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노안 성당
1894년 서울에 거주하던 정락 요한이 박해를 피해 숨어 다니다가 함평군 나산면에 정착하여 한약방을 경영했는데,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주민들이 이 한약방을 왕래하면서 천주교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양천리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던 이진서가 정락을 만나본 후 친척인 이민숙, 이화서와 함께 교리를 공부하여 1900년 무안 우적동 사내에서 요양 중이던 이내수 신부를 찾아가 세례를 받았다. 이후 이들을 중심으로 계량 공소가 시작되었습니다.
1904년 무안군 우적동에 부임한 투르뇌 신부는 나주에 본당을 설립하고자 나주읍과 계량에서 각 7km 거리인 노안면 용산리 남산에 부지를 마련했으나, 매매 계약이 끝난 후 토지의 전 소유주가 계약을 파기해 버렸습니다. 결국 투르뇌 신부는 1908년 계량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습니다. 1910년 카닥스 신부는 넓은 부지를 매입해 40평 규모의 십자형 초가성당을 건립하고, 이어 벽돌을 찍어 2층 양옥 사제관 신축을 시작했습니다. 박재수 신부 재임 중인 1927년 벽돌조 사제관을 서구식 성당으로 확장 · 준공하고, 1933년 광주 북동 본당, 1935년 나주 본당을 공소에서 본당으로 분리하면서 본당 이름을 ‘계량 본당’에서 ‘노안 본당’으로 변경했습니다.
늘어나는 신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1957년 제단을 중심으로 좌우를 증축하여 현재의 라틴 십자형 성당을 완성했습니다. 같은 해 3월 ‘성모 중학원’을 설립하여 1961년 ‘성 골롬반 중학교’로 정식 인가받고, 노안면 유일의 중등 교육기관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했습니다(1984년 2월 29일 폐교). 1960년대 말부터 일기 시작한 공업화로 이농 현상이 촉진되자 한때 4,000여 명을 헤아리던 노안 본당의 신자수는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1985년에는 폐교된 골롬반 중학교의 건물과 대지를 활용하여 ‘청소년 교육장’을 개장했습니다.
노안 성당은 나주 지역 및 광주대교구 복음화의 모태라는 역사적 의의와 함께 시대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는 건축 양식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9월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아 2008년 11월 기념식을 갖고, 나주 지역 복음화의 산실로 거듭날 것을 다짐하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당 보수 작업 등을 진행했습니다. 2009년 10월 성 골롬반 중학교 출신들이 성당 입구에 봉헌한 성가정상 축복식을 가졌고, 2011년 4월에는 성당 옆에 은퇴 주교를 위한 새 주교관인 ‘베타니아의 집’을 지어 봉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