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영상은 3월 초봄에 찍은 사진들 중에서 골라 만든 而化瑤眞鏡 제10호 MAR'26 3월 월례영상입니다. 제목은 [꽃은 사진을 바꾼다]라고 하였습니다. 꽃이 피면 세상이 달라지니 而化의 현장예술사진도 그에 따라 바뀐다는 말씀이죠. 그러니까 而化가 꽃사진을 많이 찍게 되더라 그 말씀이죠.
지금은 4월도 절반이 지난 때인데 이미 벚꽃도 활짝 피었다가 지고 있는 판에 초봄에 찍은 사진들이 무슨 시사적인 가치가 있겠느냐 이렇게 질문하실 수 있죠. 그렇죠. 그 사진들은 而化가 금년에 처음 본 봄맞이 식물들로서 그 시점에서는 시사적 가치가 있었지만 그 가치는 이미 변해서 보편화 되어버린 그러한 사진들이죠. 따라서 그러한 사진들을 예술사진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겠죠. 而化도 처음부터 그러한 而化의 사진들을 예술이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예를들어 냉이꽃은 而化가 처음 봤을 때는 시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그 후 냉이꽃 사진은 널려 있어서 가치가 보편화된 그러한 사진들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죠. 지금 시점에서 냉이꽃을 찍어 보여주면 누가 쳐다보지도 않겠죠. 지금은 이미 시사적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고 그 가치는 이미 보편화된 가치 밖에 없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어떤 꽃이 예쁘다고 찍었는데 그 시점에서 그 꽃은 나에게 시사적 가치가 있었겠지만 그러한 꽃들이 만발 했을 때에는 시사적 가치를 잃게 되고 보편적 가치로 변해버린 통상의 꽃사진 즉 'one of them'이 되고 말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처럼 예술은 오래토록 변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죠. 而化가 주창하는 [현장사진예술론]에서는 현장에 있는 현실 즉 實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實體와는 다른 [그 무엇]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죠. 그것은 而化의 눈과 뇌의 합작품이죠. 그 실체와 다른 [그 무엇]은 그 후 그 실체가 변한다 하더라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이죠. 간단한 예를 들어 사람 닮은 장미꽃을 찍은 사진은 통상의 장미꽃이 계절이 바뀌어 지든 피든 사람을 닮았다는 [그 무엇]은 변함이 없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래토록 변치 않는 예술이 될 수도 있는 것이죠. 위 영상에서는 [MAIN]에 있는 사진들이 그것들입니다.
그런데 사진예술이라고 하니까 사진이 물리적으로 고급스러워야 하는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체적으로 선명하게 잘 찍히면 예술이라는 생각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죠. 기술은 돈을 들이면 더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좋은 카메라나 좋은 렌즈 그런 것 비싸게 주고 사면 조금 더 질 좋은 사진을 찍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것은 기술을 돈 주고 산 것이지 예술을 한 것이 아니거든요. 예술은 사람이 하는 기능적인 일이라 돈을 주고 살 수가 없는 것이죠. 돈은 예술이 아닙니다.
사진예술 특히 현장사진예술론에서는 그냥 현장에서 보인 그대로 찍을 수 있으면 되는 것이죠. 모든 사진기는 사람 눈에 보이는 대로 찍힙니다. 예술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사람이 한 대로만 보여 줄 수 있으면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찍힌대로 보여만 주면 되지 편집은 왜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죠. 그 주된 목적은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 보이도록 하는데 있는 것이죠. 즉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이 되도록 보완하는 것이죠. 그에 더하여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아름다워 보이면 나쁠 것도 없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