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케이드
발터 벤야민. 그는 유대계 철학자로서 불안한 파시즘의 시대를 견뎌야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독일 나치즘에 의해 자살을 선택하고만 비운의 사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눈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독일에서 나치즘에 의해 프랑스로 망명한 그는 파리에 머물면서 파리라는 도시를 상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가 파리에서 주목했던 것은 바로 아케이드였다.여기서 먼저 그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는지 살펴보자. 그는 세상을 알레고리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즉, 경제적 구조,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문화로 나타났는지 연구하고자 했던 것이다.그 때문에 그가 아케이드에 주목했던 것이다.
그럼 아케이드를 벤야민은 어떻게 파악하였을까? 먼저 아케이드가 어떤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산업에 의한 사치가 만들어 낸 새로운 발명품인 이들 아케이드는 몇 개의 건물을 이어 만들어진 통로로 벽은 지붕으로 덮여 있으며, 대리석으로 되어 있는데, 건물의 소유주들이 이러한 투기를 위해 힘을 합쳤던 것이다. 천장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이러한 통로 양측에는 극히 우아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리하여 이러한 아케이드는 하나의 도시, 아니 축소된 하나의 세계이다. ……안에서 구매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필요한 건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다. 갑자기 소나기라도 내릴라치면 아케이드들은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일종의 피신처를 제공해 주며, 좁기는 하지만 안전한 산책길을 제공해 준다(『그림으로 보는 파리 가이드북』/A 1,1).
파리의 아케이드는 1822년~1837년 사이, 즉 대부분 왕정복고기에 건설되었다. 정치적인 후퇴와 동시에 자본과 상품이 현실을 가리는 베일 역할을 자처하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렇기에 아케이드는 상품들의 신전이요 자본주의적 상업의 공간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식으로 번역하면 백화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백화점에서 우리는 돈만 있다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 돈만 있다면.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돈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되고 그 결과 돈의 노예가 되어버리게 된다. 이른바 자본주의적 물신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 당시 아케이드와 유사한 만국박람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국박람회는 상품이라는 물신을 위한 순례지다. 모든 상품들이 집결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물신을 경배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있다.
물신주의에 빠져 있는 대중들을 보면 기계적 시스템의 작동으로만 존재하는 판타스마고리아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화가 아닐까? 영화에 나오는 영웅들을 보면서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깊은 신뢰감에 빠지게 된다. 베일에 가려 꿈을 꾸게 된다. 이러한 꿈을 깨야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 즉 혁명이다.
2. 몽타주적 글쓰기 : 트락타트
이렇게 세상을 알레고리로 바라본 것은 벤야민의 독특한 시각이라 볼 수 있다. 독특한 시각을 가진 만큼 독특하게 세상을 이해한 벤야민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서 새로운 글쓰기가 필요했다.
그는 어떤 사람을 강제로 설득하거나 지식을 전하려 하기 보다는 설득과 감화시키려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설득력 있는 텍스트를 인용하여 글을 썼다. 아니, 아예 인용으로 이루어진 책을 쓰려고 하였고 그 결과물이 바로 아케이드 프로젝트였다.
벤야민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캠페인 구호 하나를 들어 설명해보겠다. 길가에 보면 ‘전기는 국산, 원유는 수입산’이라는 구호를 볼 수 있다. 왜 구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냥 전기를 아끼자고 하면 그만인데도 이런 식으로 구호를 만든 것은 스스로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벤야민이 인용으로만 이루어진 책을 쓰려는 것도 그와 같은 뜻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벤야민의 이러한 글쓰기는 그의 역사관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서사적 역사를 좋아하지 않았다.기존의 역사학자들이 사용하는 연대기적 서술 역시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사진처럼 역사적 사실을 역사의 연속성에서 분리하여 파편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파편을 순간적으로 섬광같이 포착하여 현재화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그의 역사관은 그가 세상을 알레고리적으로 바라보고 트락타트식으로 글쓰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3. 대중
대중은 곧 군중이다. 군중은 도시의 발명품으로 다양하고 모호한 사람들의 무리이다. 이러한 군중 또는 대중은 자본주의의 달콤한 유혹에 취해 꿈에 잠든 상태이며 언제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간다.
인간은 군중 속에 머무르면 사라져버린다. 군중의 일부가 되어버릴 뿐 개인은 지워져버리게 된다. 그리고 군중이 외치는 구호에 맹목적으로 따라가게 돼버린다. 과거 무솔리니나 히틀러의 선동에 쉽게 넘어가버린 군중들을 생각해보면 군중이란 개념 속에는 파시즘의 씨앗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군중 속에 파시즘의 씨앗만 숨어있는 것은 아니다. 군중 속에는 혁명의 씨앗 역시 숨어있는 것이다. 과거 파리 코뮨이나, 러시아의 소비에트 혁명은 어떤 개인이 아니라 군중이 이루어냈다. 물론 이끌어 줄 지도자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그 힘은 군중에서 나왔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파리 코뮨이나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파리 코뮨은 정부의 힘에 무너졌고, 러시아 소비에트는 일국 사회주의인 스탈린주의로 변질돼 버렸다. 어떻게 보면 공산주의는 혁명의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공산주의 자체가 신비주의의 옷을 입는 순간 공산주의는 또 하나의 파시즘이 되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네그리는 ‘다중’이라는 개념으로 대중을 대체하고자 한다. 네그리의 ‘다중’은 대중과 유사하지만 개인을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이 깨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오늘날 필요한 것은 네그리의 ‘다중’일 것이다. 어떤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이미 그 한계를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봤을 때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4. 반대중
대중의 맞은편에 서 있는 존재들이 있다. 자본주의라는 물신에 취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대중들과는 달리 이들은 자본주의의 외부에 위치해 있다.
수집가들은 물건을 수집하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가격은 무의미하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본인이 부여한 가치이다. 때문에 수집가들은 사물들을 유용성, 교환가치로부터 해방시킨다-물론 허례허식으로 예술작품을 수집하는 경우는 예외이다.
산책자들은 자본주의의 외부자이다. 그러나 그들은 군중의 일부이기도 하다. 군중과 산책자들을 나누는 기준은 바로 시간이다. 군중은 시간에 쫓기지만 산책자들은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들은 산책을 하면서 세상을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의 균열을 발견할 수 있다.
산책자들은 구경꾼하고 다르다. 산책자들은 날카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눈에 판타스마고리아의 베일은 벗겨지게 된다. 그들의 많은 시간으로 인한 권태는 그들에게 지적인 탐구의 과정이며 예술적 창조의 계기인 것이다.
5. 꿈에서 깨어남 : 혁명
대중들은 판타스마고리아의 세계에 거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라는 기계적 시스템의 작동으로만 존재한다. 그들에게 해로운 것을 계속 갈구하고 욕망한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물신주의에 취했기 때문이다.
패션을 생각해보자. 패션은 끊임없이 유행이란 이름으로 변화해 간다. 새로운 것이 다른 새로운 것으로 대체해간다. 상품논리다.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있는 근본 원리와 같다.
이런 현실에서 패션은 계급의 표지가 된다. 여자들이 명품을 밝히는 이유는 더 높은 계급에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기 위해서이다. 비록 그것이 착각일지라도. 때문에 아무리 명품을 밝히는 사람을 허영심 많다고 비난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더 높은 곳을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아도르노와는 달리 패션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패션 속에 숨겨진 예견력와 자기표현의 시도와 가능성을 긍정하였다. 오늘날 자기 개성이 강해지고 있는 어린 세대들을 바라보면 벤야민의 이런 통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패션에 긍정적인 요소가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프롤레타리아는 부르주아와 연합하여 봉건제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과거에는 누리지 못했던 예술 작품들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벤야민은 복제기술을 긍정한다. 사진으로 대표되는 복제기술을 통하여 과거에는 일부 부유층만 전유했던 예술작품을 대중들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일부 계급에게만 허용되었던 교육 역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결과들은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렇지만 벤야민은 당시 공산당 운동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혁명운동이 계급운동이라면 당시 혁명은 곧 공산당운동이었다. 그러나 벤야민이 지적한 것처럼 무비판적으로 이념화하고 있는 ‘진보’에 대한 믿음이 극단적인 편향으로 나아갈 때 바로 파시즘과 연결된다. 이러한 믿음은 종교에서처럼 신비적인 것이다. 일국 사회주의자들이 끊임없이 지도자를 우상화한 것도 공산당운동자체에 이러한 신비주의가 곁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벤야민은 그 자신에게서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그는 혁명이 물신주의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꿈에서 깨어난 자가 주권자이다. 여기서 나는 벤야민과 네그리의 주장이 접점을 이루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주권자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이러한 상상은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건강한 환상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관계를 구성해야 한다.
과거 공산주의라 불리는 일국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도 새로운 사회관계 구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회 체제는 과거 봉건제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군주에서 공산당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주권자는 ‘투쟁하는 피지배계급 자신’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의 투쟁은 지배계급에 대한 것이 아니다. 피지배, 지배로 나누어지는 사회관계망에 대한 투쟁이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었던 대동세계, 그것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