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사물에서 인간의 시간을 발견하다
운곡 조이무
운곡 조이무의 산문 「동묘 앞에서, 시간을 줍다」는 벼룩시장을 단순한 중고품 거래의 공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작가는 낡은 물건에 남아 있는 손때와 흠집, 빛바랜 색깔을 통해 그 물건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불러낸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동묘는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인 동시에, 흩어진 세월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에 초점을 맟눈다.
작품의 제목에 사용된 ‘줍다’라는 말은 매우 의미가 깊다. 일반적으로 시장에서는 물건을 ‘사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작가는 시간을 ‘산다’고 하지 않고 ‘줍는다’고 말한다. 줍는 행위에는 버려진 것을 다시 발견하고, 쓸모없다고 여겨진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누구에게는 낡고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리는 귀중한 매개가 될 수 있다. 결국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발견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이 제목 속에 함축되어 있다.
작품의 첫머리에서 광장시장을 지나 동묘앞역으로 향하는 과정은 빠르게 움직이는 현대 도시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여정과 같다. 광장시장과 동묘는 지리적으로 멀지 않지만, 두 공간이 지닌 시간의 결은 조금 다르다. 광장시장이 먹거리와 관광객의 활기로 가득한 현재의 시장이라면, 동묘 벼룩시장은 지난 시대의 물건들이 현재의 사람들과 뒤섞여 있는 기억의 시장이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사람은 최신 유행과 속도의 세계를 벗어나 오래된 사물과 느린 시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동묘 시장에 놓인 낡은 축음기와 군복, 녹슨 자물쇠와 오래된 시집, 주인을 잃은 안경은 단순한 배경 소품이 아니다. 그것들은 저마다 한 시대를 살아온 생애의 증거다. 축음기에는 어느 집안의 노랫소리가 남아 있을 것이고, 군복에는 누군가의 젊음과 긴장된 세월이 배어 있을 것이다. 녹슨 자물쇠는 한때 무엇인가를 지키던 물건이며, 낡은 시집에는 어느 독자의 밑줄과 눈물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주인을 잃은 안경 역시 한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사물을 통해 물건에도 생애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새 물건은 깨끗하고 편리하지만 아직 아무런 사연을 품지 못했다. 반대로 오래된 물건은 낡고 불편해 보여도 수많은 사람의 손길과 생활을 통과해 왔다. 사물에 남은 흠집은 결함이라기보다 세월이 새겨 놓은 문장이다. 따라서 동묘의 물건들은 버려진 폐품이 아니라, 아직 완전히 읽히지 않은 한 권의 자서전과 같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사라지는 것에 대한 연민’이다. 오늘날의 소비사회는 새것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조금만 낡아도 쉽게 버리도록 만든다. 사람들은 물건의 쓸모가 다하면 그 물건이 간직한 기억까지 함께 폐기해 버린다. 그러나 작가는 동묘의 오래된 사물을 바라보며 쓸모와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사용 가치는 줄어들었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가치는 오히려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선은 사물을 넘어 사람에게로 확장된다. 동묘 시장에는 노년층이 많이 모인다. 어떤 사람은 물건을 팔고, 어떤 사람은 값싼 옷을 고르며, 또 어떤 사람은 특별히 살 것이 없어도 천천히 시장을 걷는다. 젊은 사람들에게 동묘가 색다른 유행과 복고의 공간이라면, 노인들에게는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흔적을 다시 만나는 장소일 수 있다. 낡은 라디오와 양은그릇, 군용 가방과 오래된 공구 앞에서 그들은 물건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젊은 날과 마주한다.
작가는 낡은 물건과 늙어 가는 인간을 은근하게 겹쳐 놓는다. 현대사회가 오래된 물건을 쉽게 버리듯이, 생산성이 낮아진 노인을 사회의 주변으로 밀어내는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오래된 사물이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듯이, 노년의 삶에도 오랜 경험과 지혜가 축적되어 있다. 작품은 이를 직접적으로 주장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대신 동묘 골목의 풍경을 차분하게 묘사하며 독자가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 이러한 절제된 태도는 작품의 울림을 더욱 깊게 만든다.
동묘라는 명칭에 담긴 역사성도 작품의 공간적 깊이를 넓혀 준다. 동묘는 관우를 모신 사당인 ‘동관왕묘’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관우는 충의와 신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상인들에게는 재물을 지켜 주는 존재로도 숭배되었다. 사당 주변에 시장이 형성되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오늘날의 벼룩시장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충의의 사당과 생계의 장터, 역사적 공간과 서민의 생활공간이 한곳에서 만나는 것이다.
따라서 동묘는 하나의 시대에 갇힌 장소가 아니다. 조선시대의 기억과 근현대의 생활사, 오늘날 젊은 세대의 복고 문화가 한 골목 안에 포개져 있다. 과거가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속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람들과 흥정하고 대화하며 살아 움직인다. 이곳에서는 조선의 관우 신앙, 보부상과 장돌뱅이의 삶, 산업화 시대의 생활용품, 현대의 빈티지 문화가 서로 부딪히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작품에는 농민작가인 운곡 조이무 특유의 생활 철학도 나타난다. 농부는 씨앗의 겉모습만으로 생명을 판단하지 않는다. 작고 마른 씨앗 안에 다음 계절의 가능성이 숨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작가가 동묘의 낡은 물건을 바라보는 태도 역시 이와 비슷하다. 남들이 버린 물건 속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생명과 이야기를 찾아낸다. 오래된 물건을 다시 사용하는 일은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사라질 뻔한 기억에 새로운 계절을 돌려주는 행위다.
밭에서 묵은 씨앗을 골라 다시 뿌리듯, 작가는 동묘 골목에서 세월의 씨앗을 줍는다. 농부가 흙 속에서 생명을 읽는다면, 작가는 사물에 밴 손때에서 인간의 삶을 읽는다. 이처럼 작품의 시선은 관념적이기보다 생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거창한 철학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시간, 기억, 노년, 소멸이라는 보편적인 문제에 이른다.
문체 또한 작품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 문장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고 시장 골목을 천천히 걷는 사람의 호흡을 따른다. 축음기, 군복, 자물쇠, 시집, 안경과 같은 구체적인 사물의 나열은 독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동시킨다. 이러한 사물들은 각각 독립된 이미지이면서도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하나의 중심 주제로 모인다. 특히 “물건의 가격표보다 세월의 흔적이 먼저 붙어 있다”는 인식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작품이 더욱 깊은 울림을 얻기 위해서는 작가 개인의 구체적인 기억이 조금 더 드러날 필요가 있다. 동묘에서 발견한 한 가지 물건이 고향이나 부모, 농사와 관련된 기억으로 이어진다면 독자는 작품의 주제를 더욱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낡은 호미 한 자루를 통해 아버지의 굽은 허리를 떠올리거나, 빛바랜 양은도시락에서 어린 시절의 점심시간을 회상하는 장면이 더해질 수 있다. 그러면 동묘의 풍경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작가 자신의 생애와 만나는 절실한 공간이 될 것이다.
또한 동묘 시장을 찾는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시선을 대비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젊은이는 오래된 옷에서 새로운 유행을 발견하지만, 노인은 같은 옷에서 지나간 가난과 청춘을 떠올릴 수 있다. 하나의 물건을 두고 서로 다른 세대가 전혀 다른 시간을 바라보는 장면은 동묘가 과거에 머문 곳이 아니라 세대가 만나는 장소임을 선명하게 보여 줄 것이다.
「동묘 앞에서, 시간을 줍다」는 낡은 시장에 대한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무엇을 너무 쉽게 버리고 살아왔는지를 묻는 성찰의 산문이다. 버려진 물건 속에는 누군가의 노동과 사랑, 가난과 희망이 남아 있다. 작가는 그 흔적을 하나씩 살피며 인간의 삶 역시 효율과 가격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동묘에서 주워 오는 것은 축음기나 헌책, 낡은 옷만이 아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잊고 있던 부모의 목소리와 자신의 젊은 날, 가난했지만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던 시대를 되찾는다. 그래서 동묘의 골목을 걷는 일은 과거로 돌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과거를 품고 현재를 더 깊이 살아가기 위한 성찰이다.
결국 운곡 조이무가 동묘 앞에서 주운 것은 ‘시간’이면서 동시에 ‘사람’이다. 물건에 남아 있는 시간을 들여다보다가 그 물건을 쓰고 살아간 사람을 발견하고, 그 사람의 삶 속에서 다시 자신의 모습을 만난다. 이 작품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낡았다는 것은 끝났다는 뜻이 아니며, 버려졌다는 것은 가치가 없다는 뜻도 아니다. 우리가 잠시 허리를 굽혀 바라본다면, 길바닥에 흩어진 세월 속에서도 아직 따뜻한 인간의 이야기를 주울 수 있다.
자작평론: 운곡 조이무의 「동묘 앞에서, 시간을 줍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