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슬픔, 회한, 분노 뒤섞인 노 전 대통령 추도행사
지난 주 금요일(5월29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고인의 유언대로 화장(火葬)을 위해 경기도 수원시 연화장에 도착
할 무렵, 지구 반대편 호주 시드니 한인회관에서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행사’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길벗모임, 노사모 호주지부, 시드니 민족교육문화원, 시드니 사랑방, 평화연대, 호주건설노조, 호주교민포럼(가나다 순) 등으
로 구성된 ‘호주한인연대’가 마련한 이날 추도행사는 전직 대통령을 잃은 슬픔, 지지자를 원통하게 떠나 보내야 했던 안타까
움, 그리고 한국의 현 정부와 검찰, 보수 언론에 대한 분노 등이 뒤섞여 두 시간 남짓 진행됐다.
초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이 떠나는 길을 환하게 밝히는 듯 한인회관 대강당 단상에는 수많은 촛불들
이 놓여져 있었고, 한국에서 노 전 대통령 추모곡으로 만들어진 ‘We believe’가 배경 음악으로 깔린 그의 생전 모습들이 담긴
동영상이 상영되었다. 미리부터 행사장에 나온 한인들이나 뒤 늦게 입장한 한인들 모두 단상 앞 스크린을 보며 숙연한 모습들
이었으며 일부 한인들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히기도 했다. 이어 태극기를 앞세워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입장하자, 여기 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쓰여진 현수막 아래, 흰색과 노란색 국화로 가득 채워진 테이블 위에 노 전 대통령의 영
정이 놓이는 것으로 이날 추도 행사는 시작됐다. 추모객들은 국민의례에 이어 묵념으로 일제히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주최 측이 ‘추도제’라고 이름 붙힌 2부 행사는 ‘호주 노사모’ 1기 대표로 브리즈번에서 온 장경찬 씨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삶
과 정치역정’을 조명해 보는 순서로 시작됐다. 장 씨는 “통계자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며 김영삼,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
당시의 주택보급률, 경제성장, 무역수지, 1인당 명목소득, 외환보유액 등을 비교한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참여정부의 업적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호주한인문인협회 김오 회장은 ‘분노가 우리를 관통한다’는 제목의 추도시에서 민주주의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다가
기득권과 권위의 높은 성(城)에 부딪히고만 노 전대통령의 죽음을 애닯아 했다. 또 추도 음악 시간에는 테너 조종춘씨가 양희
은의 ‘아침이슬’을 불렀고, 이영대 목사가 리드하는 ‘노래하는 세상’ 팀이 안치환의 ‘너를 사랑한 이유’를 불렀다.
2부 마지막 행사로 이화여대 무용과를 졸업한 한인 한송이씨가 노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노란색 한복 차림으로 살풀이 춤인
창작 진혼무 ‘기억’을 추도 무용으로 올렸다.
‘님을 보내며’란 이름으로 진행된 3부 순서에서 지성수 목사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 한국 검철과 보수 언론을 맹렬히
비난했으며, 승원홍 한인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노 대통령의 업적을 회고했다.
이어 평화연대 황재성 총무, 호주교민포럼 제임스 강 대표, 노사모 하정민 회원 등이 차례로 나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가 진심으로 ‘꿈꾸던 세상’을 이루는 것”이라면서 ‘바보 노무현’의 명복을 빌었다. 특히 하 씨는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
고 간 현 한국 정치상황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행사 말미에 노 전 대통령의 육성과 함께 그가 생전에 불렀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가 흘러 나오자 행사장 곳곳에서 울음 소
리가 커졌다. 자녀들과 함께 추도 행사에 참석해 목놓아 울던 40대 여성은 “한국에서 여기로 온 지 얼마 안되었는데 서거 소식
을 듣고 놀랐”며 추도 행사 후에도 황망하게 앉아 있었다. 캠시에 사는 한 한 교민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지금 이 순간
그리 중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인간적으로 불쌍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일부 교민들은 단 위의 영정을 바라보
며 “이제 나는 일생토록 당신의 뜻대로 살렵니다”라며 큰 절을 올렸다.
햔편, 이날 추도 행사에는 승 회장과 박은덕 한인회 부회장, 김병일 27대 한인회장 당선자, 권기범 스트라스필드 시장, 강대원
재호주 대한체육회장, 심 아그네스 호주한인여성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추도 행사에는 한인 200여명(주최 측 추산)이 참석했으며, 약 5천달러의 성금이 걷혔다. 성금은 추모행사 진행비를 제외
한 나머지를 향후의 노무현 기념관 건립기금에 보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