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영천 은해사, 거조암
2019.6.30.(일)
팔공산 은해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이다.
이 절은 809년(헌덕왕 1) 혜철국사(惠哲國師)가
해안평(海眼坪)에 창건하여 해안사(海眼寺)라고 불렀다.
그후 중건과 중창이 계속되었는데 1270년(원종 11)
홍진(弘眞)국사가 크게 확장하면서 대가람이 되었고,
1275년(충렬왕 1)에는 원참(元旵)이 중건했다.
1485년(성종 16)에는 죽청(竹淸)과 의찬(義贊)이 묘봉암(妙峰庵)을 중창하고,
1543년(중종 38)에는 보주 등이 중수했다.
1546년(명종 1)에는 천교(天敎)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 새로 절을 지었으며,
이때 인종의 태실(胎室)이 되면서 은해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1563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음해에 묘진대사(妙眞大師)가 중건했으며,
1667년(현종 8)에 백흥암과 명부전을 중수하는 등
계속 부분적인 불사가 이루어졌다.
1689년(숙종 15)에 법영(法英)·의연(義演)·광심(廣心)이 중창하여 대가람이 되었다.
그러나 1847년(헌종 13) 은해사 창건 이래 가장 큰 불이 나서
모든 건물이 소실되자 팔봉 등이 주관하여 중수를 시작했으며,
근대까지 계속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설선당·심검당·종루·보화루·독성각·요사채·승당 등 24동에 이르며,
말사 39개, 포교당 5개, 부속암자 8개를 두고 있는 대본사이다.
이 절과 부속암자에 있는 중요문화재로는 거조암영산전(居祖庵靈山殿:국보 제14호)·
백흥암극락전수미단(百興庵極樂殿須彌壇:보물 제486호)·
운부암청동보살좌상(雲浮庵靑銅菩薩坐像:보물 제514호)이 있고
기타 60여 점의 사중보물이 있다.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은해사 거조암에 있는 고려 말기의 목조건물. 국보 제14호.
738년(효성왕 2) 원참조사가 창건했다는 거조암(당시는 거조사였음)이
언제부터 은해사의 부속암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건물이 해체·수리될 때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1375년(우왕 1)에 건립되고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고 한다.
낮은 기단에 자연초석을 배열하고 그 위에 건물을 세웠으며
앞면 7칸, 옆면 3칸의 직4각형 평면에
단층 홑처마 맞배지붕의 주심포(柱心包) 건물이다.
정면은 중앙칸에 판문과 살문으로 이중의 출입문을 설치했고
그외에는 앞면에 4칸, 옆면에 각각 1칸,
뒷면에 1칸 붙박이살창을 설치했다.
건물 옆면의 중앙칸 양옆에 있는 고주가 길며,
그 양옆으로 앞뒤쪽에 변주를 배열하여 툇간을 만들었다.
건물의 내부바닥에는 고주 사이의 중앙칸을 마루로 높여
불상을 안치하고 그 주위에 벽돌을 깔았다.
건물벽과 고주를 따라 불단을 가설하여 총 526구의 나한상을 봉안했다.
내부의 천장은 서까래와 가구가 드러나는 연등천장이다.
건물 전체의 구성이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우며,
정면에서 볼 때 기둥이 낮고 간살이 넓어 안정감이 있는 외관을 이룬 점,
방향이 동북향이라는 점 등이 특징이다.
이 건물은 양식적으로 무위사 극락전(1476 이전에 건립)과
비교해 그보다 앞서는 것으로 추정되며,
가구의 세부기법에서 주두(柱頭)나 소로(小櫨)가
다포집과 같은 형태인 점만을 제외하면
주심포의 초기적인 형태를 잘 나타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불호당】
永川市 淸通面 新源里【祓護堂】
마을의 재액을 없애주고 마을을 수호하는 성황신 (城隍神, 서낭신)을 모시기 위해
조선영조45년,(서기 1769년, 건륭34년) 성황당을 건립,
大韓 光武 5년(1901년) 중건, 1964년(甲辰)2월 16일 중건,
2011년 (辛卯) 新源里 居住 癸巳生 이병용 중수,
2016년(丙申) 음.2월19일 丙申生 具東福,
庚子生 朴宰賢, 戊戌生 徐相鎭, 壬寅生 成東杓 등이
位牌를 奉安 하였으며,
祓護堂 城隍神(불호당 성황신)께 매년 정월 보름날
마을에서 깨끗한 사람을 뽑고 집집마다 일정 금액을 거취한 뒤
재물을 마련해 동제를 지내고 마을 주민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고
각 세대주의 이름이 적힌 소지를 태우며 소원을 빕니다,
이곳 祓護堂 城隍神(불호당 성황신)께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