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삼손의 결혼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 말씀 : 삿14:1-18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2 도로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취하여 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3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 삼손이 아비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를 데려오소서 하니 4 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관할한 고로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서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5 삼손이 그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서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어린 사자가 그를 맞아 소리지르는지라 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7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며 그를 기뻐하였더라 8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다시 가더니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 떼와 꿀이 있는지라 9 손으로 그 꿀을 취하여 행하며 먹고 그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취하였다고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10 삼손의 아비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삼손이 거기서 잔치를 배설하였으니 소년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11 무리가 삼손을 보고 삼십 명을 데려다가 동무를 삼아 그와 함께 하게 한지라 12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하리니 잔치하는 칠 일 동안에 너희가 능히 그것을 풀어서 내게 고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13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고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그들이 이르되 너는 수수께끼를 하여 우리로 듣게 하라 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그들이 삼 일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15 제 칠 일에 이르러 그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이르되 너는 네 남편을 꾀어 그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알리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와 네 아비의 집을 불사르리라 너희가 우리의 소유를 취하고자 하여 우리를 청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냐 16 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가로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치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풀어 이르지 아니하도다 삼손이 그에게 대답하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풀어 고하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풀어 이르리요 하였으나 17 칠 일 잔치할 동안에 그 아내가 앞에서 울며 강박함을 인하여 제 칠 일에는 그가 그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풀어 이르매 그 아내가 그것을 그 민족에게 고하였더라 18 제 칠 일 해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갈지 아니하였더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서론>
한 바보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저게 뭐야?” 그랬더니 다른 바보가 “손가락” 그럽니다. “왜 저렇게 밝아?” 그랬더니 “너, 메니큐 칠했잖아” 그럽니다.
저와 여러분은 손가락이 가르키고 있는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만 쳐다봅니까. 실상인 달을 봐야 하는데, 종종 우리는 허상인 손가락 끝을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손가락이 가르키고 있는 성경인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인물을 창조하시고, 조정하시는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삼손이야기는 손가락임으로 배후에 역사하시고 간섭하시는 하나님을 저와 여러분은 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서도 삼손의 부모들은 손가락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관할한 고로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서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무대는 허상입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실상의 무대는 바로 천국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천국소망을 분명하게 누리는 자녀들은 이땅에서의 환란과 고통이 두려울 것이 없고, 오히려 연단 이후의 축복에 대한 감사로 기대와 희망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의 계획은 삼손을 통해서 블레셋 여인을 취하게 한 후, 기회를 봐서 블레셋을 타도하기 위함으로, 수수께끼 미끼를 놓았는데, 삼손은 하나님의 의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여인의 계략에 빠져 실수를 하는 장면이 본문 17절에 연출되고 있습니다. “칠 일 잔치할 동안에 그 아내가 앞에서 울며 강박함을 인하여 제 칠 일에는 그가 그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풀어 이르매 그 아내가 그것을 그 민족에게 고하였더라”
무슨 뜻입니까? 삼손이 히브리인으로서 블레셋 여인을 사랑하여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이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혼인을 해야 하는 옳은, 정당한 이유가 결혼을 통해 블레셋을 치게 하신다는 겁니다.
왜 삼손의 부모처럼 저와 여러분은 삶가운데 하나님의 계획을 읽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것입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죽은 땅에 새로운 구원을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이 짓밟혀 죽도록 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삼손의 결혼식은 이스라엘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일종의 경종이었고, 이스라엘에 사람이 다 죽은 것이 아님을 알려,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속국으로 이땅에서 사라져갈 백성이 아님을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의 핵심을 붙들고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거슬리지 마시고, 순종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본론>
=====14:1 딤나 - 본래 단 지파에게 할당된 기업이었으나(수 19:34) 단 지파가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난 이후부터 블레셋에게 복속된 것 같다. 이곳은 현재의 딥네(Tibne)와 동일시 되는 곳으로 소라 남서쪽 약 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14:2 블레셋 사람의 딸 중 한여자를...내 아내를 삼게 하소서 - 삼손은 자신의 혼인 문제를 부모님과 상의했다. 나실인으로 여호와에 대한 신앙 가운데서 자란 삼손이 이처럼 자기의 결혼 문제를 두고 부모와 상의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특히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신부를 데려오기 위해서 결혼 지참금이 필요했다. 이 결혼 지참금은 신랑될 사람의 아버지의 손을 통해서 나와야 했으므로 그 당시 아들이 결혼 문제로 부모와 상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창 34:1-12 강해, '빙물과 예물' 참조. 한편 삼손이 블레셋 땅 딤나를 자유스럽게 왕래할 수 있었으며 그곳의 처녀와 결혼까지 할 수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압제했으나 인간적인 교류를 막지는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14:3 삼손의 부모는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다. 왜냐하면 이는 모세의 율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조항이었기 때문이다(출 34:15, 16;신 7:3, 4). 또한 과거 이스라엘의 선조들 역시 동족끼리의 결혼을 바람직하게 생각했으며 또 그렇게 시행하여 왔기 때문이다(창 24:3;26:34, 35;27:46;28;1, 8;34:14;36:6). 특히 삼손의 부모는 삼손이 나실인이기에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더욱 반대했을 것이다(13:5).
=====14:4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함이었으나 - 본절을 통해 볼 때 삼손은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여 블레셋과 화친한 것처럼 위장해 그들을 칠 기회를 엿보고자 의도한 것 같다. 이러한 삼손의 의도는 이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12, 19절). 그런데 우리는 이 같은 본문의 사건을 통해 두 가지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초자연적 권능으로 불레셋을 순식간에 진멸시킬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허물 많은 삼손에게 그 일을 맡기셨다. 이는 당신의 뜻을 실행하는 일에 인간을 동참시키고자 하시는 놀라운 계획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롬 13:6). (2)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블레셋을 격퇴코자 한 목적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계획이었으나 삼손이 굳이 이방 여인과 불순한 혼인을 하면서까지 그 일을 도모할 필요는 없었다. 결국 삼손은 자신이 사용했던 불순한 방법으로 말미암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16:21, 30).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 -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고자 의도했던 바가 바람직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도가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 것은 상호 모순되어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결국 잘못된 방법을 사용하여 선한 목적을 추구하는 분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본 절을 잘 이해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즉 본 절은 앞에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연속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본서 저자의 설명에 불과하다. 삼손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고자 의도한 사실과 그것을 이용하여 블레셋을 치고자 한 점 등을 순전히 삼손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용하여 블레셋을 치려 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는 삼손의 결혼 그 자체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처럼 묘사했던 것이다.
=====14:6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 5절에 의하면 삼손은 그의 부모와 동행하던 중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모가 삼손에게 일어난 일을 몰랐다는 사실은 본 사건의 역사적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든다(Cassel). 그러나 그러한 사실에 대해 자세한 정보가 없을 뿐이지 역사적 진실성을 의심할 만한 점이 본절에 나타나 있지 않다. 아마도 저자는 본절에서 삼손이 사자를 죽였다는 사실과 그 이후에 이어지는 수수께끼 사건(8-20절)을 연관짓는 데에만 관심을 두었으므로 삼손이 사자를 만나게 된 자세한 경위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추측컨대 삼손이 처음 길을 나설 때에는 부모와 동행하였으나 워낙 삼손의 걸음이 빠르다보니 부모를 앞질러서 가게 되었을 수 있다. 그리하여 그가 딤나 포도원에 이르렀을 때에는 혼자 있게 되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14:8 그 여자를 취하려고 - 삼손이 부모와 함께 처음 딤나로 내려 갔던 것(5절)은 약혼을 위한 것으로 추정되다. 따라서 이번에는 정식으로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 다시 딤나로 내려갔을 것이다.
=====14:10 삼손의 아비가 여자에게로 내려가매 - 여기서 '여자'에 해당하는 '이솨'는 주로 결혼한 여인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어에서는 처녀에게 '베툴라'란 단어가 사용된다. 그런데 '이솨란 용어가 여기에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1절부터 계속 블레셋 여인에게 사용되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삼손이 결혼하고자 한 블레셋 여자는 처녀가 아니라 결혼했던 적이있는 과부나 이혼녀일 가능성도 있다. 한편 삼손의 아버지가 삼손의 결혼을 위해 딤나로 내려간 것은 그의 결혼식이 이스라엘의 풍습에 따른 것이 아니라 블레셋의 풍습을 따른 것인듯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녀의 결혼을 위해 신랑의 부모가 신부의 부모에게 결혼 지참금을 지불한 후 대개 신부를 데려와서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이다(창 24장). 소년은 이렇게 행하는 풍속이 있음이더라 - 이스라엘의 결혼 관습에 의하면 히브리인들은 간혹 신부집에서 혼인 잔치를 베풀기도 하지만(마 25:1-13) 대개는 신부를 신랑 집으로 데려온 후 그곳에서 혼인 잔치를 베풀었다(마 22;2-10). 그러나 블레셋인들에게는 신랑을 위하여 신부집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R.D Vaux P.Cassel). 이로 보건대 삼손은 이러한 블레셋의 결혼 관습을 철저히 따랐던 것 같다. 이는 곧 삼손이 블레셋의 풍습을 철저히 따르는 것처럼 행동하여 그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삼손 자신이 의도했던 바대로 블레셋에서 자유로이 활동하면서 그들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4절).
=====14:12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하리니 - 여기서 '수수께끼'에 해당하는 '후드'는 '어려운 문제'(왕상 10:1), '오묘한 말'(시 49:4;잠 1:6), '은밀한 말'(민12:8)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연회의 흥을 더욱 돋우기 위해 제출된 '수수께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고대 근동 뿐 아니라 그리이스에서는 연회 때 수수께끼를 제출하여 연회의 흥을 돋우는 풍습이 있었다(Cassel,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2, p, 411). 삼손은 이제 이러한 관습을 이용하여 블레셋을 칠 기회를 찾았던 듯하다.
=====14:13 너는 수수께끼를 하여 우리로 듣게 하라 - 블레셋 사람들은 30명이 함께 머리를 짜내면 충분히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으리라 확신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삼손의 제안은 국가적인 자존심의 문제이므로 그들이 그 제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삼손은 바로 이 점을 노려 수수께끼 게임을 제안했음이 분명하다.
=====14:14 먹는 자에게서...강한 자에게서 - 삼손이 제출한 수수께끼의 내용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블레셋 청년들이 그 내용을 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한편 삼손의 수수께끼는 일반적인 히브리 시(詩)의 형태로서 평행법에 의한 것이다. 즉 '먹는 자'와 '강한 자'는 같은 것을 지칭하면서 동시에 서로의 내용을 보충하는 것이고, '먹는 것'과 '단것'도 같은 의미이면서 서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혀 주고 있다. 따라서 이를 도표화해서 기호로 풀면 그 해답이 쉽게 드러나게 된다. 즉 다른 짐승을 잡아먹는 동물 중에서 강한 동물은 무엇이며, 먹는 식물(食物) 중에서 가장 단음식은 무엇이냐는 문제였던 것이다(18절).
=====14:15 너와 네 아비의 집을 불사르리라 - 이와 같이 블레셋 사람들은 매우 비겁하고 간교한 방법을 동원하여 삼손이 내놓은 수수께끼의 의미를 알고자 했다. 즉 블레셋 여인의의 집을 멸망시키겠다는 블레셋 사람들의 협박은 여자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런 여인의 약점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아내의 말에 약한 남자의 약점을 동시에 이용하고자 했다(Matthew, Henry).
=====14:16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풀어 이르지 아니하도다 - 블레셋 여인은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제출한 수수께끼의 의미를 자신이 알 권리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이것은 그녀가 그들로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것을 감추고자 했음을 암시한다. 나의 부모에게도 풀어 고하지 아니하였거든 - 삼손의 이러한 말속에는 그가 여인의 말처럼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있음이 드러나 있다. 즉 블레셋여인은 삼손의 사랑에 호소하여 그 수수께끼의 의미를 알고자 했으나, 삼손은 자기 부모에게도 비밀로 했음을 말함으로써 사랑의 순서에 있어서 그 여인이 삼손의 부모보다 못함을 드러냈던 것이다.
=====14:18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면...풀지 못하였으리라 - 삼손은 블레셋인들이 수수께끼의 해석을 자기 아내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되었음을 간파했다. 왜냐하면 그수수께끼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과 그의 아내 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동안 수수께끼릍 풀지 못했던 자들이 그의 아내에게 수수께끼의 의미를 알려 준 이후에 나타나 그수수께끼를 풀이했기 때문이다. 이에 삼손은 본절에서처럼 그들의 간교한 술책을 비유로 비꼬았다. 즉 본절은 그들이 삼손의 아내를 비겁한 방법으로 협박하여 자기들의 어리석음을 감추고 손해를 막아보고자 한 사실을 비난한 말이다. 본절에서 '내 암송아지'란 분명 삼손이 자기의 아내를 비유적으로 일컬은 말이다. '암소'는 흔히 생식, 노동, 복종 등의 이미지로 부각된다(신 28:2 ; 욥 21:10). 그리고 당시 히브리인들의 여성관에 의하면 여자는 마땅히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집안 일을 잘 돌보며 남자에게 철저히 순종하여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삼손이 자기 아내를 '암송아지'로 비유한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할 수 있다(본 자료는 기독링크넷에서 퍼온 것임).
결론>
삼손의 결혼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첫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초자연적 권능으로 불레셋을 순식간에 진멸시킬 수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허물 많은 삼손에게 그 일을 맡기셨다. 이는 당신의 뜻을 실행하는 일에 인간을 동참시키고자 하시는 놀라운 계획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롬 13:6).
둘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이 일이 여호와께로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