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 전력자가 남한 쥐었다” 김일성의 ‘박정희 공작’ 오판 (23)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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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0월 20일 중앙정보부는 서울에 잠입한 전 북한 무역상 부상(副相·차관급) 황태성(黃泰成)을 연행했다. 황태성은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친형과 친구다. 그는 박정희 의장과 김종필(JP) 중앙정보부장, 두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며칠 뒤 JP는 박 의장을 찾아가 ‘거물 간첩(間諜) 황태성 검거’ 내용을 처음 보고한다.
황태성이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이북에서 내려왔다는 보고에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얼굴은 내내 굳어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던 박 의장이 물었다. “그래, 어떻게 할 작정이야.”
나는 힘주어 대답했다. “조사할 거 조사하고 나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두고두고 화근거리가 됩니다.” “아…, 어떻게.” “법적 절차는 다 밟습니다. 재판을 해야 하니까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제가 알아서 조치할 테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이 말을 듣고서야 박 의장 얼굴에 화색이 돌아오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말이 없었다. 혼자 마음속에서 주고받고 하면서 고민을 하는 듯했다. 어려서부터 ‘형님, 형님’ 하며 황태성을 따라다녔는데, 그 흉중(胸中)에 물결이 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 의장은 다른 말 없이 “그래, 잘 좀 취조해 봐”라고 말했다. 황태성 처리에 대해 박정희 의장이 내게 내린 지시는 그게 전부였다.
박정희는 딱 한마디만 했다…‘황태성 사형’ 사건의 진실 (24)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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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 간첩 황태성’에 대한 미국의 시각은 미묘했다. 김일성의 밀사로 자처한 황태성은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친형 친구다. 박 의장과 그의 조카사위인 정보부장 김종필을 만나려고 시도했다. 그 때문에 미국은 박 의장에게 의심 섞인 눈초리를 보냈다. 서울 주재 미국 정보기관들은 황태성을 직접 신문(訊問)하려 했고, 그 문제로 양국 정보기관은 갈등을 겪기도 했다.
황태성 체포 사실을 박정희 의장에게 보고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국장 피어 드 실바(Peer de Silva)가 나를 찾아왔다. 이북에서 내려온 황태성을 잡아뒀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드 실바는 “우리 CIA가 신문해야 하니 황태성의 신병(身柄)을 넘겨 달라”고 내게 요구했다. 나는 “우리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 끝나면 그때 조사하라”고 거절했다.
20여 일쯤 지나 드 실바가 다시 찾아와 같은 요구를 했다. 거듭된 요구에 나는 황태성을 미국 측에 내줬다. 대신 “신문이 끝나는 대로 우리한테 돌려보내라”고 했다. 드 실바는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하고 황태성을 데리고 갔다. 내가 중앙정보부장을 그만둔 뒤에야(1963년 1월) 미국이 황태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는 항간의 얘기는 틀린 것이다.
미국은 박정희 의장의 과거 좌익 경력을 의심했다. 황태성이 남한에 내려온 것도 사전에 내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겼고, 황태성을 통해 박 의장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한 것이었다. 박 의장은 사상적으로 아무 문제될 게 없었으니 CIA가 정체를 알아낼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황태성을 처음 붙잡았을 때부터 빨리 재판절차를 마치고 간첩죄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이 문제로 곤란한 처지에 놓일지도 모르는 박 의장을 위해서였다. 그땐 툭하면 박 의장을 사상적으로 음해하는 세력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