 때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 절들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들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름이 놓이는 곳은 그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칠십 인에게(17절) 말씀하고 계셨지만,
그는 또한 열두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23절) 이들은 모두 마귀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항복하는 것을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였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유다도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던 자들 중에 끼어 있었음을 보실텐데, 그러데 우리는 그가 마귀요, 멸망의 아들이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요한복음6:70.예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하나는
마귀니라, 하시니라. 71.그분께서는 시몬의 아들 가롯 유다를 가리켜 말씀하셨더라. 그는 곧 열둘 중의 하나로
그분을 배반하여 넘겨줄 자더라. 요한복음17:12.내가 그들과 함께 세상에 있을 때에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켰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내가 지켰고 멸망의 아들 외에는 그 중의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은 성경 기록을 성취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13:10.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미 씻은
자는 모든 것이 깨끗하므로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이는 그분이 자기를 배반하여 넘길 자가 누구인지 아셨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그분께서, 너희가 다 깨끗하지는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18.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지 아니하노니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아노라.
그러나 나와 함께 떡을 먹는 자가 자기발꿈치를 들어 나를 대적하였나이다. 한 성경기록이 성치되게 하려하노라.
이 말씀들로 유추해보면, 우리는 유다는 예수님이 택하셨지만(요한복음13:18), 깨끗하지 않다는(요한복음13:10-11)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가롯 유다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였습니다. (요한복음17:12절.)
여기서 택하심과 주심은 모세와 바로, 야곱과 에서의 경우에서처럼 그대로 병행됨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에서와 바로는 둘 다 미리아신바 된 자였지만, 모세와 야곱의 결말이 영광을 얻는 것이라면, 그들은 진노하심에
예정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2장8~9절의 상반 절은 버림받은 자들과 택함받은 자들을 보여 줍니다.
8.걸림돌과 실족하게 하는 반석이 되되 순종하지 아니하여 말씀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에게 그리되었나니 그들은
또한 그렇게 되도록 정하여졌느니라. 9.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유다는 열두 제자 속에 들어 있었고 실제로 오순절날 이전의 사역에서 그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사도행전1:16.사람들아 형제들아, 예수님을 잡아간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에 대하여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해 미리 말씀하신 이 성경기록이 반드시 성취될 필요가 있었나니 17.이는 그가 우리와 함께 계수되어 이 사역의
한 몫을 맡았기 때문이라. 유다가 열둘 가운데서 얻었다가 잃었던 부분은 다른 열한 명의 사역들보다 낮은 게
아니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사역들 사이에 낀 마귀적인 색다른 사역도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1:25.그가 이 사역과 사도직을 맡게 하옵소서. 유다는 자기 자신의 처소로 가려고 죄를 지음으로 그
직분에서 떨어져 나갔나이다. 하고 마귀인 유다는 하나님이 주신 성령의 사역을 잃었고 자살하여 자기 장소로
갔습니다.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지워졌습니다.
우리가 유다에 대한 이 생각을 추구하기 전에, 구약으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같은 일을 행하신 곳을 보겠습니다.
창세기35:23.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24.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25.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26.레아늬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더라. 이들은 다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더라.
이 열두 아들들의 후손은 요셉이 그의 이름을 따를 지파를 제외하고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서는 열세 지파가 있었고 요셉의 두 아들이 열둘을 열 셋으로 만드는 영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레위지파가 제사장 직분으로 하나님께 구별되어 이 일이 그렇게 될 필요가 있었음을 아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광야에 성막을 주셨을 때, 우리는 레위지파가 르우벤, 시므온,
잇사갈, 유다, 스불론, 베냐민, 단, 납달리, 갓, 아셀, 에브라임과 므낫세로 이름한 열 두 지파에게 수종드는 것을
봅니다. 그 군대의 순서는 민수기10장11~28절에 그렇게 지명합니다. 요셉이나 레위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라고 말하는 계시록7장4~8절을
보면, 그들의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유다, 르우벤, 갓, 아셀, 납달리, 므낫세, 시므온, 레위, 잇사갈, 스불론, 요셉,
베냐민. 우리는 레위와 요셉이 그들 사이에 지명된 열두 지파로 돌아와 있는데, 여기에서 단과 에브라임은 빠져
있습니다. 이제, “왜 이 두 지파가 지워졌는가?”라는 의문이 일어납니다. 해답은 신명기29장16~21절에 있습니다.
16.(이는 이집트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거하였는지 또 너희가 지나온 민족들을 우리가 어떻게 통과해 왔는지
너희가 알며 17.또 그들 가운데 있던 그들의 가증한 것들과 그들의 우상들과 나무와 돌과 은과 금을 너희가
보았기 때문이니라.) 18.너희 가운데 남자나 여자나 가족이나 지파나 이 날 주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을 돌려
이 민족들의 신들에게 가서 그들을 섬길까 염려하며 또 너희 중에 쓴 것과 쑥을 내는 뿌리가 생길까 염려하노라.
19.그가 이 저주의 말들을 듣고도 마음속으로 자산을 축복하여 이르기를, 내가 비록 내 마음의 상상 속에서
걸으며 목마름에 술 취함을 더하려 할지라도 내게 평안이 있으리라, 하리니 20.주께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실
뿐 아니라. 주의 분노와 그분의 질투과 그 사람을 대적하여 연기를 뿜으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가
그에게 놓이리라. 주께서 그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버리시고. 21.주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분리하사… 이 말씀 안에는 우상 숭배 또는 영적 간음에 대한 저주가 선포되어 있습니다.
우상 숭배로 돌아간 지파는 그 이름이 지워지게 되어야 했습니다.
우상숭배로 인해 이름이 지워진 두 지파의 역사는 열왕기상12장25~30절에 나와 있습니다,
25.그때에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에 세겜을 건축하고 그 안에 거하며 또 거기서 나가서 브느엘을 건축하고
26.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제 왕국이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집에서 희생물을 드리려고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그들의 주 유다 왕 곧 르호보암에게로 다시 돌아가
그들이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다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이것에 관해 왕이 의논한 뒤 금송아지
둘을 만들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이 너무 큰일이로다. 오 이스라엘아, 너희를
애굽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을 보라, 하니라. 29.그가 하나는 벧엘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으므로
30.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들 중 하나 앞에서 경배하려고 단에까지 갔기 때문이더라.
호세아4:17.에브라임은 우상들과 연합하였으니 그를 내버려 둘지니라.
특별히 우상 숭배에 대한 벌은 그 지파의 이름이 천하에서 도말 되었다는 것임을 주목하십시오.
신명기29:20절에 의하면 하늘에서(위) 지워진다는 게 아닙니다. “하늘 아래”(천하)에서 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일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은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있기 때문입니다.
곧 주님은 그들 중 144,000에게 인을 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수에서 단과 에브라임은 빠져 있습니다.
계시록7:4.또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 5.유다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갓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6.아셀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에서 인봉된 자가 만 이천이요, 7.시므온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에서 인봉된 자가 만 이천이요, 8.스불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에서 인봉된 자가 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만 이천이라.
1.유다, 2.르우벤, 3.갓, 4.아셀, 5.납달리, 6.므낫세, 7.시므온, 8.레위, 9.잇사갈, 10.스불론, 11.요셉, 12.베냐민.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12 지파의 이름에서 “단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는 빠져 있습니다.)
신명기29장16~21절 말씀이 “그들의 가증한 것들과 그들의 우상들과 나무와 돌과 은과 금을 너희가 섬기면…
주께서 그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버리시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절과 함께 십사만사천이 여섯째 인과 야곱의 환난(대환난)동안에 인맞는 것을 언급하는 다니엘12:1절을 봅시다.
1.그때에 네 백성의 자손들을 위하여 일어서는 큰 통치자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의 때가 있으리니
그것은 민족이 있은 이래로 그때까지 없었던 환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이 구출을 받되 책에서 발견된바
기록된 모든 자가 구출을 받으리라. 그런데 이 환난기 후에(천년왕국), 에스겔48장1~8절과 22절~29절에서 본
것처럼 우리는 다시 지파들이 하나님이 정하신 그대로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에브라임과 단이 우상과
연합했던 때부터, 그들은 죽었고 그들의 지파는 더 이상 인식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예루살렘의 함락
이후로, 모든 지파에 대한 모든 기록들이 상실되었으므로 아무도 자기가 어느 지파 출신인지 확실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하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을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이키시고 계신 그
위대하신 하나님은 모든 진실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느 지파출신인지 정확히 아십니다. 그리고 모인 십사만사
천중에서 “단과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이들은 빠질 것입니다. 에스겔48:1~8절과 22~29절, 여기에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있습니다. “1.이제 지파들의 이름들은 이러하니라. 사람이 하맛으로 갈 때에 북쪽 끝에서부터 헤들론
길의 지경까지와 북쪽으로 다마스커스의 경계인 하살에난과 하맛의 지경까지는 단의 몫이니라. 이것들은 그의
동쪽과 서쪽 양쪽이니라. 2.단의 경계 옆으로 동쪽 편에서부터 서쪽 편까지는 아셀의 몫이요, 3.아셀의 경계
옆으로 동쪽 편에서부터 서쪽 편까지는 납달리의 몫이요, 4.납달리의 경계 옆으로 동쪽 편부터 서쪽 편까지는
므낫세의 몫깃이요, 5.므낫세의 경계 옆으로 동쪽 편에서부터 서쪽 편까지는 에브라임의 몫이요, 6.에브라임의
경계 옆으로 동쪽 편에서부터 서쪽 편까지는 르우벤의 몫이요, 7..르우벤의 경계 옆으로 동쪽 편에서부터 서쪽
편까지는 유다의 몫이요, 8.유다의 경계 옆으로 동쪽 편에서부터 서쪽 편까지는 너희가 드릴 헌물로서 등등..
22.또한 레위 사람들의 소유와 그 도시의 소유물로부터 유다의 경계와 베냐민의 경계 사이에…
23.나머지 지파들로 말하건대 동쪽 편에서부터 서쪽 편까지는 베냐민의 몫을 차지하고 24.베냐민의 경계 옆으로
동쪽 편에서부터 서쪽 편까지는 시므온이 몫을 차지하며 25.시므온의 경계 옆으로 동쪽 편부터 서쪽 편까지는
잇사갈이 몫을 차지하며 26.잇사갈의 경계 옆으로 동쪽 편에서부터 서쪽 편까지는 스불론이 몫을 차지하며
27.스불론의 경계 옆으로 동쪽 편에서부터 서쪽 편까지는 갓이 몫을 차자하리라. 28.갓의 경계 옆으로 그 경계가
다말에서부터…29.…이스라엘 지파들에게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 줄 땅이요,…”
1.단, 2.아셀, 3.납달리, 4.므낫세, 5.에브라임, 6.르우벤, 7.유다, 8.베나민, 9.시므온, 10.잇사갈, 11.스불론, 12.갓,
우리가 볼 또 다른 말씀은 가나안 땅을 향해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을 불러내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집트를 떠났을 때 그들은 희생제물인 어린양의 피 아래서 나왔고, 모두 홍해에서 침례의 물을 통과했고
모두 능한 기적들을 즐겼으며, 모두 만나를 먹고, 모두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고, 명백하게 밖으로 드러나는
축복들과 표명들에 관한한, 그들은 모두 다 똑같이 참예했습니다. 그런데 모압에 이르렀을 때 바알브올의 잔치에
참석한 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들의 시체는 광야에 넘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기서 발람의 사주를 받은
발락이 놓은 올무에 빠져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등을 돌렸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서6:1~9절이 말하고 있는 것이고, 버가모 시대에(계시록2:14절) 아주 조심스럽게 언급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일부분만 가지고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모두 가지셔야 합니다.
그들은 가롯 유다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가롯 유다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서 행한 똑같은 일을 가롯 유다가 하게 된 날이 이르렀습니다. 그는 거짓 포도나무
세력에 합세하기로 결정했습니다.—경제적, 정치적 적-말씀, 적-그리스도의 조직에 들어가고 싶어 했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는 속았습니다! 다른 열 한 명은 결코 속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택함을 받은 자들이었으므로 속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다가 주님을 떠나 배신했을 때, 그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졌습니다.(계시록 22장19절)
이제 저는 여러분들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그들이 진리(말씀)대로 경배하지 않았다 해도,
진실한 하나님을 중심으로 두고 그를 경배한 그 시대의 종교적인 사회의 일부였음을 아셨으리라 확신합니다.
유다처럼,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처럼 그들은 안으로(가나안 땅)까지 끝까지(성령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유다가 육적으로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었음을 명심하십시오. 그는 진리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비밀들에
대한 지식을 공유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능력의 사역도 가지고 있었고, 예수의 이름으로 병든 자들을 고치고
마귀를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막판(가데스바니아)에 이르렀을 때, 그는 세상적인 금과 정치적 권세를 위해 멈쳤고,
진리를 부인했습니다. 그는 권능(하나님의 영)을 받기 위해 오순절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 안으로 까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에 대해 절대 실수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여러분을 사망의
세상에서 불려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그곳이 가데스바니아(세상체제, 교파)라면 여러분은
속았고, 올무에 빠졌습니다.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은
끝까지 말씀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 침례를 받은 증거입니다. 더 이상 세상에 있는 것들도(교파들)
그들을 결코 속이거나 올무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유다는 거기에서 실패했습니다. 무리들이 바로 거기서 실패
했습니다. 여러분이 그 말씀 안에까지 전진하지 못하면, 그들처럼 여러분의 이름도 생명책에서 지어지게 됩니다.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어지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모세시대의 이스라엘로 우리의 생각을 확장시켜야만 합니다.
출애굽기32:30.다음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지었도다. 내가 이제 주께로 올라가리니 아마도
너희 죄로 인해 내가 속죄하여야 하리라, 하고 31.모세가 주께로 돌아와 아뢰되, 오 이 백성이 큰 죄를 짓고
자기들을 위해 금으로 신들을 만들었나이다. 32.그러나 이제 주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리하지
아니하시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주의 책에서 나를 지워버리소서, 하니 33.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34.그러므로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보라, 내 천사가 네 앞에 가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징벌하는 날에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벌하리라, 하시니라. 더욱 명확해진 것은 시간이 더 이상 없게 되기 전에 이름들은 생명책에서 지워졌었고
지워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특정 장소에서, 그것은 우상 숭배 때문이었습니다, 단과 에브라임이 금 송아지를
숭배함으로써 지파로서의 그들의 권리를 잃었던 것처럼. 우상을 숭배한 자들은 모두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불기둥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절하고 금송아지를 경배했을 때, 그들의 이름은
지워졌습니다. 출애굽기32:33절. “누구든지 내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만약 그렇게
우상에게 돌아감이 생명책에서 이름을 제거하는 벌을 요구한다면,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을 이스라엘이 거절한
것은 너무도 확실하게 극심한 벌을 요구할 것입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모욕을 제시하고 있는
시편69:21.그들이 또한 쓸개즙을 나의 먹을 것으로 주며 내가 목마를 때에 내게 식초를 주어 마시게 하였나이다.
22.그들의 밥상이 그들 앞에 올무가 되게 하시며 그들에게 행복이 되었어야 했을 것이 함정이 되게 하소서.
23.그들의 눈이 어두워져서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들의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24.주의 격노를 그들에게 부으시며 주의 몹시 노여운 분노가 그들을 붙잡게 하소서. 25.그들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아무도 그들의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소서. 26.그들이 주께서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하게 하신 자들에게 말하여 슬픔을 주오니 27.그들의 불법에 불법을 더 하사 그들이 주의 의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시편69:28.그들을 산 자들의 책에서 지우사 의로운 자들과 함께 기록하지 마소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절했을 때 하나님은 실제로 그들에게서 돌이켜 이방인들에게로 향하셨습니다.
사도행전13:46.이에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하게 되어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너희에게 먼저 말할 필요가
있었으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너희 자신을 영존하는 생명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판단하므로, 보라, 우리가
이방인에들에게로 향하노라. 47.주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이방인들의 빛으로
세웠나니 이것은 네가 땅 끝까지 이르러 구원을 위한 일꾼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느니라, 하매 48.이방인들이
이 말을 듣고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에 영광을 돌리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정해진 자들은 다 믿더라.
이것은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서 생명책에 남아 있는 이름들이 없을 거라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택하심의 원칙을 통해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이방인 교회시대에 있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올 것이며 그들의 이름들이 정말로 생명책에 남아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보여드리겠지만,
다섯째 인에 의하면, 순교당한 유대인들 무리는 주님에게 흰 옷과 영생을 받을 것입니다. 또 주님이 오실 때는
십사만사천명이 인침을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이름들이 지워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읽었던 시편69편에서 가장 정확하게 나타난 것은 이름이 지워지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한 악한 또는 불의한
자들과 그분의 백성들을 멸한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하나님의 선민)이 대다수 예수를 거절함으로써
생명책에 있는 그들의 권리를 상실했던 것처럼, 이방인 교회의 대다수도 역시 말씀을 거절함으로써 그리고
짐승에게 세워진 우상인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 (초교파 운동)에 가입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도말되는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여기 한 가지 더 볼게 있습니다. 백보좌 심판때, 사람들을 분리할 것입니다.
생명책과 또 다른 책이 열릴 것입니다. 마태복음25:31.인자가 자기의 영광중에 모든 거룩한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의 영광의 왕좌에 앉아서 32.모든 민족들을 자가 앞에 모으고 목자가 염소들로부터 자기 양들을
갈라내듯 그들을 일일이 분리하여 33.양들은 자기 오른편에 두되 염소들은 왼편에 두리라. 34.그 때에 왕이 자기
오른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가 내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너희가 나를 받아들였고 36.헐벗었을 때에 너희가 내게 옷을 입혔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왔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내게 왔느니라, 하니 37.이에 그 의로운 자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시게 하였나이까?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38.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나그네가 되신 것을 보고 받아들였나이까? 헐벗으신
것을 보고 주께 옷을 입혔나이까? 39.혹은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께 갔나이까? 하리라. 40.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였은즉 내게 하였느니라. 하고 41.그때에 그가 왼 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42.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가 내게 마실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며 43.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너희가 내게
옷을 입히지 아니하였으며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44.이에 그들도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를 섬기지 아니하더이까? 하리라.
45.그때에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지 아니하였은즉 내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리라. 46.그런즉 이들은 영존하는 형벌에
들어가되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계시록20:11.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것들의 자리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12.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13.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14.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졌더라. 심판 때는 의인들과 의롭지 않은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분리시킬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의인들은 신부가 아닐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신부는 심판하면서 그와 함께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6:2.성도들이 세상을 판단(심판)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너희가 지극히 작은 문제들을 판단하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느냐? 3.우리가 천사들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하물며 이 세상 삶에 속한 일들은 얼마나 더 많이 판단하겠느냐?
계시록3:21.이기는 자에게는 나 역시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왕좌에 앉게 된 것 같이 내 왕좌에
나와 함께 앉는 것을 내가 허락하리라. 보셨죠? 말씀 신부는 보좌에 그와 함께 있습니다. 세상을 심판해야
하므로, 신부는 그와 함께 심판하면서 앉아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다니엘이 본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다니엘7:9.그 왕좌들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내가 보매 옛적부터 계신 이가 앉아 계시는데 그분의 옷은 눈같이
희고 그분의 머리털은 순결한 양털 같으며 그분의 왕좌는 맹렬한 불꽃같고 그분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더라.
10.불같은 시내가 그분 앞에서 흘려 나오고 천천이 그분을 섬기며 만만이 그분 앞에 서 있더라. 그분께서 심판을
베푸시는데 책들이 펴져 있더라. 보십시오, 똑같은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수종들고 있는 천천은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아내 외에 누가 수종들겠습니까? (마태복음25:40절 “왕은 그들을 자기 형제”라 불렸습니다.)
이제 이 의로운 자들이 왜 심판을 받고, 영생을 얻을까요? 하는 질문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올라올 수 있는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두 개 뿐이고 그들은 첫째 부활 때 자격이
없었고, 그들은 심판을 받는 부활인 둘째 부활 때 올라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신부들만이 첫째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데, 이들 신부는 심판을 받지 않는데, 이들은 자신의 시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영접한 자들입니다.
요한복음5:24.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믿는 자는 이미 현재 소유로 영생을 받은 자입니다.) 또 그는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실제로 말하는 것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니니) 사망에서 생명으로(영구히) 옮겨졌느니라.
그러나 주의 깊게 보십시오, 예수님은 어떤 부활에서 영생을 받게 될 다른 무리들을 생각하고 계셨나 봅니다.
신부의 한 사람으로서 첫 부활 때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 부활 때 영생을 받을 것입니다,
요한복음5:28.이 말에 놀라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들고 나올 때가 오고 있나니
29.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정죄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런데 우리는 요한복음5:28~29절은 휴거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만 마지막 이
땅에 살고 있는 신부와 함께 그때에 무덤에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4: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런데 요한복음5:28~29절 말씀은 모든 사람이 무덤에서 나오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죽은 자들이 주님 앞에
서서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모두 불못에 던져지는 계시록20:11~15절에
말씀된 부활과 동일한 부활입니다. 우리는 서신들에서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어째서 그들이 심판 때에 영생을 받게 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전체 부활 전이나 혹은 후에 영생을 받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이 있다고
특별히 지적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경시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3:11절에서 분명하고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1.어찌하든지 내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도달하려 함이라. 그런데 이 진술은 정말 특이합니다.
우리는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우리 모두가 부활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모두 부활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어찌하든지 내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은, 바울은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어찌하든지 내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밖에 이르려 하노니.”입니다. 계시록20:6.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릴 권능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
첫째 부활은 둘째 사망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나머지 죽은 자들이 다시 사는 때는 천 년이 찬 후입니다.
그리고 그 날에는 영생으로 나오는 자들과 둘째 사망에 잡히는 다른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둘째 부활 때 생명을 받을 자들에 대해서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그 시대 형제들에게 친절하고 착하게 대했는지에 근거하여 주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못에 던져지는 자들은 그들이 형제들을 잘못 대했기 때문에 그런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는 단순히 받아들입니다. 여기 논쟁할게 없고 그저 단순한 사실 진술이 있을 뿐입니다.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특별히 마태복음25장31~46절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십시오.
그것은 목자가 실제로 양과 염소를 분리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특정한 시간대에서(백보좌 심판) 이들은 양이 아닙니다. 양들은 이미 그의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의 음성(말씀)을 들었고 그를 따랐습니다. 그들은 이미 영생을 받았으므로 심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영생을 가지지 않아, 그래서 심판을 받고 선 한일로 영생에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어떤 근거로 그들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간다고요? 형제들(신부들)에게 친절히 대했기 때문에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의 형제들이 아닙니다. 형제라면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그들은 생명 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상속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보좌도 소유하지 못하고,
기타 다른 것도.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었고 지워지지 않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말씀 신부들) 사랑했기 때문에 인정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봉사하고 도왔음에 틀림없습니다. 어쩌면 니고데모와 가말리엘처럼 그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녀들을 위해 나섰을 것입니다. 이제 주의 깊게 보십시오, 왜냐면 악인들은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회복되지 않고 불못에 던져 질 것입니다. 심판받을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의 이름은 역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그들 시대의 살아있는 표명된 말씀(살아 있는 편지)이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존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이름은 지워졌습니다. 그것은 이절들의 결론으로 매우 분명합니다. 저희는(악인들) 영벌에(불못),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악인들이 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은 두 번 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들을 미혹한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도 천년왕국 후에 심판을 받고, 동일하게 불못에 던져집니다. 이게 백보좌 심판이고, 그들은 책들에
쓰여진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계시록6:9~11절에서 다섯째 인에 나오는 제단 아래 있는 영혼들이 흰 두루마기를, 물론 영생도, 받는 것은
둘째 부활 때인데, 그렇지 않으면 흰 옷을 받을 대목이 없을 것입니다.
계시록6:9.그분께서 다섯째 봉인을 여신 뒤에 내가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간직한 증언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 자들의 혼들이 보니 10.그들이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오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여, 주께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사 우리 피를 대한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는 일이 얼마나 더 지속되리이까? 하더라.
11.그분께서 그들에게 각각 흰 예복을 주시며 또 그들의 동료 종들과 형제들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해 그 수가
차기까지 그들이 아직 조금 더 안식해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더라.
그런데 특별히 이들은 아무도 예수를 증거 함으로써 죽임을 당하지 않았음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그의 이름을
굳게 붙들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안디바 같지 않습니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거듭난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부활 때 올라와서 그들이 말씀에 굳게 섰었기 때문에 생명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피에 대한 보복을 해달라고 외치는 것을 보십시오. 그들은 신부 감이 될 수 없는데, 그들이 신부라면,
“아버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모르오니, 저들을 용서해 주소서.”하고 외칠 것입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이 다섯째 인에 있기 때문에, 이방인 신부는 네째 인에서 휴거하고 없기 때문에, 그들은 유대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유대인들은 그의 성령으로 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방인들을 위해 하나님이 소경 되게 하셨으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비록 그에게 올
수는 없었다 해도, 그들이 알고 있던 모든 말씀에 진실로 충실했고, 많은 무리가 히틀러, 스탈린, 기타 등등의
사람들 밑에서 그것을 위해서 죽었고 앞으로도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올라오는 때는 둘째 부활 때입니다. 그들은 처녀였음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성령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름을 가지고 있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신부의 일원이 된
반면, 신부 안에 들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구별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알고
있는 대로, 말씀 가운데 거하고자 애쓰고, 주의 일에 도움이 되었던 사람들인데, 이들은 시간이 끝나갈 때 올라올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은 천년왕국을 놓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진리들로 인해서 천년왕국은
그 동안 우리가 생각하고 믿었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아름다운 때라는 걸 깨닫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 모두는 생명책에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이름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구의 이름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까? 신부를 대적했던 세계 체제를 가진 교회들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이 지워질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들이 잃어버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먼저 우린 확실하게 하나님의 목적은
선택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목적하신 일이었습니다. 말씀 신부가 될 한 백성을 자기에게 끌어내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셨습니다. 신부는 그 분 안에서 창세전에 선택되었습니다. 신부는 이 땅에서의 시대들 동안
지내기도 전에 미리 아신바 되었고, 사랑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녀는 그의 피로 구속을 받았고 결코 정죄함 받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죄가 고소 받지 않기 때문에 결코 심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한 단계 올라갑시다, 그러나 그러기 이전에 지금까지 우리가 예로 든 것들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로마서4:8.주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1. 신부는 분명히 심판의 보좌에 그와 함께 앉아서 세상과 천사들까지도 심판할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신부 일원들의 각 이름은) 창세전에 어린양의 생명책 일부 안에 적혀 있었습니다.
2. 다른 부류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도 역시 생명책 안에 있는데 그들은 둘째 부활 때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어리석은 처녀들과 마태복음25장에서 언급된 의인들입니다. 이 부류 안에는 또 짐승을 경배하지 않거나
적그리스도 체제에 관련되지 않지만 거듭나지 않아서 신부 안에 들지 않았다 해도 자신의 믿음을 지키며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둘째 부활 때 영생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3.우리가 이집트를 떠나온 이스라엘 내에서 본 것처럼 경계선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행위가 그 책들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그들 가운데 이적과 기사가 있다
해도, 하나님을 순종하지 못하고 성령이 없는 이 사람들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것입니다.
이 무리 가운데는 전적으로 성령이 없어도 종교적인, 비록 책들 안에 그 안에서 택함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무리 가운데 표명을 가질 유다와 같은 성령의 은사를 표명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계시록13장8절과 계시록17장8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무리는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오는 자를 영접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자는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계시록13:8절과 17:8절에서 말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13:8.땅에 거하는 자들 곧 창세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다 그에게
경배하리라. 17:8.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라.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전에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여전히 있는 그 짐승을 보고 놀라리라. 이들은 하나님이 정한 자들이지만 택함을 받은 무리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무리에는 바로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서 말합니다.
로마서9:17.성경 기록이 파라오에게 이르기를, 내가 바로 이 목적을 위하 너를 일으켰나니 이것은 내가 네 안에서
내 권능을 보이고 내 이름을 온 땅에 두루 밝히 알리려 함이니라, 하시나니 22.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노를
보이고 자신의 권능을 알리기 위해 파멸시키기에 합당한 진노의 그릇들에게 심히 오래 참으심으로 인내하시고
이런 사람들은 아무도 생명의 기록에 들어있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틀림없이 그들에 대한 어떤 기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기록에는 없습니다. 그들이 존재하는
목적은 이 책의 남은 부분에 약간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몇 군데 더 보기로 하겠습니다.
잠언16:4.…사악한 자도 악한 날을 위하여 만드셨느니라.
욥기21:30.곧 사악한 자가 멸망의 날까지 남겨진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들이 진노의 날로 인도되리로다.
이 부분의 말씀은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믿어야만 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의도를 이기거나 그의 뜻과 목적을
방해할 수 없고, 그는 전능하시므로 모든 문제들을 주관하시고 모든 것이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해 창조되었으므로
그의 모든 피조물을 원하시는 뜻대로 다루시고 계신다고 제시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린 것들을 기분 나쁘게 여기실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대로, 만약 하나님이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신다면, 누가 기분이 상하고 그에게 항의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견지에서 하나님은 이 일을 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앞으로 더 나가셨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서14장7~9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전 세계의 매입 가격을
지불하셨다는 논박할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자기 소유를 자기 뜻대로 하실 수가 있는 겁입니다.
로마서14:7.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를 위해 살지 아니하고 또 아무도 자기를 위해 죽지 아니하는 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이 목적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일어나사 다시 살아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여기서는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라 소유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7장을 보십시오.
요한복음17:2.아버지께서 그에게 모든 육체를 다스리는 권능을 주셨사오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자들에게 그가 영생을 주게 하려 하심이니 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인정한다면, 그가 지혜와 의로움에
있어서도 완벽하시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택하심과 버리심의 이 계획은 에베소서1:3~11절에 말씀하고 있듯이, 모든 시대에 계시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3.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송하리로다. 그분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모든 영적인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셨으니 4.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5.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 6.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느니라. 그 은혜 안에서 그분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를 받아 주셨으니 7.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8.그 은혜 안에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분별을
넘치게 하사 9.친히 자신 속에서 작정하신 자신의 크신 기쁨을 따라 자신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주셨으니
10.이것은 충만한 때의 경륜 안에서 친히 모든 것 즉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분 안에서 다 함께 하나로 모으려 하심이라. 11.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유업을 얻었으니.
그래서 만일 하나님이 어린 양의 생명책 일부 안에 이름들이 기록된 사람들이 있고 그것은 그의 신부 이름들이므로
지워질 수 없도록 정해두셨다면,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약 이름이 생명책의 기록에 쓰여져 있는 자들이 있고 하나님의 미리아심으로 그들이 타락할 것이고 그들의 이름이
지워져야 한다고 또 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기록에 결코 들어있지 않은자가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도 역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형제들인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 착하고 친절하고 정당하게 대했다는 유일한 근거로 백보좌 심판
이후에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사람들이 있다면, 그러면 우리는 그것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교훈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분에게 믿음으로 복종하며 살기로 합시다.
이 주제를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이제 시대들을 거치는 교회의 견지에서 접근하는게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개인들의 이름이 지워지는 면에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개인들이 아니라, 교회로 대표되는 무리들을 고려해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시대들을 거치는 교회를 밀 식물에 비유하겠습니다.
밀알은 그 알갱이 하나가 특정 시기 동안 특정한 과정을 통과해 번식하고 증식하도록 하기 위해서 심겨집니다.
그 밀알은 죽음을 통해 그 안에 있던 생명이 올라와 처음 상태로 돌아갈 그 생명의 보유체 또는 전달체가 될 식물
안에 들어갈 것입니다. 위대한 왕의 씨인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교회의 생명되신 그 비할 수 없는 분은 자기 생명이 부활 때 그의 몸과 같은 몸으로 재현되게 하기 위하여
교회에게(전달체 또는 보유체) 그의 생명을 주시면서 모든 일곱 교회 시대 동안에 교회의 중앙에 서 계십니다.
부활 때에 그 왕의 씨는 자기와 같은 많은 왕의 씨들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와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우리가 “그와 같으리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침례자 요한이 예수께서 “알곡은 곡간에 들이시리라.”고 말했을 때 언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영원한 생명에 택함을 받은 구속 받은 자들이 들어오는 부활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 밀 식물의 결말은 증식된 형태로 원(元) 종자를 생산하는 것인데 그 기록은 생명책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이 밀 식물의 역사 또는 기록은 생명책이고 생명책의 일부는 영생의 기록입니다.
밀 식물을 조사해 보면 이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밀알이 하나 심겨졌습니다. 곧 잎이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밀이 아닙니다. 그리고나서 줄기로 성장합니다. 이것도 아직은 밀이 아닙니다.
생명이 거기에 있긴 하지만 밀은 아닙니다. 그리고나서 그 줄기의 끝에 가서 술을 내보내는 작은 이삭이 나옵니다.
아직도 밀 식물이지 밀은 아닙니다. 그리고나서 그 식물은 수분과정을 거치고 그리고나서 우리는 겨가 자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로 밀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씨가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껍데기 안에 밀이 형성됩니다. 이제는 처음 상태로 돌아갑니다. 이제 다 익은 밀은 추수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습니다. 그는 자기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생명은 교회에 돌아와서 많은 아들들이
자기와 같게 되어 부활의 영광에 이르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밀 씨가 증식된 밀 씨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전달체를 가져야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생명의 전달체가
될 교회가 있어야 했습니다. 잎과 줄기와 술과 껍데기가 씨를 위한 전달체이고 씨 자체는 아닌 것처럼,
모든 시대를 거치는 교회 전체도 씨 자체는 아니더라도 참된 씨의 전달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책은 밀 식물 전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봅시다. 여기에 심겨졌던 그 원 씨가 있습니다. 그것은 잎을 내었습니다.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줄기를 내었습니다.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술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꽃가루가 그 암술들에 떨어집니다.
그 식물의 일부가 소생됩니다. 그 식물의 나머지를 통과해 올라온 그 원 씨의 뭔가가 씨로 변합니다.
왜 식물 전체가 씨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 목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식물의 일부만이 씨로 돌아갈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밀 식물의 일부만이 영원한 생명 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에서 그것의 완벽한 예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백만이나 되는 강한 나라로 나왔습니다. 모두 다 희생 제물의 피를 통해서 탈출했습니다.
모두 홍해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모두 성령의 표명과 축복을 즐기면서 물에서 올라왔습니다.
모두 천사의 양식을 먹었습니다. 모두 다 그들을 따르는 반석에서 나는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소수를 제외하고 그들은 그들을 따라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녀들을 위한 전달체에 불과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은 아닙니다. 아주 적은 소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졌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이스라엘처럼 똑같습니다. 이름들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입니다. 어떤 이름은 영원한 생명의 책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생명책에 포함되어 있다 할지라도 또 다른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요한1서5:11.또 그 증거는 이것이니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분의 아들 안에 있는 것
이니라. 12.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영원한 생명)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 생명을 가진 자들은 창세 전에 그 안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창세 전에 그 안에서 선택되었습니다. (엡1:4~5절)
그 위대한 왕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는 심겨졌고, 그 안에 있던 그 생명은 밀 식물을 통해 올라왔고, 그들 안에 동일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영으로 그들이 원 씨이기 때문에 처음 씨와 같은 무수한 많은 밀씨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구속받은 (원 소유자에 의해 다시 사온) 신부가(그녀는 이브가 아담 안에 있었듯이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그 기록에서 신부의 이름들이 지워질 수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부는 그의 일부입니다. 그녀는 보좌에 있습니다.
그녀는 결코 심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부 속에 있는 모든 이들은 그분의 일원이고 그분은 아무도 잃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생명책에 있는 모든 자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는 기록에 속해 있지만 나중에 이름이
지워지는 유다와 같은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훌륭한 일들을 행한 후에 오는 자들을 보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절대로 모른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의 전지하심은 그것을 배제합니다, 그들은 신부 안에 있는 자들로 미리 아신바 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둘째 부활의 때에도, 의인들 가운데에서도 미리 아신바 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마태복음7:22~23절)
그들은—말씀 안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했고 그러므로 그들은 죽음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앞에서도 보여드렸듯이 신부를 위해 앞장서고 신부에게 도움과 위안이 되었던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남아 있었고 영생으로 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절대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던 바로와 같은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역시 불못에 던져집니다.
그래서 수확을 위해 식물이 되었던 밀알은 교회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밀 식물 전체가 밀 씨가 아니듯이, 그리고 모든 식물이 수확 때 사용되지 않듯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교회가 신부는 아닙니다, 그것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받지 않고, 오로지 그 일부만 모아 곡간에 들여집니다.
또 일부만 간직되어 둘째 부활 때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고, 겨로 간주되는 그 일부가 불못에서 태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침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밀은 모아 곡간에 들여지고, 겨는 불태워지리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라지들을 묶어라, 그리고나서 밀을 거둬들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지들은 반드시 먼저 묶여야 하기 때문에, 에큐메니칼 운동은 가라지 교회들을 먼저 한 단으로 묶을 것입니다.
그들의 결국은 불에 태워지는데, 그들이 불태워지기 위해서, 천 년이 찬 후 또는 둘째 부활 때까지, 보존됩니다.
그러나 일단 가라지가 한 단에 의해 묶이게 되면, 휴거가 일어날 수 있고, 묶을 때와 적그리스도가 계시되는 때,
사이에 휴거는 일어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다니엘이 보았던 대로 모든 자들이 함께 서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왕은 신부와 함께 거기에 있을 것이고 그들 앞에는 심판 받게 될 무리들이 서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자들이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모든 책들이 펴집니다. 모든 것의 마지막 배치가 이루어집니다.
추수는 정말로 끝났습니다. 한 때 열렸던 책들은 닫히게 됩니다.
이제 이 주제의 결론을 내리면서, 처음에 주님이 현재 이름들의 기록을 집계하고 계시고 있다고 말한 성경구절은
한군데도 없다고 말씀 드렸는데 그걸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집계하실 것에 대해 지적하는 성경 말씀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87편6절에 있습니다.
주님이 시온에서 난 모든 자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라도 하나님이 시대들의 끝이나
어느 누가 시온에서 태어난 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시기의 끝까지 기다리셔야 한다고 가정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막는 것이 될테니까요. 분명히 하나님은 어느 누가 그 수를 채울지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둘째 부활 후에 남아 시온에 속한 그 이름들을 새 기록에
기록하신 개정판 기록부가 아닐까요? 물론, 그것은 개정판 기록부입니다.
계3:5“내가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하늘에서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욥14:14.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리이까? 나를 위하여 정하신 시간의 모든 날을 내가 기다리되 변화가 내게 이를 때까
지 기다리겠나이다. 15.주께서는 부르시겠고 나는 주께 응답하리니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원하시리이다.
대(大) 목자가 그의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음성은 땅에서 그들을 부르고 계시고,
또는 그들이 잠들지 않았다해도 그들의 원자들을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그것이 휴거입니다. 그것은 어린 양과 그의 신부의 위대한 혼인 만찬입니다.
그런데 휴거가 마지막 유일한 점호는 아닙니다.
거기 둘째 부활에서, 대 백보좌 심판 때에도, 아버지와 그의 천사들 앞에서 이름들이 시인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인간의 귀에 가장 달콤한 소리는 자기의 이름이 불리는 소리라는 것을 사람들에게서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대중 앞에 자기들의 이름을 내기를 얼마나 좋아합니까. 사람들이 갈채를 얼마나 좋아합니까.
그러나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고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시인되려고 거기에 남아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처럼 여러분의 이름을 달콤하게 부를 소리는 이 땅에는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그들은 지상에 사는 동안 사람들 앞에서 내 이름을 시인했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과 하늘에 있는 모든 천사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고백합니다,
하고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며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게 될 그 날은 얼마나 좋은 날일까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다시 한 번 성령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성령이 또 다른 시대에게 말씀하신 기록을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록이 정확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시대가 지나갔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그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충실하시고 그가 하신 모든 약속을 이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 마음이 기뻐 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사데 시대의 사람들에게 신실하시고 진실하셨다면,
우리 이 시대에도 똑같이 진실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인해 그에게 영접받고 칭찬받을 거라면,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벽함에 나아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와 함께 영원히 삽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창세전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이름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께서 지어 주신 그 새로운 이름이 사람들 앞에서 불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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