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10장 가정은 행복의 터전이다 2. 혼란과 비판을 넘어 행복의 길목으로 통일교의 축복결혼식 역사는 반백년이 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가장 많았던 때는 4억 쌍(신혼 부부, 기성 부부, 영인 축복 포함 )의 축복결혼식을 7차례로 나눠 전 세계에서 치르기도 했다. 지금은 합동으로 축복결혼식을 올리면 수만 쌍이 되어도 언론에서 '하나의 뉴스'로 보도 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여곡절이 참으로 많았다. 결혼은 어느 문화나 인종, 종교, 시대를 막론하고 신성하고 기쁘고, 행복한 의식이자 잔치이다. 신랑신부 당사자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 가족, 친지, 친구들 모두 기뻐하고 축하해준다. 또 인류의 삶을 이어나가는 중요하고 성스러운 제도다. 통일교 신도들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통해 한 인간이 성인으로서 가정을 이루고 자신의 뜻을 펼쳐 사회와 국가, 세계에 이바지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통일교 축복결혼은 험난한 노정의 연속이었다. 처음 세 가정이 합동 결혼식을 올렸을 때는 숫자가 적기 때문에 조용히 치렀지만 1961년 36가정 축복식 때는 그야말로 시끌벌적했다. 36가정 합동결혼식을 할 때 신랑신부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문선명의 이름으로 일주일 전에 초청장을 보냈다. "5월 15일에 청파동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니 참석해 주십시오" 하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이러이러한 예복을 입고 와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자 부모들이 요란하게 항의했다. 자기 자식의 결혼에 남이 청첩장을 보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것이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나?", "누가 남의 자식 청첩장을 보내?"라면서 거세게 비난을 퍼부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기분이 무척 나빴을 것이다. 하지만 문선명은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미리 안내한 예복을 입고 오지 않으면 그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의 부모는 자식의 결혼식장에 오기는 했으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가 있어 예복은 입고 오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신도에게 부탁해서 예복을 빌려 입고 참석했다. 문선명은 그때 합동결혼식을 혁명의 마음으로 했다. 2천년 동안 이어 내려온 기독교 전통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고, 반만년이 넘는 대한민국의 전통도 완전히 바꾸었다. 사람들은 이 혁명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동참하지도 못해 우르르 몰려와 싸움을 벌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속에 시작한 축복결혼식은 면면히 전통을 이어 갔다. 1962년에 72가정이 새출발을 했고, 1963년에 124가정이 결혼식을 올렸으며, 1968년에 430가정이 축복결혼을 받았다. 축복결혼은 한국에서만 치러진 것이 아니다. 1969년 2월 미국에서 13가정이 합동결혼식을 올린 것이 해외에서의 첫 출발이었고, 일본에서는 1969년 5월에 22가정이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2015년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인종과 국경, 문화와 지위를 초월해 축복결혼을 받았다. 한국 신랑과 미국, 미국 신랑과 일본 신부, 영국 신랑과 나이지리아 신부, 브라질 신랑과 프랑스 신부가 결혼을 했다. 그들은 모두 행복하고 성스러운 마음으로 결혼을 했고 따뜻한 가정을 이루어 아들딸 낳고 잘살고 있다. 이들은 모두 통일교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인종갈등을 치유하는 선구자들이며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일꾼들이었다. 상대의 학력이나 재산의 많고 적음, 언어와 생활습관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원수 집안의 신랑, 신부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사람은 대부분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자기보다 잘나고, 자기보다 더 부자인 사람하고만 결혼하려 한다면 이 세상 그 누구도 결혼을 할 수 없다. 배우자가 못 생기고, 다리가 불편하고, 배우지 못했다 해도 사랑의 마음으로 받아들려야 한다. 통일교 신도들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 배우자가 되었다 해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처음에는 마음속으로 '왜 내 신부는 이리 못 생겼노', '왜 내 신랑은 이리 가난한가'라고 불만을 갖기도 했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곧 그 잘못을 깨달았다. 결혼은 오로지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문선명은 가르친다. 그 사실을 깨달은 신랑신부들은 자신보다 못한 배우자를 만난 것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 그와 결혼해 그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참된 사명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출처 - 천일국 경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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