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1일 캔디 시내에 도착을 했다
도착한 날 일정 중에는 페라데니아 식물원과 캔디호, 민속 춤 관람이 예정되어 있었다.
캔디시내에 도착을 하여 점심을 먹고나니 날씨는 더워서 어디 가는 것이 힘들었다.
식물원을 먼저 가기로 했다. 그늘을 택해 식물원을 거닐며 놀았다. 말하자면 보테닉 가든 같은 곳이었다.
이름을 몰라 물으니 싱이 대답했다.
이 많은 식물의 이름을 저든 다 알지 못한단다.
표지판을 보니 이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를 심은 이의 이름까지
꽃 모양이 참 신기했다 어쩌면 꽃을 피워도 저리 피울 수 있는지
걸어가는 나무 밴자민이 있는 곳으로 들어 갔는데 못 들어가게 했다.
이유인즉 인도영화를 찍는단다.
배우들인듯 치장을 한 사람도 몇 보았다.
지금 저 바구니를 들고 있는 사람도 등장 인물인 것 같고 멀리서 연기를 피워 올렸다.
오후인대도 아침 안개가 피어나는 숲 속 같은 분위기이다.
참 많은 것을 본다
영화를 촬영하는 것도 보고
참 예쁘게 늘어선 야자나무 숲길
이 길을 걸어 나오며 놀았다.
가이드가 말했다. 지금 저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오늘 다 불치사를 찾을 것이란다.
그러면 사람 때문에 제대로 사원을 못 볼것이라고 했다.
우리 숙소에서 불치사는 걸어서 15분 이니 내일 아침에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우린 당연히 좋다고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먼지속에 복작이는 것보다 아침 조용한 시간에 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덕분에 느긋하게 즐기고 캔디호를 노닐며 민속춤을 보기로 했다.
민속춤은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것으로 찻잎 따는 것도 있고 장고같은 것을 두들기며 상모비슷한 것도 돌리는 춤이었다.
민속춤이 끝나자 불쑈를 한다고 했다.
봐도 되고 안 봐도 된다고 해서 밖으로 나왔더니 민속춤을 보던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불쑈를 보고 있었다.
가운데 있는 검은 판에 불을 놓고 걸어가기도 하고 입으로 불을 먹었다가 뱉기도 하는 기이한 장면을 만들어 냈다.
뭔가를 한 줌 쥐어서 뿌리며 불을 뿜어내면 저런 큰 불덩이를 만들어 냈다.
불치사는 민속춤을 보던 바로 곂에 있었다.
불치사에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보시고 있는 곳이기에 성지순례를 오는 사람이 많단다.
더구나 우리가 도착한 날이 불치사에 무슨 행사가 있는 날이어서 캔디호 주변은 완전 사람들로 북적였다.
호텔로 들어가기 전 두리안과 맥주를 샀다. 호텔에서는 냄새가 난다고 못 들고 가게 한다는데 우리는 그냥 사들고 들어 갔다.
먹고나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문어 놓고 환기를 시켰지만 두리안 냄새는 좀체 가시지 않았다.
아침에 조용하고 맑은 상태에서 6시에 일어나 차를 타고 불치사로 향했다.
맨먼저 들어 간 불치사의 법당이다. 주변에는 부처님의 탄생부터 열반까지 28컷의 그림으로 설명 되어 있었다.
책을 구할 수 있냐고 했더니 구해준다고 하더니 결국은 못 구하고 말았다.
서점이 없을 뿐더러 이 나라 사람들은 책을 보지 않는 것일까?
거리에서 서점을 보지 못했다.
저 안에 부처님의 치아사리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간다고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 앞을 지나가며 스치듯 기도할 뿐이다. 뒤에서 사람들이 밀고 오는데 나만을 위해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이 날은 아기들을 안고 온 부모들이 많았다.
20여명의 아니들은 이 부처님 치아사리 앞에서 부처님께 기도를 한다고 했다.
얼른 돌아 나와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저 안에 아쉽지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설명에 의하면 불치사에 모셔진 부처님의 치아사르는 스리랑카의 아픈 역사를 지켜 온 자존심이라고 했다. 외세에 의한 핍박으로 부터 지켜내기 위한 목숨을 건 노력이 없었다면 이 치아사리는 없어질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어째 스리랑카의 역사와 지금의 정치 상황을 들으면서 한국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을까?
남한의ㅣ 3/1크기인 스리랑카, 거대한 인도의 눈물방울처럼 있지만 당당한 스리랑카.
아이들을 안고 있는 모습을 찍으려고 보니 벌써 문이 닫히고. 거기에 대기하고 있던
아이와 부모는 치아사리가 있는 법당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이 아이는 그날 부처님의 가피를 받고 나오는 아이다.
아빠의 손에 선물이 들려있었는데 아이를 찍다보니 선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칭얼대고 있었다.
돌아나오는 길에 한 곳을 들리니 스님이 손목에 실을 묶어 주었다.
하얀 실인데 의미는 모르지만 손에 돈을 들고 있었더니 다른 사람의 두배의 양을 묶어 주었다.
나중에 본 내 뒤에 오던 일행도 내가 돈 꺼내는 것을 보고 자기도 해야겠길래 지갑을 만졌더니 나와 같은 양을 묶어 주었다고 했다.
불치사를 나와서 긴 돌담도 보고 걸어 나오는데 유난히 웨딩포토를 찍는 쌍쌍이 많았다.
장잔스럽게 우리도 같이 찍기도 하고 축복을 빌어주기도 했다.
아침 캔디호의 경치는 상당히 아름다웠다.
어제 밤의 그 소란스럽고 북적이던 시내는 아니었다.
영기 어디나 아침은 그리 편안하고 맑은 것이 좋다.
불치사에 가서 기도한 뒤라서인지 아침을 먹는데 참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