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국가의 하느님과 하나님의 차이 ◈
명나라에 가톨릭의 선교사로 와서, 뼈빠지게 중국어와 중국고전을 연구했던 에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데이어스(Deus)를 '천주(天主)'라고 번역했어요
이건 불교의 제천석에게 사용되던 칭호를 차용한 것인데, 꼭 불교적인 표현인 것만은 아니고
당시 동양인들에게 도교의 옥황상제(상제, 천제, 천주), 동학의 한울님을 가리킬 때에도 쓰인,
추상적으로 신을 의미하는 표현이기도 했지요
이 때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서 펴낸 책이 『천주실의(天主實義)』이지요
마테오 리치는 천주를 상제(上帝)와 같다고 설명했는데,
상제는 원래 은나라 때의 최고신이었던 개념으로,
후대에는 보편적으로 하늘(天)과 같은 표현이 된 말이었어요
중국 고대문헌에 간간이 상제나 천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마테오 리치는 그게 기독교의 유일신과 같다고 설명했지요
전통적으로 농경사회를 거쳐온 인류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하늘을 신처럼 모시는 경향이 있었으며 성경(구약)에서도
"하느님께서 천국의 곳간을 여셔서 복을 내리신다."는 구절이 존재하지요
'천주실의'는 마테오 리치가 그동안 쌓아온 중국 고전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서
중국인이 원래는 기독교가 말하는 신을 믿었다는 점,
불교나 도교가 기독교보다 수준이 낮다는 논리,
기독교가 유교의 가르침과 큰 차이가 없다는 등의 논설을
중국 지식인과 대화체로 풀어나가는 책이지요
사실 현대인의 기준에서 보면 이리저리 욕 먹을 만한 내용이지만,
유교와 친화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에 당시 중국과 한국의 지식인들에게도
상당히 읽히게 되었고, 이후 동아시아의 유교문화권 지역에 기독교가 퍼지는데
성서보다 먼저 들어 가는 책으로 손꼽히게 되었어요
조선에서도 학자들을 필두로 이 '천주실의'를 통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때부터 '천주'라는 표현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지요
그러다가 개신교의 도래로 1880년대 초반에 성경 번역이 이뤄지고,
이때는 “하느님” (= 하늘님, 하눌님, 하날님, 한울님 등)을 주로 사용했어요
1883년 “예슈셩교셩셔 요안나복음”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하나(숫자1)+님이 아니라 하늘을 표현한 사투리였지요
사실 초기 한국 개신교는 오히려 천주라는 말을 쓰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개신교의 도래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이 발발하면서
개신교 측은 새로운 신명을 만들 필요가 생기게 된 것이지요
1974년 경향신문 종교백년(宗敎百年) 연재기사에 참고할 만한 내용이 나오는데
1891년 재령읍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는데 천주교인이 단체로 들이닥쳐
신도들을 성당으로 납치, 태형 등 폭행을 한 것을 비롯하여
개신교 예배당 건축 방해 등 전국적으로 적지 않은 충돌사건이 있었어요
당시 천주교 신도들이 폭력적인 행태를 부렸던 이유의 하나는
개신교에서 신앙의 대상을 천주(天主)라고 불렀기 때문이기도 했지요
결국 개신교는 이 칭호를 달리하기로 작정했어요
언더우드 목사는 신, 상제, 하날님, 하느님, 하눌님 등 갖가지 칭호 중에서
'하느님'으로 결정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지요
요컨대 19세기에 여전했던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상호 갈등이
구한말 조선에서까지 양측의 선교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고,
조선 천주교도들은 자신들이 이단시하는 개신교도들이 유일신을 '천주'로 호칭하는 것을
무엄한 신성모독으로 보았던 셈이지요
결국 이것이 개신교에서 '하나님'이라는 독자적인 호칭을 만들어내는 배경이 되었어요
이후 가톨릭에서는 계속 천주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였지만,
개신교에서는 천주를 '하느님'으로 번역하여 사용하였지요
워키백과에서는 하느님이라는 말이 가장 처음 나오는 것은 최초로 한국어로 번역된 성경인
《예수성교 누가복음전서》라고 서술하고 있어요
따라서 한글맞춤법 통일안은 하느님을 표준어로 삼고있으며
하나님은 하느님을 개신교에서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지요
상제(上帝)는 '하느님'의 한자식 표기이고
차이가 있지만 하나님은 유일신, 하느님은 하늘님으로 하늘에 계신 창조주를 의미하지요
이때 하늘은 영의세계를 의미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애국가를 보면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라는 구절이 나오지요
장로회신학대학교 소기천 교수는 ‘애국가(愛國歌)’는
대한제국이 외세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했던 시기(1907년 전후)에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라는 의미를 담아 불려 지던 찬송가였음을
당시 제작된 ‘찬미가’를 캡처하여 제시하였어요
아직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작사자는 ‘윤치호 선생’이라는 것이지요
1907년 윤치호가 역술, 번역하고 편찬한 ‘찬미가’ 14장에
현재의 애국가의 모습이 그대로 실려 있고, 19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한
‘신한일보’에도 ‘국민가’라는 제목으로 애국가가 실려 있는데,
여기에도 작사자를 ‘윤치호’로 명기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이 노랫말에 붙여진 곡조는 처음에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었는데, 작곡가 안익태 선생이
애국가를 남의 나라 민요에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35년 현재의 애국가를 작곡하였어요
그 후 두 가지를 혼용되어 사용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안익태의 곡으로 정부의 공식행사에서 불려 졌고,
교과서에 실리면서 전국적으로 애창되기 시작하였지요
현재의 가사 중 ‘하느님이 보우하사’는 본래 ‘하나님이 보호하사’였던 것인데,
전국민이 부르는 국가(國歌)이기에 ‘하느님이 보우하사’로 개사한 것으로 보이지요
‘하나님’과 ‘하느님’ 모두 표준어이지만,
'하나님'은 개신교가 부르는 ‘유일하신 신(神)’이라는 의미이고,
‘하느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한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라고
국어사전은 풀이하고 있어요
그러나 애국가의 작사자는 윤치호(尹致昊) · 안창호(安昌浩) · 민영환(閔泳煥) 등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아직 어느 것도 공인되지 않았지요
그래서 애국가의 작사자는 '미상'으로 되어 있어요
정부에 의하여 애국가는 정식으로 국가로 제정되거나 채택된 것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국가로 불리다가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지요
작곡자 안익태가 「애국가」의 가사를 처음 접한 것은 1919년 3·1운동 때였어요
그 뒤 「애국가」가 스코틀랜드 민요「Auld lang syne」, 즉 「이별의 노래」의 곡조에 붙여
불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한국 사람인 자기가 직접 작곡해야겠다고 결심하여
1935년 「애국가」를 작곡하였지요
1937년 초 무렵 「애국가」를 주제로 하는 자신의 대표 교향곡 「한국환상곡」을
미국에서 처음 완성하고 같은 해 4월 무렵 뉴욕에서 비공식 초연 무대를 가졌어요
1938년 2월 더블린 초연, 1938년 6월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연 등을 거치면서
악곡을 거듭 수정했지요
곡은 가장조(또는 사장조), 4분의 4박자로 되어 있으며,
속도는 느리고 장중한 분위기의 악상을 가지고 있어요
모두 16마디로 되어 있으며, 4절의 가사로 된 유절형식과
a-b-c-b의 구조로 된 두도막형식으로 되어 있지요.
간결하면서도 장중한 것이 특징이지요
「애국가」는 사용 용도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되고 있어요
피아노 반주로 된 것이 원곡이고,
아무런 반주 없이 부르는 것과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것이 있지요
반주가 있는 경우에는 4마디의 전주가 있고,
악기만으로 연주되는 경우에는 전주가 없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一松) *-
▲ 윤치호 선생의 친필 애국가 가사
▲ 1907년 윤치호선생이 역술, 번역하고 편찬한 ‘찬미가’ 1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