삯꾼에게도 필요한 인내
전쟁의 참화가 프랑스에 드리웠을 때, 유다인 출신의 철학자 시몬 베유는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를 자처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과 말로 자신이 좋아한 희 랍어 단어 ‘ὑπομονή’(휘포모네, 인내)의 가치를 드러냅니다. “구 원을 실현하는 태도는 그 어떤 활동과도 비슷하지 않다. … 그것은 기다림, 한없이 지속되면서 어떤 충격으로도 뒤흔들지 못하는 주의 깊고도 충실한 부동성(不動性)이다.” (≪신을 기다리며≫, 2015년)
오늘 복음은 목자와 삯꾼을 대비시킵니다. 먼저 목자 는 양을 소유한 이입니다. 양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 을 돌봅니다. 양들이 그를 살게 하기에 자신을 돌보듯 양들 을 돌봅니다. 그래서 이리의 위협에도 양들 곁에 가만히 머 물 수 있습니다. 양과 목자의 목숨은 하나로 엮여 있기 때 문입니다. 반면에 삯꾼은 고용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삶과 양들은 서로 관련이 없습니다. 그는 그저 받은 일당으 로 자기 자신만 돌보면 그만입니다. 양은 목자에게는 소중 한 존재이지만, 삯꾼에게는 자신의 삶을 꾸릴 도구일 뿐입 니다.
그래서 목자와 삯꾼의 차이는 ‘인내’하는 태도로 드러 납니다. 목자는 양들의 걸음 곁에 늘 함께 있습니다. 자신 과 양들은 걸음 폭이 다르고 눈높이가 다르지만 함부로 재 촉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인내합니다. 밤을 보낼 집으로 그 들을 이끌고, 목을 축일 샘터와 먹이가 있는 풀밭으로 천 천히 동행합니다. 양들이 더 살찌고 그들의 털이 더 윤택 해지기를 자신의 삶을 담아 희망합니다. 하지만 삯꾼은 기 다릴 수도 없고, 인내할 수도 없습니다. 어서 빨리 해가 떨 어져 편안한 잠자리로 돌아가 쉬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양 이 잘 먹어 살이 찌는 것은 또 다른 일거리를 만들기에 희망 이 될 수 없습니다. 그에게 희망은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하지만 삯꾼에게도 양들은 중요합니다. 그가 먹고 살 수 있는 것은 잘 돌본 양들을 보고 목자가 줄 품삯 덕분이 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삯꾼에게도 목자와 같은 인내가 필요합니다. 목자를 닮아, 그가 했던대로 양들을 잘 돌보 아야만 좋은 일꾼으로 다시 고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삯꾼은 양들을 잘 돌봅니다. 그리고 양들과 함께 자신의 수고를 알아줄 목자를 인내하며 기다립니다.
부활 4주일인 오늘은 ‘성소 주일’입니다. 이 날, 목자의 임무를 맡은 이들을 생각합니다. 선교사와 수도자, 성직 자들은 그들의 일로 목자이신 주님을 대신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목자처럼 인내하고 기다리며, 희망하기를 기도합 니다.
양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걷기를 바랍니다. 비록 삯 꾼처럼 주인에게 고용된 이들일뿐이지만, 목자의 충실함 이 그들을 감화시켜 그들도 목자와 같은 일을 하기를 원 합니다. 양들 속에서, 누구보다 간절히 목자를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침내’ 모두가 한 우리 안 에 같이 모일 때, 그들이 찾고 또 살찌운 양들 곁에서 목 자와 함께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 이한석사도요한 신부 |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