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존재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다. 남자와 여자의 기질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는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업(業)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업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사실, 내 조상은 하늘이나 땅속에 있지 않고 내 몸속에 있다. 업의 결과로 가족 중 유난히 남다른 몸, 특이한 성격, 특출 난 재능이 나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한없는 조상의 업 중 하나가 발현된 결과이다. 누굴 닮아 이런 자식이 태어났을까? 부부와 조상의 덕분에 태어난 것이다. 조상을 무시하고 내 가정이 잘 되고,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격이다.
화엄경에 "한 국토에 같이 태어난 인연은 일천겁의 인연이요, 하루 동안 동행한 인연은 이천겁의 인연이요, 하룻밤을 동숙한 인연은 삼천겁의 인연이요, 한 마을의 이웃사촌은 사천겁의 인연이요, 남녀가 하룻밤을 동침한 인연은 육천겁의 인연이요, 가장 가까운 친구는 칠천겁의 인연이요, 부부의 인연은 팔천겁의 인연이요, 형제자매의 인연은 구천겁의 인연이요, 부모 자식은 일만 겁의 인연이요, 수행문 중에서 스승과 제자의 인연은 십일만 겁의 인연이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연이 제아무리 중요해도 현재의 생활이 중요하다. 현재가 밝고 행복해야 과거와 미래도 행복한 법이다. 부부는 각자의 업이 다른 만큼 생각, 행동, 습관 등이 다르게 나타난다. 아기에서 어른을 지나 노인이 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업의 전개 양상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개는 경우가 많다. 업은 거의 본능에 가까워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기에 지식이나 교육을 통해 바꿀 수 없다. 업을 바꾸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행을 해야 한다. 부부는 생활속에서 좋은 업을 짓고 상대를 배려하면서 자신의 나쁜 업(業)이 녹아 사라지게 스스로 바꿔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내업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로가 자신의 나쁜 업을 깨닫지 못하는 데 있다. 그래서 나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
부부간에는 따뜻한 대화가 있어야 집안이 편안하다. 인체가 소통이 되지 않으면 통증이 오듯이 부부간에도 대화가 없으면 기가 막히게 된다. 소통의 기본은 경청이다. 부부간 대화를 할 때 자신의 고집과 생각도 중요하지만 죽고 사는 일이 아니면 상대방의 의견을 고려해서 일을 전개해야 한다. 쓸데없는 고집과 편협된 욕심은 가정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십상이다.
부부 생활에 있어 핵심은 "행복의 문턱을 낮추라."는 것이다. 행복이란 각자가 느끼는 주관적 감각이기 때문에 스스로 행복을 쉽게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문턱을 낮추면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충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상대를 기분나쁘게 하는 말투, 태도, 습관을 바꾸는 것이 매우 소중하다.
완벽한 부부는 존재할 수 없다. 서로 있는 그대로 고귀한 존재를 인정하고 각자의 특성이 잘 발휘되도록 서로 기를 살리는 품격과 용기가 필요하다. 우주를 다 품고도 남은 넉넉함을 지녀야 할 일이다. 별것도 아닌 것, 정말 사소한 일이라고 내 주장만 하고 상대를 나추면 행복은 멀어진다. 길가의 핀 꽃도 그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의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 세상이치이다.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면 양가 부모를 공경할 줄 알고 자녀를 사랑으로 돌볼 여유도 생기기 마련이다. 양가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부부사랑은 위선이고 거짓이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자식보다 부인에게 잘 주어야 한다. 부부가 양가 부모 알기를 소 닭보듯 하면 자신과 자녀의 뿌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뿌리가 부실하면 줄기가 부실하여 결국 제대로 된 열매를 얻을 수 없다. 그렇다면 부부 사랑을 이루는 핵심 열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진심으로 존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 분위기를 만들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뿌리인 부모는 무시하고 자녀를 키우는 것은 줄기에다 물을 주는 꼴로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