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에서 상상과 허구
백남경 인제대 미래교육원 글쓰기교실 강사
수필은 자신이 경험한 어떤 사실을 기억을 통하여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내는 방식의 문학 장르라 할 수 있다. 체험, 경험, 삶에 대한 기억이 기본 바탕이 된다. 여기에 대한 해석, 의미 부여, 사색, 사유, 성찰하는 형식이 대체적이다. 이는 시가 상상, 소설이 허구를 각각 핵심 바탕으로 하는 것과 대비된다.
수필의 소재는 진짜 이야기가 많다. 이 진짜 이야기도 기억을 바탕으로 하나 기억과 동일할 수는 없다. 기억은 변형되고 마모되고 탈색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은 반드시 과거의 진실이라고 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굴절되거나 왜곡되거나 더해지거나 삭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짜 이야기라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답은 그래도 진짜 이야기로 취급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수필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원형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가 상상을 바탕으로 한 언어의 그림이고, 소설이 허구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서사라는 점에서 둘은 허구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 수필은 사실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필에는 상상과 허구가 내포될 수 없는가? 반대로 시와 소설에는 진짜 사실이 내포될 수 없는가?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허구문학으로 분류되는 시와 소설에도 진짜 사실이 들어갈 수 있고, 반대로 사실문학인 수필에도 가짜 사실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취급이 다를 뿐이다. 시와 소설의 사실은 그것이 진짜라 하더라도 가짜 사실로 취급되며, 수필은 설령 가짜 사실이 개입되더라도 그것은 진짜 사실로 취급된다는 점이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언어와 문자로써 표현한 인간의 사상, 감정, 상상 등의 미적 작품을 문학으로 정의한다. 수필을 정의함에 있어 '상상의 힘을 빌어서'라는 부사구가 어떤 사전에는 들어있고, 어떤 사전에는 들어있지 않다. 이와 같이 국어사전에서도 상상의 개입 여부가 엇갈리다 보니 수필가나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수필에 상상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불허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갈린다.
그러면 상상과 허구의 관계를 살펴보자. 어떤 문학평론가는 "상상은 표현되지 않은 허구이고, 허구는 표현된 상상이다"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것은 충분한 정의라고 할 수 없다. 허구는 상상의 부분집합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창작에 있어서는 허구와 상상을 명확하게 구별하기도 어렵다. 이는 형법에서 인식 있는 과실과 미필적 고의를 구별하는 만큼이나 어려운 문제다. 문학에서는 이 둘을 구별할 실익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수필에서 상상과 허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필은 진짜 사실을 형상적으로 서술하여 주제를 이끄는 문학 장르이다. 그러면 수필에서 상상과 허구는 사실 안에 전혀 섞일 수 없는 건가. 작가가 수필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기억을 토대로 서술하더라도 상상과 허구가 묻어서 들어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요는 작위성 여부이다. 대놓고 허위나 상상을 끌어들여 서술한다면 수필의 본연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작위적으로 허구와 상상을 가져오는 건 허용될 수 없다고 하겠다. 특히 이야기 자체가 사실에 없는 일을 사실처럼 꾸며 만드는 허구라면 수필이라고 이름 붙일 수조차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면 수필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콩고물처럼 묻어나는 상상 또는 허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상상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을 말한다. 상상은 재생적 상상과 창조적 상상으로 나뉜다. 후자는 허구일지 모르나, 전자는 허구라고 할 수 없다. 과거의 사실을 재현하면서 그러한 사실이 진실의 빛을 발하도록 북을 돋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괴테는 "상상력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다. 조지 오웰은 "상상력은 야생동물과 같아서 가두어두면 번식력이 약화된다"고 했다. 상상 없는 문학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에 걸려 빛을 발산하는 목걸이가 광산에서 채취될 때부터 모양을 갖춘 보석이었던 건 아니다. 다듬는 과정을 거쳐서 보석에 이르렀음을 우리는 까마득히 잊고 산다. 수필도 마찬가지여서, 보석처럼 빛나는 수필도 처음에는 허접한 메모 한두 줄이었음을 잊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