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대로
침실의 북창(北窓)이 밝으스레 환해오면 잠에서 깨여나곤 한다. 해돋이 시간이 바로 기상하라는 알람소리와 다름이 없다. 오늘도 어제처럼 일상의 시작이다. 눈을 부비며 현관문을 나선다. 북한산 인수봉의 하얀 암벽이 시야에 들어오며 남산타워가 선명하게 보인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간곳이 없으며 좋음을 나타내는 가늠자가 아닌가. 강남구 청담동 주위는 아마도 해발 60, 70여m는 되리라. 나즈막한 청담공원 숲으로 들어선다. 편안하고 시원함이 노객의 발걸음을 가볍게 이끌고 있다. " 짜작 짜아악 짜작 짝짝, 까아악 까악 깍깍 까아악, 꾸르르 꾸꾸 꾸르르, 타닥 탁 탁 타닥타닥, 째잭 짹짹 째잭째잭, 으아악 으악 으아악 , 뜨~르~륵 뜨~르~륵 뜨~륵, ~~~ " 여기 저기서 재잘대는 새들의 합창소리는 삶의 희열을 안겨주고 있다. 영동대로를 가로 지르며 청담나들목 터널로 들어선다. 110m 정도의 굴다리 위로는 동쪽의 팔당대교로부터 김포 한강하류로 올림픽대로가 이어진다. 팔당대교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예봉산과 검단산을 이어주는 서울의 동쪽 관문이기도 하다. 어제처럼 오늘도 나들목을 빠져나와 한강기슭로 향한다. 일렁이는 물결과 시원한 강바람이 가슴을 열어제끼고 있다. 머리 위로는 덜커덩 덜커덩 덜컹 굉음을 내며 7호선 전철이 바쁘게 오가고 있다. 저마다의 일터로 바쁘게 오가는 서울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일터이다. 오른편에는 123층의 잠실타워가 하늘에 치솟아 있으며 아침햇살이 눈이 부시다. " 퀘~에~엑 퀙퀙퀰 꿰~에~엑 ~ 꿱꿱꿱 " 70여개의 돌계단을 내려서는 순간이다. 청아하게 반기던 까치들이 머리 위까지 스쳐대며 돼지 멱따는 소리가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무슨 일인가. 그냥 강가로 내려선다. 자전거도로와 산책 보행로는새로 잘 아스팔트로 다듬어 놓았다. 10여m 아래 바로 강물 곁으로 내려선다. 영동대교 밑을 통과하여 성수대교 방향으로 향한다. 곳곳에 널러있는 방파제가 부셔진 시멘트 블럭과 돌부리에 발걸음을 휘청거리게 한다. 아차 순간에 강물로 텀버덩 빠질 위험도 짜릿함을 가져다 주곤한다. 물 위로 솟구치는 팔뚝만한 잉어들의 날렵한 모습도 신선한 즐거움이 아닌가. 민물 가마우치들의 쉬임없는 자맥질도 노객의 마음을 춤추게 하고 있다. 미동도 없이 강물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흰왜가리의 날카로운 눈매는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 물가 옆으로 튕겨져 나와 널브러져 있는 잉어 붕어 메기 납생이등의 시체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하루에도 두세마리의 처절한 죽음을 맞닥드리곤 한다. 삶 자체가 싫어서인가. 물속이 너저분하여 튀쳐나온 피난길인가. 사랑하는 짝을 잃음에 서글픔의 표현일까. 아니면 " 할아버지 ! 그건 지구 온난화 때문이야 " 여덟살 어리디 어린 손녀의 카톡으로 보낸 답이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한시간 남짓 다시 청담나들목으로 올라서는 순간이다. " 제발 살려 주세요 ! 119 구급차를 불러주세요 ! " " 절대 건드리지 말고 그냥 가시죠 ! 퀘~에~엑 퀙 ~퀙 켁 " 또 다시 아까처럼 기를 쓰며 악을 쓰면서 부르짖는 까치 소리가 아닌가. 자세히 주위를 살핀다. 까치 한 마리가 왼쪽 발목이 부러진 상태이다. 주둥이를 쫘악 벌리며 목청껏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모습이다. 동료들은 건들지 말고 그냥 가라고 머리 위를 스치며 아우성인 모습이다. 40여년 전 1970년대 후반 무렵의 그 날 그 모습과 겹치고 있는 게 아닌가. 미국 이민행을 접고 청계천 4가에 청계약국을 경영할 때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끝이지 않는 약국 앞에 비둘기 한 마리가 뒤뚱거리고 있다. 다리 한쪽이 부러져서 날개만 퍼득이고 있다. 스쳐지나는 행인들은 그저 지나칠뿐으로 관심밖이다. 약사 GOWN을 입은채로 COUNTER를 뛰쳐나가 안고 들어온다. 조심스레 부러진 다리에 소독을 하고 항생제 연고를 발라준다. 아이스케키 막대기를 다듬어 부목으로 감았다. 중구 청계천에서 강동구 암사동집까지 택시를 타고 데리고 간다. 족히 20Km가 되는 거리이다. 2층 넓은 베란다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먹이도 물론 제대로 대접(?)해야만 한다. 보름 정도 지난 어느 날 비둘기는 사라지고 온데간데가 없다. 어찌된 일인가. 아마도 상처가 아물었으니 제 갈 길을 찾아갔을 것이리라.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약국 앞 바로 그 자리이다. 감아준 부목은 그대로이다. 깡충깡충 가볍게 뛰고 있는 바로 그 비둘기인 것이다. 얼마나 고맙고 기특한 녀석인가. 나에게서 치료받은 그 놈 그 녀석이다. 어떻게 이곳을 다시 찾은 것일까. 그것도 택시를 타고 데리고 갔던 강동구에서 청계천까지 말이다. 자신을 살려준 은혜에 대한 보답의 인사차 찾아온 것일까. 깡충깡충 뛰어오르며 약국 앞을 몇번을 맴돌다가 날아가곤 한다. 며칠 동안 계속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하던 비둘기의 모습이 지금 이 순간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저 까치를 먼저처럼 집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근무하는 연세한강병원 정형외과 족부 전문의사인 아들에게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일까. 잠시 망설이다가 발길을 그냥 집으로 향하고 있다. 정에 약하고 감성이 풍부하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을까. 돌아서는 마음 한켠으로는 가볍지만은 않은 것이다. 예전에는 까치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는 길조(吉鳥)로 생각했다. 음력 칠월 칠석에 견우와 직녀별이 만나도록 수천 광년 떨어진 거리에 오작교(烏鵲橋)를 만들었다는 까마귀와 함께 설화의 주인공이도 하다. 그것도 교각의 철재를 머리에 이고 지고 나르느라 대머리가 되도록 열심이었다는 녀석이다. 요즘은 어떤가. 덩치가 더 큰 까마귀도 괴롭히는 해조류(害鳥類)일 뿐이다. 모든 과일 농작물을 쪼아먹고 일년 농사를 망치게 하는 성가신 녀석이다. 살려달라는 애닯음을 뒤로 하는 이 노객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 너는 너대로 네 스스로가 헤쳐 나가며 살거라," 그것이 어쩌면 너의 운명이며 삶의 정도(正道)이자 자연의 순리가 아닐까
2019년 5월 13일 무 무 최 정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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