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내적체험 통해서만 生死 해결 가능
수행의 근본목적은
견성성불에 있고,
견성성불의 목적은
최상의 인격을 이루는데 있다.
인간의 지식이 인격화되지 못하고 탁월한 능력이 덕성화 되지 못한다면
단지 기능에 불과해서 오히려 시비와 분열의 촉매제가 될 뿐이다.
다듬어진 인격과 자재의 덕성을 갖추어 밝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수행을 해야 하고 수행의 성취는 생사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생사에 대한 두려움은
생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에서 바라본 생사의 문제는
반드시 극복할 수 있는 명제이고
또한 반드시 극복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과제이다.
선에서 생사를 극복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깨달음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방일하지 않는 부단한 수행이 필요하며,
결국 생사의 극복은
각자의 내적체험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내적체험을 통한 깨달음의 관점에서 보면,
생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사 또한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생도 없고 사도 없다.
따라서 생이라 하더라도
사와 다를 것이 없고,
사라 하더라도
생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인 것이다.
여기에 생과 사의 대립이란 없다.
사실 생과 사,
생사와 열반 두 법에 대하여
분별을 하는 것이 바로 망념이다.
생사가 있기 때문에
열반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생사와 열반을 분별하여
생사는 싫어하면서 열반은 얻어야 할
절대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결코 생사를 극복하지 못한다.
보통 생사와 대립되는 열반이란 개념이 갖는 본래 뜻은
생사의 구속을 벗어난 해탈의 경지이지만 열반의 참뜻은
현재 상태에서 생사로부터의 해탈을 그대로 체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잡아함경>권15에서도
“현세에서 반열반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노.병.사에 대하여 싫어하고,
탐욕을 여의고,
완전히 소멸시켜 모든 번뇌(漏)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잘 해탈하면,
이것을 비구가 현세에서 반열반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禪에서 보는 생사는 극복가능한 명제 이를위해
추구해야 할 목표는 깨달음 방일하지 않는 부단한 수행이 필요해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은 <도서(都序)>에서
“일찍이 한 법도 인연으로 생겨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이 때문에 일체법이 공 아닌 것 것이 없으며,
무릇 존재하는 모든 상이 허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생사열반이 평등하여 환과 같은 것이다
(故未曾有一法 不從因緣生 是故一切法無不是空者
凡所有相皆是虛妄 是故空中無眼耳鼻舌身意
無十八界十二因緣四諦 無智亦無得 無業無報
無修無證 生死涅槃 平等如幻)”라고 하였으며,
또 “생멸이 곧 진여이기 때문에
모든 경에서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이 본래 열반이며
항상 적멸한 모습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진여가
곧 생멸이기 때문에
경에서는 ‘법신이
오도(五道)에 윤회하는 것을 중생이라 한다’고 한 것이다
(生滅卽眞如 故諸經說無佛無衆生
本來涅槃 常寂滅相 又以眞如卽生滅故
經云法身流轉五道名曰衆生)”라고 하였다.
이러한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을 몸소 깨닫고
실천에 옮긴 분들이 바로 선승들이다.
선승들은
오직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 수행에 몰두해온 분들이다.
그러므로 선사들은 입적(入寂)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입적에 당하여 자신이 평생 정진한 수행력으로
입적이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법신의 탄생이며,
적멸(寂滅)임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선사들은 임종에 이르러 평생 수행해온 자신만의 세계를
‘임종게(臨終偈)’,
혹은 ‘열반송(涅槃頌)’을 통하여 나타낸다거나,
좌탈입망(坐脫立亡)이라는
모습을 통하여 실제로 임종에 드는 순간까지도
제자들을 위해 몸으로써 활구(活句)를 보여준 사례는 적지 않다.
앙산원(仰山圓)선사는 우강(旴江) 사람으로
구족계를 받고 나서 도를 배우기로 용단을 내렸는데,
묘희(妙喜)선사가 매양(梅陽)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찾아가 귀의하였다.
앙산원선사에게 어떤 수좌가 대중을 이끌고 일제히 절을 올린 다음 법을 청하기를,
“생사란 큰일이고 죽음은 신속히 찾아옵니다.
부디 바라옵건대, 자비로서 인연을 열어 보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원선사는 천천히 말하였다.
“생사대사를 밝히고자 한다면 바로 행주좌와하는 가운데서
‘생은 어디서 왔으며 사는 어디로 가는가. 결국 생사란 어떻게 생겼는가’를
살펴보아야 하느니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한참을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더니 이윽고 그대로 몸을 벗었다고 한다.
이러한 예가 제자들에게 직접 몸으로 생사의 진면목을 보여준 활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당나라 때의 고승 약산유엄(藥山惟儼, 751~834)은 태화(太和) 8년(834) 2월에 입적하였다.
임종 직전에 “법당이 쓰러진다. 법당이 쓰러진다”고 외치자, 대중이 모두 기둥을 잡고 버티었다.
선사는 손을 흔들면서, “그대들은 나의 뜻을 모른다”고 말한 뒤 입적하였다.
오대산 스님인 은봉(隱峯)은 복건(福建)의 소무(昭武)사람으로 성은 등(鄧)씨이다.
어릴 땐 어리석은 듯 하였다. 처음 출가하여 마조의 문하에 있었으나 오묘한 진리를 보지 못하였고,
다시 석두(石頭)에게 가서도 이치에 계합하지 못했다. 이렇게 왕래하기를 두세 번 거듭했으나
모두 깨닫지 못하다가 끝내 마조의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었다.
스님께서 오대산 금강굴 앞에서 열반에 들려 할 때에 대중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제방의 선사들이 죽을 때에
앉아서 가거나 누어서 가는 것을 보았으리라. 서서 가는 이도 있던가?”
“있습니다.”
“그러면 거꾸로 서서가는 이도 있던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대사가 거꾸로 서서 열반에 들었는데 옷자락이 고스란히 몸에 붙어 있었다.
이때에 대중들이 의논하여 화장장으로 운구해 가려 했으나
움직이지 않으니 사람들이 우러러 보고 탄복하였다.
이때에 대사의 누이동생이 여승이었는데 가까이 가서 허리를 굽히고 나무랬다.
“애닯구나, 오라버니는 살아서도 율행을 지키지 않더니 죽어서 마저 사람들을 의혹 시키는구료.”
그리고는 손으로 슬쩍 미니 덜컥 쓰러져 다비 장소로 옮겼다.
이 이야기는 은봉선사의 열반 기행으로 수행자의 초출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며,
기행 자체가 도(道)로 착각할 것을 염려한 그 누이동생의 국량 또한 범부의 경계를 벗어났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