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9-17 |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예수님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같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즉 제자들을 선택하고 받아들이고 가르치고 사도의 권능과 임무를 맡기신 모든 일들이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과 같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아버지와 예수님의 사랑은 이미 앞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3,35).’,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주신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큰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시어,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5,20)’,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10,17).’ 아버지께서 바로 그렇게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제자들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구원 사업을 담당하게 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라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실 구원 사업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의 이런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은 기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이 구절은 9절에서 말한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 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구절이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 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예수님은 앞의 14장 15절, 21절, 23절에서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고, 말을 지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이 구절도 같은 뜻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의지의 일치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분의 뜻을 따르게 되고 계명을 지키게 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을 본받는 일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아버지의 뜻을 따랐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사랑은 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사랑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뜻을 일치시키는 것, 즉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그렇게 당신의 계명을 지켜서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르라고 말씀하신다. 즉 당신의 모범을 따르라고 하신다.
12절에 제자들이 지켜야 할 ‘계명’ 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래서 12 절과 연결해서 10 절을 풀이하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사랑 안에 머물게 될 것이다.’ 가 된다.
신앙인이 주님의 사랑에 머무는 방법은 영성가들처럼 예수님의 사랑에 집중하여 즐길 수 없기에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즉 생활로 그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이 말’은 앞에서 말한 포도나무와 가지에 관한 비유 말씀을 가리킨다. 예수님의 ‘기쁨’ 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복종에서 느끼는 기쁨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포도나무와 가지에 관한 비유 말씀을 하신 이유는 당신의 기쁨을 제자들에게 주기 위해서라고 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머문다면 예수님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복종하면서 느끼는 그 기쁨을 우리도 얻게 된다. 이 기쁨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며, 가득 차고 흘러넘칠 정도로 풍성하게 주시는 것이다. 이 기쁨은 예수님과 일치를 이룰 때 얻게 되는 기쁨이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에서 얻게 될 영원한 기쁨과 행복이기도 하고, 지금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면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기도 하다.
여기서 ‘충만하다.’ 라는 말은 완전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10절) 완전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고,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그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룬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면 당연히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이며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 그 자체가 기쁨이 되는 것이다.
‘내 기쁨’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기 때문에 기뻐하시는 기쁨을 가리킨다. 신앙인들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서 그렇게 기뻐할 수 있다. 우리가 이 기쁨을 가져야만 원망, 불평, 의심을 이겨낼 수 있으며,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이 세상 모든 난관과 고통을 이길 수 있으며, 꾸준한 사랑의 실천을 하여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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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 구절은 10 절에서 말한 그리스도의 ‘계명’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구절이다. 즉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은 예수님의 모든 계명을 하나로 요약한 것이다. 바리사이인들이 계명을 지키는 동기는 남을 사랑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자기 자신을 남들에게 열심한 신앙인으로 드려내려는 것에 있었다. 이것은 계명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계명의 목적은 사랑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계명은 13장 34절에서 ‘새 계명’ 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제자들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예수님의 참된 제자임을 증명하게 되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된다. 제자들이 실천해야 할 사랑의 모범은 예수님의 사랑이다. 즉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모범으로 본받아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동료들끼리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넓게 해석해서 원수에 대한 사랑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이다. 주님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으로의 초대하는 목소리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은총을 얻어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소리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적인 영성만이 중요하지 외부적인 계명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반 율법주의, 반 계명주의의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외부적인 신앙의 규율, 곧 성경도 사실상 무시한다. 역사 안에서도 이런 경향들이 나타났었다. 그들은 외부적인 계명보다 자기 마음의 영적인 감동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그것이 성령 하느님으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에 도덕, 윤리상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옳지 않은 일을 해 놓고, 그것을 계시를 받아서 그렇게 하였다고 묻으려고 한다. 이단 종교나 신흥 종교에서 발견되는 점들이 바로 이런 것이다. |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2 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13 절에서는 예수님의 사랑은 바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사랑이라고 설명하신다. 예수님이 모범으로 보여주신 최고의 사랑은 바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당신의 큰 사랑을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의 무한히 큰 사랑을 받은 우리들로서, 어떻게 다른 사랑을 사랑할 마음이 없을 수 있겠나? 1 요한 4, 11 절 참조.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그런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라고 하신 것은, 죄인인 우리지만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 주신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죽기까지 하신 사랑이다. 이렇게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사랑의 은총을 받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내가 명령하는 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여 실천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친구가 된다.’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예수님의 기쁨을 얻게 되는 상태를 한마디로 요약해서 표현한 말이다.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이고, 예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얻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 라는 칭호는 제자들이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하나의 동기로 제시되고 있다. 즉 제자들은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해서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그동안 제자들을 종이라고 불렀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제자들 자신이 하느님과 예수님 앞에서 자기 자신들을 종으로만 여겼는데, 이제 그들에게 새로운 관계를 선사한다는 뜻의 말씀이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는 채로 그저 명령에만 복종하면 되지만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활동과 예수님의 사명을 알고 있으니 종이 아니라는 뜻이다. 종과 친구의 차이는 예수님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있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선택하셨을 때부터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벗이었다는 뜻이다. ‘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종이 아니라 벗으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모든 계시와 가르침,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제자들에게 전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자유인이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는 명령에 대한 복종의 의무만으로 이루어진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아니라, 자유인의 관계이고, 믿음과 사랑의 관계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우정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벗으로 대하고 사랑을 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런 사랑으로 응답해야 한다. 그것이 계명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께 속하고 예수님과 일치할수록, 즉 계명을 지킬 수록 우리는 더욱더 예수님의 벗이 되고, 벗으로서 더욱더 자유롭게 될 것이다.
종에서 벗으로 관계가 바뀌었다고 해서 예수님을 존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우리들)에게 여전히 스승님이며 주님이시다(13 장 13 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벗으로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라는 말은 제자들이 뭔가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친구가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신 것이라는 뜻이다. 즉 예수님이 제자들을 선택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친구로 삼으신 일들은 모두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세웠다.’ 라는 말은 그들에게 직분과 임무를 주었다는 뜻이다. 그 직분은 사도직이고 임무는 선교활동인데, 여기서는 세상에 가서 열매를 맺으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너희가 가서’ 라는 말은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한다는 뜻이다.
‘열매를 맺어’ 라는 말은 제자들의 임무 수행을 뜻하는데,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 가운데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드러내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이다. 또 이 말은 앞의 5 절에서 내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서 예수님 안에 머물러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너희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라는 말은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여라.’ 라는 명령이다. 이 말은 앞의 9 절과 10 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사랑 안에 언제나 머무르라는 뜻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 이라는 말은 제자들이 ‘열매’ 를 맺기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는 삶을 살면서 예수님 뜻에 맞는 기도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함께 기도하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 이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너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다, 라는 약속이다. 이 약속은 앞의 7 절에서 했던 약속을 다시 반복하신 것이다.
16 절의 뜻을 다시 정리하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스승이며 주님으로 선택하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먼저 그들을 제자이며 벗으로 선택해서 사랑을 주셨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그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면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또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도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서 예수님과 일치되어 있는 제자들의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위의 15 절과 16 절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무엇을 주시고자 하는지 이야기해 준 것이며 그것을 이야기해 준 이유는 제자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예수님에게서 받은 사랑을 근거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다시 명령하신다.
예수님의 이 명령은 5 절에 ‘내 안에 머물러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고 하신 말씀과 9절의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라는 말씀, 그리고 11절의 ‘충만한 기쁨’에 대한 말씀, 16절의 ‘열매’에 대한 말씀들을 모두 요약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로 대하시고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친구로서 사랑함으로써 예수님 안에 머물 수 있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예수님이 주시는 충만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