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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박 찬 덕 선교사
반석과 생명수에 대한 1부 말씀에 이어서 2부 말씀의 교제를 시작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이 생명수를 받아 마시는 방법을 잘 모르는데 제가 비밀을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생명수를 가장 많이 받아 마시게 되는 비밀 중의 비밀입니다.
여러분 주 예수님의 이름을 어느 때 우리가 자주 부르게 될까요
제가 굉장히 중요시하게 여기는 이 교제의 내용을 편집하고 문서화 하고 사람들에게 유튜브로 동영상으로
매번하는 이 일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수를
받아 마시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체험적으로 그걸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제를 나눌 때 우리가 예수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나타내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생명수를 받아 마시는 것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교회를 다니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 들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생명수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마셔야 되는지 사람들이 모릅니다.
그런데 기도도 복음 전파도 이러한 일들도 다 생명수를 마시는 것 가운데 하나이고 묵상하는 것도
다 이 생명수를 마시는것 중에 하나 이며 여러 방면들 중에 한 방면인것은 맞지만 가장 큰 방면이 이런 교제
제가 여러분들한테 이러한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스도에 대한 이름을 부를 때 사실은 저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마시고 있는 거예요.
호흡하고 있는 거에요 내쉬기만 하면 살수 없잖아요 들이 마셔야 되잖아요.
저는 사실 그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 교제한 내용을 듣고 또 어떤 봉사자들은 이 말씀들을 문서화하기 위해서 이것들을 듣고
편집해서 만들고 또 이렇게 글로 내보내는 그분들도 마찬가지로 생명수를 크게 받아 마시고 있는 거예요.
이 사실을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의식하고 한 번 느껴보세요.
이게 생명수를 받아 마시는것 중에 하나구나 이런 것이구나 놀라운 일을 경험하실 거에요
많은 사람들이 생명수를 어떻게 받아 마셔야 되는지 받아 마셨으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들은 많이 할거에요
바로 이러한 일들 여러분들이 이러한 것들을 문서화로 만들고 또 전하기도 하고 하다 못해 전할 사람이 없으면 제가 어떤 봉사자분들에게 그런 얘기도 했습니다.
정히 전하고픈 마음은 있는데 사람이 없을때는 앉아 있는 의자에게라도 너 예수님이 이러한 분이신걸 아느냐 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 가운데 생명수가 우리에 적셔집니다.
내가 오죽했으면 그 얘기를 했을까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생명수를 마시는 것임을 커다란 방면 중에 하나라는 것을
이사야서 12장 3절 4절 과 사도행전 2장 21절 한번 읽어볼까요.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4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사도행전 2장 21절 한번 읽어볼까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생명수가 흘러 적셔지고 침투되고 보존되어지고 내주되어지고
그것이 나 자신이 재조성되어지는 자아가 구원받는 것입니다.
지금 저희들이 반석에 대한 얘기 생명수에 대한 얘기를 계속 여러분들에게
출애굽기17장6절에 나오는 심오한 생명의 말씀을 지금 얘기하고 있는데요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는 면에서 출애굽기17장 6절 말씀을 다시한번 읽겠습니다.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께서 반석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행 노정 중에 가는 길 목 중에 처음과 나중에
그 반석을 미리 예비하시고 준비하셔서 세워놓게 하십니다 일치하게 하십니다 자리를 잡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예비하시고 계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육체로 오셔서 인생을 사신 33년 반 동안의 인생의 삶과 그리고 마지막 삶의
결정체인 골고다 갈보리 언덕에서의 십자가의 죽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출애굽기 17장 6절 말씀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성육신하신 그분의 인생 그 자체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 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거기서 그동안에
만세전부터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왔던 그 생명수의 흐름에 적셔진바 된 자들만이 그 생명수에 적셔진
자들이 어떤 자들이라 그랬죠 하나님의 구애를 받고 반응을 하는 자들 하나님의 그 로맨스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이 의미를 아는 자들에게 생명수를 주어서 영원한 생명을 부여해 주시려는 목적을 가지신 그분이 함께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인생과
갈보리 언덕에서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바로 이 반석은 그렇게 그림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반석을 치는 것이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율법의 권능에 의해서 율법에 있는 힘의
지팡이에 의해서 그리스도께서 때림을 받았다 라는 것을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라는 요한복음 19장 34절 말씀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여기서 끝나서 산출되어져서 아담이 자신과 같은 하와를 산출되어 배출하고 예수님께서 피와 물을 흘러내리게 함으로 말미암아 구속하여 주심과 동시에 생명수의 물을 먹고 마시게 하였다는 것이 거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어요.
문제는 이 생명수의 흐름이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시는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 안에서
흐름이 계속되어졌다 라는 것을 인식해야 됩니다 이 부활 안에서 이 생명수의 흐름이 계속 되어졌다 라는
것은 뭐냐 하면 승천하신 그분이 하늘 보좌에 앉으셔도 그 일을 하게 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가 인식 하고
있다는 것과 똑같은 말씀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에덴동산에서는 생명나무로부터
그 생명수가 발원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부분을 한번 읽어 볼까요 창세기2장10절 말씀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내 근원이 되었으니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왔던 이 생명수가 에덴동산에서부터는
생명나무에서 부터 발원 되어서 이 4개의 강을 통하여 물이 흘러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와 물을 흘러 내리게 한 십자가의 죽음에서 그 일이 끝났는냐 그게 아닙니다.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 부활의 영이신 주의 영을 통해서 계속 흘러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계속 하나님의 보좌 올라가신 거기서부터 다시 환원되어서 다시 시작된 것이 원을 그리듯이
계속 둥글게 둥글게 계속 지속되어져서 흘러 내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에덴 동산의 생명나무로 부터 발원된 이 생명수의 흐름이
왜 인간 세계에 주님께서 죽으시고 50일째 되는 오순절날 때가 된 후에 주님의 영이 오셨는데
그전에는 왜 주의 영이 오시지 않으셨을까요?
공개적으로 합법적으로 모든 인류에게 이 임하는 사건이 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시작된
이 생명수의 근원이 왜 지속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올 때까지 멈춰졌을까요?
그것은 이러한 비밀과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반석이 비밀스럽고 신령하고 감춰진 영적인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왜 그러냐면 여러분 이 얘기를 듣고 어떤 자들은 놀라 자빠질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육신을 입고 인자로 오시기 전까지 곧 성육신하시기 전까지
인생을 33년 반의 삶을 살기 전까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경험하시기 전까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왔던 그 생명수가 흐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게 그래서 성육신이 중요한 것이고 그분의 33년 반 동안의 인생이 그렇게 중대차 한 것이고
사람들은 십자가의 죽음만 생각하지만 여러분 그게 아닙니다 성육신이 더 중요합니다
성육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33년반 동안의 인생이고요 그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십자가의 죽으심이에요.
이 세 가지가 단계적으로 성취되고 과정을 이루기 전까지는 절대 흐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피와 물이 흘러 나오더라 라고 요한복음19:34 절에 그렇게 써 있는 거에요.
터쳐서 나오기 위해서는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인자로 오시는 삶 그래서 인자가 온 것은
인자가 온 것은 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놀랍지 않습니까
그래도 지금 이 말씀들을 근거로 해서 이 생명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이신 주의 영을 통해서
지금도 계속 흐르고 있고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 임하여서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 이런 느낌을 얘기하고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이 침례라는 의미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산다 라는 이 침례의 의미가 바로 이 생수를
마시는 것에 대한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렇게 얘기하시죠
요한복음: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그렇게 구하고 갈망하고 갈구하면 그 물을 그가 하나님이 네게 나를 통해서 부어주실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인자로 오셔서 사신 육체로 오신 그 성육신과 33년 반 동안의 인생을 사신 그 삶의 과정과 갈보리 언덕에서의 십자가의 죽음을 이렇게 경험하기 전까지는 절대 흐를 수가 없었어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완전하게 공개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생수는 이 수가성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만난 그 여인에게 말한 이 생수란 바로 부활 안에 있는
생명수입니다.
왜냐하면 성육신 하신 것도 33년 반동안의 인생도 갈보리 언덕에서의 그 죽음도 이것을
흐르게 하는 모든 일들이 준비 절차 단계이고 실제적으로는 그분이 부활의 영이 돼셔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생명의 물인 생명수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여인에게 얘기한 이 생수는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이신 주의 영이신
부활 안에 있는 생명수 그전에는 생명수가 흐를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인자가 죽지 아니하면 영광이 생명수로 흘러 나가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주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셔서 인자로 오셔서 인생을 사시고 그 십자가 위에서 로마 병정에
의해서 창에 찔린바된 이매 맞는 일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에 의해서 때림 받는 일 이 반석이 깨뜨려 지는
일이 있기 전에는 이 물을 우리가 절대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인자가 깨뜨려지기 전까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기 전까지는 불의 심판이죠 진노는 뭐에요 하나님의 불의 심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쏟아 내렸던 하늘에서부터 쏟아내렸던 유황불과 같은 진노의 심판입니다.
이 진노의 심판을 받기 전에는 우리가 이 물을 생수를 따라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내가 목 마르다 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내가 목마르다 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불의 심판을 견딜 수가 없었던 거에요
우리가 경험해야 될 그 진노의 심판 불의 심판을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고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내가 목마르다 그 갈망 때문에 그 갈급함을 경험하고 통과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마실 수 있도록 자신이 깨어진 겁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지팡이 율법의 지팡이로 매맞은 진노의 심판을 홀로 받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 생명수에 대한 얘기를 예수님께서 계속 요한복음을 통해서 하고 계시는데
이 생명수의 강은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부활과 직접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에 부활하지 않으셨으면 이 일이 지속적으로 흘러내리는 일이 단절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 성경에는 7일째 되는 안식일 날 그것을 기념했지만 지금은 8일째 되는 이 첫째 날
주의 날 이 날을 우리가 더욱더 새로운 기념일로 새롭게 받아들이고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그러나 원칙은 이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일곱째 날 그 안식일을 통해서 구별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 분별되신 하나님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에서 구약 성경에 있는
그 일곱째 날이 지켜지는 것이 원칙적으로 옳지만 지금은 새롭게 부활하신 삼일째 되는 주일날이라 그러죠
그것이 새롭게 지켜져야 된다 라는 면에서 이렇게 변화가 있었다 라는 것을 여러분께 주지를 시킵니다.
생명수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영이 되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뚫고 사망을 이기고 다시 태어나셔야 됩니다 다시 살아나셔야 됩니다.
그것이 주 예수님께서 영화롭게 되신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부활 안에 계신 주의 영이신 부활의 영 그리스도만을 영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두 가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리고 3일 만에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 부활 안으로 들어간
후에 승천하셔서 하늘 보좌에 올라가신 그 예수님을 지금 영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는 자들의 태도입니다.
요한복음 7장 39절에 부활을 통해서 부활 안에서 예수님께서 영화롭게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나오는데요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33년 반 동안의 인생의 삶의 과정을 경험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그 과정이 자신의 영광으로 들어가시고 있다 라고 예수님께서
누가 복음 24장 통해서 이 얘기를 하고 있어요.
부활 안에서 주님께서 하나님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
그분이 영화롭게 되시는 것은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재림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한번 이렇게 인식하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질문 한번 할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영화롭게 되셨을까요.
아니면 육체로 성육신하셨을 때 영화롭게 되셨을까요.
아니면 33년 반 동안의 삶을 사시는 과정 그것이 영화롭게 되신 것일까요.
아니면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영화롭게 되신 것일까요.
무엇입니까 실질적으로 영화롭게 된 거는 부활하는 때 아닐까요 예 여러분의 대답이 맞습니다
세 가지 예수님의 성육신과 33년 반 동안의 삶과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영화롭게 되는 과정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골고다의 언덕에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심을 통하여 실제적으로 영화롭게 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수를 나눠줄 수가 있게 되니까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표현 하나님의 모양을 우리가
그대로 반사시킬 수 있잖아요 빛의 자녀가 될 수 있잖아요.
우리는 부활의 영이신 주의 영 그리스도의 영을 믿고 따르고 함께하는 자들입니다 할렐루야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는 이 일을 통해서 영화롭게 되신 후에
생명수가 흐르게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준비 단계입니다 그래서 부활이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신성하고도 영원한 생명수가 되는 생수의 그 영은 생명의 영이죠 창조의 신이죠.
오직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육신으로 오시고 33년 반 동안 인생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경험하신 후에 3일 만에 다시 살아나는 부활 사건을 통해서 우리들 에게 생명수가 흐르는 일들이
경험될 수 있었다 체험될 수 있었다 부활의 주님을 통해서 이 일이 이루어졌다 할렐루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하면은 피만 생각합니다.
피흘리시고 얼마나 고통 받으시고 죽으셨을까
요한복음 19장 34절에도 예수님의 피인 옆구리에서 나오는 피만 중요합니다 한번 다시 읽어볼까요.
그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많은 사람들은 물과 피가 나오더라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런게 아닙니다.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 순서가 성경은 그냥 그렇게 간단하게 그냥 임의로 쓰여진 것이 아니에요
다 영적인 의미가 있고 여기에는 생명의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는데 우리 믿고 따르는 자들 주님을 믿는 자들이 소홀히 하고 간과해서 잘 알지 못하여서 넘어갈 뿐이지 실제적으로는 피와 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피가 먼저 나온 이유는 왜 그러냐면 구속에 대한 문제 때문에 그렇다고
제가 1부에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피에는 관심을 두고 피에는 눈을 크게 동그랗게 뜨고 피를 생각을
염두에 두는데 물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사람이 잘 없어요
그런데 요한복음 19장 34절에는 피를 먼저 언급을 하고 있고 그다음에 물이 언급된 것을 이야기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굉장한 영적인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먼저 우리가 구속받는 일이 선제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를 제거함 받지 않으면 죄를 사함받지 않으면 그 생명의 물이 흘러 우리에게 적셔져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피와 물 구속받고 나서 그 생명수가 되신 생명수 강이 되죠
주의 영이신 부활의 영이신 그 영을 영접하는 일이 순서적으로 필요하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우리의 죄를 도말시켜주시고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한 일이라는 것을 깨우치고 이해해 주지 않으면 주의 영이신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을 영접할 수가 없고 그분을 영접하지
못하면 생명수의 흐름을 우리가 체험할 수가 없어요.
주의 이름을 불러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생명수가 부활 안에서 부활 후에 그 흐름이 시작되었다 라는 것을 여러분께 1부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한번 보세요.
성경에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한 얘기도 베들레헴 떡집에서 태어났다는 얘기도 불과 얼마 안 나옵니다
33년 반 동안에 살았다는 것도 유아 시절 소녀 시절 얘기 외에 별루 안 나옵니다.
십자가의 얘기는 좀 많이 나오죠 부활의 얘기는 간헐적으로 좀 나오지만 그게 많이 대두되어지지 않고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성경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도 아니고요 예수님의 33년 반 동안의 삶도 아니고요 십자가의 삶인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 십자가에 골고다의 언덕에서 죽으심 보다도 더 중요하고 더 강조하고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부활이라는 것을 여러분 인식하세요
부활이 하나님 자신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부활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을 한번 읽어볼까요.
부활이 하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여러분 생명이 먼저입니까 부활이 먼저입니까 여러분은 생명이 먼저라고 알고 있죠
그런데 여기 성경은 부활이 먼저 나옵니다.
보통 사람들은 생명이 먼저라고 알고 있지만 생명이 있어야 다시 사는 부활이 있죠라고
알고 얘기 하지만 이 요한복음 11장 25절은 어찌 된 영문인지 부활을 먼저 표현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보편적인 생각으로는 생명이 반드시 먼저라고 그렇게 인식하고 그렇게 이해하고
그렇게 알고 있고 부활은 나중이라 여기고 있고 생명이 있어야 부활이 있는 것이죠 라고
얘기합니다만 여러분들 지금 이 말씀을 깨닫기에는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요한복음을 처음부터 자세하게 한번 읽어보시고요
이 일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신성한 하나님의 관점에서 신성한 순서에서의 부활은 생명 앞에 먼저 대두됩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요한복음 11장 25절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 자신이 부활이라고요?
여러분 자신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그분이 누굽니까?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실제적으로 자신이 얘기하신 것이 바로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이어서 1장14절 말씀도 읽어 보세요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그분이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 자신을 부활이라고 거대하게 선포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다시 거꾸로 우리가 뒤에서부터 거꾸로 생각해봅시다.
부활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지금 요한복음 1장 1절 하고 14절 말씀 읽으셨죠.
예수님이 육신 되신 무엇이었죠? 말씀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이 되신 말씀이셨죠 이 말씀이 누구라고요? 하나님이세요.
하나님이 누구라고요? 부활이요 부활이 누구라고요? 예수님이요
예수님이 누구라고요? 육신되신 말씀입니다.
육신되신 말씀이 누구라고요? 하나님
이것은 부활이 하나님 자신 하나님이심을 가르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알겠는데 어떻게 부활은 죽음을 반드시 포함해야 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부활 일수 있습니까 라고 우리 속에서 용솟음 치는 의문이 생겨요
부활은 죽음을 동반해야 됩니다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어떻게 다시 사는 부활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라고
의문을 제시하고 그렇게 마음속에 솟구쳐 나오는 의문들이 꿈틀되고 있어요.
죽음없는 부활 여러분 생각 해본적 있나요 아마 없을 겁니다.
하나님이 부활하시기 위해 죽으시거나 사망에 포함되실 수 있나요? 아니요.
그러면 왜 하나님은 그런 일을 당하셨나요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기도하는 마음으로요.
하나님이 부활하시기 위해 죽으실 필요가 있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활하시기 위하여 사망에 포함 되실 수가 있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세요 왜 그런데 그렇게 하셨나요.
하나님 자신이 부활 그 자체이심을 증명하기 위하여 죽음 안으로 들어가신 분이십니다.
부활 그 자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공표하기 위해서 나타내기 위해서 보여주기 위해서는
사망 가운데 들어가셨어야 돼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인간이 부활이라는 것이 전혀 이해가 안 돼요
죽음을 동반해야 되는 줄만 알아요 아니요 여러분 아닙니다.
하나님은 죽음 없이도 사망 없이도 부활이라니까요 영원히 사는 여러분 이거 이해하기 힘들거에요
이해가 된다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 모든 표현을 올려드립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접어두세요 그냥 아~ 선교사님이 저렇게 얘기를 하니까 아~ 부활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죽으실 이유도 사망 가운데 거할 이유도 없는데 부활 이심을 증명하고 보여주고
나타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사망 가운데 들어가신 것은 우리를 위한 일이구나
하나님은 부활 그 자체 영원한 부활 그 자체이시구나 이렇게만 이해하시고 접어 두세요 괜찮아요.
그런데요 여러분 표현 하지 못 할 신령한 그런 어떤 것이 있어요
아마 조금 뭔가 느껴지시는 분도 있을 거에요 사망도 죽음도 결코 그분을 관여할 수 없어요
부활 자체이시기 때문에 그런데 왜 그러실 수밖에 없었나 부활 자체이신것을 어떻게 증명을 해요
요한복음 11장25절을 다시 천천히 생명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 보세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예수님은 누구세요? 육신이 말씀이 되신 분이에요 거꾸로 이것을 되돌이키지 않으면 이해가 안 돼요
육신이 말씀되신 그분이 뭐라고 말씀 하셨죠? 자신을 부활이라고 얘기했어요 부활이 누구라고요?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누구라고요? 육신 되신 말씀 말씀이 누구라고 요? 하나님 하나님 누구라고요? 부활 하나님이 부활
그 자체시라니까요.
사망도 죽음도 그 부활 자체이신 하나님께 관여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어요? 우리에게 증명해 줌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주를 따라서
사는 삶을 의존하게 하기 위해서그 부활에 동참하는 것은 영원한 부활 속에사는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부러 우리들에게 증명해 주는 이 일 때문에 일부러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 일 때문에
인자로 오신 겁니다 성육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제가 좀 전에 얘기한 것처럼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육신 중요하죠
33년 반의 생애 중요하죠 십자가의 일도 중요하죠 부활 나는 부활이요 이 요한복음 11장 25절
말씀을 증거하기 위하여 이 부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성경은 단 한마디로 감추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빛을 비쳐주기 전에는 나는 부활이다 라는 이 말씀을 깨닫기 전에는 그냥 한마디로
딱 감춰놓고 있어요.
예수님은 인간의 생명과 본성을 지닌 성육신하신 몸 인자의 몸 육체로 오신 몸 인간의 몸을
지니셨어야만 되는데 왜 그러셨냐면 사망 안으로 들어가셔서 부활이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그리하신 거예요 이 말이 간단한 얘기지만 놀라운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부활 그 자체 이시기 때문에 부활하신 거라는 거예요.
이걸 누가 알겠어요 그러니까 이러한 말씀들을 언젠가 우리 봉사자들이 글로 나타내고
표현하고 있는 이것을 누군가 읽는다면 얼마나 생명의 생수를 마시고 얼마나 거듭날 자
새롭게 재조성 될 자들 새로운 창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입은 하나님과 어떤 소통을 지닌 자들로
변화될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이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에요.
우리가 쉼터를 10군데 운영하고 교회를 10군데 운영하고 학교를 10군데 운영한다 할지라도
이 일보다도 이 일이 드러나게 하는 하나님의 이 부활 하나님 자신이 부활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어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 하시고 이 글로 나타내는 일에 전심전력 다해
주시기를 우리 하늘 소리 선교회 봉사자 분들에게 다시 한번 부탁을 드립니다.
현재 캄보디아 선교센터가 정리가 된다면 하루속히 여러분들과 어떤 장소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함께 모여서 이런 생명수를 나누어 주고 흘려 보내주는 이 일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늘 고대하고 저도
기도하고 있습니다만 여러분들도 위해서 기도와 후원과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하루속히 우리가 활발히 교제 나누고 마음껏 활동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늘 고대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흘려 보낼곳이 없다 보니 하다못해 벽을 보고서 혼자 말씀을 합니다.
매일 지속적으로 생명수를 흘려 보내야 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그리하고는 있지만 뭔가
마음에 항상 아쉬움이 좀 남습니다.
중간에 잠시 저의 바램을 말씀 드렸는데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은 이러한 자신이 부활이라는
하나님 자신이 부활 부활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심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천년
전에 성육신 하시고 33년 반 동안의 인생을 사시고 제가 이 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시고 그다음에 3일 만에 다시 죽음 가운데 사망의 문을 열고 다시
살아나는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자신의 부활을 자신의 영광을 되찾으셨다 부활이시기 때문에 부활 그 자체이신 하나님은 이것을 거꾸로 성육신 하신 것이 성육신 없이는 부활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33년 반 동의 인생을 체험하시고 죽음을 갈보리에서 경험하시고 그리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부활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부활을 강조하고 있는 분들은 잘 없어요 십자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알아요
그런데 부활 그 자체이기 때문에 십자가가 드러나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모릅니다.
부활 부활 부활 안에서 예수님은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사망의 힘을 무력화시키시고 사단이 가지고 있는 사망의 권위를 무효화시킨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안에서 그 죽음과 사망 사망의 권위 사망의 힘을 다 이기고 무력화시키고
무효화 시키고 아주 당연하게 승리를 거두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 부활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부활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니까요.
여러분 이걸 전제로 하셔야 돼요 부활이 하나님 하나님이 부활입니다.
하나님은 죽어도 상관이 없어요 하나님은 사망도 그를 관여할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보여주어야 됩니다 왜냐면 부활의 길을 부활의 삶을 뒤따르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성육신 하셔야만 될 이유가 있으셨기 때문에 성육신 하시고 죽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부활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어요? 안됩니다.
하나님은 부활이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리스도를 의존하고 살아오고 있는 이들은 부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부활의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부활이시다 라는 것을 부활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이렇게
보여주기 위하여 성육신 하신 것이고 성육신이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성육신을 통하여 예수님은 수많은 삶의 희생의 과정들을 우리와 똑같이 경험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생의 삶에 난처한 일들과 슬픈 일들과 기쁜 일들 여러 난제들 고난들 질병의 문제들
어려움들 가족의 관계들 수많은 이런 일들이 왜 이러한 여러 방면들을 예수님께서 경험하셔야 되었을까요
그분은 부활 자체이시기 때문에 영원함에서 결코 경험하실 수 없는 당하실 수 없는 그런 일들입니다.
그런 일들과의 접촉을 갖기 위해서 일부러 성육신하셔서 인생의 삶을 33년 반 동안삶을 가지신 것은
이러한 문제들 이런 과정들 이런 방면들을 통과하시고 경험하시고 체험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부활이심을 부활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이 얘기를 혹 잘못 들으면 하나님이 부활 하나님이 부활이라는 것은 좀 이해가 되지만
부활이 하나님!? 이것을 받아들이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 명심하세요 부활이 예수님입니다.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 말씀을 통해서 부활이 생명 앞에 나온
부활 그 자체이신 하나님이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을 통해서 육신 되신 말씀이시다 그 말씀이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자신이 부활이신 부활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명심하시고 성경 말씀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번 읽어보시고 부활을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라는 그 말씀이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 여러분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분은 이 부활이 하나님 자신이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성육신 되신 분입니다.
성육신 하신 분이 아니라 성육신이 되셨다라는 분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옳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삶들을 통해서 이러한 인생의 삶들의 모든 체험들과 경험들과 고통들을 체험하시고 친히
사망안으로 죽음 안으로 들어간 것까지도 똑같이 인간과 함께 체험을 하시지만 그분은 부활이십니다.
그분은 부활자체이신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부활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냥 사망의 문을 열고 죽음을 뚫고 나온 그것을 그냥 부활이라고만 그렇게 단편적으로 알고 있어요.
무덤 속에 있었지만 무덤이 결코 그리스도를 얽어맬 수 없기 때문에 잡아둘 수 없기 때문에 밖으로 나오실 수 있었다 그게 부활이다 라고 그냥 무덤 밖으로 나오신 그 결과만을 부활이라고 얘기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부활 그 자체이십니다.
부활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부활은 그분이 무덤 밖으로 나오신 결과만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성육신하시고 베들레헴 떡집에
갓난아이로 태어나셨죠 똑같이 우리와 33년 반 동안의 인생의 삶을 사셨죠.이러한 삶의 결과가 부활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삶을 삶으로 삶의 어려운 고통들을 체험하시고 인생의 압박 수많은 인생의 고난들을
어려움들이 있을지라도 그 사탄이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사망의 나쁜 환경까지도 그분을 결코
이기거나 붙들 수가 없었던 것은 그분 자체가 부활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부활이시고 부활 그 자체가 하나님 이신데 여러분 우리가 문자적으로 이렇게 얘기하니까
부활이 마치 여러분 잘 이해가 안 되죠 성경은 그것을 지금 강조하고 있는데 이 세상에 어떤 것도 주 예수님을 붙잡아두거나 옭아매거나 얽어매거나 세상으로 묶어둘 수 없었던 것은 부활 그 자체가 예수님 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보여주고 있는 것을 더 확실하게 우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이 모든 성육신 하시고 33년 반 동안의
삶을 통과하신 이런 것들을 성경을 통해서 기록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내가 이러한 삶을 경험했다 체험했다
통과했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 무덤을 뚫고 사망의 문들을 뚫고 무덤 밖으로 나오신 것을 통과하신 것을 그 죽음과
사망을 무력화시키고 무효화시켰다는 것을 굴복시키셨다 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 바로 부활 이라는 거에요.
이 반석에 대한 의미는 그러한 의미가 있어요.
생명수 물을 마시는 것이 이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생수를 네가 받아 마셔야 된다
물과 피를 네가 받아 마셔야 하나님 나라의 왕국을 볼 수 있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부활의 하나님 부활이 바로 하나님이신 그 하나님을 바로 마시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하여 죽음과 사망 어둠의 권세인 무덤을 포함한 모든 나쁜 것들 부정된 것들
하나님의 속성이 아닌 반대적인 것들 대조적인 것들을 다 굴복시키시고 정복하셨습니다
왜 하나님 자신이 부활이시고 부활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깨달을수 있기를 성령님께서 은혜의 빛을 비춰주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것이 부활 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부활과 지금 얘기하고 있는 부활과는 하늘과 땅 차이예요
지금 저는 지금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10단계 아니에요 100단계 아니에요.
땅에서 마치 하늘로 올라간 것 같은 그런 차원에서 지금 부활로서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수는 어디에 있어요.
하나님 안에 있는 부활이신 하나님 자신 생명수는 부활이신 하나님 자신 안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영원하게 계속적으로 도도하게 흐르면 누구든지 모든 반대되는 그런 어두운
것들 사단의 것들을 굴복시키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사단이 뿌려놓은 모든 것들을 초월하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생명수의 물을 마시는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얘기에요.
모든 것을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기게 하고 모든 것을 굴복하게 하고 사망도 죽음도 어려움도 모든 것을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이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 생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생수를 마실 때 우리는 부활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신 부활을 마시는 자가 되어서 부활에 속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입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그 어떠하신 그 인격을 소유 받은 자는
소유받는다 라는 의미는 믿음을 갖고 주의 이름을 계속적으로 부르는 거예요.
주의 이름은 어떤 거 바로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 자신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오신 분이고
그 육신이 말씀이 되어 오신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바로 그 하나님이 부활이시다 부활이 하나님
자신이다 라는 이것을 믿는 자 이 이름을 부르는 자 어떤 이름이요 부활이 바로 하나님 자신 이라는 것을
부르는 자가 그 부활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믿음이 이런 것을 볼 때 얼마나 뒤쳐져 있고 얼마나 무기력하고 얼마나
연약한지를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반석이 그러한 부활에 대한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흘러나온 매를 맞은 하나님의 율법의 지팡이에 의해서 매 맞은 때림 받은 이 일로 인하여 계속적으로
흘러 나온 이 물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이 물 창으로 찔림 받은 옆구리로부터 흘러나온 이 피와 물이 있는
이 물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피와 물 이 생명수의 강을 흘러 보내시는 하나님께로부터 근원된
보좌로부터 흘러나오신 이 물 이것은 똑같은 하나님의 보좌로 부터 나온 하나님 것이며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 반석에서 흐르는 물 예수님께서 로마 병정에 의해서 찔림 받아 피와 물이 흐르는 이 물 물론 예수님께서
로마 병정에 의해서 찔림 받아 흐르는 물은 이상한 물로 다른 물로 보이겠죠.
그러나 반석에서 흐르는 물과 다를 바가 없는 똑같은 물이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병정에 의해서 찔림 받은 그 물이나 반석에서 모세의 지팡이에 의해서
때림 받아 흘러나온 물이나 하나님 보좌에서부터 흘러나온 물이나 수가 성 사마리아 여인이 받아 마신
그 물이나 똑같은 물이라는 것이며 하나님 자신의 부활의 물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물이 하나의 물을 가리키는데 왜 구약성경 출애굽기 17장 6절에서는 반석을
얘기하고 왜 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를 따로 얘기하고 저 요한복음 19장 34절에서는
로마 병정에 찔림 받아 그 피와 물이 나오더라 라고 왜 물을 왜 각각 다르게 묘사하고 표현하고
보여주고 있느냐 그것은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흐르는 물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반석인가 아니면 예수의 육신적인 물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물인가 아니면 생명 나무에서 부터 발원된 그 물인가 계시록 22장 1절을 한번 읽어보세요.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그 길 가운데 흐르더라 강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12가지 열매를 맺되 발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생명수의 근원은 어린 양의 보좌이고 하나님의 보좌라고 계시록 22장 1절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명수의 강 생명수의 근원은 어디서부터 나온다고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흐름의 근원이 하나님의 보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도 있었고요 반석이 매맞기 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여정을 따라 동반하였던 처음과 나중이 되었던 그 반석이 매맞기 전에도 영원전 부터 존재하였던 하나님의 보좌에요 이 보좌에서부터 나온 생수는 언제부터요? 그리스도의 죽음 후도 아니고요 그리스도의 죽음 전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 영원전 부터 흐르는 생명수가 되는 생명 신성하고도 영원한 생명의 힘이 되는 그 생수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오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 후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죽음 전도 아니고 반석이 있기 전도
아니고 반석이 있은 후도 아닌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시작하였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 의하면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반석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 돌아와서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흘리신 로마 병정에 의해서 피와 물이
나온 육신적인 몸이 두 번째로 나옵니다 세 번째 계시록에 22장 1절에 보좌 얘기가 세 번째 나옵니다.
그런데 거꾸로 실제적으로 환원하면 하나님의 보좌가 생수의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구약 성경에는 반석이 나오고 신약 성경에는 육신적인 예수님의 몸에서 나온 피와 물이 나오고
세 번째 계시록에 하나님 생수의 근원이 보좌로 부터 흘러나온다고 얘기했지만 실제적으로 거꾸로 계산해보면 실제로는 보좌가 가장 먼저 생수의 근원이 보좌라는 것입니다.
생명수의 흐름은 보좌로부터 시작된다는 거 이 얘기는 뭐예요.
반석이 매맞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생수는 이미 하나님의 보좌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고 있었다 라는 얘기예요 이 얘기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표현해 주기 위한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배려입니다.
생수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생수의 근원이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에 생명수의 강이 보좌로부터
흘러나온다 라는 것을 계시록은 계속 강조하고 얘기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뭐냐하면요 생수의 근원이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2천년 전에 오셨는데요 2천 년 전에 오시기 전에 곧 육신이 되기 전에 인자로 오시기
전에도 계속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제가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때 흐른 것이 아니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할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 이천년전에 오셔서 인자로 오신 이 성육신의 삶 이 인생의 삶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생수의 흐름에 있어서 하나의 단계의 과정일 뿐이에요
좀 더 나아진 결말을 보이게 하기 위한 어떤 결말의 마지막 단계일 뿐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하나님 자신의 보좌로부터 에덴 동산의 생명나무의 4개의 강줄기로부터
또 엘림의 칠십 종려나무 가지로부터 이렇게 구약 성경을 통해서 신약 성경에 이렇게 오면서 베들레헴
구유에 태어나시기까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출발된 생수의 근원은 베들레헴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계속 흐르고 오신 그분이 바로 생수가 되신 그리스도 자신이라니까요.
33년 반 동안 사셨던 그 뒤에도 그전에 베들레헴 구유에서도 이 하나님 보좌로부터 계속 흐르고 있었고요
33년 반 뒤에 반 동안의 삶에도 계속 흐르고 있었고요 그리고 골고다 십자가 언덕에서 로마 군병에 의해서
창에 찔림 받아 피와 물이 흐르는 그때에도 십자가를 통하여 흐르고 있었고요 그러고 나서 3일 만에 죽으셨다가 부활한 후에도 부활 안에서 계속 흐고 있었고 지금도 흐르고 있다니까요 지금 제가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지금은 끝쳐진줄 알아요 아니에요.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니까요 단지 보여지지 않고 단지 내제되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계속 계속 계속되어지고 있고 지금은 부활 안에서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속 흐르고
흐르고 있는데 그 흐르고 있는 것을 주님을 믿고 주님의 이름을 부름으로 말미암아 내가 갈급함을
채울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데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처럼 그것을 찾지 않고 있다니까요
찾지도 않고 갈급해 하지도 않고 그 자리에 있지를 않아요.
주님을 믿지 않아요 이러한 일 부활이신 하나님 자신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존하지 않는
그래서 성경 이 자체는 부활에 대한 이 생명수에 대한 물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생명의 땅 얘기 만나 얘기뿐만 아니라 오병이어 얘기뿐만 아니라 물에 대한 얘기 물,물, 물,르비딤 에서
아멜렉 족속과의 첫 번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번째 맞이한 전쟁이 아멜렉과의 전투인데 그때 물 때문에
싸우잖아요 물 물을 마시면은 영원히 사는 문제가 대두되기 때문에 아멜렉 이라는 육체의 나 자신이 이
아멜렉 족속으로 상징되고 있는 이 육신을 통해서 이 일을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반석을 통해서 계속 설명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생명수의 흐름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얘기하고 있어요.
실로암 물가 생수에 대한 물에 대한 얘기 여러분 물에 대한 얘기하니까 생각나죠
마라의 쓴물 얘기 홍해 바다 노아의 홍수 전 세계적으로 우리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수 하나님의
생명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흘러오고 계시는데 보여지고 나타내지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 하신
사건입니다.
그 계속적인 흐름 안에서 예수님께서 이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그러한 삶의 직접적인 인생의
삶을 친히 경험하게 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인성을 가진 인간들을 그 부활이신 하나님이신 부활되신
그리스도를 따라가게 만드신 사건이 바로 십자가와 3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을 통해서 우리들을 부활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이 일이 아니면 우리를 부활안으로 들어가게 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활 안에 들어가신 그분이 곧 부활의 영은 주의 영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이 성령님
그분이 우리가 마시는 생수이십니다.
그분 안에 예수님이 있고요 아들 예수님 안에 아버지 하나님도 있다니까요.
아버지 하나님 안에 아들 하나님 있고 아들 하나님 안에 성령님 안에 그러니까 이 영을 내 안에 거주하게 하는 내안에 하나님의 집을 만들어서 그분을 이렇게 거처삼아 함께 하나가 되게 하는 삶은 생수를 먹고 마시게 하는 체험이 있는 삶이라니까요 이걸 누가 알겠습니까?
부활 안에서는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먹을 수 있죠 어떻게 하나님을 먹어요.
먹는다니까 좀 이상한 가요 구원의 영이신 예수님을 모실 때 우리는 그분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 생수를 마시기 위해서는 그분의 성육신과 인생의 삶과 십자가의 죽으심 그것을 믿고 따르고
그럼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일들이 계속 교제를 통해서 반복되어지고 계속 복음 전파를
통해서 예수님이 이어지고 기도를 통해서 이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가 생명수를 계속 마시는 이것을
사람들이 모르고 있어요.
생명수를 어떻게 마시는지 그걸 모르고 있어요 사람들이 그게 참 중요하거든요.
생수에 대해서 우리가 아무리 많이 알고 있고 이 생수가 예수님 자신 하나님 자신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하나님 그 자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그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본질을 바로 직접적으로 친히
침투시켜서 내주하게 하고 내 안에 거하게 한다는 일은 알지만 어떻게 그것을 마시는지 그걸 몰라요.
이 교제를 통해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지금 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저는 지금 생명수를 마시고 있다니까요 저는 그걸 느껴요 저는 경험하고 있어요.
여러분들도 언젠가 이것을 경험하게 되면 지금 여러분들이 이 문서로 이것을 편집해서 만든 일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여러분도 깨달을 수 있어요.
저는 점점 시간이 갈수록 이 일이 정말 대단한 일이구나 정말 중요한 일이구나
생수를 내가 죽고 사는 문제가 여기에 달려 있구나 제가 이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물질이 좀 해결이 되면은 모여서 이 일을 함께 생수를 마시는 일에 실제적으로도
이렇게 적셔주고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많은 생수도 여러 가지 방면들이 있을텐데 그것을 우리안에 속하게
하는 일이 필요하겠죠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에 의해서 주님이 요구하신 조건에 의해서 요구대로 합당한 방법대로 마실 때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흘려 내 보내 주신다니까요 그분의 속성을 그
의 본질을 그분의 모양과 형상을 그분의 인격을 그분의 그 어떠하심을 그대로 그래서 우리가 연합하고
하나가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안 돼요
그래서 생명수를 마시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생명수를 마시지 않으면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 안에서 역사하게 하기 위해서는 생명수를 끊임없이 주의 영 부활의 영이신 하나님 자신 이라는 것을 여러분 인식하시고 각인 시켜야 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생명 생명이기 이전에 그분은 부활 그 자체라니까요
그냥 죽음도 사망도 그를 어찌 할 수 없다니까요
그런데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잠시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부활된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어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세밀하시고 자세하시고 참 은혜가 많죠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실까요? 우리 이게 부활이신 하나님 자신의 삶을 그 삶을 하나님과 같은
그 삶을 살게 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같은 자로 만들기 위해서 거룩한 백성 거룩한 나라 거룩한
자로 살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동분서주하시고 애를 쓰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부활의 영을 아는 일보다도 그 하나님을 더 체험하는 일이 중요해요.
제가 처음에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께서 내주하셨을 때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났었어요.
온갖 이적과 표적과 기사가 다 있었어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압니까 부활의 영을 내안에 마심으로 말미암아 거주하게
하고 내주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집으로 건축이 되고 그래야 내가 배필로서 아내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성경은 신부감을 찾는 자들에 대한 얘기라니까요.
전체가 그 얘기라니까요 많은 사람들은 지금 내 손에서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병자가 일어나고 하는 네 물론 중요하죠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가짜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 생수를 공급받는 이 생명 공급을 받는 일이야말로
그 무엇 보다도 중요하다는 겁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그 모든 것들 중에 모든 것이 되시는 그 생명수가
흐르는 것이 내 안에서 흐르고 있다고요 이것보다 더 대단한 기적과 표적과 기사가 어디 있을까요.
이 생수는 부활의 영을 내 안에 내주하는 것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인생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모든
골고다에 죽은 모든 것을 내가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그 부활 안에 있는 모든 것과 예수님의 전반적인 생애 처음과 나중
그리고 지금까지 앞으로 영원 전부터 영원 후 까지 계속되는 그것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물이 생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물이나 반석에서 터쳐서 나온 물이나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물이나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내주하시는
물이나 다 똑같은 물이라니까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구약 시대 때는 그렇게 신약 시대 때는 그러한 모양으로 계시록 때에는 그 배필된 아내된 자들에게
그러한 생명수를 지나 나무 하나가 자라고 있다고 계시록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생명나무가 양쪽에서 자라고 있으니까 생명나무가 두 그루인줄 아는데 아니에요
한 그루가 뻗쳐서 저쪽까지 담을 넘어갔겠죠.
생명나무는 그리스도 한 분이세요
우리 안에서 부활의 영을 통해서 내제하시고 우리가 공급받는 이 생수의 물은 성육신의 요소가 있는 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의 33년 반 동안의 인생의 삶의 방면이 있는 물이 골고다 십자가에서 모든 고난과 고통과 경험을 한 체험을 한 그런 모든 요소들의 그 모든 것들을 포함한 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가치가 있고 생명이 되고 하나님 자신을 반영하고 있는 그것이
바로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이 물을 마셔야만 인간이 살기 때문에 애굽의 나일강이라는 물이 아닌
죽음의 바다인 홍해 바다를 지나 광야에서 반석에서 터쳐나온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온 생명수의 물을 공급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를 여러분들 이해가 되십니까
이 물을 마셔야만 살기 때문에 다른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한 겁니다.
광야의 물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 건조한 땅에 사막에 아무것도 없는 그 땅에 물이 어디
반석에서 나오는 물이 아니면 40년 동안 그들이 어떻게 먹고 마셨을 수가 있었겠어요.
하늘에서 떨어진 생명의 떡을 상징하고 있는 만나와 반석에서 터쳐 나온 물이 아니면 그들이
어떻게 먹고 마실 수가 있었겠어요.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만 먹고 예수 그리스도 만을 마셔야 된다는 그 외에는 안 된다니까요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좀 너무 심한가요 예 그것이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원하죠 그런데 사람들은 타협을 합니다.
이런 것 쯤은 이 정도까지는 하지만 그분 외에는 내 살을 받아먹고 내 피를 받아 마셔라
인자 살을 먹지 아니하면 내가 주는 생수를 마시지 아니하는 너희는 나와 아무 관계도 없고 하나님
땅에 들어 갈수도 없다 라고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가 주는 생명의 떡 그리스도가 주는 생수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이것들 위에 존재할
수도 없고 살아남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 물을 통해서만 이 생명의 떡이신 인자의 살을 통해서만 우리가 죽음을 정복할 수 있고 사망을 이길 수도
있고 죄와 사단과 육신 아멜렉을 상징하는 육신을 내가 극복하고 초월하고 이길 수가 있다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반석을 통해서 그 물을 제시하고 공급해 주기를 원하신 겁니다.
물론 불평과 원망이 많았죠 그 외에 여러 가지 물을 좀 마시고 싶은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것은 생명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함께 부활이신 하나님 자신을 주고 싶으셨던 겁니다. 부활이신 하나님 자신을 주시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염원 하나님의 갈망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바람 하나님의 애타는 마음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많은 오해 많은 손가락질 많은 불평 많은 원망을 받으면서 까지도 하나님께서 그리 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부여해주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수는 부활 안에 있습니다 이 생수 자체가 부활입니다 부활이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반석에서 터쳐 나오는 이 흐르는 물은 이 반석에서 흐르는 물로 상징되는 그 영은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그 그리스도의 영 부활의 영 그 주의 영이 부활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생수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신 자리입니다.
생수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나오죠 아버지의 보좌로 부터 나오잖아요.
생수의 근원은 아버지의 보좌로부터 나오는데 그 흘러 내리는 통로가 된것이 성육신과 인생과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통로가 되신 아들 그리스도 과정이신 아들 그리스도 체험자이신 아들 그리스도 그리고 흘러서 우리 안에 내주하고 적셔지게 되고 침투하게 하시는 주의 영으로 오신 성령님 근원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통로가 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고 흘러 적셔서 우리에게 분배해 주시는 그 영을 통해서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 교제하심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실지어다 라는 얘기는 생수를 근원으로 지금 주시하면서 얘기하고 있으신 거예요.
우리는 지금도 오늘날에도 이 시간에도 부활 안에서 주의 영을 통해서 부활의 영이신 그리스도의 영 이신
주의 영을 통해서 계속 생수를 마시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의존하면서 의지하면서 사는 것 자체가 생수를 마시고 있다라는 것을
이 물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이 물은 예수님이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 체험한
풍부한 물입니다.
왜 가치가 있습니까 예 반석의 그 물도 가치가 있고요 엘림의 그 물도 가치가 있지만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이 물이 성육신하셔서 33년 반 동안의 인생을 사시고 골고다에서 그 고초와 고난과 내가 목마르다 할 정도로의 그 갈급함 그 생수를 부여해 주기 위한 간절함으로 말미암아 그 죽음을 통과하였기 때문에 생명의 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수에요 생수가 생명의 물이라는 뜻입니다.
생수! 신선한 물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생수는 생명이 거기에 내재되어 있는데 생명 안에는 부활이신 하나님 자신 생수는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물은 부활 안에 있다니까요 이 물이 부활이라니까요 이 부활은 하나님 자신이라니까요 이 물이 부활안에
있으므로 우리는 이 물 생수 생명의 물 부활을 소유한 이 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우리는 육체적인 것에서 천연적인 것에서 본래적인 상태에서 육적인 상태에서 하늘에 속한자로 이기는 자로 승리하는 자로
영적인 자로 신령한 자로 변화되어 이기는 삶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생수를 마시는 일이 그래서 필요해요
부활을 내재하고 생명을 소유한 이 생명의 물은 세상의 모든 죄와 사망과 세상과 나와 육신과
아멜렉과 모든 죄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이기게 만든다니까요.
이 생수를 마시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어요.
왜 어려운가요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생수를 마신 자는 예수님처럼 어려움을 당한 자가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오는 생명수 자체 이시기 때문에 부활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초월하고 이기고 승리할 수가 있었던 것이에요.
모든 어둠으로부터 모든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모든 죄로부터 사단으로부터 사단의 시험도 예수님이 이기셨죠 그것뿐입니까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기셨죠
죽음도 이겼죠 고통도 이겼죠 모든 이러한 어둠의 사탄에 속한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출시키고 초월하게 하는 것은 생수이며 우리를 이기게 하기 위해서 생명수를 지금도 부여해 주시고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면서 생명수에 대한 2부의 말씀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고요
3부에 다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 교제하심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하실지어다 (고후:13:13) 이 예수그리스도의 반석과 생명수에 대한 말씀을 정리하면서 이 늘 예배후 축도로 해주시는 이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로 부터 흘러 나오는 영원한 생명수가 엘샤다이 하나님의 유방 끊임없이 흘려 보내시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인자가 높이 들린 후에야 내가 그인줄 알리라 하셨던 그말씀의 의미도 이 생명수에 대한 말씀을 듣고 확연히
깨달아 진것 같습니다 만세전에 계획하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그 물꼬를 터주셔서 다시 흘려 보내시기 위해 그 많은 과정과 33년반동안안 생애와 십자가의 죽으심과 또 3일만에 부활하셔서 생명의 영이 되셔서 구속뿐만 아니라 생명을 보전해 주시기 위해 끊임없이 부활의 영으로 생명수를 지금도 우리에게 흘려 보내주시고 계신 세분이시며 한분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몇번이고 계속 묵상하셔서 주님의 참된 보화를 발견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