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고 삽시다
본 문: 마태복음 6:24-34
설교일: 2024. 4. 21(주일 낮 예배)
오늘 말씀은 염려라는 병에 걸려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오늘 말씀, 열 한절에서 “염려”라는 단어가 여섯 번이나 나오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염려라는 병에서 벗어나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이 염려의 병에 걸리지 않은 인생이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저마다 염려가 내뿜는 독소에 시달리면서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문명이 발달되면 될수록 염려의 비중은 커지고, 염려가 남기는 후유증은
더욱 심각합니다.
미국의 아서랭크라는 사업가의 이야기입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직장생활하는 사람들보다 염려거리가 더 많이 있습니다.
한 달의 수입과 지출에 대한 문제, 인적 관리에 대한 문제, 일터의 안전에 대한 문제,
세금 문제 등등 걱정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업가 아서랭크는 거기다가 불안한 미래의 경제전망 때문에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한 가운데 쫓기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그에게 문득 떠오르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염려에 붙잡혀 지내기보다는 일주일 중 하루만 염려하는 날로 정해 놓고
그 날만 염려하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요일을 염려하는 날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염려거리가 생길 때마다, 그 내용과 날 자를 기록해서 상자에 넣고, 그 상자를 ‘수요일 염려상자’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에 그 염려상자를 개봉해서 염려할 것은 그날 다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몇 주를 하면서 아서랭크는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염려의 내용을 기록하여 넣을 때에는 정말 큰 염려거리였는데,
수요일에 꺼내어 볼 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변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것은 아주 깨끗하게 해결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수요일의 염려상자’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염려는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오늘 본문 27절에서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염려해서 키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염려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34절에서는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내일이 오면 오늘의 염려는 변할 수 있고,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필요한 염려를 오늘 미리 하는 것은 어리석인 일입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이 염려를 ‘느린 형태의 자살’이라고 했습니다.
염려가 느리게 서서히 사람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의 염려가 영어로는 Worry 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영어 단어의 어원은 ‘물어 뜯는다’고 하는 무서운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염려는 사람들의 목을 물어뜯어서 육체적인 힘과 기능을 잃어 버리게 하고,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데 이 염려는 육체적인 병만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을 보면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진다고 했습니다.
둔해진다는 말은 ‘감각을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염려는 영적으로 감각을 잃게 하여 영혼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염려는 분명한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에게 염려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염려가 우리의 육체는 물론이고, 영혼에도 절대 해롭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그토록 해로운 염려로부터 벗어나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오늘 본문 24절이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의 생명과 행복은 전적으로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못하고, 자기의 생명과 행복이 다 재물에 있다고 생각하며 재물을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염려는 바로 그런 사람을 향하여 어김없이 찾아 오는 것입니ᅟᅡᆮ.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해로운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이제 예수님 믿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나의 생명과 행복의 원천이 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에게 염려는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 2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생명체를 책임지고 기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하나님이 책임지고 기르신다면,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가장 존귀하게 창조하신 우리는 말해서 무엇합니까?
공중에 있는 새를 먹이시고 기르시며, 들의 백합화도 입히신다면 자기 자녀는 더 잘 먹이고 더 자상하게 보살펴 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둘째, 자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디모데 후서 6장에서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유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에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없고 또 세상을 떠날 때에도 가지고 갈 것이 없으니 그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나의 생활에 만족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무슨 발전이 있느냐고 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자족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발전이 있지!, 염려를 하면서 주저앉아 있으면 무슨 발전이 있겠습니까?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염려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족하면 염려는 절대 우리를 사로잡지 못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3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즉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나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유익을 찾고, 나보다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염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나에게 필요한 다른 모든 것들도 다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유때문이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그 생명을 유지하도록,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고,
또 앞으로도 오직 아버지의 은혜로 살아갈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 비를 주시고, 자비로우시고 은혜가 풍성하신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육신의 아버지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실 줄 아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은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자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족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생각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렴 ㄴ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더 큰 은헤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짓누르던 염려가 눈 녹듯이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마다. 일마다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 어떤 환경, 그 어떤 상황, 그 어떤 문제 앞에서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행복의 근원이 되시는 아버지시여!
지금까지 저희들의 삶을 돌아보면, 두 주인을 섬기느라고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나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주인으로 섬길 때가 더 많았나이다. 그런고로 수많은 염려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염려의 독소에서 시달려 왔나이다.
아버지여! 지금까지 저희들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
아버지 하나님 !
이제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옵서
하나님만이 나의 생명과 행복의 원천이 되시고,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알게 하시고,
항상 자족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