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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타스님과 ‘동사섭’ 관련 기사: 동사섭(출처: “지금여기(미내사)”, 2008년 7/8월호)
미내사 : 동사섭에 대해서는 오래전 부터 알고 있었으며 , 그 수련 결과들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좆아 뵌 것은 스님의 살아오신 길, 특히나 23세 때 얻은 큰 의식적 자각에 대한 것과,그것을 통해 동사섭을 이렇게 키워내시고,사랑들에게 일깨움을 주시는 것에 좋겠습니다. 먼저, 23제 때 스님이 얻으셨던 의식 변화의 체험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씀을 듣고 싶군요. 진리는 언어가 경험을 통해 와 닿는다고 여겨지는데, 그 당시 스님에게 체험이나통해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걸 통해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결국 사람이 변해야 그 깨침에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용타스님 : 23세 때 운운하니까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굉장히 새롭네요
미1 .그래도 그것이 스님의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었고, 경험이어서 잊혀질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용 : 잊혀질 수가 없을 사건이기는 하지요. 그것은 내 인의 전환점이 되어준 하나의 커다란 의식적인 체험이에요. 그 체험을 떠올려 보면 참 드라마틱한 흐름이어서 재미있어요. 그러니까 대학 3학년 때가 되겠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년간을 에 가지 않더라도 난 더 배울 것이 없다'라는 오만이 있었어요. 소설을 많이 읽다보니까 인생 문제가 달관되어 가는 듯 느껴지고 통찰들이 일어나 배울 것이 더 이상 없는 것 같은 정서적인 흐름이 있었지요.
농촌계몽 시 4H클럽을 만들어 운영하고, 성인교육에서는 연세가드셨지만 글을 모르시는 마을의 어른분들을 교육하는,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했어요. 그런데 4H 운영을 하면서 바로 한계를 본 거예요. 시골의 아이들을 40명 정도 회원으로 만들었는데, 이들을 통솔하는 것이 쉽지 않은 거예요. 거기에서, 이렇게 작은 일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로구나, 뭔가 나의 능력을 더 확보하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을 들어갔어요.그런데 거기서 나를 불교로 이끈 사건이 생깁니다.
내 전공인 전남대 철학과로 두 친구가 들어왔는데, 하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불교학생회 회원을 하면서 불교를 많이 공부했던 친구였고, 또 하나는 웅이라고, 후에 나의 스승 되신 청화 큰스님 밑에서 행자살이를 하다가 온 큰스님의 속가 제자였어요. 그런데 이 친구하고는 둘이 같이 자칠생활을 했지요. 불교학쟁회 친구는 고등학교 때 나를 동광사에 데려간 일이 있었는데 그때 동광사에서 윤주일 교수님이 설법을 하셨어요. 거기서 배처사라는 사람의 예화를 들었지요. 그것은 내게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때 윤주일 선생님 얘기를 지금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습니다.
옛날 동광사 옆에 조금 가면 형무소가 있었습니다 형무소 옆에 이엠학원이 있고,그 옆집에 배처사가 세 들어 삽니다. 배처사는 동광사를 가끔 나오는 처사님으로 역전에 나가서 지게 지는 짐꾼을 하던 분입니다. 그때는 리어카도 없는 시절이어서 지게로 짐을 날라야 했어요.
그분의 자녀들이 일곱인가 되는데 방 한 칸에서 모두 사는 거예요. 말하자면 극빈자지요.집 주인은 아주 부자여서 집이 몇 채나 있고, 논밭도 많은 사람인데, 주인이 보기에 놀라운 일은 찢어지게 가난한 배처사가 얼굴은 항상 평화로운 거예요.주인 입장에서 보면, '아이고,저 방한 칸에서 일곱,식구가 어떻게 살까' 하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요.더구나 처음 세 들어 왔을 때, 부인은 막내 낳고 산후조리가 잘 안되어 병을 앓고 있어 끙끙거리는 소리가 항상 나고 애들은 교육할 여건이 안되어 어디 식모로 나가거나, 모두들 무슨 일이라도 해서 생활을꾸려가야 되었지요. 학교는 꿈도 꾸지 못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내일 먹을 쌀을 걱정해야 될 정도로 아둥바둥 살면서도 그 배처사의 얼굴은 항상 평화로운 거예요 저 평화로운 얼굴이 어디서 나왔는가· . 그게 주인 할아버지의 관심거리였지요.그런데 잘 살펴보니 배처사 입에서 감사합니다 라는 소리가 늘 나오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하루는 토방에 앉아있는데 안에서 부인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니까 배처사가 '감사합니다' 이러더래요. 도저히 납득이 안되고 이상했지요. 이런 식으로 뭔가 속이 상할 만한 순간이면 감사합니다가 더 나오는 거예요. 그것이 너무 신기해서 한번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어요.어느 날, 키 큰 이 배처사가 방에서 나오다가 문지방에 머리를 울릴 정도로 세게 찧었어요. 그런데 또 '아이쿠.감사합니다' 이러더래요. 요즘은 지족철학, 감사철학이 많이 알려져서 신선할 것이 없는데, 당시만 해도 그 사건이 너무 신선하게 이 영감님에게 다가온 것이지요.
그 황노인이 "어이 배처사 나랑 얘기 좀 하세." 이러고 끝내 프로포즈를 했어요. 그러자 "아이고,감사합니다" 또 그러지요. 황노인이 며느리한테 말해 식사 대접도 잘 하면서 물었습니다. "자네한테 궁금한 것이 있네. 내가 보기에는 감사할 거리가 하나도 없고 그저 내팔자가 이 무슨 팔자냐 하고 원망할 상황인 것 같은데 무엇이 그토록 감사한 것인가? 부인이 앓고 있는 것이 왜 그리 감사하며 , 문지방에 머리를 탕 징은 것이 어찌 감사할 일인가? 실은 그것이 궁금해서 들어보려고자네를 불렀네."
이렇게 말하니, 배처사가 "아! 그거 신기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감사할 것이니까 감사한 것이지요. 아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아파도 죽어버린다면 저 아이들 어쩌겠어요. 어미 없는 아이들로 만들 것 아닙니까, 감사하지요. 머리 찍은은 것도 너무 감사하지요. 머리 구조가 잘 되어있어, 잘못하면 깨져서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여기 혹이 나는 정도에서 끝나 주었으니 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그리고 제가 건강해서 지게 지고 나가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이렇게 감사론이 나오는데, 황노인이 그때 눈이 뜨인 거예요.
자기는 감사를 모르고 살아왔고, 지금 충분히 부자인데도 이것이 불만, 저것도 불만, 모두가 불만투성이라 여기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때 배처사 이야기를 듣고 대조적인 상황을 접한 황노인 속에서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아,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 이 친구에 비하면 나는 감사를 억만 배를 하고 살아야할 사람인데 왜 그렇게 불만이 많았느냐' 하면서 배처사로 인해 감사철학에 눈이 크게 뜨인 것이었습니다. 배처사와 황노인의 미담이 이어지는데, 황노인이 한참 있다가 감동이 목에까지 차 오르니까, 배처사 앞에 무릎을 탁 꿇으면서 '정말로 내가 자네한테 감사하네.자네는 내 아들 같은 나이지만 내가 스승으로 여기겠네.' 라며 절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식사를 다 하더니 , 며느리보고 먹물을 갈라고 하고선 붓으로 증서를 써주는데,어디에 있는 집 한 채를 주고, 어디에 있는 논을 주고‥‥ 마지막에 '오늘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내 보은의 뜻' 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배처사 "아니어요, 이거 천부당 만부당합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은 저의 복이 이 정도여서 그런 것이기 때문에 내 복이 아닌 것을 받으면 안 됩니다. 절대로 받지 않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러자황 노인이 "자네는 이것을 충분히 받아도 될 만한 사람이네 "라며 억지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의사한테 가서 약 한 재 들여 먹이니 부인은 나았고, 아이들 학교를 전부 데리고 다니면서 보내고, 취업도 시켜주었으며 현금도 얼마씩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윤주일 선생님이 하신 배처사 이야기예요. 그 얘기를 듣고나도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좋아서, '시어머니,감사합니다'와 '배처사 이야기'를 항상 감사의 얘기로 동사섭에서 사용하고 있지요.
배처사 이야기는 그 정도로 끝내고, 어쨌든 나를 동광사에 안내했던 그 고등학교 때 친구가 어느 날 잔디밭에 누워가지고 반야심경을 읊어대는데, 그 소리가 너무 환상적으로 들리고 아름다운 거에요
미1 : 무슨 내용인지 아셨습니까?
용 : 전혀 몰랐지요.그냥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조견오온‥‥하는 염불 곡에 반한 거에요. 내가 기독교에 들어갔던 것도 성가(랠쓸)에 반해가지고 들어갔는데 이렇게 불교와 접선이 된 그 순간도 노래 때문이었어요. 노래하고 인연이 깊었지요. 그때 나는 북동에 있는 침례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그 노래 , 아니 염불을 배우고 싶다고 친구에게 말했지요. 그러니까 그러면 배워봐라 하더니, 한글로 써 줘요. 한글로 읽다 보니까 노래도 좋지만 뜻을 알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한자로 익힐란다 하니까, 한자로 써주더군요. 그래서 이제 또박또박 뜻을 익혀가는 과정에 걸려든 거예요. 그것이 나를 바꿔놓는 계기가 됐지요.
반야심경이라고 하면 색즉시공이 아주 대표적인 개념입니다. 그리고 반야심경의 키워드를 한 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입니다. 그것을 풀어서 설명하려면 색즉시공부터 얘기를 해야되지요. 그땐 뜻도 몰랐기 때문에 키워드가 조견오온이란 것도 모른 상태였고 오직 색즉시공에 탁 걸려든 거예요.그 말은 색(촌) 요것이 공(포)이라는 거예요. 얼마나 황당합니까. 아,이 색이 공이라는 거예요. 공은 텅 빌 공자 아닙니까 저것이 텅 비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왜 분명히 눈에 보이는데 텅 비었다고 하지? 라며 의문이 일어났지요. 그런데 이 의문이 내안에 들어와서는 떠나지를 않는 거예요. 그것이 나를 불교 쪽으로 전환시켜가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색인데, 왜 공하냐. 이것이 색인데, 왜 공하냐?이러고 산지 사방을 돌아다녔어요. 눈에 보이는 것, 』에 들려오는 것이 다 색(춘)인데 그것이 왜 공(초)이냐? 왜 공이냐, 저것이 왜 공이냐 라며, 놀랍게도 나의 모든 에너지가 그것 하나로 몰입되어졌던 것입니다. 사실은 내일모레 곧 시험이 있을 때였는데, 거기에 몰입되는 에너지 때문에 시험공부에 관심이 안 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칸트철학을 강의하신 서동익 박사 댁을 방문해 '반야심경을 아십니까?' 그랬더니 '아, 알지' , '거기 색즉시공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색즉시공이 무슨 뜻이죠?', '아,이 사람아! 시험공부나 하지 그런걸 물어?' 이러더라고요 그 정도로 그것이 내게는 뿌리칠 수 없게 큰 부분을 차지했어요.
미1 . 왜 그랬던 것입니까? 보통은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용 : 내 기질인 것 같아요.원래 기질이 호기심이 많고,뭣 하나에 빠지면 쭉 들어가요. 그렇게 몰입을 하는 그 과정이 한 2개월 됐을 것 같아요.
미1 : 밥 먹을 때나 잠잘 때나 의문이 떠나지 않는 거네요. 하나의 화두군요.
용 . 화두지, 일종의 화두예요. 자동화두. 나는 불교가 무엇인지, 화두가무 엇인지 아무것도 몰랐지만, 가만히 보면 결국은 화두적 메커니즘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잊지 못할 일이 일어납니다. 낮잠을 자고 있다가 꿈속에서 무슨 소리를 들은 거예요. 꿈속에서 "프리즘을 없애라'라는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났어요. 프리즘을 없애라, 프리즘을 없애라 그때 나에게 프리즘이라고 하는 개념이 없었다면, 그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을 수도 있어요. 이 말이 나에게는 신비한 의미로 다가왔고 커다란 통찰의 계기가 되었지요. 그 동안 이 표현은 아까워서 (웃음) 잘 표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누군가 물어오면 꿈속에서 무슨 소리를 듣고 통찰이 왔다 라고만 했지 , 프리즘을 없애라는 소리를 들었다고는 안했지요. 어쨌든 프리즘을 없애라,하는 순간에 무언가 큰 의식의 전환이 있었어요. 프리즘은 무엇입니까. 빛이 오게 되면 프리즘을 통과해서 여러가지로 갈라지잖아요. 우리의 인체도 하나의 프리즘인 거예요. 어떤 실상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 즉 눈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는 수없이 여러 가지 것이 보이고, 귀라고 하는 프리즘을 통해서는 수 없는 소리가다양하게 들려오지 않습니까?그러면서 생각하기를, '그렇지, 보남파초노주빨이 더 본체인가, 프리즘을 통과하기 이전의 빛이 더 본체인가'등등의 수많은 생각들이 굉장히 짧은 시간에 지나가면서, 공(쏘)이라고 하는 것이 확 감으로 와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나로서는 영성적인 첫 체험이자, 대단히 큰 체험이었어요. 그러면 왜 그것이 그렇게 대단히 큰 체험이었을까? 딱 보니까 이제 모두가 공인 거예요. 이것도 공이고, 저것도 공이고, 이것들이 다 공이어서 색즉시공이 여지없이 진실인거라. 그래놓고는 '아, 공이로구나. 모두가공인 것을 프리즘을 통해서 이렇게 쪼개가지고 우리가 분별시비를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이 몸으로 아주 확 와버렸거든요. 한 여름에 광주 시내를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러고 돌아다녔어요. 그때 여름이었는데 겨울 잠바를 입고 땀이 속에서 흐르는지도 모르고 막 돌아다녔지요.
색즉시공, 보면 이제 다 공인 거예요. 눈에만 보이나, 공이라는 것을 알 것 같단 말이예요. 그래서 동광사를 갔지요. 해산스님이라고 하는 젊은 스님이 있더군요. '해산스님, 색즉시공을 알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색즉시공을 알면 견성입니다. ' 그러더라고. 그때 웅이라고 하는 내 친구가 도를 통하면 견성을 하게 되는 법인데, 그때 신통이 자재되고 대단하게 된다는 말이 기억났어요.그런데 나는 신통력이라 할 것이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다만 신통은 못하겠는데, 색즉시공은 확실히 알겠는 거예요. 아니 , 견성을 하면 굉장하다고 하던데‥‥ 이러면서 내가 배우던 한 선생님을 또 찾아갔어요. 우리 철학과에 나오셔서 불교학 강의를 하신 분인데, 그분께 '교수님, 이 색이 왜 공합니까?' 그랬더니, '색이 조금 있으면 파괴될 것 아니냐? 파괴 된다면 사라질 것 아니냐? 그래서 공이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속으로,' 아이고 이분이 공 문턱에도 가지를 못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색즉시공이잖아요. 색이 곧 공이어야지, 변해서 공이 되는 것이라면 변하기 전에는 공이 아니란 말이냐라는 생각에, '이 분 설법에 철학과로 왔는데, 정작 알아야 할 곳에서는 캄캄하신 분이네 .' 라고로 굉장히 실망해 나온 일도 있지요.
약간은 과장된 표현인 것 같은 감이 듭니다만, 내가 나중에 그 상태를 묘사하기를, 우주가 딱 쪼개진 것 같은 사건이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표현이 그럴싸한 것이,그 이전 색즉시공을 알지 못한 상태의 내 의식과 비교해보니까, 과거에는 보이지 않는 비닐 보자기 같은 것이 나를 감싸고 있어도 그것을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는 그 보자기가 사라져버린 것 같은, 탁 트인 감이 열렸던 것입니다. 그 무렵 우리 청화스님이 나타났습니다. 내가 미쳐가지고 아직도 정돈이 안 된 상태에서 멍하니 묘한 상태로 있을 때인데,
미1 .어떤 상태였습니까.그냥 멍하니 있었다는 게.
용 : 붕, 떴다 이말 입니다. 색즉시공에 대해 막혀있던 것이 뚫리면서 열린 상태가 되어 우주가 딱 쪼개진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여하튼 뭔가 에너지가 떠있었어요.
미1 : 그때 일상은 어떻게 느껴졌습니까.
용 . 일상이라고 하·는 것이 분명 그 치열도가 뚝 떨어져 버렸어요 정서적으로 기운이 이렇게 떠있는 상태로 사는 상태였지요.
미1 : 기간은 얼마나 지속이 되었나요?
용 ' 한달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큰 스님이 안 오셨더라면 그게 얼마나 더 갔을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러는 중에 큰 스님이 와서 그 에너지를 쏙 빼버렸던 것입니다. 큰 스님이 오신 것은 나를 만나기 위함이 아니라, 행자생활을 했던 웅이라는 제자를 보러 오신 거였어요. 이웅이는 소설가예요. 그때도 매일 소설만 쓰고 있었지요. 원고지 가득 써가지고 이것 좀 들어보라고 하면, 나는 그 지루한 얘기를 한참 듣고 있어야 되고 그랬는데 끝내는 현대문학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로뻗어 나갔던 친구지요.그런데 큰 스님이 이 친구를 보러 오셨어요. '문안입니다' 밖에서 그러니까 웅이가 있다가, '청화스님 오셨네' 그러더라고. 그때까지 귀에 딱지가 들 정도로 이 친구에게 청화스님 얘기를 들어놔서 , 청화스님하면 사람이 묘하게 생긴 줄 알았어요. 나에게는 신비한 존재인 것으로 되어져 있었지요. 수염이 나도 다섯 자 정도나될 것 같고· 그런데 보자마자 실망을 해버렸어요. 한 중일 뿐이었던 게지요. 그날 저녁 셋이서 얘기를 좀 하다가, 웅이는 잠이 들고 나는 웅이한테 배운 결가부좌를 튼채 큰 스님 앞에서 꼿꼿하게 앉아 얘기를 하는 중에, 결국은 비장의 색즉시공을 내왔어요. 내 체험의 색즉시공 역사를 확 얘기했지요. "내가 현재 이런 상태에 있습니다. "라고. 그랬더니 큰 스님이 씩 웃으면서 , '그것은 증오가 아니고, 해오입니다' 이러셔요.
그래서 해오가 뭔지 정확히는 몰라도 어감이 이상하잖아요. 그것은 아니고 요런 거야, 이렇게 들려오는데, 그때까지 붕 떠 있던 에너지가 쏙 꺼져버리는 것이에요. 정말 그 자체가 신비하더군요. 말 한마디에 이 위까지 이상하게 가득차 있던 기운이 쏙 빠져버리다니· 색즉시공을 알면 견성이라고 들어놓으니까 아닌 것은 같았지만 묘한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상태였는데, 하늘 같은 어떤 대사님이 나타나서 '너 아니야' 하는 이 소리를 들은 데서 오는, 심리적으로 좌절되는 구조겠지요.그렇게 쑥 빠져버린 기운을 이 분이 느끼신 것 같더라고. 그래서 다시 살짝 끌어올리시는데, '그러나 우리 한국에서 색즉공을 그 정도라도 요해하신 분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 또 이러시는 거예요. 기분을 요 정도 올려놓아 주시더군요(웃음) .
큰 스님께서 올라오셨던 것이 제자를 보러도 오셨지만 올라온 김에 광주 근교에서 도서관 출입을 하며 독서를 좀 하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유동 어디엔가 방을 얻어 혼자 자취 하시면서 광주 시내로 산책도 하시게 됐어요. 그 와중에 스님과 여러 날 만나는 상황이 됐지요. 그러다가 광주 근교에 절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큰 스님 모시고 돌아다니며 알아보던 중 좋은 곳을 발견했어요.그 자리는 조응원이라고 하는 그 당시 광주 극장 부사장의 별장이었어요. 그 별장이 아주 작품입니다. 현재도 그 건물이 그대로 무등산 약사사로 옮겨졌는데, 스님이 보시고 그것이 너무 좋으니까 아, 여기를 절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불교학 교수인 전남대학교 정종구 교수님을 앞세워 조응원씨를 만났지요. 그때 큰 스님 연세가 41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새파란 젊은이지 . 그런데 큰 스님이 조응원씨에게 얘기를 하는데, 조응원씨가 반해버리더군요. 청화 큰 스님이 누구든지 얘기를 조금 주거니 받거니 해보면 안 반한 사람이 없어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절이 추강사예요. 그렇게 큰 스님과 교류가 깊어졌는데 우리 학교 철학과 교수님들과한 분 한 분 키재기를 해봤더니 , 어느 누구도 이 분 키를 당할 자가 없더라고요.그러면서 큰 스님 인품이 점점 크게 여겨지게 된 거예요. 나는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가던 걸 그만두게 되었고 추강사에서 학교를다니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대학 3학년 때 중이 되어버렸지요.
미1 : 그 최초의 영성체험 이후에 그것이 더 깊어지는 체험이 있었나요?
용 : 그것이 스물세 살 때고 그 후 스둘네 살에는 중이 됐어요. 그 체험이 크든 적든 나에게는 소중했는데 그 후 김동하 법사의 불교학 개론을 읽어봤어요. 그것은 교재였지만 우리가 읽기에 너무 어려운 책이었어요. 그런데 색즉시공이 열린 상태에서 읽어가니까(지금도 참미스테리인데), 느낌상 다 아는 것처럼 들어오는 겁니다 그래서 색즉시공을 아는 정도라고만 생각했는데 왜 김동하 박사의 그 어려운 책이 쑥쑥 들어올까 문득문득 생각했지요. 그것이 나의 종교적인 수도차원에서 한 첫 체험이지요.
미1 : 해오에서 증오로 넘어간 때는 언제입니까.
용 : 큰 스님께서 의미하신 증오는 다른 얘깁니다. 그것은 선정력이 전제되어져야 해요. 선정력은정신집중력이 비상비비상처를 넘어 멸진정을 얻은 상태에서 깨달아졌을 때 비로소 증오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현재 불교에서는 멸진정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경전속에나 조금 있는 정도지요. 9차제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초선, 이선, 삼선, 사선,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이후에 멸진정입니다. 이 구차제정의 이야기는 외도, 수정주의자들이 밟았던 길이라고 해서 현재 한국 불교에서는 크게 채택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큰스님은 이 부분을 매우 귀히 여기셨지요 그것은 원시경전에서 구차제정 강조를 많이 했기 때문인데, 지금은 대승불교, 선불교가 한국 대세가 되어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깨달음과 선정력과의 함수성을 거의 배제해놓은 상태지요.
그래서 현재는 화두를 던진다고 하여 , 그것이 다소의 삼매와 정신집중은 요구되지만, 그와 상관없이 그냥 깨달아버리는 것이지 정신집중하고는 상관없다 얘기하지요. 그렇게 큰 스님께서 의미하는 증오는 다른 이야기라는 겁니다. 큰 스님 당신도 증오를 못했다고 늘 그러시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증오론은 얘기하기가 좀 복잡하지요. 어쨌든, 제가 걸어온 길을 보면 앞에서와 같은 영성적인 의식 체험을 일곱 번 정도 했을 겁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현재 동사섭 고급과정에서 진행되는 '돈망'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그 '돈망'과 같은 의식체험을 최종적으로 한 것도 한 건 거기에 추가되는 경험이지요.
하나만 예를 더 든다면, 나주에 있는 독일학교 선생을 하고 있을 때예요. 한 여름인데 나의 태권도 스승이자 대학 선배인 조기정 선배와 함께 할 때였어요.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했는데, 대학을 들어가서도 태권도를 해야 될 텐데 하다가 농대 강당을 가니까 태권도부가 있는 거예요. 그때 지도하던 사람이 조기정 법대 선배였어요. 우리는 철학과고 거기는 법대고. 나는 청룡관에서 했는데 여기는 강덕원이예요. 태권도만 하면 되지 어느 도장이든 무슨 문제냐는 생각에 여기서 수련해도 되냐고 물었지 , 그랬더니 아주 환영을 해주더라고. 그 선배가 나를 굉장히 인정을 했어요. 여름방학 때 집에도 안내려가고 둘이 용봉동에 함께 살면서 매일 수련지도를 받았지요. 그때 태권도 실력이 확 올라갔어요. 그 선배에 대한 고마움이 크지요. 그 선배가 또 고려청자를 재현해낸 인간문화재예요. 얼마 전에 돌아가셨지요. 어느 날 그 분의 집에 방문하려고 과일가게에 들러 수박도 한 통 사고 참외도 사들고 나오는데, 갑자기 의식이 확 밝아져 열리면서 일체 걸림이 없는 의식상태가 되어버린 거예요. 아무것도 안했는데 말이죠.
미1 . 의식이 열렸다는 건 뭘 뜻합니까
용 : 우리가 살다 보면 뭔가 의식에 그늘이 질 수 있잖아요. 의식권으로 있든 무의식권으로 있든 걸려있는 그런 흐름이 있는 법이라고. 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 그런데 그것이 싹 걷혀버린 거예요.
미2 : 열렸다는 그 상태가, 처음에 열렸던 색즉시공을 알아챈 그때의 에너지 상태와 같습니까?
용 : 그 에너지하고 유사합니다. 거의 같은 것 같아요. 그때 열려서는 개운해져버린 것 같은 것이었어요.
미1 :그 당시 일상생활 하시면서 화두랄까 이런 걸 갖고 있지는 않았나요?
용 : 별로였어요. 물론 그때 보리방편문이라고 하는 청화 큰 스님의주방편인 수행법이 있었습니다 그냥 그것을 들고 다니면서 '마음은 허공과 등할세·.·' 하면서 흥얼대는 정도였지요. 288자로 되어져 있는 것이고. 그러나 그것 때문에 열렸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는 안 했거든요. 그때는 학교에서 가르치고, 아이들 방과 후 태권도지도하고, 그냥 그 생활 자체가 재미있었지요. 그런데 탁 그렇게 트여버리면서 갑자기 몸이 가벼워진 거예요. 그 상태에서 다시 무거운 상태로 가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발걸음이 조용해졌어요. 떠들썩 해버리면 이걸 놓칠까 봐서였지요. 이 상태로 가만히 느끼면서 선배를 방문해, 수박 쪼개서 먹고 돌아왔는데, 자고 나니까 다시 없어져버리더군요
미1 : 그러면 그 열렸을 때의 느낌과 자고 나서 다시 돌아왔을 때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는 거죠?
용 : 예, 그러니까 예를 들면 근심걱정이나 심각성이 모두 다 사라져 휑하니 비어버린 것 같은 상태에서 개운했는데 , 다시 근심걱정이 들어오는 식과 같아요. 물론 그때 내가 근심걱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지요.
미1 :이제 중요한 마지막 일곱 번째 경험을 간단하게 얘기해 주시죠
용 : 그러지요. 마지막 것은 중요하니까. 마지막 것은 달랐어요. 앞에서 언급한 이런 체험들은 정서적으로 탁 트이는 체험중심으로 일단 왔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왔던 것은 그와 같지 않았어요. 그것이 오고 나서 이것은 누구라도 가능하다. 이 상태는 누구라도 체험시킬 수가 있겠다 라고 여겨져 이것을 동사섭의 마지막 코스에다 넣었던 것입니다. 그럼 그것은 어떠했는가? 그때가 1987년쯤일 거예요. 88년에 3년 결사를 했으니까, 그 전 해 가을 정도로 여겨지는데, 하나의 커다란 의식 체험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입승스님하고 또 누구하고 셋이 얘기를 하고 있고, 나는 함께 있으면서도 떨어져 있는 듯한 상태로 어정대고 있는 상태, 나대로 그냥 개인적인 어떤 흐름 속에 있는 상태였지요.그때 '당신,지금까지 수도했는데, 한번 내놔보시오. 뭣을 했소?'이렇게 혼자 스스로에게 자문을 했어요. 지금까지 수도한다고 해왔는데, 당신 살림이 뭐냐 이거예요. 스스로 의문을 던져놓고, 내가 혼자'응, 이것이지, 이것이지.' 점두를 했다고요. 이것이지 하는 그 이것인데,그 이것이 언어화를 좀 더 시키자면, '그냥 이렇게 현재 존재하는 것' 이예요. 그냥 이러고 존재하는 것, 그냥 깨어있는 것, 그래 놓고 보니까, '석가모니도 이러고 있지,무엇을.하고 있겠는가 이것 말고,지금 이러고 있는 이것 말고 무엇을 하겠는가.' 그러면서 내 속에 마지막 그 무언가를 찾아서 여행을 하던 마음이 종착역에 딱 발을 디딘 거예요. '아, 내가 더 이상 더 갈 곳이 없구나. 이 이상 더 갈 곳은 확실히 없다' 하는 것이 그때 확연해져 버렸어요.
지금도 내 개인적으로는 무엇인가 작업을 더 해야 되겠지요. 참선도 더 하고, 할 것은 분명히 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찾고자 하는 궁극적인 진리를 향한 길에 대해서라면, 이제 나는 전혀 갈 곳이 없어요.
미1 : 추구하는 마음이 없어진 거네요.
용 :그렇죠.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것이 없어진 거예요. 물론 마음들은 추구해야할 것이 많지요 지금도 원각경을 한번 더 읽어보면서 뜻도 공부해보고 싶고 이런 마음들이 있지요. 그러나 그런 것은 바둑 한번 더 잘 둬보고 싶다는 등의 것과 똑같은 것들이고, 내 의식 속에서 궁극적으로 가야할 곳, 바로 그 궁극처에 대한 것은 그때 졸업 해버린 것입니다. 그 상태는 체험이라는 단어를 써서 묘사하기보다는 어떤 인식의 전환 같아요. 그냥 이 인식상태라고, 어떤 수긍상태 .
미1 : 알아챔 같은 거요?
용 : 그렇지요. 견성 , 성품을 본다. 그렇게 본성을 본다고 할 때, 그 본성이란 것이 '이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저 이것일 뿐이다 하는, 더 이상 볼 것이 없는 확실함이었어요. 속에서 수긍이 되어진다는 표현도 좋고, 불교적 용어로는 점두라 해도 좋아요. 그래서 그때 각성점두란 말을 최초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미1 : 점두라는 건 무슨 말입니까?
용 ' 점두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 하고 수긍하는 거예요.
미1 :의심이 없어진 거네요.
용 : 그렇지요. 찾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의심도 없어져버리고, '이것 말고 정말로 무언가 다시 제대로 찾아야 된다' 라고 하는 것이 없어져버렸지. 그래서 그 상태로 계속 음미를 해봤어요. 그랬더니 '아, 확실히 이제 더 갈 곳은 없다' 이것이 분명해지더라고.그런데 이것은 무엇이냐 그러면 내가 이것을 찾고자 평생 애썼단 말이냐고 자문해보니, 조금 싱겁기는 하지만 이것 말고는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어요. 동시에 이것은 누구라도 경험을 시키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내 말만 잘 따라와 봐라, 그러면 너도 이것을 알 수 있다. 너도 점두할 수 있다' 이런 상태더란 말이지요. 또 실제로 그런 것이고.
그 후 결사가 끝나고 내 상좌가 방문을 했어요. 그때 이것을 알아 채게 하는 첫 실험을 한번 해봤어요. 안내를 해서 이 핵심을 잡아내는가 알아보자 마음먹었지요. 저녁 9시부터 시작해서 6시간이 걸렸어요. 새벽 3시에 도량에서 목탁 소리가 나더군요. 3시면 기상을 하니까. 얘기를 통해서 한번에 하려는데, 마지막에 안 되겠더군요. 세월이 흘러 그때 왜 안되었을까 생각해보니 내 안내도 물론 부족했겠고, 더 중요한 것은 배우려고 하는 자의 신뢰였던 것이지요. 내 상좌가 나를 스승으로 알고 정말 내게서 뭔가 얻어낼 것이 있다 여기며 무릎을 꿇는 자세로 임했더라면 틀림없이 전달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속에 선입견이 있어서, '당신이 무엇을 안다는 거야' 이런 맘 한번만 있으면 모든 말들이 그냥 빗나갈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애를 써도 안 되지.
애 쓸려다가도 '모르겠다' 혼자 이런 생각을 했겠지요. 그래그것을 전달하려고 다른 이에게 실험을 해보고 또 실험을 해보고 했습니다 지금은 속퇴 했다가 동사섭 돕는 일도 했던 상좌가 있는데, 그 상좌한테 얘기했더니 너무 쉽게 알아채는 거예요. 그런데 너무 쉽게 알아버리니까 그것도 좀 힘이 없는 것 같더군요. 어쨌든 알아채는 것 같아서 아, 되기는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지요.
그 이전에 사건 하나가 있었어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인생을 건졌다고 하는 김모 교수가 있는데, 이 사람을 잡고 한 두 시간 정도 실랑이를 했더니 확실히 감을 잡더군요. 그이가 말하기를 '아, 무엇을 전달 하고자 했는지 감 잡았습니다. ' 좋으냐니까 좋다고 그래요. 그 다음 날 그 사람이 동사섭 안내할 때 돕는 이를 했었는데, 뭔가 잡았으면 좀 다른 분위기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살펴보니 그전이나 똑 같은 분위기인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다시 물어봤더니, 사라져버렸다는 거예요.그때는 뭔가 확실히 잡았는데 지금은 다시 모르겠다고. 이런 식으로 실험을 거듭했지요.
미1 :지금 말씀하신 '그것'은 한번 알아채면 다시 모르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거지요.
용 : 아, 그런데요. 그게 재미있는 것이 동사섭을 돕는 이 중에 아우가 있는데 그 아우가, 꼭 미꾸라지 같다고 그래요. 그것을 딱 잡는 답니다. 잘 잡았는데, 어떻게 하다보면 미꾸라지가 손에 잡혔다가 쏙 빠져나가 버리듯이 사라진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럴 수 있겠다 수긍되는 것이 , 잡을 때 확실히 잡으면 모르겠는데 안내를 통해서 슬쩍 잡아놓으니까, 다른데 에너지가 쏠리면 다시 놓치는 거예요. 그것을 이렇게 책을 잡듯이 딱 잡으면 될 텐데, 세상에는 달리 잡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절실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평소에 좋아하는 다른 많은 것들로 인해 다시 잡기 전으로 돌아가버리는 게지요.
어쨌든 나의 첫 의식체험이 우주가 쪼개진 것 같은 체험이었다면 이 마지막 체험은 정반대의 분위기였어요. 조용히 슬쩍 들어왔던 거지요. 슬그머니 들어와서 나 여기 있습니다 오, 여기 있었구나하는 것과 같은 분위기였지요. 그래서 이것은 체험이라는 떠들썩한 표현보다는 인식의 전환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아요.
내가 지금 가르칠 때는 추구를 끝내는 체험을 위해서 깨닫기는 하되, 체험에다 강조를 두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체험은 기쁨과 같이 정서적으로 강력히 오지만, 마지막 체험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용하게 알아챔이 들어오고 있어도 그게 확 안 느껴지니까, 아닌 것처럼 여겨 놓친다는 것이지요.
우리 동사섭 코스를 돕는 이 중에 한 분이 그래요. "큰 스님 제가, 돈망을 잡은 것은 같거든요, 분명히 잡은 것은 같은데 재미가 없어요." 이러더군요 그것이 나에게 큰 참고가 됐는데 ,그 날 그 말을 들으면서 답이 나왔어요. 아, 그렇다. 이것을 재미있는 것으로, 체험중심으로 생각하면 안되겠구나. 그래서 '그런가, 알았네. 자네가 그 말을 할 정도라면 잡은 사람이네 그러면 이제부터는 "재미없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는 것이 되도록 하소." 그랬어요. 재미없는 그것이 당신 삶에 있어서중대한 가치로 느껴지게 되면 나머지 가치들은 됫걸음질 치게 된다는 것이지요.그런데 왜 재미가 없느냐. 정작 좋은 물 같은 이것을 재미있다라고 하기에는 이제 콜라맛, 사이다맛이 너무 좋아져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최고의 맛으로 느껴지도록 하소' 라고 했지요
미1 : 예를 들면 어떤 겁니까?
용 :지금 한번 해보시겠소?내가 바로 안내 한번 해볼게. (방안을 가리키며)자, 눈에 보이는 것 수없이 있지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 수없이 있지요? 냄새의 대상도 수없이 있지요? 불교식으로 말하면, 안이비설신의의 대상이 되는 것이 수없이 있어요. 그렇게 무수히 있는 것을 손 하나로 대표해 보자고.
그러면 지금 손을 보세요(손을 들어 손바닥이 보이도록 펴서 보인다) . 자, 손을 보십니까?
ㅁ11 : 네
용 : 손을 보고 있을 때의 느낌을 유념하세요. 손을 보고 있을 때의 느낌 !‥‥
자, 이제 손을 치워버립시다(손을 내린다) .
이제 무엇이 보여요?
미1 : 아무것도 없는 체험, 텅빈 공간이요.
용 ·그렇지요.허공,허공이 있지요? 손이 있던 자리,무엇인가 있던 자리에서 그것이 사라져버렸으니 허공이 있지요. 그러면 아까는 손을 관조하고 있었는데, 이제 허공을 관조합니다. 허공을 관조하고 있을 때의 느낌과 아까 손을 관조하고 있을 때의 느낌은 차이가 있어요? 없어요?
미1 : 있습니다. 용 · 손을 관조할 때는 손을 관조하는 느낌이고 손이 사라진 텅 빈 허공을 관조할 때는 허공을 관조한다는 느낌 , 차이가 나지요?
ㅁ11 : 네
용 :그 다음, 이제 그 허공을 치워 봐요. 허공을 치워버렸을 때 어떤 상태예요? 그 상태가 맛봐지는지 보세요
미1, 2 : (내면으로들어가침묵한다)
‥‥ (한동안 침묵)
용 : ‥‥ 그것이 내게 왔던 거예요.그러면서 아, 그냥 이것, 그냥 이것이로구나! 이것이다!
앞으로 그것 한번 유념해보세요. 손 치우고, 허공 치워보라는 거예요. 그 상태가 죽음은 아니잖아요? 분명히 어떤 상태임은, 의식상태임은 분명하잖아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아니고, 또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만일 그것의 상태를 진짜 없애버린다면 뭣이겠어요? 그것은 허무지 .
미1 : 아무것도 없지만 꽉 차있는 뭔가 이지요?
용 : 그렇지 , 아무것도 없지만은 뭔가 꽉 차있는 것 있잖아요.
미1 : '그것'이라는 것이군요.
용 : 그렇지요. 나의 본마음을 굳이 찾자면 '그것' 이 바로 본마음이지 않겠느냐 이것이지요
미1 : 흔히 본성을 본 후에는 무아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렇다면 이제 스님 말씀하실 때 '나'라는 건 안 느끼십니까? '나'란 느낌이 없습니까?
용 :아, 있지요. '나'라는 느낌이 있지요. 그런데 이런 깨침이 없는 상태일 때 가지고 있던 '나의 무게'는 거의 없어요.
미1 '그러면 지금은 '나의 느낌'이 어떻습니까?
용 :지금은 그냥 주체로서 기능을 하고 있어요. 물론 이때 이기적인 마음이 일체 안 일어나느냐 하면 그건 아니예요. 지금 종로 네거리에 가다가 간판들 보잖아요? 아무 글씨도 눈에 안 들어와요. 그런데 두 글자는 쏙 들어옵니다. 기원(바둑 두는 곳) , 기원이 쏙 들어와요
(모두 웃음) 하나의 중독성이거든, 그런 것들이 .
미1 : 하나의 관성 .
용 : 예. 이런 것들이 내게 깨끗이 없다는 것은 아니예요. 그러나 평소 생활 속에서 과거에 '나'다, '너'다 치열했던 이 마음은 많이 쉬어졌지요. 가볍지‥‥ (옆의 스님을 보며) 어제 저기서 산책 하다가 미 끄러 졌는데'나 괜찮다' 고 했잖아요? 지금 여기 허리 아래쪽에 뭔가 통증이 오고 있어. 미끄러졌을 때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예요.자, 이것이 심해져 아프다고 해봅시다 아파요. 그러면 이것은 아픔이 그냥 여기에 있는 거예요. 아픔이라고 하는 하나의'현상'이 있는 겁니다. 아픔의 주체인 '내'가 있다거나, '이놈의 것을 확!' 하며 속이 상한다거나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차이가 100% 났을 때, 등각이다 묘각이다 해서 붓다라 하겠지요. 나는 100% 그 상태는 아닌 것 같애, 체험적으로. 그런데 많이 가볍지요.
미1 : 그럼, 그 허공이 느껴지다가 허공마저 없어진 상태, 그것도 결국은 알고 체험하는 겁니까?
용 :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을 순수의식이라고 해도 되고, 순수느낌이라고 해도 된다. 본인은 그 상태를 순수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어요? 아니면 순수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어요?
미1 : 순수의식이요.
용 : 그러면 의식이라고 하란 거예요. 그러나 그 상태가 느낌이 없는 상태는 아니지요.
미1 : 느낌이 있는 상태니까, 결국은 체험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마지막 체험은 체험이라기보다는 인식전환이라 하셨는데‥‥
용 : 그렇지 . 다만 체험 중심으로 얘기할 때는 순수느낌이라고 한다 그거예요.
미1 '그러니까 결국 스님이 말씀하신 '돈망'이라는 것은 순수느낌을 느끼고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까?
용 : 그렇습니다. 내가 의미하는 돈망상태는 순수느낌을 느끼고 있는 상태 또 다른 말로 하면, 순수의식을 느끼고 있는 상태.
미1 : 그러면 느끼고 있는 상태니까, 나의 근본이랄까 또는 불성이랄까 하는 것에 뭔가 순수의식이라는 것이 느껴지고 있는 이원적인 것 아닙니까? 느낌이 있고 느낌을 느끼는 뭔가 있는 것 아닙니까?
용 : 그렇습니다.
미1 ' 그러면 둘이 하나가 된 건 아니네요?
용 : 음, 둘이 하나가 된다는 말에 속지 말라고 내가 가르칩니다. 둘이 하나가됐다 라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제가 그러지요 '그런데 잘 봐라. 너의 식주체 기능이 무언가를 수긍하는 이원적인 관계가 "하나의 흐름 속에 흘러갈 뿐"인 것이지, 식주체 기능과 어떤 상, 썸씽 (something)이 하나가 되어있다라는 하나에 집착하지 말라'라고 말이에요. 문제는 그 상태에서 객체에 집착을 하느냐 안하느냐 이것이 관건인 것이지요. 집착이 깨끗하게 없는 의식상태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불교 교리에 삼사화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순간이고 이 의식이라는 것은, 근과 경과 식이 공존해야 돼요. 뭔가를 체험하고 있다는 것은, 체험의 주체인 식이 있어야 되고, 그 식이 렌즈로삼는 눈·귀와 같은 근이 있어야 되고, 또 대상이 되는 경계, 이 세 가지가 일시에 공존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근경식이 없어져버린 하나인 어떤 상태, 이것은 말에 속는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미1 : 알 수가 없다는 것이군요. 그러면 그렇게 세 개로 나누는, 그 나누는 그것은 뭘까요?
용 : 그러니까 나누는 게 아니라, 심리적인 기능상 이러한 시스템을 벗어날 길이 없다라고 이론적으로 정의를 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 부분을 뜯어보지 않고 있을 때는 그냥 하나라는 말이 나오게 되지요. 그러나 그 하나라고 체험되어지는 그 상태를 잘 보라, 끝내는 너의 식주체 기능이 썸씽 (something)인 어떤 상태를 수긍하고 있는 심리과정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미1 :그럼 언제든지 그 썸씽에 집착하거나 무게를두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 말씀이군요.
용 :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썸씽에 집착하는 에너지가 나오게 되면 중생이고, 그 섬씽에 집착된 에너지가 깨끗이 없을 때 성자(랠촐)라는 거예요
미1 : 그럼 , 스님은 이제 그 썸씽에서도 또는 썸씽을 느끼는 주체에 스님의 존재중심이 가있지 않습니까?
용 : 예 , 대체로 그런 편입니다. 흑백논리로 깨끗이 그렀습니까, 아닙니까 하면 솔직히 아닙니다. 그러나 대체로 그래지지요.
미1 :이런 말은 어떻습니까. '눈은 모든 것을 보지만, 눈 자신을보지 못한다
용 : 그런 말이 있지요.
미1 :그런데 지금 스님 말씀대로 하자면,눈에 보이는 것, 어쨌든 허공이라 하더라도 느껴진다는 의미에서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하면, 그것이 있다는 것은 눈이 있는 거라고 해보지요. 이때 우리가 눈은 눈을 볼 수 없듯이, 허공이 느껴진다는 것(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는 것)자체가 눈이 있다는 증거다라고 하게 되면, 어떻습니까. 즉, 어떤 순수느낌이 있다고 했는데, 순수느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느끼고 있는 주체가 있다는 증거다라고 할 경우에 말이지요?
용 : 그것이 아트마니즘(Atmanism)입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금하고 있지요. 뭔가 끝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느냐 말입니다. 영원히 경험 못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영원히 경험할 수 없는 그것을 왜 굳이 있다고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에요. 힌두교를 통과하면서 불교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불교는 힌두교의 아트마니즘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괜히 편안하게 잘 있는데, 무엇인가가 또 있다라고 하면 의식의 층을 하나 억지로 만든 것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짓을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이 석가모니 가르침이고, 그것이 있다라고 하는 쪽이 아트마니즘인 것 같아요. 그러나 그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봐요. 아트마니즘이 좋으면 그렇게 해라, 어쩌겠는가? 그러나 나로서는 제자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볼 때 석가모니의 말이 가장 제대로예요. '뭔가 있다'라는 것을 영원히 경험 할 수가 없는 것인데 그것을 있다라고 말할 필요가 무어 있겠어요. 그래서 나는 석가모니 쪽이 당연히 경험상 더 좋은 거예요
예를 들면 지리산 저 너머에서 연기가 납니다. 연기가 난 걸로 봐서 불이 있다고 합니다. 그 '불이 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아트마니즘이예요. 석가모니는 말하기를 불을 봤느냐, 연기는 지금 경험되니까 부정할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불까지 왜 있다고 얘기를 하느냐는 것이지요. 이때 그 불이 아트만이 되고, 브라만 신, 유일신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을 자꾸 있다고 하는 관념의 짐들을 만들어내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석가모니가 대단히 날카로운 분이라고 보고, 아주 멋쟁이라고 봐요. 석가모니가 35세에 대박을 터트린 분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분입니까?
미1 : 알겠습니다. 동사섭을 80년부터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그 역사를 듣기 전에 동사섭에 대해 조금 더 알려주세요.
용 :동사섭의 고급과정에 돈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 의식체험이 있기 전에는 돈망과 같은 프로그램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어요. 돈망, 옴이라고 하는 단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이제, 그 순수한의식상태, 히어앤나우(Here을 Now)의 깨어있는 의식상태가 동사섭에 포함되었어요. 이것을 처음에는 각성점두라고 하다가 옴이라고 이름 붙였지요. 간성점두하면 거칠게 들리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너무 순수해서 거친 단어로 묘사하기에는, 그 썸씽한테 불경스럽더라고(웃음). 그래서 이 썸씽에 부응하는 단어가 없을까 하다가 인도 쪽에서 건너온 말로 옴(AUM)이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발음도 좋고해서 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요.
미1 : 동사섭을 약 28년 이상 해오신 건데, 그렇게 시작하신 분명한 이유가 있을 테고, 또 앞으로도 계속 하실 것 같은데, 이를 통해 스님이 원하시는 것은 어떤 것인지 .
용 : 그런 상세한 이야기는 대화스님에게 들으시면 좋겠네요. 대화스님이 나의 청사진이며, 동사섭을 같이 해왔기에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니까요. 다만, 내가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사람이 사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적‥‥그런데 이 책 '지금여기'는왜 만드세요?
미1 : 뭔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과 제가 즐거워서 또 살아있으면서 할 일이라는 게 이 정도겠다 싶어서라고 할까요.
용 : 오, 그래요.즐거워서 하고,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다 이것이군요. 즐거운 것이 왜 좋아요?
미1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에너지에 맡기는 거니까요.내가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고, 저절로 나오는 에너지로 하는 거니까요. 즐겁다는 것은 또 기분이 좋고‥‥
용 : 다른 사람에게 도움은 왜 줘야 해요?
미1 : 주는 것이 또 즐거움에 속한 부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용 ' 지금 이 질문을 계속 밀고 나가 궁극처에 가게 되면 부정할 수없는 답이 있습니다. 이고득락이어요. 이고, 고통을 떠난다는 것이에요. 득락,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이지요. 이고득락,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삶의 목적이에요
미1 :누구나 싫은 건 피하고 좋은 건 끌리게 마련이므로,그 게 모든 사람들의 목적인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공부를 한다고 할 때, 다른 사람과 똑같다면 특별하게 공부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요?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이고득락에 메이지 않고 이고득락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용 :그 무엇이든, 이 생명체가 끝내 어디로 향해서 가고 있고 가고 싶은가 하면 고통에서 멀어지고 싶고, 즐거움을 얻고 싶은 거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이고득락이라는 점에 있어서 모든 생물체까지는 놔두고라도, 모든사람은 다 일치됩니다. 그게 석가모니 얘깁니다.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얘기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말을 썼지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다 일치한다 그랬지요. 그러면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더 물어야 돼요. 행복이무엇일까요?
미1 : 행복이라면, 즐겁게 느끼는 것?
용 : 옳지, 바로 그겁니다. 행복하면 느낌 좋은, 좋은 느낌이에요. 느낌이라고‥‥이 동사섭에서 전달하고 있는 메시지가 제법 됩니다. 그 메시지 중에서 가장 핵심메시지 한 단어를 말하라고 한다면 느낌이에요. 느낌 좋자고 모든 문화문명이 있다, 이렇게 동사섭에서는 얘기를 합니다. 맞을까요? 느낌 좋게 하자고 모든 문화, 문명 , 법률, 교육, 도덕 , 종교 뭐 할 것 없이 , 결국은 느낌 좋자고 있다는 것이 맞습니까. 또 느낌 좋은 것이 해탈이고 구원이다. 맞는 말일까요?
미1 . 안 그러면 그 길로 가려 하지 않겠지요.
용 :기독교에는 구원이 있죠?기분 좋은 것이 구원이라고요 느낌 좋은 것. 맞을까요? 기독교 신학 얘기는 접어두고 말한다면 끝내 느낌 좋자고 하는 것이고, '나 구원 받았다'라고 할 때 느낌이 팍 상해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아니예요(웃음)? 그건 원하지 않을 거예요 구원 받았다고 할 때 느낌이 좋아야 그 구원을 내가 받아들이겠지요.
어느 기독교 신학박사가 동사섭을 왔어요. 그런데 불교의 해탈,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이 결국은 기분좋은 것이지 않겠습니까 라고 내가 말했더니 화가 이만큼 나버렸어요. "세상에, 기분 좋은 것을 가지고 구원이라고 한단 말이야?" 이러다가는 어느 순간 "아하! 그렇다고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라는 감이 들더래요. 그래서 동사섭을 네 차례 연속해 하고는 이제 동사섭 돕는 이가 되었어요. 바로 그런 느낌 좋음이 모든 것의 목적이라는 점이에요. 문화와 문명 , 종교까지 모든 것의 목적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야 받아들이든 안 받아들이든 기독교인들의 목적도 아마 그것일 것이다는 거예요
미1 : 천국을 원하니까
용 :그렇지, 천국에 가서 기분이 상했다면 기분 상한 천국 아무도 안 갈 것이다는 거지요. 그래서 행복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고, 그 다음에 나머지 것은 다 방편이에요. 하나님이 존재한다, 부처님이 존재한다. 공하다 색즉시공이다, 이런 것은 이고득락을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지요.
미2 . 이번에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만일 거기에 의미라는 부분이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이고득락은 너무 자연스러운 인간의 흐름인데, 반면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즉 고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다, 또는 의미가 수반 된다면 죽을 고생도할 수 있다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지요.
용 : 왜 죽을 각오를 할까요?
미2 . 거기에 의미를 두니까요.
용 : 왜 거기에 의미가 있을까요?
미2 :그건 삶의 목적하고 관계 있지 않을까요?목적 중심의 삶이 되거나. 의미충심의 삶이 되면, 마지막에 얘기하는 기분의 근거는 목적이나 의미가 달성된 후에 떨어지는 결과라는 것이지요. 지금 이고득락을 가지고 얘기할 때는 순간순간의 기분에 대해 얘기할 수 있지만, 인간이란 게 어떤 장기적인 기간을 놓고 얘기 한다면 사실 이고득락을 넘어서 의미중심의 삶과 목적중심의 삶이 더 인간다운 삶이 아닐까요?
용 .우선 질문이 대단히 신선해서 좋고요. 그런데 그 의미를 다시 추적해 들어가 보자고요. 그것이 의미 있다는 말은 끝내 그것과 연관된 생명의 이고득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것이 될 거예요. 그래서 의미 있는 것이 바로 이고득락을 위한 수단개념 , 방편개념이라는 거예요.
미2 : 동사섭에서 말하·는 기분 좋은 느낌이란 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행복의 상태라는 것에 대해서는 100% 공감을 합니다. 그것은 인생에서 지친 사람들, 피 말리는 경쟁에서 지친 사람들에게는 기분 좋은 느낌을 얻는 것이 굉장한 도움이 되겠고, 좋은 해결책이 되겠지요.그러나 한 분야에서 뭔가 의미 있는 성공을 이루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는 맥 빠지는 얘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용 : 그것은 깊게 사색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지요. 나는 행복한 기분이 문제가 아니라 의미가 문제다 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미2 . 성공이 나한텐 더 중요하다라는 거지요.
용 '예,성공이 더 중요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런 말은 이고득락에 대한 사색을 깊게 안 했을 때 나온다고 보아져요. 그분으로 하여금 깊은 사색을 하게 하려면 질문을 거듭 해줘야 됩니다. 그 의미 있는 삶, 그 성공이 왜 그토록 가치가 있느냐, 이렇게 묻게 되면 끝내는 성공을 해야 내가, 우리가 행복하기 때문에 그렇다라 고 할 것입니다.
미2 : 우리의 문화, 문명의 발전이라는 부분은 어찌 보면 인간의 무모한 도전 때문에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런 깊은 사색을 통해 현재에 만족하게 되면 발전을 향한 고지에 오르기 전에 의미를 내려놓을 것 아닙니까? '그래, 결과가 이 행복인데, 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돈망을 잡거나 꽃을 하나 보면서, 애써 의미를 통해 찾으려 하는 행복을 이 순간 느낄 수 있다면, 아둥바둥 사는 것을 왜 하겠으며,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싫어도 억지로 하는 것에 대한 도전을 내려놓을 수가 있다는 거죠. 삶의 현장에서 .
대화스님 :그럴 수 있을 테죠. 그런 걸 모르기 때문에 삶에서 어렵게 가고 있거든요. 아는 사람이 몇 안 되니까. 아는 사람은 그렇게 힘들게 안 하고도 내려놓으면서 이렇게 여유있게 갈 수 있을 텐데·
미2 : 그런데 문제는 각종 영성 수련이 됐든, 종교단체에서 하는 모든 활동들을 접하고 나면,어떤 동일시에서 많이 벗어나기에 에너지를 잃는다는 거죠. 밖으로 나가는 에너지가 자기한테로 돌아오는 순간, 세상에서 갖추어 이룰 수 있는 힘인 경쟁력이란 부분이 자꾸 떨어져 나간단 말입니다.
미1 : 이렇게 여쭤보지요. 스님은 돈망 이후, 마지막 체험 이후에도 이렇게 열심히 동사섭을 이끌어오고 계십니다. 그런데 잠시 전에 어떤 분은 심심하단 말씀도 하셨다시피 돈망 이후 그러한 활동을 위한 에너지가 빠지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심심하다는 것이 에너지가 빠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용 : 에너지가 안 빠지지요. 에너지가 빠질 수 없습니다. 잠시 에너지가 좀 빠진 듯한 과정도 있을 수는 있겠지요. 내 경우를 놓고 봅시다. 오늘 아침에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가 지금 행복마을에서 영성운동을 하고 있다. 아침에 산책하면서 보니까 우리의 공동체가 완결되어 있더라. 그렇게 현재 완결되어 있다는 충만감을 가지고 산책을 하고 왔다 여러분들은 어떠냐? 그 마음으로 이 운동을 해가자"
그런 완결된 마음이 있다면 무언가를 해나가려는 에너지가 빠져 일이 안 되리라는 염려들을 동사섭 체험 전에 사람들이 합니다. 특히 대기업 상무들이 내려오면 머릿속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먼저 해요. 그래서 생각하지 말고 체험을 해봐라, 체험을 해보면 충만감 속에서, 행복감 속에서 도전 의지는 더 나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충만감이 없는 데서 나오는 도전 의지는 초조함이고 긴장이고 스트레스다. 그런 식으로 생산품 만들려면 차라리 만들지 말라고 말해줍니다 물론 잠시 잠깐 에너지가 빠질 수도 있지만, 보통 수련장에서 체험해야 할 순간에 체험은 안 해보고 생각을 먼저 굴릴 때 그런 질문들이 막 쏟아져 나오기도 합니다.
내 경우는요, 절대 에너지가 빠지지 않더라고요. 내 속에서는 완결감이 들고 참 좋지만, 꾸준한 프로젝트가 있어요. 왜 있을까 봤더니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나도 아직 미진하다는 거예요. 돈망 이전에는 애쓰지 않을 때 바둑도 들어오고 드라마도 들어옵니다. 그러다가 애쓰지 않아도 통째로 내 인격에 흘러버릴 때 그것을 수분각이라고 합니다 다만 그게 대각은 아니에요. 대각은 내 속에서 탐진치의 그림자가 무의식에까지 얼씬도 없어야 돼요. 무엇엔가 끌리는 마음, 그것이 탐심이지요. 무엇인가를 보고 밀어내는, 배척하고 저항하는 마음, 또 시비 분별하는 마음, 나다 너다 상대적으로 분별하는 마음, 이건 치입니다. 이런 마음이 무의식에까지 얼씬도 않아야 대각이라고 그래요.
그러기 때문에 애씀에 있어서는 나도 애쓸수록 좋지요. 그러나 어느 정도 됐기 때문에 애쓰지 않아도 좀 흐름이 그냥 그대로 흐르고는 있지요. 그래도 아직 수분각에 있어서 자신이 없어요. 지금도 바둑 하면 군침이 나오니까(웃음). 그래서 나 때문에도 이 의지가 김이 빠져버리지 않지요. 물론 나 때문에는 이거 빼버려도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감도 들기는 해요. 그런데 주변에 스스로 자기의 고통을 자기가 만들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네들을 거기에서 벗어나오게 돕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감이 드는 거라 그래서 내가 지족한다고 해서 김이 빠져 있어지지가 않더라고. 그것이 말하자면 보살도입니다.
미1 : 나는 극락에 맨 마지막으로 가겠다, 왜냐하면 우린 결국 다같이 하나라는 걸 알기 때문에‥‥
용 : 예. 혼자 만족해가지고 오케이 하고는, 김 다 빼버리고 딱 끊어버릴 때, 그것을 소승불교라고 합니다 심리현상 중에는 실제 자기가 만족되니 딱 끊어버리는 아라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아라한 성자되는 것을 대승불교에서는 권장하지 않아요. 아라한과를 얻기 이전에, 자비희사라고 하는 사무량심을 먼저 명상하라고 하지요.
삼매가 깊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세상 중생들에 대한자비심이 없는 상태에서 멸진정에 들어가 버리게 되면, 개인으로서100% 완벽한 법열감 때문에 그 상태로 사라져 버리는 거예요. 그것이아라한 도예요 혼자 100%순수해진 상태에서 승화해버리는 거지요. 그런데 대승불교 쪽에서는 경험적으로 그러한 사람이 실제 나오니까 그러지 않도록, 그 상태로 갔으면 다시 돌아와 일을 하게 하려고 자비희사라는 사무량심을 명상하라는 거예요.
그것이 천태지자의 선학입문이라는 책에 나옵니다. 굉장히 주옥 같은 것을 내가 하나 건졌는데, 그렇게 사무량심이 길러져 있는 상태에서, 멸진정에 이르러 구경순수에 들어가면 혼자 증발해댄리지 않고 중생에 대한 자비심 때문에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다는 거예요.
미1 :네.알겠습니다. 이제 동사섭의 역사를 간단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처음엔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용 : 내가 학교 선생을 8년했습니다. 대학 4학년 후학기부터 시작했어요. 그때 전라남도 카운셀러들이 방학 때마다 하는 그룹학습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티그룹 워크샵이라 했는데 그때 시작한 것은 칼로져스의 엔카운터 그룹이었어요. 원래는 일본으로 수입되어 이토 히로시라고 하는 분이 히트를 치고 있었고 더욱 유명해지다보니 한국에서 초대해 광주 대도 호텔에서 워크샵을 가졌지요. 워크샵을 하신 분이 강요한 씨라고 전남고등학교의 교장이었어요. 이 교장선생님이 티그룹워크샵을 일본에서 수입해 이토 히로시를 모시고 하다가 어느 정도 경험이 쌓여 몇몇 지도자들을 길러서는 자체적으로 방학 때마다 하고 있던 터였어요. 그런데 마침 내가전남고등학교로 스카우트되어 갔던 것이지요. 그런데 방학 때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을 모아 천주교 피정센터에서 티그룹 워크샵을 하게 되었어요. 이것이 동사섭의 씨앗이 던져지게 된 사건이죠. 한 4~50명 되는 선생님들이 빙 둘러 모여가지고는 3박 4일 동안 폭력이 아닌 이상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라 그러더라고요. 그때는 그룹 워크샵이라는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만큼 개념이 안잡힐 때였어요. 그런데 개념이 안잡혀도 다시 하고 싶은 마음으로 꽉 차는 거예요. 그 다음 방학인가 또 하게 되었는데 뭔가 개념이 조금씩 잡히더군요. 그 개념이라는 것은, 머리로 내놔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내놔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생각과 감정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처음 잡히기 시작했어요.
그때 나를 보니 생각과 감정을 구별하는 삶을 살지 않았더라고요. 왜냐하면 나로서는 느낌을 얘기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생각이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생각과 감정을 구별하는 것이 상당히 힘들더군요. 나중에 구별할 수 있게 되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구별을 않는 삶을 살다가 구별하려고 하니까 이것이 완전히 큰 능선 넘듯이 힘든 사건이었어요. 그때 생각이 '야, 묘하다' 였어요.어쨌든 이런 상황 속에서 8년 6개월 교직을 그만두고 다시 머리를 깎게 되었어요.
사실 그때는 신선도에 빠져 호흡법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추강사에 큰 스님이 오셨다는 소식이 들린 거예요. 옛날에 대학 다닐 때 추강사를 함께 만든 청화스님이지요. 큰 스님 뵈니까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하고는 매일 밤 하던 호흡법을 바로 그만두게 되더군요. 그때 나와서 머리 깎고 큰 스님 모시고 살게 되었지요. 그렇게 한 7년 정도를 큰 스님 모시고 돌아다니면서도 그 T그룹 워크샵이 잊히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내 친구인 한 카운셀러한테 부탁해서 T그룹 워크샵 있으면 다시 한번 하고 싶다고 했지요.그렇게 해서 승복을 입은 상태로 하게 된 것이 80년 겨울이었어요.그때 개념이 많이 잡히고 '이것은 불교 범주 안에 들어있는 것이니 이것을 도구로 해저 불교 속의 프로그램으로 해봐도 좋겠다' 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내 신도들을 열댓 명모아 놓고 T그룹 지도자 이재화 선생을 모시교 전남 강진의 무위사라는 절에서 열었어요. 열댓 명이 앉아 주거니 받거니 말들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때 정말 와~ 너무 감동적인 자리였던 거예요.
미 : 무엇이 그렇게 감동적이셨던 건가요?
용 : 지금 말하라면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지만 간단히 이야기해서 ,이제 감점과 생각이 구별 되니까 감정을 표현한다는 자체가 신선한 체험이 되었던 거예요. 우리는 감정 표현을 안 하고 살았잖아요. "그래저 우리가 이렇게 기쁩니다.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놀라웠던 거예요. 그게 30년 전이니까, 기분이 나쁘다 이런 표현을 어떻게 하고 살아요? 그런데 거기서는 그것을 권장하는 거예요. 그것 자체가 충격인데다가 공감을 해주라는 거예요. '공감을 해주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짜불교잖아요. 그러니까 말로만 자비, 자비 하지 말고 상대방이 슬퍼하면 슬픔을 알아주고, 안아주고 해야 공감이지 . 그리고 공감이야말로 자비고 사랑인 거지요. 그것 참 굉장했어요.
그래서 개념이 두 가지로 정리 되었어요. 내 감정을 표현할 것, 상대방의 감정이 나오면 공감해 줄 것. 이 개념이 잡히면서, 아 이렇다면 나도 지도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바로 사람을 모아 내가 돕는 이를 하면서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1 : 그것이 동사섭 첫 시작이군요.
용 :네. 이것을 늘 하다 보니까 재미있는 똑 같은 사이클이 진행됩니다. 즉, 사람들마다 표현을 하는데, 그 중에는 꼭 아무 말 없이 시체처럼 있는 사람이 한두 명은 있는 거예요. '그 한두 명을 풀어주려고 너무 애를쓰 다보니 항상 여기가 뻣뻣해지더라고.그래서 이번 만은 저놈의 자식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그 사람이 딱 풀리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행기 탄 듯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그 재미가 그 다음 워크샵을 하게 만든 것이지요. 그렇게 하고 또 하면서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미1 : 대화스님은 어떠셨어요?
대화:' 큰 스님은 표현이 너무 내성적이시고 표현을 잘 안 하고 사셨던 스님인지라 기질적으로 이것을 쇼킹한 가치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보고 싶게 한 점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스승님이 하시는 거는 뭐든지 따라 한다는 것 때문에 했지만 사실 너~무 귀찮았어요(웃음)
말 많은 사람은 많이 하고, 안 하는 사람은 안 하고있는데, 말없는 사람을 말하도록 시키는 것도 별로 였고, 또 저 자신이 감정 표현을 삼가하는 것이 좋다고 배웠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는데, 그 중에서 앞서가는 성향의 사람들이 있어서 툭 툭 함부로 표현을 하면, 제가적응이 안되어서 힘들었어요. 그래서 귀찮고 상대하기 부담스러워 스님에게 이것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으니 이제 그만하자고 늘 이야기 했었습니다
미1 : 그런데 어떻게 계속 하시게 되셨어요.
대화 : 처음에는 스님이 하시니까 제자로서 그냥 따른 것이지요.
미1 ' 그렇게 시작한 동사섭이 어떻게 바뀌어 나가던가요?
대화 :초기에는 엔카운터만 했습니다 순수 엔카운터만 4박5일을하는 거예요. 아무 이론도 설명도 없이 그냥 '한마당 합시다' 하고는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모델만 보여줬어요. 그러니 얼마나 답답해요. 그러면 한사람이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답답합니다!"라고 하는거예요. 그러면 '답답하다'고 표현했으니 우리는 얼마나 반가워요?그렇게 반가워하면, 그분들은 "답답하다 하는데 너무 반갑다니 , 도대체 !"라며 역정을 내곤 하지요. 그런데 그 와중에 센스 있는 누군가가 아하!하면서 알아채고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서 적응하는 사람이 생기니까 그 장의 힘이 확 퍼져 나가서 이 워크샵이라는 비행기가 뜨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나중에는 15명이 올 때도 있고, 10명 올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1명이 와서 기본 대중들과 함께 하면서 계속 해왔지요.
어쨌든 그렇게 하여 마지막 날이 되면 일단 표현의 빈도가 균등하게 되고, 표현의 내용도 머리와 가슴, 생각과 느낌을 구별하여 사람들이 표현할 줄 알게 되지요. 그리고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사람 사이의 참만남을 갖게 한다는 체험을 주게 된 거예요. 예를 들어 , 서울대 심리학과의 한학생은 답답해 하더니 이튿날 오후가 되어 이것이 무엇을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알고는 무슨 도를 통한 것처림 시원해하는 거예요.그 러나 이런 사람은 거의 없고 이틀, 사흘이 되어서야 그저 소 됫걸음치다 쥐 잡는 식으로 알아가는 식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이론 없이 모델로만 보여주려 하니까 2, 3일 가야 조금 알게 되고, 더디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순수 엔카운터만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구나, 상대방 감징을 받아준다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참으로 중요하구나를 알고, 제대로 표현하고 제대로 받아준다는 체험을 통해서 큰 스님도 저도 정교하게 성숙되어 갔고, 거기에 이제 이론이 덧붙여진 것이예요. 그 이후로는 이 프로그램이 구조화가 되었습니다 즉, 이론이 있고 체험을안내하는 엔카운터를 하게된 것이지요. 그것을 구조적 엔카운터라고 했지요. 그러자 순수 티그룹 엔카운터를 하는 사람들이 백장암 엔카운터는 타락했다라고 말하곤 했지요. 그러나 그렇게 이론화하고 원리를 분명하게 파지해서 원리대로 실습하게 되면 모든 사람은 그 경지에 이르게된다라고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큰 스넘의 기질이신 것 같아요.
용타 : 내가 그 부분의 구조화를 정당화 했던 것은, 원리를 잡고 실습을 많이 하느냐 안 하느냐에 끝내 홈런을 치고 못 치느냐가 달려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파지 정도만 해서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버리므로 여기서 얼른 파지를 하고 실습을 많이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생각이었던 것이지요. 어느 선에서 이론적으로 이러하고 저러해야 할 것 아니냐, 하면 아하! 하며 빨리 파악하니까, 끝날 때가서 아하! 할 사람들이 미리부터 아하! 하니 , 이제 실습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내가 노린 포인트였어요.
대화 ' 그러나 항상 모색 기간을 줍니다 스스로 알아볼 수 있는 기간을 주고, 어느 정도 답답해 할 때 이론이 들어가니까 아하! 하며 빨리 알아채는 것이지요. 그렇게 구조 엔카운터를 대여섯 번 했습니다.
엔카운터를 다른 말로 하면 마음 나누기인데 일반적으로 한번 했던 사람이 좋으니까다시 오고,또 오고 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나누기만 계속하다 보니까 이렇게 마음 나누기만 해가지고는 그 이상 높아 질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이론이 잡히고 툴을 갖게 되니까 패턴에 빠지는 겁니다 표현 안 하던 사람이 표현함으로 인해 좋은 것 때문에 , 대화를 통해야만 시원함을 맛본다는 틀에서 못 벗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아하, 안으로 자신을 수심 해가면서 밖으로 나오는 것도 해야겠구나 해서 수심이 들어가게 됩니다.
미1 : 수심이라는 것이 마음 다스리기죠?
대화 : 그때는 마음다루기라고 했어요. 즉, 처음 순수 엔카운터를 하다가 이론을 추가하여 구조적 엔카운터를 했고, 그 다음에 마음 다루기를 넣었죠. 마음을 나누려 해도 알아야 되고 다루려 해도 알아야 되니까, 마음알기-마음나누기-마음다루기 이것이 동사섭의 큰 제 가지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가다가 어느 세월 지나가서는 수심(마음다루기)에 초월 부분을 넣었습니다
미1 . 그게 87년 이후입니까?
대화 : 아니요. 87년 이후의 돈망은 더 높은 단계의 초월이고, 그 아래 나지사명상, 독배명상이라고 있었지요. 또 자신의 마음 화를 다루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을 벗어나간다 해서 아를 벗어나는 무아 명상이라 하여 초월의 이름을 썼어요. 옴이다 돈망이다 할 때는 초월의 제 2부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초월수심을 넣었을 때 까지도 마음알기 , 마음나누기 , 마음다루기 , 세 주제가 동사섭의 큰 부분이었어요.
당시에는 마음 알기 , 즉 자기 현재의 모든 생각과 느낌에 깨어있게 되면 매우 잘 학습이 되었다
했습니다. I feel_, because_ 형식으로 느낌 노트를 쓰게 하니까 자기 마음의 깨알만한 감정과 생각까지도 그것에 깨어있게 하는 훈련이 되어서 참 좋았습니다. 가령 내가 뭔가를 먹으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이 그 반찬을 먹어버렸을 때, 그 사람에 대한 내 마음이 얄밉고 서운했다 하는 감정을 읽도록, 그런 속에서 에고 점검이 철저하게 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때 이제 점검 되어진 마음을 표현하거나 다루거나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지요.
마음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마음을 잘 알아야 되고, 안 것을 다루어야 되고, 또 상황이 된다면 잘 나누어야 된다고 했지요.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 그렇게 세세하게 이루어지도록 훈련이 되었습니다. 특히 마음 알기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되던 시절입니다. 그 이후 이것을 미국에 있는 법사들께서 2박3일정도 해달라 요청이 왔습니다 그런데 5박6일 하던 것을 어떻게 2박3일에 하는가 하시다가. 큰 스님이 불교 포교사들에게 포교한다는 것이 대원행이므로 거기다 포커스를 맞춰서 한번 해보자 하셨지요. 마음 알기 나누기 다루기를 오대 원리로 나누어서 정리를 하여 2박3일을 했더니 너무 호응이 좋았던 거예요. 그래서 귀국해서는 마음 알기 나누기 다루기를 5대 원리로 재편성해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크게는 그 정도로 변화가 되어왔고 자잘하게는 끝도 없이 많습니다.
제가 놀라운 것은 동사섭 첫 회부터 큰 스님을 모시고 쭉 해오면서 크게 배운 것이 있어요.수백 수천 번을 강의 해오셨으니까 모두 들어있어 그냥 하시면 될 거 같은데 지금도 강의를 들어가기 전에 동기부여를 느낄 수 있도록 하시며 , 명상을 통해 그때 그때 주제에 맞도록 완벽하게 느껴져야만 시작하신다는 거예요. 강의를 들어보면 그것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저도 강의를 하고 있기에, 그래서 더욱 큰 스님 강의를 항상 듣습니다. 이번에는 과연 어떻게 도입을 하여 전개를 해나가시나 그것도 궁금하고, 그래서 저도 노트를 꼼꼼하게 합니다. 그렇게 일반과정을 이제 204회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경험자 마당 좀 가져보자 해서 그 이름을 중급과정이라고 하여 27회 했고, 고급과정을 개설해서 16회 나갔습니다.
미 : 동사섭을 28년 이상 해오셨는데 에너지원이랄까, 계속할 수 있는 그 동인은 무엇이었습니까?
대화 : 첫째 우리는 스님이니까, 개인의 이고득락이 아니라 더불어 이고득락해야 한다는 대원심이 기본적으로 있지요. 그런 마음이 세상행복을 위하여 무엇인가는 하되, 이것이 정말 현대 종교에 맞게, 종교의 현대화 그리고 또 종교라는 것이 절이나 교회 안에서 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생활수도 라는 점에 있어서 좋은 반응들이 있었기 때문에 해봄직한 것이다 하는것이 있구요, 또 자리이타가 되는 뭔가는 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반응들이 좋으니까 계속해오게 되는 것이죠.
미1 . 스님의 이고득락도 되는 겁니까?
대화 · 네. 물론입니다. 저 자신도 동사섭으로부터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이 될 거라고 봅니다. 왜냐면 구체적 , 현실적으로 마음이란 무엇이냐에 대해 알게 되고, 마음을 다루어서 행복해지고 해탈된다할 때 그것이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바로 노력해서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가치관의 필요성과 중요성인데, 그래서 구체적 가치관 정립을 어떤 체계로 잡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왔습니다
사람을 살게 하는 핵심요소, 사랑마다 다르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그것은 그 사람 의식의 배경에 있는 가치관이겠지요. 그래서 가치관 확립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동사섭에서는 강조를 합니다. 저 자신도 가치관 정립에 정성을 다할 것이고
미1 : 동사섭을 알린다는 마음을 빼고 한번 말씀해주십시오. 스님, 혼자 조용히 계실 때 기쁨을 느끼십니까?
대화 : 네. 그렇습니다. 사실 절에서 웃고 울고 떠드니 주변에서 사이비 아니냐고 핍박도 많이 받았어요. 그런 것이 제 성향에도 맞지 않았고요. 그래서 큰 스님께 "동사섭 말고 다른 식으로 도를 닦아도 요 정도는 되지 않겠어요?"라며 그만하자며 불평도 했는데, 의식의 돈망상태, 의식의 원단상태를 경험하고서, 예를 들어 방안에서 방문을 열고,대문 밖에 나가서 성문을 향하고, 더 나아가 저 ~ 광환한 세계로 나가는 것처럼, 확~ 열리는 의식의 전개 과정이 굉장히 선명하게 체득이 되었습니다 원리적으로 알고 있으니까 언제든지 방하하고 무심하게 되고 편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름대로는 안정적으로 평화로워요. 저한테는 그런 것 같아요.그래서 저 개인적으로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어요
용 : 거사님 질문이 이렇게 해온 동력이 뭐냐, 그 동인이 뭐냐고 몇 차례 물었잖아요? 물음을 접하면서, 정말 좋은 질문이라는 감이 옵니다. 나도 거기에 대해 자문자답을 안 했던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들으면서 정말 좋은 질문이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왜 내가 이것을 계속 하게 되었지 하고 가만히 자문해보니 , 내 경우는 내가 좋아요. 왜냐하면 이것은 석가모니의 도구를 내가 이 시대에 맞게 재편집한 것이거든요. 재편집해서 다른 이에게 전하기 전에는 실험을 해야 되지요. 그렇게 실험하는 과정이 좋고, 이것을 전하다 보니 거듭 나 스스로 복습이 되어진 거예요.그래서 동사섭의 1등 수혜자가 나자신이라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미1 : 안내하면서 얻으신 게 많다는 말씀이시군요
용 : 예. 안내하면서 충분히 얻어져서 내가 좋다는 것이 한 가지 있고, 그 다음 수련생들이 전반적으로 좋아해요. 살아가면서 가끔 감사표현들을 받게 되는데 굉장히 보람도 느껴지고, 그래서 계속해오게 되었구나. 또한 상구보리 하화중생 해야 하니까 한다는 말도 성립이 되지요. 그러나 우선 기본적으로 내가 좋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들이 좋고, 그들이 좋아지는 모습을 보게 되니까 또 좋고, 그래서 하게 되네요. 돈망을 프로그램화 하지 않았더라면 우선 내속으로 깊은 살림이 덜 되었겠다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돈망을 아하! 했더라도 돈망이라는 것을 전하려다 보니까 점점 더 내 것이 된 것이 크구요, 또 일상생확에서 자비 , 자비 말로는 하지만 많은 것이 머릿속 자비이거나 일시적인 자비가 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자비가 아예 프로그램화되어 있기 때문에 자비의 화신은 아니지만 내가 '상당한 자비인격이 되어 있구나' 하는 것을 보거든요. 이런 것들이 프로그램의 재미지요. 예를 들어 상대방이 얘기한다 하면, 내가 안 들으려고 한다면 몰라도, 들으려고만 하면 저절로 경청이 아주 깊게 되어 . 듣는 속에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보이는 것처럼 되더라고요. 이런 것들이 동사섭 수련의 덕택이지요.
미1 :앞으로의 청사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용 :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궁극적인 청사진을 얘기해볼까요?우주 신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우주는 우주 신이 생성해놓은 패러다임대로 돌아가고 있어요.이 우주신의 마인드에 상생 패러다임을 장착하는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1 : 그렇다면 지금은 상생 패러다임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용 :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왜냐, 싸우잖아요. 고통스러워하고. 만약 이 우주 생성원리에 상생 패러다임이 확실히 장착되면 우주는 상생으로 흘러 갈 것 아닙니까? 호랑이하고 고양이가 다투지 않고 춤을 출 것 아닙니까?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사람 사이에 그런 불균형으로 복잡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이 우주 신은 상징적인 내용입니다.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니까 우주 신의 마인드에 상생 패러다임을 장착 시킨다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이 우주의 저~ 깊숙한 흐름에 상생의 원리가 도도하게 흘러가도록, 그래서 우주에 존재하는 무수 무한한 존재들이 항상 기쁘고 항상 해탈이고 항상 밝고 맑은 기운이 넘실거리도록,그것이 동사섭 행복마을이 끝없이 나아가야 할 길이고 모든 종교, 모든정신, 물질 문화가 그런 식으로 나가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중 극히 작은 부분만이라도 우리 행복마을이라는 영성공동체에서 담당해보자 하는 것이지요.
미1 : 그러면 현재 동사섭 프로그램 가운데 그러한 상생프로그램을 장착시키기 위한 실천적인 것이 있습니까?
용 :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이죠. "우주의 주인인 나는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전 에너지를 바치겠나이다" 어떻게 바칠 것인가? 수심을 잘 해서 마음을 천국으로 만들고, 더불어 이웃을 깊게 사랑하고 화합해서 관계천국을 만들고, 나에게 주어진 일이든 주어지지 않은 일이든 상황상황에 필요한 일을 잘 하는 작선행을하자. 이것이 5대원리거든요.
이때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라고 할때 권장하는 문구가 있어요. '우주 안에 있는 유정 무정 유형 무형의 모든 존재들의 행복, 해탈과 맑고 밝은 기운을 꾸준히 바라다보면서 그것이 되어지도록 기원하고, 그것이 되어지도록 나를 바친다'는 대원의 기도를 하라는 것이지요.
밖에서 우리의 그 기도가 무르익어 갈수록 우주 깊숙이 있는 그것이 보다 더 온전하게 드러나겠지요.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듯이, 줄탁이 되어짐과 동시에 장착이 완료될 것이고, 그게 후천세계인지도 몰라요. 후천세계가 우연히 오면 좋지만, 우연히 오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성으로 되도록 하자는 식입니다.
미1 : 만약스님께서 말씀하신 패러다임이 기업에 장착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용 : 아마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도 나오고 그러한 에너지를 뿜어 낼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직원들을 괴롭히는 것들이 급속도로 줄어들 것이고, 묘한 기적적인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미1 : 장시간 필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행복마을이 상생의 패러다임을 우리들 삶에 장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용타스님: 용타 스님은 1942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으며, 1956년 전남대학교 철학과졸업, 1971년 동대학 대학원 철학과를 수료하였다. 1956년부터 1974년까지 고등학교에서 독일어교사로 재직하였으며, 1964년 청화 선사를 은사로 출가하였다. 전국의 제방 선원에서 20안거(1974년-1983년)를 결제수선하였다. 1980년 불교의 근본가르침과 선불교를 바탕으로 동사섭 프로그램을 계발, 5박 6일간의 영성수련회를 300여 회 지도해 왔다. 동사섭은 수많은 사람들을 진정한 챙복으로 이끌어주어 우리 사회에 잔잔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현재 김제의 귀신사 · 미국 삼보사 회주. 성륜문화재단 이사, 재단법인 행복마을 이사장의 소임을 맡고 계시다. 논문에 『불교의 선에 관한 연구』와 저서 『마음 알기 다루기 나누기』가 있다
# 10분 해탈
-용타 스님의 생활 수행 이야기, 불광출판사 12,000원
용타 스님의 생활 수행 이야기, 「10분 해탈』. 불교의 근본적 가르침 뿐아니라, 선불교를 바탕으로 현대 심리학과 상담학을 끌어들여 동사섭이라는 집단수행프로그램을 만든 저자의, (마음 알기 다루기 ·나누기) (대원사, 1997년)에 이은 두 번째 수행 지침서다. 이 책은 불교 월간지 '불광'에 3년간 연재해온 (생활 수행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 매일 1편씩10분간 읽으면서 해탈을 이루어 궁극의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내 안으로 떠나는 행복 여행
대화 저 1 장승 12,000원
'내 안으로 떠나는 행복 여행'을 펴낸 대화 스님은 동사섭 수련회 프로
그램을 처음으로 개발해낸 용타 스님의 제자로서 용타 스님과 함께 지난1980년 겨을부터 BOO8년 봄 현재까지 총 300여 회의 동사섭 수련회를 안내해왔으며, 그 과정에서 동사섭을 거 쳐 간 2만여 명의 수련생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동사섭 홈페이지 (www. dongsasub.erg)에 연재해왔던 명상칼럼을 이번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용타 스님에 듣는 ‘동사섭(同事攝)’ 수행법
자신 ‘활불(活佛)’임을 현실서 구현…바탕은 지족(知足)
‘수행을 왜 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
지난 1980년부터 동사섭(同事攝) 수행을 지도하고 있는 용타 스님은 “수행은 행복(幸福)이다”고 잘라 말했다.
대원의 원리는 행복의 세계로 나아갈 방향이기에 넓을수록 좋고 그 ‘큰 희망’은 보다 큰 행복을 위한 원리라고 강조하는 용타 스님. 사진=김철우 기자
수행의 목적인 성불과 해탈도 따지고 보면, 그 본질은 답답한 몸과 마음을 ‘투∼욱’ 트이게 해 ‘좋은 느낌 상태’를 갖게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결국 ‘좋은 느낌’인 그 행복을 얻기 위해 수행을 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동사섭 수행은 ‘행복의 수행, 느낌의 수행’이 된다고 스님은 말했다.
그럼 동사섭 수행법의 세부 밑그림은 어떨까? 8월 17일 전북 전주에 위치한 사단법인 동사섭 사무국에서 만난 스님은 “동사섭은 ‘생활이 곧 수행’이 되도록 구체적 방법을 선명하게 제시한 수행법”이라며 “그 수행의 내용은 ‘이대로 부처다. 이대로 열반이다’란 불교의 궁극적인 부분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스님은 특히 “동사섭 수행은 지족(知足)을 바탕으로 ‘내가 활불(活佛)’임을 현실에서 구현해나간다”며 “바로 이것이 동사섭수행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 사람들은 늘 자신에게 “지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묻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보다 높은 행복을 지향하며 사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스님은 동사섭 수행을 통해 ‘행복’을 강조하는데, 그럼 행복은 무엇이고 왜 중요한가요?
-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인가? 즉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와 상관된 물음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다. 이의를 달지 못할 당연한 말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느낌이 행복이다. ‘좋은 느낌’이 행복이다. 동사섭 수행은 행복을 목적으로 하고, 그것을 ‘느낌 좋음’이라 한다. 이것을 동사섭 수행의 첫 단추로 삼고 있다.
왜 행복이 중요한지를 물을 필요조차 없다. 인간은 이고득락(離苦得樂)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건 무조건적이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즐거움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까닭을 더 물을 수 없고, 너무도 자명한 것이 이고득락의 이치다. 조건을 내세운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 동사섭 수행은 5가지 행복의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즉 ‘좋은 느낌 상태’인 행복을 위해 정체(正體), 대원(大願), 수심(修心), 화합(和合), 작선(作善) 등인데, 그 원리와 의미, 서로 어떤 상관성이 있는가요?
- 인생은 묻고 답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을 얻을지’가 질문이고, 그 대답이 인생이다. 그 차원에서 5대 원리를 제시했다. 5대 원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답을 내려야 하는 상황설정이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을 지향할 때, 정작 ‘나란 무엇인가’에 대해 소홀할 경우가 있다. 그러면 인생에서 허망함과 공허함을 경험하게 된다. ‘나는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정체성’과 ‘자아개념의 문제’와 연관된다. 정체성이 존재론적인 문제라면, 자아개념은 가치론적 문제이다. 그런 정체성과 자아개념을 하나로 묶는 과정에 ‘정체’의 원리를 제시했다.
대원의 원리는 행복의 세계로 나아갈 방향이다. 방향은 넓을수록 좋듯 ‘큰 희망’은 보다 큰 행복을 위한 원리다. 나와 가족, 나라, 인류, 범중생 등 행복의 범주를 확대하고, 그것을 원대한 희망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때문에 대원은 우리 모두의 행복이다.
온 우주에 존재하는 유무형에게 행복이 넘치는 상태가 바로 대원의 내용이다. 나머지 수심(마음 잘 다루기), 화합(마음 잘 나누기), 작선(잘 역할하기) 등의 원리는 정체와 대원이란 큰 축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 동사섭 5대 원리의 경전적 근거는 무엇입니까?
- 근본불교의 사성제(四聖諦)에 사상적 근거가 있다. 사성제에서의 고(苦)는 우리들의 현실이고, 멸(滅)은 우리들의 이상이다. 5대 원리는 이처럼 근본불교의 사성제를 21세기 안목에서 초대승적 의미로 재조명한 것이다.
대원 사상을 통해 설명하면 이렇다. 우선 고와 멸은 같은 개념이다. 결국 질적인 측면에서 한 개념이다. 이런 고와 멸을 ‘고는 고고 멸은 멸이다’고 보면 안 된다. 동사섭은 고와 멸을 일원화했다. 그래서 동사섭에서는 ‘~만큼 고, ~만큼 멸’이라 한다. 현재 우리는 순간순간 ‘~만큼 고, ~만큼 멸’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 목적은 나의 이고득락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고득락에 있다. 즉 대원이다. 동사섭의 대원 사상은 근본불교 사성제의 멸(해탈)을 소승적 차원에서 대승적 차원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 동사섭은 마음을 알고 다루고 나누는 수행법입니다. 중생과 희로애락을 함께 느끼며 배운다는 의미인데, 수행원리는 무엇인가요?
- 동사섭 수행원리는 근본불교의 불성(佛性)사상과 선불교의 즉불(卽佛)사상의 조화에 있다. ‘이 마음이 부처고 내가 부처다’는 즉불사상을 바로 이 몸에서 느끼게 하는 것이 동사섭 수행법의 핵심이다. 내가 살아있는 부처, 즉 활불(活佛)인 내가, 즉불인 내가, 지금 여기서 구현해 보이는 것이다. 근본불교의 가르침으로써 ‘왜 우리가 해탈하고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인생의 가치관 정립에 근거를 안내해주는 것이 동사섭 수행이다.
▶ 구체적인 수행법은 어떻습니까?
- 구체적인 수행법은 주(主)바라밀와 조(助)바라밀이 있다. 주바라밀은 내가 변함없는 태양과 같은 존재임을 확인케 하는 것이다. 조바라밀은 부처가 세상에 구현하는 데 번뇌를 쓸어버리는 작업을 돕는다. 삼독심 하나하나에 따라 명상법 하나하나를 적용시켜 번뇌를 제거하게 한다. 여기에는 지족(知足)이 바탕이 된다. 지족구현이 동사섭 수행법의 밑바탕이 된다. ‘이대로 부처다’ 하는 것이 주바라밀이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방편이 보조바라밀이다.
특히 동사섭 수행의 근본은 ‘이대로도 어느 만큼 부처요, 지족한 상태로 행복하다’는 지족명상이 중요하다. 동사섭 수행의 핵심에 흐르는 것이 바로 지족구현이다.
▶ 동사섭 수행 유경험자들은 “삶의 목적이 분명해졌다. 진정한 휴식을 알고, 사는 것이 즐겁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말합니다. 일상생활을 사는 재가불자들에게 동사섭 수행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고, 어떤 자기변화를 일으키나요?
-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등 인생가치관이 5대 원리로 명확해진다. 분명한 삶의 좌표를 제시하고 모든 생활 자체가 수행일 수 있도록 구체적인 수행법을 손에 쥐게 한다. 즉 지족의 삶을 살게 한다. 깨달음에 대한 환상적인 꿈도 깨게 한다. 깨달음을 바로 여기서 얻게 하기 때문이다.
▶ 스님은 활불교(活佛敎)를 주창했습니다. ‘자신이 살아있는 부처임’을 느끼라고 강조했는데, 활불교를 제창한 이유와 그 핵심내용이 무엇인지요?
- 본래 불교는 활불교다. 삶이 곧 불교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불교가 활불교다. 현재의 불교가 관념화되면서 현실로는 불교와 삶이 이원화됐다. 그래서 이 같은 현실에서 진일보해서 주창한 것이 활불교운동이다. 이는 ‘생활 즉 불교’라는 것을 재확인하자는 운동이다. 불교의 다양한 가치들을 활불교화하는 것이 동사섭 수행이다.
‘어떻게 하면 행복을 얻을지’가 질문이라면 그 대답이 인생이다. 그 차원에서 5대 원리를 제시했다고 말하는 용타 스님. 사진=김철우 기자
▤ 용타 스님은 누구?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후 세계는 정말 있는 것인가?’ 용타 스님이 청년 시절 가졌던 의문들이다. 이후 청화 스님을 만나 품었던 의문들이 풀리면서, 24살 때 곧장 출가했다. 청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용타 스님은 출가자 신분으로 여수 장흥 전남고등학교에서 8여년간 교편을 잡았다.
스님은 이후 1980년 동사섭 법회를 주창해 지금까지 수행을 지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일반과정 189회, 중급과정 20회, 고급과정 10회 등을 실시해 연인원 1만여명의 동사섭 수행자를 배출해냈다.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 삼보사 회주, 귀신사 회주로 있다. 저서로는 명상록 <마음 알기 다루기 나누기> 등이 있다. (063)227-1000. www.dongsasub.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