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쉴 만한 물가가 있는 관포교회에서 드리는 새벽이슬 같은 이야기 (호세아서 강해 9)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 (3)
설교 : 조용안 목사
날짜 : 2023. 2. 5.
본문 : 호세아 2:5-7
5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6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7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
유튜브(YouTube) 방송 안내
채널 이름은 '관포교회'로,
구독하시면
알림이 가고
정기적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관포교회) 주일설교
유튜브(관포교회) 갓개아침묵상
카페(관포교회) 설교문, 댓글모음
http://cafe.daum.net/kwanpo.org
--------------------------------
농어촌모델 관포교회
담임목사 조용안 드림
우리의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것입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농경사회에 편입되어 경제적 문화적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필요한 물건을 바알 우상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바알에게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으로 가시로 길을 막고 담을 쌓아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을 사랑하기에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강권적인 섭리였습니다.
첫째, 여호와를 찬양하는 사람들
본문 5절에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알을 섬긴 이유가 바알이 풍요의 신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섯 가지 품목들로서 떡과 물은 건강에 기본적인 식품입니다. 양털과 삼은 의복을 위한 재료들입니다. 기름과 술 틀은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 사치스러운 품목들입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그에게 준 것이요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그에게 더하여 준 것이거늘 그가 알지 못하도다”(호 2:8). 이 모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공급해주시는 축복을 바알이 공급해준다고 착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목민들입니다. 유목민들은 단순해서 먹는 것과 입는 것이 뻔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양젖을 짜고 휘저어서 버터를 만들었습니다.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와 보니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먹는 건포도는 유목민들에게 금보다 귀한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옷 한 벌로 40년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옷은 삼으로 만들었습니다. 양가죽에 비해서 삼은 비단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와 감람유까지 맛보게 되자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에 탐닉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생활을 누리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내 것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내 떡, 내 물, 내 양털, 내 삼, 내 기름, 내 술들을 내 것으로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축복은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들고 하루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이 없어야 한다면 그것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야 우리가 겸손해지고 하나님의 은혜에 매달리기 때문에 없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채워버리는 것은 연애하는 자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당신 것을 많이 소유하고 많이 누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상급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상급이고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하루하루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사 44:9). ‘허망하다’는 ‘아무것도 아님’, ‘공허함’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섬기시기 원합니다. 오직 예수님.
둘째, 사랑의 장애물을 만난 사람들
본문 6절에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가로막으신다면 이는 방해나 징계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을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코 방관하지 않으시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들의 길을 막아 좌절케 하시는 이유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잘못된 길로 나갈 때 부모가 그 길을 막아서는 것처럼 나를 포기할 수 없는 그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시로 그 길을 막고 담을 쌓으십니다. 헛된 우상을 섬길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앗수르로 하여금 침략하게 하여 환난을 주십니다. “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계 9:20-21). 환난 가운데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입니다. 인생길에서 갑자기 경험하는 가시와 벽은 장애물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타락과 방황의 길을 가는데 그 길이 넓은 길이라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망각과 타락의 길을 걸어갈 때 앞에 갑자기 가시가 등장하고 벽이 우뚝 나타난다면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를 깨닫게 하시려는 사랑의 장애물입니다. 가시로 울타리로 막히고 담이 쌓여 길이 막히거든 하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행 7:55-56).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한다는 죄목으로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전후좌우를 돌아보아도 한 사람도 스데반을 도와주거나 살려주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 돌을 집어 들고 이를 갈면서 죽이려 했을 때 스데반은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세상에서 돈을 찾고 직장을 찾고 행복을 찾아 나서지만 모두 길이 막힐 때 “하나님과 막힘이 없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거기서부터 풀어나가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님처럼 ‘하늘을 우러러’.
셋째,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사람들
본문 7절에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면 떡과 물, 양털과 삼, 기름 술을 주겠다고 해서 따라갔으나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앗수르가 쳐들어와 괴롭힘만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바알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더 힘들게 하고 더 궁핍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주님 앞으로 나오라는 사인입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잘되는 것은 바알 덕분이라고 합니다. 어려운 것은 하나님 탓으로 돌립니다. 7절에 ‘본 남편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희망 사항이었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바알이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힘들게 하시는구나,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힘든 이유는 내 불신앙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복된 삶을 살면서도 그것이 진정한 복인 줄 모르고 그릇된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어리석은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탕자의 비유입니다. 탕자는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지만 그러한 삶이 진정한 복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를 떠나 자신만의 세계를 살았지만 허무와 실패 고통의 연속일 뿐임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 15:16-17). 쥐엄 열매를 먹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어 주려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결책은 본 남편인 여호와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떠나가던 인생길에 장애물이 오거든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빨리 깨닫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본 남편 되시는 여호와께로 달음질쳐 오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대하 20:12). 여호사밧 왕은 백만대군을 거느리고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종말의 시대 오직 주님 신앙이어야 합니다. 찬송하는 성가대를 앞장세워서 연합군을 격파합니다. 전리품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어 사흘 동안 거두었습니다. 전리품은 승리자에게 주시는 보너스입니다. 채찍 맞기 전에 하나님의 권고를 받고 돌아서는 것이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묵상(하가)'은 깊이 생각하다, 으르렁거리다는 뜻입니다. 맹수가 먹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리듯이 말씀 앞에서의 내 모습이기 원합니다. 댓글은 사귐입니다. 댓글은 영의 생각입니다. 댓글은 믿음 생활의 동력입니다. 말씀댓글에 참여하시면 말씀의 풍성함이 더하여집니다. |
@ 아멘.
@ 주일 말씀을 듣고 큐티 나눔을 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신명기 33:29).~♡♡
@ 여호와를 찬양하는 사람들.
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며 축복의 통로로 살겠습니다.
@ 사랑의 장애물을 만난 사람들.
하나님을 잊어버린 인생길에서 갑자기 경험하는 가시와 벽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로 받으며 스데반처럼 하늘을 우러러보겠습니다.
@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사람들.
더 힘들고 더 궁핍하게 될 때는 하나님께 나오라는 사인으로 받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탕자처럼 아버지 집을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기듯이
본 남편인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가겠습니다.
@ 바알이 모든 것을 준다고 해도 ‘이것은 아니다’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가 다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주님만 찬송하며 살리라.
감사합니다.
@ 하나님, 제가 염치없지만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성도이길 원합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지혜로운 성도이게 하소서.
@ 여호와를 사랑하고 여호와께 찬송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우상숭배는 생각지도 말고 회개함으로 오직 주님께로 돌아오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가시와 담을 쌓아서 회개의 자리로 돌리시는 하나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아멘.
@ 내 앞에 가로놓인 가시와 담 앞에서
염치없지만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으로
회개하며 아버지 자녀로 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하나님의 사인, 가시와 담. 하나님께서 기회 주실 때 회개할 맘 충만케 하셔서
늘 주님 앞에 바로 서고자 노력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 소유욕이 아닌 여호와가 나의 목자로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 장애물을 만난 나의 모습은 한숨과 함께 땅에 고개 떨구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는 하늘을 보고 더욱 주님의 은혜를 바라는 염치없지만
주님께 기대는 자녀이길 원합니다.
@ 나의 앞길이 가로막혔을 때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없어도 되는 것, 없어야 됨으로 하나님께 주시지 않으심을 기억하며
오직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하나님, 오직 주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찬양하는 제가 되게 해주세요.
@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붙잡고 살아가며 세상의 축복의 통로 되길 원합니다.
@ 주님께 축복받은 자로서 하나님만 붙들고 살아가는 자가 되며
절망의 길로 가지 아니하도록 주님 앞에 회개하고 회개하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저가 회개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가 아니라
‘회개하고 회개하더라’가 되길 원합니다.
@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 그때 힘들고 어려운 것을 주님 탓하며 원망하지 말고
주님께서 아직까지 날 사랑하기 때문에 큰 장애물을 주신다고 생각하며
평생 주님만 믿고 사랑하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 겸손, 늘 겸손이라는 단어가 늘 제 맘속에서 우선시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처한 상황과 여건을 바라보니 단전에서 올라오는 깊은 한숨만 나오지만
주님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살아가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 염치없지만 그래도 아버지께로 나아갑니다.
가시와 쌓인 담 앞에서 아버지를 우러러 보겠습니다.
떡과 물과 양털과 삼과 기름과 술로 풍요롭게 하실 때에도 아버지를 우러러 보겠습니다.
나를 사랑하신 아버지 감사합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사랑하기’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고 축복의 통로 되기’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 (3)’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여호와를 찬양하는 사람들’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사랑의 장애물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 주일 오전 나에게 주신 말씀의 키워드(key word)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