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꿈꾸거라
“ 할아버지 ! 좋은 꿈꿔 ” 이란성 쌍생아로 태여난 일곱살배기 손녀 지유가 예쁜 눈망울을 굴리며 한 이불속 잠자리에서 속삭이듯 하는 말이다. “ 으 으 응 뭐라고 ? 지유야, 어 ~ 그래 지유도 지안이도 좋은 꿈꾸며 잘 자거라 ” 손자 지안이는 어느새 새록새록 꿈나라로 가고 있다. 한달에 두 세 번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으로 놀러오곤 하는 손주녀석들이다. 잠잘 때는 손자는 할머니랑 손녀는 할아버지와 함께 한 방에서 자는 것이 손녀가 정해 놓은 규칙이 된 것이다. 티 한 점없이 곤히 잠든 손주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보노라면 무한한 꿈과 희망 그 자체가 아닌가. 아내는 손자를 손녀는 할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첫 만남의 순간은 행복과 축복과 환희의 날이다. 하얀 강보(襁褓)에 휩싸인 갓난애기들의 얼굴은 지금도 흥분과 설레임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년 1월 6일이면 만7년이 되는 날이다. 며늘애기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지금도 가슴 한켠에 남아있다. 갓난 애기들을 가슴에 품고 시부모가 살고있는 같은 아파트 바로 앞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애기들을 보살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람이었을 터이다. 약국을 경영하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야속한 마음도 들었으리라. 수시로 바뀌고 바꿔야만 하는 애기 돌보미들에 대한 무성의와 믿을 수 없음에 배신감마저 더했을 것이다. 약국을 접고 갓난 손녀 손자를 돌보아주지 못한 것이 언제나 손주들에게도 안타까움과 미안함으로 다가오고 있다. 손주들이 찾아드는 날이면 세상을 품에 안은 느낌이다. 식사는 무엇으로 해줘야 맛나게 잘 먹을까. 먼저처럼 햄을 넣은 김밥을 먹일까. 아니면 짜장면에다 탕수육을 주문해 먹여야 하나. 갈비집으로 갈까. 삼계탕집에서 닭다리를 쥐여줄까. 아니면 바지락 칼국수와 만두집으로 가야하나. 청국장 보리밥집으로 데리고 갈까, 오늘은 어디로 데리고 나가야 신나게 뛰여놀까. 간식으로는 도넛츠와 우유 아이스크림일까. 찻길에서는 손을 꼭 잡고 놀이터에서는 다칠까봐 잠시도 손주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집 앞에 청담공원으로 데리고 나간다. 숲에 들어서면 모든 것들이 손주들의 장난감이다. 소나무에 붙어있는 매미 유충 껍데기를 보이는대로 잡는다. 엄마 아빠에게 보여주겠단다. 잣나무 아래 쌓여있는 낙엽들을 커다란 방석 모양으로 작품을 만든다. 주위에 있는 돌들을 주워모아서 돌탑도 쌓는다. 탑이라야 고작 높이가 30여m이지만 정성껏 쌓는다. 무너지면 다시 쌓아 올리고 우산의 쇠꼬챙이는 낙엽을 꽂아 탑위에 고정시킨다. 훌륭한 돌탑이다. 지유지안이 손주녀석들이 둘러앉아 오순도순 속삭이며 돌탑에 정성을 들이던 모습을 본다. 스마트폰으로 한컷씩 담는다. 녀석들을 품에 안은 뿌듯함으로 출근길 전철로 향한다. 요즘은 할아버지의 일상으로 매일 출근할 때마다 그 곳을 찾는다. 출근지는 마포역 1번 출구에 있는 연세한강병원 약제실이다. 손주들에게는 아빠이며 나에겐 아들이다. 작년 12월에 아들이 개원한 병원이다. 척추 관절등을 중점적으로 진료하는 병원으로 내과와 건강검진센터도 있다. 올곧은 병원으로 환자들에게 믿을 수 있고 친절한 병원으로 우뚝서기를 바란다. 한국에서뿐이 아니라 지구촌에서 건강지킴이로 거듭나기를 애비로서 매일 기원하고 있다. 명문 의과대학병원의 정형외과 교수직을 마다하고 겁없이 뛰어든 것이다. 부모로서는 당황스럽지만 자식의 뜻을 존중할 수 밖에 도리가 없다. 며느리가 그 대학병원에서 교수로서 진료하고 있음에 다행이랄까 안심이 된다. 약사로서 병원에 누(累)가되지 않게끔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날이면 손주들의 돌탑이 걱정이다. 무너지지는 않을까. 누군가의 몹쓸 손으로 파괴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하고 있다. 쓰러지면 다시 쌓으면 될터인데도 노파심이렸다. 아빠하고는 축구공도 뻥뻥 논스톱으로 잘도 걷어찬다. 머리에 던져주면 헤딩도 가슴으로도 마음껏 받아친다. 두발 자전거도 쌩쌩 달리고 하고픈 것은 꼭 하고야 마는 끈기가 있다. 어른들이 운동하는 링에도 뛰쳐오르며 매달린다. 손자녀석은 겁이 없고 막무가내로 매달리고 뛰여 내린다. 손녀도 따라서 매달리며 깔깔대며 신이나는 모양이다. 옆에서 바라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극구 말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처음 만나는 동네 애들과도 “ 너 몇 살이야 ” 상견례를 나누며 금새 오빠 동생이라 부르며 친구가 된다. 할머니가 준비해 온 우유 물과 김밥으로 즐거움을 더한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도 걸어서 오르내리며 서로를 업어주며 넘어지고 자빠져도 마냥 깔깔대고 거침이없다. 강변역에 있는 TM에 있는 마트와 문구점 9층으로 향하기도 한다. 500원 동전을 넣으면 애들이 올라타서 영상을 보며 운전대를 돌린다. 장애물을 피하는 놀이다. 옆에 아이스크림 매점은 필수코스다. 손녀는 쵸코가 들은 아이스크림으로 손자지안이는 녹차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곤한다. 9층 하늘공원으로 뛰쳐나간다. 한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올림픽대교와 건너편에 롯데타워도 바로 눈 앞에 놓여있다. 겨울에는 얼어붙은 분수대에도 미끄러지며 얼음지치기도 한다. 집에 들어서면 두 녀석은 각자의 취향대로 TV 삼매경에 빠져든다. 녀석들은 거실에서 할아버지방으로 서로를 오가며 취향대로 리모컨을 원한다. 손녀는 여자애들의 취향이며 손자는 역시 사내애들의 성향이 나타난다. 가끔씩 두 녀석이 튀격태격 맞붙을 때면 말리느라 할머니 할아버지는 정신이 없다. 사내녀석이 먼저 지유를 툭툭 건드리며 시비아닌 장난을 친다. 가만히 몇 번은 참다가도 끝까지 달려가서 분풀이를 하는 손녀의 악동이(?) 성격이 터져나온다. 결론은 손자의 울음소리로 막을 내리지만 그래도 또 다시 먼저 집적대는 녀석이다. 각방을 뛰여다니며 쿵탕거리면 할머니가 제지를 한다. “ 지안아 ! 너 어른이 말하면 하지 말아야지 말을 왜 안듣는 거냐, 응 ” “ 하 알 ~머~니~ 이, 할머니가 무슨 어른이야, 노인네지이 ” 할머니의 나무람에 대한 손자녀석이 부르짖는 항변의 날벼락이다. 잠시 할 말을 잊은 아내는 어이가 없고 기가찬 모양새이다. “ 야, 지안아, 할머니는 나이가 많은 어른이지 하긴 지안이 네 말대로 노인네인데 할머니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거야, 알았지 ” 듣는둥 마는둥 저 쪽 안방으로 뛰여 들어가선 물을 쾅하고 세차게 닫는다. 어린 손주녀석들에게도 귀담아 들을 소리가 분명하게 있는 것이 아닐까. " 할아버지 ! 좋은 꿈꿔 "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나즈막하게 속삭이는 좋은 꿈이란 무엇일까. 언제부터인가 잠자기 전에 들려주던 한 마디이다. 손녀에게 꿈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7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할아버지의 좋은 꿈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외손주 친손주 모두가 인생의 꿈이며 전부가 아닌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딸 아들 며느리 사위의 자녀들이다. 손자녀석의 말대로 할머니 할아버지 노인네에게는 금쪽보다 더 소중한 하나뿐인 나의 핏줄임에 틀림이 없다. 이 세상 무엇으로 대신하며 비유를 할 수가 있을까. 삶의 보람과 행복은 과연 무엇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는 손주들이다. “ 윤후야 ! 민후야 ! 지유야 ! 지안아 ! 손주 너희들 모두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서 하고픈 것 마음껏 하며 살거라 ” 보고 보고 또 보아도 보고픈 자식들을 간절히 기원할뿐이다.
2018년 11월 7일 새벽에 할아버지
무 무 최 정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