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조선시대 말쯤이다.
어느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점심때가 되어서 주막에 들르게 되었다.
거기서 대들보에 소의 불알을 삶아서 달아 놓은 것을 보고 주모에게 썰어 달라고 하여 술안주 삼아 배불리 먹었다.
그런데 문제는 값을 치를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험상궂은 주인 남자까지 뛰쳐나와 삶은 소 불알과 술값 내 놓으라고 난리가 났다.
이 나그네의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지경이 벌어졌던 것이다.
근데 참 이 나그네 태연히 하는 말씀 좀 들어보소.
《 “주모, 암소 잡은 요량하소. 암소 잡은 요량”》
애당초 암소를 잡았으니 소 불알이 어디 있겠으며, 그래서 어디 내가 암소 불알 삶은 것을 먹었다는 사실이 있겠느냐 라고 완전 똥배짱을 부렸던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뒤집어진 남편이 행동을 착수하려고 하는 찰나에 나그네가 자기 신분을 밝혔다.
“나 정만서요.”
참 그 시대에는 이 정만서라는 사람이 조선 천지에 꽤나 유명했던 모양이다. 바로 “천하의 잡놈 정만서”였던 것이다.
이 말에 그 험악한 주막 주인 남편도 돈 받을 생각을 아예 포기하고 말았다.
아예 상대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고기 값 대신에 소리나 한 번 해보시오.”라고 하니까 이 천하의 정만서가 춤추고 노래를 했다.
이것을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 들어서 술과 안주들을 모두 먹어서 그 주막을 연 이래로 최대의 매상을 올렸다고 하는 이야기이다.참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일을 암소 잡은 요량을 하면 되지 않겠는가?
원래 암소를 잡았는데 삶은 불알이 어디 있겠는가?
암소에게는 불알이 원래 없지 않은가? 왜 없는 불알을 가지고 시시비비(是是非非) 하는가 라는 말씀이시다.
주막 주인이 이렇게 암소 잡은 요량을 하면 시비(是非) 붙을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원래 없는 것인데...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사람이든 물질이든 모두 다 본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면 아무런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을 것이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이 없다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가 아닌가?
나의 몸과 마음 그리고 우주 삼라만상이 원래 없다고 하는 것이 불법(佛法)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모든 것이 공(空)이라고 하지 않는가? 모든 것이 다 꿈이고 환영(幻影)일 뿐이다. 원래 암소 불알이라는 것이 없지 않은가?
없는 것을 자꾸 있다고 생각하면서 고통을 받고 사는 것이 우리 중생살이가 아니겠는가?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본래 존재하지 않는 무(無)요, 공(空)인데 왜 있는 것이라고 집착하여 고통스러운 중생살이를 하는가?
하옇튼 이 천하의 잡놈 정만서의 말과 같이 “암소 잡은 요량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되지 않겠는가?
“암소 잡은 요량 하소.” 참 좋은 말씀이시다.
도인(道人)들이 마음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도 사실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허상(虛相)이고 환영(幻影)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도(道)를 깨달아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무것도 없는 텅 텅 빈 공(空)이라는 것을 증득(證得)하게 되면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다 내려놓고 마음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을 포함한 일체의 세상만사가 원래 다 없는 것인데 어떻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생기겠는가?”
이렇게 마음 비우는 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진리, 무상(無相)의 진리라는 것이다. 이 우주의 모든 것은 원래로 아무것도 없는 텅 텅 빈 것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하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사실은 다 꿈이고 허상이고 환영인 것이다. 없는 것을 가지고 왜 시시비비(是是非非)하면서 스트레스 받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 가는가?
천하의 잡놈 정만서의 말과 같이 “암소 잡은 요량하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방하착(放下着)하는 마음 비우는 진리인 것이다.
자! 우리 모두 천하의 잡놈 정만서와 같이 마음을 비우고 살아 가자.
“주모, 암소 잡은 요량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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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서는 경주시 건천면 출생이며 용명2리에 무덤이 있다. 비문에 의하면, 그는 동래 정씨이고 이름은 용서(鄭容瑞), 자는 만서(萬瑞), 호는 춘강(春岡)이다. 1872년(고종 9)에 현릉참봉에 제수되었으며, 1896년 61세로 죽은 후 가선대부(嘉善大夫)의 벼슬을 받았다.
그는 일생을 평민과 더불어 살면서 부자와 관료들의 횡포에 맞서고 풍류와 임기응변의 재치로 생활의 방편을 삼는가 하면, 삶과 죽음 등 근원적인 문제를 자각시켜 주는 일화도 많이 남겼다. 다음은 정만서에 관한 일화이다.
정만서가 곶감을 보고 “이거 국 끓여 먹으면 되지요?”라고 하자 곶감 장사가 “곶감을 어찌 국 끓여 먹나, 그저 먹지.”라고 대답한다. 정만서가 곶감을 실컷 먹자 장사가 돈을 내라고 하는데, 정만서는 곶감 장사에게 “그저 먹으라고 했으면서 왜 돈을 달라하느냐?”라고 대꾸한다.
이러한 말장난은 기생에게 거문고를 사주겠다고 돈을 받은 후 ‘검은 거’라며 시커먼 방앗공이를 건넨 이야기나, 아들 범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어떤 포수가 범을 잡았느냐고 농담한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다.
하루는 정만서가 대구 서문시장에 나타나서 땅을 치며 종일 울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들이 까닭을 물으니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는다! 그것이 슬퍼서 운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놀라서 연유를 캐어물으니 “여기 늙어서 죽지 않을 사람 누가 있느냐?”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크게 놀라며 모두들 웃고 헤어졌다 한다.
어느 날은 정만서가 객지에서 복막염으로 죽을 고비에 이르자 아들이 그 소식을 듣고 아비를 모시러 왔다. 배가 부어서 아들 등에 등을 대고 업히어 오는데, 이를 본 사람들이 걱정스레 안부를 물으니 “등 따시고 배부른데, 이보다 더 좋은 팔자가 어디 있는가?”라고 하였다.
또한 임종 직전에 친구들이 찾아와서 죽음에 대한 소감을 물었더니 “아직 초죽음이라서 죽어 봐야 알겠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의의 및 평가
설화의 내용은 상당히 지적인 언변과 단수 높은 기지와 비약적인 논리로 이루어져 있어서, 바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다. 조선 후기 건달형 인물들 중 정만서는 언어의 모호성을 활용하여 자유롭게 거짓말을 한다거나, 전복적인 상상을 통해 부정적 상황을 역전시키는 파격적인 인물이란 특징이 있다.
방학중과 거의 동시대 사람이면서 비슷한 삶을 살았다는 것은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인물전설(人物傳說)이 상호 관련성 속에 고찰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지배와 억압의 대상에게 어떻게 대항하며 민중적 의지를 실현해 왔는가 하는 문제도 이 설화들을 통해서 다루어질 수 있다.
또한 문학으로서의 골계적 · 풍자적 양식에 대한 논의 뿐만 아니라, 민중적 지성 또는 민중적 영웅의 인물 유형을 분석함으로써 종래의 서사 문학에서 존재하던 미적 범주나 인물 유형의 성격이 어떻게 계승되고 변용되어 왔는가 하는 논의도 가능하다.
첫댓글 다녀 갑니다