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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콜럼비아 크레스트의 레어템 XXV, 여기에 맞춘 LA 갈비
조정현 추천 0 조회 27 11.06.18 18:07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LA갈비가 왜 그 이름이 됐는지는 모릅니다. 기존의 갈비가 사과껍질을 깎아 말아 놓은 것처럼 해서(사실은 엇썰기 해서 펼친 다음에 양념을 재고, 그 다음에 다시 동그랗게 말아놓은 것이긴 하지만) 불판에 펼쳐 구운 후에 가위질을 해서 먹는 방식이었다면, 뼈째 그냥 썰어버린 LA갈비는 일단 고기 써는 기계로 통갈비를 측면으로(lateral)썰었기 때문에 그 영어 앞글자만을 따서 LA 갈비라고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미국에 와서야 처음으로 접했던 이 LA갈비는 이제 '갈비를 먹는다'고 하면 당연히 머리에 떠오르는 음식이 됐다는 겁니다.


이 LA 갈비는 사실 잘 나간다는 한국 음식점에서는 결코 서브하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뭔가 그 비한국적인 정서가 배어나는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집에서 갈비를 먹을 때는 늘 LA갈비로만 먹는 한인들이 특별한 날 한국 음식점 가서까지도 이런 스타일의 갈비를 먹느냐고 투덜대는 경우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긴,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대신 LA갈비는 집에서 뒷마당 바비큐를 하거나 오븐에 구워먹기에 좋은 간편한 스타일의 갈비임엔 틀림없습니다. 원래 기름이 많은 부위이고, 부드러운 부위입니다. 미국인들 같으면 갈비 사이에 붙어 있는 갈비밑살 부위를 '트라이팁 스테이크'라는 이름으로 구워 먹는 것을 선호하겠지만, 한국인들은 역시 갈비 하면 양념에 잰 갈비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잔치음식이고 툭별한 날에만 먹는 고기로 인식되어 있는 갈비는 LA갈비의 모양으로 출하되면서 비교적 대중적인 음식이 되어 버린 셈인데, 그것은 아무래도 갈비라는 음식이 준비하는 데 손이 많이 들어가지만 이 과정을 크게 줄여버린 것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냥 양념 만들어서 거기에 재 놓기만 하면 되니 말이지요. 동네 사람들과의 친교에도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이 양념갈비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간장이 그다지 미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때, 간장과 설탕이 베이스가 된 양념에 재었다가 구운 갈비는 이를 먹어본 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밖에 업었습니다. 몇번 갈비를 구울 때마다 이웃에 조금씩 나눠줬더니, 지금도 뒷마당에서 바베큐 판에 갈비를 굽는 날이면 옆집 루디 아저씨는 괜시리 우리집 앞을 왔다갔다 합니다. 하하.


대부분 LA 갈비는 한인 수퍼마켓에서 판매되지만, 이제는 한국식 갈비의 인기가 꽤 대중화되면서 미국 마켓들에서도 판매될때가 있습니다. 또 맛은 집에서 직접 만든 소스보다는 훨씬 떨어지겠지만, 나름대로 자극적이고 매력있는 '미국산의 갈비 양념 소스'들이 미국 수퍼마켓에 비치되어 있고 이 소스의 이름도 'Kal-bee Sauce' 혹은 'Gal bee Sauce'로 불리우고 있는 걸 보면 우리의 식문화도 이곳에서 나름 국적을 분명히 얻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장황하게 갈비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사실 이것은 아내가 오늘 미국 수퍼마켓에서 장봐온 갈비를 저녁에 양념해서 구워 줬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이 부위를 백립 구이를 해서 먹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제 LA갈비 스타일로 썰어내어 팔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사실 갈비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아내의 양념은 너무 짜지도, 달지도 않기 때문에 딱 와인과 먹기에 좋은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간이 강한 우리의 정통 양념갈비 구이엔 술을 맞추기가 힘들죠. 이런 스타일의 고기라면 오히려 화이트와인인 리즐링을 맞추거나, 정석대로의 레드를 찾는다면 레드 진판델이나 시라가 잘 어울려 줍니다.


그러나 아내의 갈비 스타일은 미국 사람들에게 서브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양념을 적게 쓰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따라서 와인의 대역폭이 넓어지지요. 여기에 저는 오늘 몇년간을 묵혀왔던 와인 한 병을 꺼내 마셔보기로 했습니다.


콜럼비아 크레스트라는 이름은 워싱턴 와인에 있어서는 가장 편하고 쉬운 와인의 대명사임과 동시에, 저렴하고 마실만한 와인을 만들어내는 미국 와이너리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샤토 생 미셸과 더불어 워싱턴 와인의 가장 대표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곳인 동시에, 2년 전 와인 스펙테이터 지가 '최고의 와인'으로 이곳의 리저브 카버네 소비뇽을 선정했을 정도로 우수한 와인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 해 여름 저는 이 와이너리를 찾아갔었습니다. 오리건주와 워싱턴주를 가로질러 흐르는 콜럼비아 강 바로 북쪽 패터슨이라는 작은 동네에 위치한 이 와이너리에서, 저는 이 와이너리가 첫 빈티지를 출시한 지 25주년을 축하하는 와인인 'XXV 레드'를 구입했는데, 이것은 와이너리에 가야만 살 수 있는 와인이기도 했습니다.


굳이 이 와인을 꺼낸 건 올해 다시 이 와이너리를 가볼 의향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만 살 수 있는 와인들을 몇병 더 사면 된다는 여유로움 같은 것이기도 했고, 이 와인도 그렇고 지금 셀라에 박혀 있는 와인들 중에서는 이젠 이만하면 충분히 익었다 싶은 것들이 몇 병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미국 와인의 경우는 대부분 장기 숙성을 요하는 스타일로 만들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몇년 보관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유럽와인처럼 오래 두어야 마시기 좋은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 것은 이곳의 와인 소비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미국인들이 구입한 와인은 바로 그날 저녁에 소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와인 구매자의 85%는 구입한 바로 그날에 그 와인을 오픈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와인메이커들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와인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미국 와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집 붙박이장의 간이셀라에서 3년동안 묵은 이 와인은... 전혀 스러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아직도 힘이 넘치는 청년같은 느낌. 자두와 잼 같은 느낌도 꽉 차 있었고, 몇년을 병에서 쉬고 있었던 와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강건함도 살아 있었습니다. 확실히 잘 만든 와인. 자기들의 25번째 빈티지를 축하할 만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와인이었습니다. 그냥 품종을 밝히지 않고 '레드'라고만 했으니, 대략 짐작컨대 보르도 스타일의 메리티지에 시라를 섞지 않았는가 짐작이 됩니다. 스월링 후에 느껴지는 제비?과 직설적인 과일의 향들은 콜럼비아 크레스트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 했습니다. 친하게 다가설 수 있으면서도 꿀리지 않는 와인... 뭐 이런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음식와의 궁합이라는 면에서도 매우 좋은 와인입니다. 무겁지만 음식과 잘 어울려주는 태닌과 산도. 그것이 유럽과도, 캘리포니아와도 다르다는 면에서, 분명히 워싱턴주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와인입니다. 혹시 이번에 와이너리에 간다면 혹시 가격이 조금 올랐더라도 다시 사고 싶은, 그런 와인입니다. 여기에 아내가 해준 갈비와도 매우 잘 어울려 주었으니, 와인 한 잔에 하루일과의 피곤을 씻는 제겐 더이상 바랄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저만큼이나 커버린 지호와 지원이가 갈비의 마지막 한 점까지 처절한 공습(?)을 마친 후, 문득 저녁 노을이 보고 싶어서 현관을 열고 바깥으로 걸어나갔습니다. 비록 몸은 피곤하고 일 때문에 여기저기 아픈 곳들도 생기고 해도, 내 주어진 공간에서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런 즐겁지만 힘들기도 한 내 일이 있기 때문에, 나도 또 이렇게 와인도 더욱 즐겁게 마실 수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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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6.19 15:19

    첫댓글 그 갈비를 나는 오늘도 먹었다네! LA에서.

  • 작성자 11.06.23 02:27

    가든 파티할 때 최고의 안주감 아니겠오? 친구와 즐거운 대화, 맛있는 음식, 그리고 콜럼비아 크레스트같은 와인이 곁들어 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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